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35(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1. 12. 27. 09:27

천년의 바람소리35(손진길 소설)

 

선덕여왕은 상당히 지혜롭고 예지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그 점 때문에 부친 진평왕이 그녀를 공주이지만 후계왕으로 세운 것이다. 장군 윤책이 서라벌 병부에서 근무하면서 그 점을 깨달으면서 동시에 선덕여왕이 어떠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지 주시하고 있다.

선덕여왕은 즉위한 다음해 정초가 되자 옥황상제를 모시고 있는 신당으로 나아가 제사를 드리고 있다. 그것은 토속신앙을 지니고 있는 백성들의 민심을 얻고자 하는 정치적인 행보이다. 그 점을 윤책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윤책은 개인적으로 8살부터 23살이 될 때까지 서라벌 황룡사에 기거하면서 사부 원광법사로부터 불교와 도교에 대하여 정확하게 배운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는 신라의 귀족들의 종교인 불교와 평민들의 종교인 토속신앙 곧 도교에 기반을 두고 있는 옥황상제 사상을 결합하여 하나의 종교를 만드는 것이 옳다고 여기고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선덕여왕이 신당으로 나아가 옥황상제에게 제사를 드리고 나자 다음달에 서라벌에서 지진이 크게 발생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민심이 술렁인다. 그리고 귀족들은 정치적인 안목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그 점을 인지한 윤책이 장인인 김용수 도독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왕께서 신당에 제사를 드리고 나자 서라벌에서 지진이 발생하였으므로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하고 있습니다. 그 타개책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서라벌에 큰 절을 하나 짓는 것입니다. 황룡사만큼 거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바로 착공하면 내년에는 완공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

마침 그 문제로 골몰하고 있던 김용수인지라 경청한다. 그러자 사위 윤책의 두번째 처방이 들려온다; “몇 달 후에 당나라에 사신단을 보내는 것입니다. 당태종 이세민과의 유대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한편 형식적이지만 덕만공주가 신라의 국왕이 된 것을 인정하고 축하한다는 인사말씀을 문서로 받아 놓으면 사대주의에 물들어 있는 신라의 구() 귀족들이 정치적으로 여왕을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좋은 책략이다. 따라서 김용수 도독이 김서현 도독과 먼저 상의한 후에 여왕에게 진언한다. 그 방책이 채택되어 다음달부터 서라벌에 분황사를 짓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당나라 황제에게 사신단을 구성하여 보내는 문제를 작년에 장안을 다녀온 김춘추에게 일임한다.

김춘추가 그 문제를 3월달에 서라벌 인근 고허성의 성주로 부임한 김용술 도독과 상의한다. 수년간 산동성 신라소에서 대당 외교를 책임지고 있었던 김용술 성주가 김춘추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춘추공이 책임자로 사신단을 이끌고 장안으로 가자면 당나라의 사정에 밝은 인물을 서라벌에서 구하여 그의 도움을 받으며 함께 동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한사람 추천해도 될까요?... “.

김춘추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숙부께서 추천하는 인물이면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서라벌에 있습니까?... “. 그 말을 듣자 김용술이 하하웃으면서 말한다; “저희 집에 있지요. 산동 신라소에서 나의 일을 도와주던 아들이 있는데 그 이름이 김품석입니다. 마침 상처를 하여 의기소침하고 있으니 차제에 그의 도움을 받으면서 함께 사신단을 꾸려 장안을 다녀오도록 하시지요?... “;

 

그 말을 듣자 김춘추가 관심을 보이면서 말한다; “그런데 자제분 김품석의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 김용술 도독이 시원하게 대답한다; “춘추공보다 5살 연하이니 금년에 26살입니다. 그러니 아우로 여기시고 실컷 부리셔도 됩니다. 그 녀석이 신라소에서 근무할 때는 나의 보좌관으로서 대사 벼슬의 녹봉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

김춘추가 가볍게 고개를 끄떡이는 것을 보고서 김용술 성주가 이어서 말한다; “춘추공이 사절단을 이끌고 대당 황제를 만나자면 아무래도 벼슬을 좀 높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점을 여왕에게 말씀드리도록 하시지요… “.

김춘추가 성주 김용술의 조언에 따라 김품석을 자신의 보좌역으로 삼아 사신단을 꾸리게 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자신의 이모가 되는 여왕에게 진언하여 자신의 품계를 대장군으로 높이고 김품석의 품계를 부장군으로 높여 준다.

그 결과 신라에서는 진골 출신으로 젊은 나이에 큰 벼슬을 얻은 인물이 두 사람 있는데 그들이 바로 김춘추와 김품석이라고 하는 말이 생겨나고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다. 31살에 대장군이 되고 26살에 부장군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몇 년이 되지 아니하여 그 기록이 깨어지고 만다. 그 이유는 진골인 비담이 여왕의 또 한사람의 배우자가 되면서 일약 판서에 해당하는 4등급 파진찬의 벼슬을 얻게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파행적인 벼슬의 하사를 바라보면서 6두품에 불과한 최추랑 장군과 5두품에 머무르고 있는 윤책 장군은 입맛이 쓰다. 이제 신라는 마지막 성골인 여왕을 제외하면 진골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왕족이 아닌 신라의 귀족들은 골품제에 묶여서 무조건 국왕의 자녀와 손주로 구성되고 있는 성골, 그 밖의 가까운 왕족들로 이루어진 진골의 인물들을 대를 이어가면서 상전으로 섬겨야 하는 자신들의 신세에 대하여 일종의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그와 같은 생각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 가지게 되는 인물이 윤책추랑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문제점을 진골 가운데 느끼고 있는 사람이 김유신이다. 그는 나이가 김춘추보다 8살이 많다. 그들은 처남 매부 사이이며 다 같은 진골이기에 같은 품계인 장군으로 함께 지낼 때는 별로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선덕여왕 2년인 서기 6337월초에 김춘추가 사신단을 이끌고 당나라로 가면서 그 자리에서 대장군이 되고 만다. 그리고 사신단장 김춘추를 보좌한다는 명목으로 김품석이 부장군에 제수가 되고 있다.

김유신과 그의 동생인 김흠순은 진골이지만 그 티를 내지 아니하고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초급장교인 소감 벼슬에서부터 드디어 장군 또는 부장군에 이른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성취가 김춘추나 김품석 그리고 나중에는 김비담의 경우와 대조하게 되면 너무나 허무하게 보이는 것이다. 일종의 상대적인 박탈감이다;

 

그와 같은 이야기를 김유신 형제가 집에서 부친인 김서현 도독에게 하게 된다. 그것이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김서현 도독이 김용수 도독과 상의를 한다. 두 사람의 진언으로 그 점을 알게 된 선덕여왕이 7월초에 대당 사신단이 서라벌을 떠나고 나자 곧바로 군부에 대한 인사를 단행한다. 그 가운데 윤책이 관심을 두고 있는 대목이 다음과 같다;

그 첫째는, 김용수 도독과 김서현 도독 그리고 알천 도독과 김용술 도독을 전부 대도독으로 승차시킨 것이다. 그 둘째는, 김유신 장군, 최추랑 장군, 그리고 윤책 자신을 각각 대장군으로 승진시킨 것이다. 그 셋째는, 김흠순 부장군을 장군으로 삼은 것이다;

승진인사가 있었지만 김용수 대도독과 김서현 대도독은 서라벌의 병부에서 여전히 근무하게 된다. 그러나 대장군이 된 김유신, 최추랑, 윤책은 7월 중순에 곧바로 전방으로 떠나 일선 성주의 직무를 맡게 된다.

김유신 대장군은 가잠성주로 부임하기 위하여 서라벌에서 북서쪽으로 떠나간다. 가잠성이 괴산지방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최추랑 대장군은 주재성주로 부임하기 위하여 서라벌에서 남서쪽으로 떠나간다. 주재성이 합천지방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김유신의 아우인 김흠순 장군은 서라벌 남부 교외지역에 있는 고허성에서 계속 근무하게 된다.

한편 윤책 대장군은 앵잠성주로 발령이 났기에 역시 서라벌 남서쪽에 있는 거창지방으로 간다. 윤책은 참모로 그곳 출신인 대감 비호를 부관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동안 앵잠성주로 오래 근무한 가현 대장군으로부터 업무를 인계 받는다. 윤책은 벌써 두차례나 앵잠성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서 낯설지가 아니하다;

그런데 가현 대장군은 전방에서 앵잠성주로 오래 근무하였기에 금번에는 서라벌의 병부로 발령이 나 있다. 따라서 그는 성주의 업무 인수인계가 끝나자마자 즐거운 마음으로 수도인 서라벌로 금의환향을 한다.

반면에 윤책 대장군은 무척 바쁘다. 이제는 완벽하게 백제의 성이 되어 버린 속함성과 기잠성을 마주보고 있는 것이 앵잠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어태세를 강화하기 위하여  성주 윤책은 부임 다음날부터 업무가 상당히 바쁜 것이다.   

그런데 부임한지 한달이 지난 서기 6338월 중순에 별안간 백제의 군대가 쳐들어온다. 속함성과 기잠성의 주둔군이 합세하여 앵잠성을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대장군 윤책이 성주로 있는 한 앵잠성을 그들이 점령할 수가 없다. 요컨대, 백제군 1만명이 공성작전에 동원되었지만 대장군 윤책이 지휘하고 있는 수비군이 역시 1만명이나 되기에 그것은 헛된 공격인 것이다;

따라서 윤책은 쉽게 백제군의 공격을 물리쳤지만 입맛이 개운하지가 못하다. 뭔가 석연치 아니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재성주인 추랑 대장군으로부터 급히 전서구가 날라 든다. 앵잠성의 북쪽 그리고 주재성의 서쪽에 있는 서곡성이 그만 백제의 대규모 원정군의 공격으로 순식간에 점령을 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왕은 벌써 34년째 백제를 통치하고 있다. 오랜 전투경험을 통하여 그는 전략에 달통하고 있다. 따라서 앵잠성을 공격하는 척하면서 실은 대규모 원정군을 보내어 전격적으로 서곡성을 점거한 것이다. 성동격서의 수법에 넘어간 윤책은 반드시 그 성을 되찾고자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과연 그는 서곡성을 수복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