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36(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1. 12. 27. 19:16

천년의 바람소리36(손진길 소설)

 

한편, 선덕여왕 2년인 서기 6337월초에 서라벌을 출발하여 7월 중순에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에 들어간 신라의 사신단은 당 태종 이세민의 환대를 받고 있다. 사신단장인 대장군 김춘추와 참모인 부장군 김품석의 노고를 치하한다고 당의 황제 이세민이 직접 잔치자리를 마련하기까지 한다;

당 태종의 입장에서는 동방의 강대국 고구려를 견제하고 나아가서 훗날 정복하기 위해서는 신라와의 동맹이 필요한 시점이다. 왜냐하면, 이세민은 서기 626년에 왕자의 난을 통하여 황제로 즉위한 이후 5년간 서역으로  진출하여 비단길을 개척하는데 바빴다. 그러나 그 일이 대충 마무리되자 630년부터는 동쪽의 고구려에 눈길을 돌려 정보를 수집하면서 서서히 전쟁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에서도 그러한 당나라의 움직임을 간파하고서 벌써 631년부터 당과의 국경지대에 천리장성을 건설하고 있다;

 

 그와 같이 북쪽에서 서서히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차에 고구려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에서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사신단을 보내오고 있으니 당 태종은 그것이 마음에 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세민은 사신단장으로 온 김춘추의 학식과 외교술을 크게 칭찬하면서 선덕여왕의 요청을 십분 들어주고 있다. 또한 당 태종은 개인적으로 김춘추와 김품석에게 선물까지 준다. 분에 넘치는 환대를 받은 김춘추는 마치 자신이 신라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또한 보좌역에 불과한 김품석은 당 태종의 칭찬을 듣고서 마치 자신이 신라의 작은 군주라도 된 듯한 착각이 들고 있다;

그렇게 기분이 들떠서 귀국길에 오르면서 26세의 김품석과 31세의 김춘추는 개인적으로 더 많이 친해지게 된다. 따라서 김춘추는 같은 진골인 김품석에게 벼락출세의 길을 열어주면서 5년후에는 일찍 얻은 자신의 딸 고타소김품석에게 아내로 주어 그를 아예 사위로 삼는다;

김품석은 김춘추를 만났기에 관직이 크게 높아지고 그의 사위가 되어 군부에서 더욱 위세가 높아지게 된다. 그는 아주 빨리 출세가도를 달려 서기 641년에는 벌써 대도독이 되어 신라의 주요한 성 곧 대야성의 성주로 부임한다. 그곳에서 그는 작은 왕처럼 행동하면서 부하의 아내로 하여금 감히 수청을 들게 한다. 그 결과 의자왕이 보낸 백제의 군대에 의하여 642년에 대야성이 함락되고 김품석 부부는 참형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 때문에 김춘추는 딸과 사위의 복수를 위하여 반드시 백제를 멸망시키고자 고구려 또는 당과 동맹을 맺고자 혈안이 된다. 김품석의 부친 김용술 대도독 역시 죽은 아들의 원한을 갚고자 자신의 외교역량을 십분 발휘하여 당의 군대를 끌어들이기에 여념이 없다;

 

 그 결과 중국의 한족 군대를 동원하여 같은 예맥족의 나라를 멸망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역사가 한반도에서 자행되고 마는 것이다.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더 있다. 그것은 국제사회에서 특히 외교무대에서 상대방의 분에 넘치는 환대와 끝없는 칭찬은 마치 독약과 같다. 그 약에 취하게 되면 자신의 실력을 오판하게 되고 상대방에게 이용당하기 쉽다. 그와 같은 사실을 아주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는 인물이 신라에서는 선덕여왕 시대에 대장군을 지내고 있는 재사 윤책인 것이다.

그가 63312월말에 잠시 서라벌에 들렀다가 병부에서 대장군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춘추를 만나 저간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듣게 된다. 그 결과 윤책은 당 태종 이세민의 속셈 곧 그가 김춘추를 이용하여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리 간파하고서 훗날 당나라의 욕심과 침략을 저지할 수 있는 방안을 그때부터 나름대로 모색하게 된다. 과연 그 결과 어떠한 정책이 윤책에게서 나타날 것인가?...

한편 앵잠성주인 윤책 대장군의 입장에서는 그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서곡성에 백제의 대군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 영 불편하다. 서기 6338월에 전격적으로 백제에게 점령이 된 서곡성을 꼭 탈환하고 싶다. 따라서 윤책 성주는 간자와 척후를 많이 풀어서 지속적으로 적정을 살피고 있다. 그리고 침투조와 같은 특수부대의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서곡성은 그 위치가 윤책 자신의 아래 동서인 최추랑이 성주로 있는 주재성의 바로 서쪽이다. 그러므로 추랑도 백제군이 주둔하고 있는 서곡성의 동정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공동의 적을 목전에 두고 있기에 윤책은 추랑과 정보를 공유하는 한편 서로가 군대를 내어 연합군을 형성하여 일시에 서곡성을 탈환하자고 합의한다. 

윤책은 서곡성을 되찾기 위하여 공격을 펴는 경우 남쪽에 있는 백제의 성들이 밀고 올라와서 앵잠성을 배후 공격하는 것을 예방하고자 한다. 그리고 백제의 사비성에서 무왕이 원군을 보내는 것도 차단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대장군 윤책은 무엇보다도 백제 무왕의 관심사를 먼저 분석하고자 한다. 그래서 밀정을 백제 깊숙이 보내어 적정부터 살핀다. 그 결과 두가지의 정보가 파악된다; 하나는, 사비성의 중수가 끝나자 633년말부터 그 남쪽에 인공호수와 인공 섬을 건설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무왕이 즉위한 서기 600년부터 시작한 왕흥사 건립을 완성하기 위하여 현재 그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책이 판단하기로는 그와 같은 대규모 건축공사는 왕권을 강화하고 백성들의 신망을 얻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필요한 정책이지만 단기적으로는 귀족과 백성들이 공역에 지쳐서 전쟁을 혐오하게 된다. 그러므로 다음해 곧 634년 봄이나 여름에 서곡성에 대한 공격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비밀리에 주재성주인 추랑과 연락을 취했더니 그도 찬성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윤책이 앵잠성에 얼마의 군사를 남기고 서곡성의 공격에 나서는가 하는 것이다. 서곡성에 주둔하고 있는 백제군의 수가 적게 잡아도 1만명은 되어 보인다.

그러므로 윤책과 최추랑은 자신들의 성을 지키기 위하여 절반의 군사를 남기고 각각 5천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도합 1만명의 군대로 서곡성을 치고자 한다. 그것은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이지만 비슷한 숫자의 적군이 지키고 있는 서곡성을 취하기에는 너무나 적은 규모이다. 따라서 두 사람이 서곡성을 공격하여 얻고자 하면 반드시 기상천외한 비상수단이 필요하다.

그에 따라 윤책은 추랑과 사전합의를 하여 은밀하게 대군을 이끌고 서곡성의 부근 산지에서 비밀리에 만나기로 한다. 마침 서곡성의 위치가 거창 북쪽이기 때문에 그곳에는 산지가 무지하게 많다;

 

 그렇지만 양쪽 성에서 마련한 1만명의 군사를 은닉하기 위해서는 숲이 울창해지는 여름철이 좋다. 그래서 윤책과 추랑의 군대는 6347월에 이동을 실시한다.

먼저 척후를 내보내어 적정을 살핀다. 백제군은 설마 신라군이 서곡성을 되찾고자 공격에 나설 것으로는 판단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믐의 어두운 밤에 침투조를 먼저 내보내어 성곽을 넘어 들어가서 동쪽의 성문을 여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윤책이 스스로 그 모험에 뛰어들고자 한다. 그가 100명의 침투조를 이끌고 잠입을 시도하고 추랑은 공격군을 야밤중에 성문 가까이 대기하도록 한 것이다.

윤책이 지난 1년간 앵잠성에서 직접 조련한 침투조가 그 기량을 십분 발휘한다. 마치 다람쥐와 같이 한밤중에 성벽을 타고 넘기 때문이다. 모두가 경장 차림이고 허리춤에는 단도가 등에는 검이 매달려 있다. 검은 옷에 검은 복면을 하고 있기에 어둠속에 숨으면 쉽게 발견이 되지 않는다;

윤책 대장군이 앞장서서 적진에 침투하고 있으므로 특수부대는 사기가 높다. 강도높은 훈련이 빛을 발하고 있다. 순식간에 동문으로 접근하여 어둠속에서 백제의 수비병들을 일시에 덮친다. 뒤에서 입을 틀어막고 단도로 그 목을 따고 있다. 그 결과 동문이 열리고 있다. 성밖에서 은밀하게 대기하고 있던 신라군이 기병대를 앞세우고 성안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다.

신라의 공격군이나 백제의 주둔군이나 그 규모에 있어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신라군은 한밤중에 기습을 감행하고 있고 백제군은 자다가 홍두깨로 얻어 맞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백제군이 상대가 되지 아니한다;

 

 새벽녘까지 전투가 계속 되었지만 그 양상은 집안에 숨어 있는 백제의 군사를 색출하여 처단하는 것이다.

해가 높이 떠오르자 백제군은 더 이상 저항하지를 못하고 전원 항복하고 만다. 하기야 언어와 풍습이 비슷한 같은 민족이니 끝까지 목숨을 걸고서 죽고 죽일 이유가 없다. 그저 백제와 신라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자신들의 식읍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백성들을 전장에 동원하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그와 같이 앵잠성주 윤책과 주재성주 최추랑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빼앗긴 서곡성을 탈환하였기에 파발로 그 소상한 장계를 받은 선덕여왕과 조정은 기쁨에 휩싸인다. 이제는 막강한 백제군과 맞서서 승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책 대장군과 최추랑 대장군을 자신의 사위로 거느리고 있는 김용수 대도독의 위신이 신라의 조정에서 크게 높아지고 있다. 아울러 오인회의 구성원인 대장군 김유신과 김춘추 그리고 장군 김흠순이 기뻐하고 있다. 자신들이 주동이 되어 신라의 국경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이상 국방에는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즉위 3년만에 통쾌하게 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기에 선덕여왕의 위세가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감히 누가 나서서 여왕은 국왕으로서 자격미달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만큼 윤책과 추랑이 선덕여왕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사기가 높아지자 그래서 그런지 634년과 그 다음해 635년에 있어서는 백제와의 큰 마찰이 없다. 그러나 636년에 접어들자 백제 무왕의 은밀한 군사작전이 시작되고 있다.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