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02강(창37: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2. 31. 16:48

창세기 강해 제202(37:1-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220()

 

요셉의 나이가 17세이면 아버지 야곱의 나이와 할아버지 이삭의 나이는 각각 몇 살인가?(37:1-2)

 

모세는 야곱의 아들 요셉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에 그의 나이 17세 때의 행적부터 말하고 있습니다(37:1). 그 때는 아버지 야곱이 이미 부친 이삭의 헤브론 집에 들어온 지 몇 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확실한 연도는 알 수가 없지만 대체적으로 추정을 해보자면 야곱의 나이 105세에 헤브론에 있는 아버지 이삭의 집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야곱의 장남 르우벤의 나이 20세 정도가 되었을 때 17세 이상의 준 어른으로 성장한 그의 아우 시므온과 레위 등이 칼을 차고 가서 세겜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합니다(34:25). 르우벤은 야곱이 84세에 레아와 결혼을 하고 그 다음 해에 낳은 장자입니다. 그러므로 르우벤 나이 20세는 야곱의 나이로 105세가 됩니다. 그 해에 야곱은 세겜에서 벧엘로 탈출을 했습니다(35:1-8). 그리고 다소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계속 남행하여 아버지 이삭의 집 헤브론으로 들어온 것입니다(35:27). 그 때의 부친 이삭의 나이는 165세입니다. 이삭이 180세에 향년을 맞이하므로(35:27-29) 그는 둘째 아들 야곱의 가족과 상봉하여 함께 15년을 살게 되는 셈입니다.

모세는 창세기 제37장의 기록을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37:1)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17세가 되었을 때에 행한 일을 가지고 야곱의 족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부친 이삭과 함께 살고 있을 때에 어느덧 11번째 아들인 요셉이 준 어른이 되고 그를 중심으로 하여 야곱의 아들들이 제 각각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됩니다. 그렇다면 르우벤의 나이 20세에 헤브론으로 들어왔으면 그 때 요셉의 나이는 몇 살이었을까요? 간단하게 계산이 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요셉이 태어나자마자 아버지 야곱이 무려 14년 동안의 무료 머슴살이를 끝내고 장인 라반의 집을 떠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30:24-25). 장남인 르우벤은 8년째 무료 머슴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큰 형인 르우벤보다 6살이 적습니다. 결국 요셉은 그의 나이 14세에 할아버지 이삭의 집에 도착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3년의 세월이 지나자 창세기 제37장의 기록이 드디어 시작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야곱의 11번째 아들인 요셉이 준 어른이 되었을 때에 요셉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이복 형들의 행적을 기술하면서 야곱의 아들들 이야기 곧 야곱의 족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부친 야곱의 나이는 108세이며 조부 이삭의 나이는 168세입니다. 아직 요셉의 할아버지인 이삭이 운명하기 12년 전의 기록입니다.

여기서 참고로 17세 남자의 의미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중근동지역 고대사회에서 남자의 나이 17세와 20세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17세는 준 어른이며 20세는 성인으로 취급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장정의 수를 셀 때에도 20세부터 50세까지의 남자의 수를 셉니다(12:37). 그리고 전쟁에 참여하는 나이도 20세가 기준입니다. 그렇지만 남자가 17세가 되면 어른에 준하는 의무가 부과됩니다. 전쟁에 나간 20세 이상의 형들을 도와서 집안 일을 해야만 합니다(삼상17:14-18). 그리고 장정의 수가 부족할 때에는 마치 신라의 화랑도와 같이 17세 이상의 청소년으로 군사를 보충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삼상17:33-40).

그와 비슷한 개념을 오늘 날 서양사회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는 자녀(dependent children)의 나이를 18세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만 나이 18세부터는 이미 독립적인 생계(independent life)를 꾸려가야만 하는 성인입니다. 그 나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진학하거나 아니면 사회로 곧장 진출하는 시기에 해당합니다.  물론 남녀간에 18세부터는 성인으로 취급이 되므로 결혼도 당사자들의 의사만으로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역시 준 어른으로 취급이 되는 나이가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날은 16세입니다. 그 나이가 되면 보호자의 허락만 있으면 결혼도 할 수가 있고 사회인으로 생활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현대인들의 영양상태가 좋아지고 체격들이 좋아지다가 보니까 옛날 고대사회의 17세 준 어른의 나이가 16세로, 20세 어른의 나이가 18세로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요셉을 편애하고 있는 야곱의 잘못은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는가?(37:2-4)

 

야곱의 약점인 무서운 편애가 낳고 있는 집안의 분란에 대하여 모세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먼저 야곱이 어떠한 핑계로 자신의 편애를 합리화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스라엘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요셉을 여러 아들들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37:3a). 그래서 유일하게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만들어 입히고 있다(37:3b)고 모세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기록은 굉장히 비꼬는 투입니다. 그 이유는 야곱이 85세에 맏아들 르우벤을 낳고 11번째 아들인 요셉을 91세에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야곱의 아들은 모두가 이스라엘이 노년에 얻은 자식들입니다. 첫째와 11번째의 차이도 기껏해야 6살의 나이 차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순전히 자신의 집착인 편애를 구차하게 변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들립니다.

둘째로, 이스라엘은 17세의 요셉을 이복 형들과 함께 양을 치도록 내보내고 있습니다(37:2a). 그러나 요셉이 하는 주 임무는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이복 형들의 잘못을 수집하고 그것을 일일이 족장인 아버지 야곱에게 보고하는 일입니다. 일종의 감시역입니다. 그 임무는 아버지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특별히 맡긴 직분입니다. 그것이 형제간에 불화를 더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셉은 만만한 서자 형들의 허물을 빠짐 없이 아버지에게 보고하고 있습니다(37:2b). 그것이 장차 형제간에 피를 부르는 요인이 됩니다. 요셉에게 우월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잘못이 크게 눈에 뜨이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야곱의 심리가 어디서부터 비롯되고 있는가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야곱은 첫날 밤을 치르고 나서 라헬의 언니 레아에게 엄청 실망을 합니다. 아무리 장인이 신부를 바꿔치기하겠다고 말하더라도 레아가 그렇게 순순히 응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29:23)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야곱은 그 때부터 자신의 아내가 되어 있는 레아가 보기가 싫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좀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7년 만에 야곱은 라헬과 결혼식을 하게 되어 감개가 무량했던 사람입니다(29:20-21). 그래서 초야를 앞두고 대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본능적으로 캄캄한 신방에서 라헬인 줄로만 알고 레아와 합방을 했습니다(29:23). 그러나 아침에 술이 깨고 보니 사랑하는 라헬이 아니고 못생긴 언니 레아입니다(29:25). 야곱은 그 때부터 자신의 아내가 되어 있는 레아가 보기가 싫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레아가 낳은 장남 르우벤도 야곱을 실망시켰습니다. 약관의 나이가 되자 그만 아버지의 첩 빌하와 간통을 한 것입니다(35:22). 야곱은 온 집안이 창피하여 억지로 혼자서만 알고 지내고 있지만(49:4) 여간 장남이 미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죽어도 르우벤에게는 차기 족장의 자리를 주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레아의 소생에게도 자신의 신분을 세습시키지 아니할 생각입니다. 물론 서자들에게도 자신의 지위를 물려주지 아니할 것입니다(37:2). 결론은 야곱이 라헬의 소생인 11번째 아들 요셉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입히고 이복 형들과 차별을 하고 있는 이유입니다(37:3). 물론 야곱의 일편단심 라헬 사랑이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소생인 요셉과 베냐민에 대한 편애로 나타난 결과이기도 합니다(37:2-4, 42:4, 36). 그러나 그 결과 형제간의 불화가 다음과 같이 초래되고 있습니다;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요셉)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