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03강(창37:5-1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2. 31. 16:50

창세기 강해 제203(37:5-11)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220()

 

요셉의 두 가지 꿈의 내용과 의미(37:7-10)

 

첫 번째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밭에서 곡식의 단을 묶고 있는데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고 있더라”(37:7)는 것입니다. 형들이 동생에게 절을 하는 경우는 고대사회에서 한 가지 사례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동생이 왕이 되고 형들이 동생의 신하가 되는 경우입니다. 족장의 경우에 있어서는 다릅니다. 장자가 차기 족장이 되기 때문에 동생이 아버지의 족장의 지위를 승계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스마엘과 이삭의 경우와 같이 적서(嫡庶, 적자와 서자)의 구별이 있는 경우에는 서장자(庶長子, 서자인 맏이)가 아니라 동생인 적장자(嫡長子, 적자로서 맏이임)가 족장의 지위를 세습합니다. 그 점은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동쪽에 있는 예의가 밝은 나라)이라고 불리고 있는 조선(朝鮮)과 조금의 차이도 없습니다. 그래서 형들이 요셉에게 항의를 하고 있습니다;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37:8).

요셉의 두 번째 꿈의 내용도 첫 번째 꿈과 대동소이(大同小異, 별 차이가 없음)합니다;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37:9)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열한 별은 열 명의 이복 형과 친동생인 베냐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형들이 묶은 곡식 단의 경배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별도로 해와 달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해와 달은 부모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장차 집안에서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가장 존귀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신분은 대 족장 이스라엘이 경배할 정도의 지고한 위치가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임을 알아채고서 형들이 항의를 할까 싶어서 얼른 야곱이 요셉을 꾸짖는 척하면서 진화작업에 나서고 있습니다;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37:10).

하지만 야곱의 마음 속에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 꿈은 분명히 요셉이 장차 큰 인물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대 족장을 의미하고 있는 자신의 칭호 이스라엘의 지위를 요셉에게 물려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을 하면서 그 꿈의 의미를 야곱은 자신의 마음 속에 새기고 있습니다(37:11). 그런데 여기서 곡식의 단에 대한 이야기가(37:7)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 야곱은 헤브론에서 목축업뿐만 아니라 농업도 경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복합영농입니다. 옛날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랄 땅에서 복합영농으로 엄청난 부자가 된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26:12).

 

꿈의 내용을 쉽게 발설하는 철부지 요셉과 주변의 반응(37:5-6, 11)

 

꿈은 본래 은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미심장한 꿈일수록 가슴 속에 깊이 묻어 두고서 오랫동안 음미를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그러하지를 못합니다. 그는 평소 아버지 야곱의 절대적인 편애와 보호 가운데 제멋대로 자라난 철부지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혼자서 채색 옷을 입고서 벌써 차기 족장이나 된 듯이 형들 앞에서 우쭐거리고 다녔습니다(37:3). 더더구나 아버지의 신임을 등에 업고서 형들을 감시하고 이복 형들의 잘못을 곧이 곧 대로 아버지에게 고자질을 했습니다(37:2). 그러한 소행이 괘씸해서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고 있습니다(37:4).

그런 줄도 모르고 요셉이 자신의 꿈 이야기를 형들 앞에서 버젓이 떠벌리고 있습니다(37:6-9). 그것은 마치 불 위에 기름을 끼얹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이복 형들의 모친까지도 자신에게 꿈 속에서 절을 하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형들은 자신들의 어머니까지 모욕을 하고 있는 요셉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번 요셉을 호되게 혼을 내주려고 벼르게 됩니다. 그러한 감정이 계속 쌓이자 결국은 동생을 은밀하게 살해하려는 의도를 가지게 됩니다(37:18-20).

요셉은 그와 같은 이복 형들의 마음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남의 심정을 헤아리지를 못하는 매우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꿈 이야기를 아버지와 서모들까지 모두 있는 자리에서 발설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안하무인이며 예의범절도 없는 17세의 청소년에 불과합니다(37:2). 어떻게 하면 그러한 철부지를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 창세기는 정직하게 답하고 있습니다. 곧 이어서 하나님의 처방과 인도하심이 요셉의 인생 가운데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방책(37:28, 39:1-3)

 

  왕이 되려고 하는 자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만 한다는 멋진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을 성경적으로 약간 수정을 해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됩니다; “왕과 같은 제사장의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자는 예수님처럼 고난을 통과해야만 한다”. 얻으려고 하는 영광이 큰 것일수록 그 고난과 훈련의 과정은 길고도 힘든 법입니다. 여기서 철부지 요셉의 인생이 그러합니다. 큰 영광을 얻게 되는 꿈이 그냥 실현이 되지를 않습니다. 각고의 인내와 훈련의 기간이 그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애초에 그러한 사실을 요셉이 알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 꿈을 부모님과 형제들 앞에서 떠벌리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 대신에 조용하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저는 철부지입니다. 아버지 야곱의 비호아래 집안에서만 우쭐거리고 있는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거창한 꿈은 거두어가시고 그저 부모님을 잘 모시고 형제들과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는 인물이 되도록 인도해주십시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셉은 그와 같은 이치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새로운 피조물인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극단의 조치를 취하시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 집안의 왕자 격인 요셉을 하루 만에 애굽의 노예로 전락시켜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대 애굽의 제국에는 선진문명이 발달해 있습니다. 애굽은 엄청나게 큰 고대의 제국입니다. 오늘 날의 이집트, 수단, 이디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리비아, 튀니지 등 여러 나라가 나일 강을 중심으로 하나의 제국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애굽 제국입니다. 그곳에서 고난을 통하여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로 서게 될 것입니다”(37:28, 39:1-5). 하지만 그것은 보통 사람이 쉽게 감당하지 못하는 일종의 극약처방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