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33(손진길 소설)
이듬해 곧 서기 631년 정월 하순이 되자 고허성에서 참모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장군 윤책에게 서라벌의 병부에 들어와서 일을 하라고 하는 인사명령이 시달된다. 병부에서 윤책이 모셔야 하는 직속상관은 작전계획을 맡고 있는 김용수 도독이다.
윤책은 고허성주인 알천 도독에게 전출신고를 하고 당일 오후에 서라벌 병부에 들어가서 김용수 도독에게 전입신고를 한다. 그때 김용수 도독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작전계획을 세우기 위하여 항시 첩보를 수집하고 있다. 첩보는 두가지인데 하나는 대외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대내적인 것이다. 그런데… “;
김용수 도독이 잠시 윤책의 얼굴을 보다가 계속 설명한다; “대내정보는 그 업무량이 방대하기 때문에 제1부와 제2부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는 서라벌에 있는 귀족과 군벌에 대한 첩보이고 제2부는 지방에 있는 귀족과 군벌에 대한 첩보이다. 지금 제1부장은 김춘추 장군이고 제2부장으로 윤책 장군 자네가 발탁된 것이다“;
그 말을 듣자 장군 윤책이 말한다; “잘 알겠습니다. 성심을 다하여 보필하겠습니다. 그런데 대외첩보는 누가 어떻게 담당하고 있습니까?... “. 김용수 도독이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현재 백제부, 고구려부, 당나라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3명의 장군들이 각각 맡고 있지. 당나라부는 산동성의 신라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유성 장군이 맡고 있다”;
유성 장군의 이름을 듣게 되자 윤책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나타난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유성의 이름을 들었는데 그도 이제는 장군의 반열이다. 그 다음에 윤책이 한가지 궁금하여 묻는다; “그런데 왜나라에 대한 첩보는 수집하지 않습니까?... “.
그 말을 듣자 김용수 도독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대답한다; “좋은 질문이야. 지금 백제부에서 왜나라의 정세에 대하여 함께 정보를 수집하고 있지. 백제의 왕자가 왜의 야마토 군왕이 되어 대대로 다스리고 있기에 백제부에서 함께 다루고 있는 것이야… “;
윤책이 2월부터 지방의 귀족과 군벌에 대한 첩보활동을 진행하다가 보니 유능한 수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부관인 대감 비호에게 지시하여 앵잠성에서 함께 근무하던 비룡과 태평을 찾아보라고 한다. 그들이 서라벌에 와서 같이 근무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다행히 두 사람이 찬성하기에 병부에서 발령을 내어 함께 근무하게 된다. 비룡의 계급은 길사이고 태평이 비호와 같은 대감이다. 참고로 신라에서는 길사가 2백명의 군사를 지휘하고, 대감이 1백명의 군사를 지휘할 수가 있다. 따라서 군부에서는 대감을 달리 백부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룡, 비호, 태평 등 3명의 장교를 부하로 거느리고 있는 장군 윤책은 매일같이 신라의 지방 각 성에서 서라벌 병부로 올라오는 전서구와 장계를 수집하여 그것을 분석하는 작업을 한다. 그 결과 더 자세한 첩보가 필요하면 전서구와 파발을 통하여 해당 성의 첩보 담당에게 지시한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고 있는데 4월말에 참모인 길사 비룡이 윤책 장군을 찾아와서 그가 수집한 참으로 이상한 첩보에 대하여 말한다; “장군님, 저는 본래 소싯적에 봇짐장사를 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곳 서라벌에도 과거 저와 함께 봇짐장사를 하던 친구들이 더러 살고 있지요. 그런데… “;
윤책이 귀를 기울이자 비룡이 자세하게 말한다; “제 친구 염공의 아들인 염장이 그의 부친과 함께 저를 찾아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며칠 전 그가 방물을 팔기 위하여 큰 저택에 들렀더니 고관대작들이 외딴 사랑채에 모여서 문을 닫아 놓고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신라에서는 공주를 국왕으로 세운 전례가 없다고 서로 수군거리더라는 거예요. 한번 자세하게 알아볼까요?... “.
그 말을 듣자 윤책이 한가지를 물어본다; “그 집이 누구의 집인지 알고 있나요?”. 비룡이 즉시 대답한다; “이찬 칠숙의 집입니다”. 이찬은 2관등으로서 좌의정에 해당하는 높은 벼슬이다;
따라서 윤책이 명령한다; “길사 비룡은 믿을 만한 수하들을 이끌고 오늘부터 이찬 칠숙의 일거수일투족을 엄중하게 감시하세요. 그 집에 누가 드나들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파악하여 내게 보고하세요”.
열흘도 되지 아니하여 길사 비룡의 보고가 올라온다; “이찬 칠숙과 아찬 석품이 모반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공주를 국왕으로 세우려는 정신나간 짓을 하고 있는 진평왕을 끌어내리고 화백회의를 열어 진골 가운데서 신왕을 선출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에 동조하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우선 주모자인 두 사람을 체포하여 심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칫 실기를 하게 되면 그들이 피신하고 증거를 인멸할 수 있습니다”.
일이 급하게 되었다. 따라서 윤책 장군이 서라벌의 귀족과 군벌에 대한 첩보를 전담하고 있는 김춘추 장군과 급히 상의한다. 그 결과 두 장군이 연합하여 이찬 칠숙과 아찬 석품을 기습적으로 체포하기로 합의한다.
윤책과 김춘추가 100명의 체포조를 이끌고 먼저 좌의정 벼슬을 하고 있는 이찬 칠숙의 집을 들이친다. 칠숙의 신원을 확보하자 10명의 장졸에게 그를 병부로 압송하라고 지시한다. 그 다음에는 신속하게 6등급 아찬의 벼슬을 하고 있는 지방유수 석품의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서라벌에 올라와 있던 석품이 한 시진 전에 지방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윤책이 체포조를 지휘하여 석품의 뒤를 쫓는다. 그리고 김춘추는 수하들과 함께 병부에 압송되어 있는 이찬 칠숙의 심문에 나선다.
생각보다 아찬 석품은 신중한 사람이다. 그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자신의 수하를 서라벌에 있는 집에 머물게 하고 자신은 유수 업무를 보기 위하여 지방으로 떠난 것이다. 그런데 병부에서 자신의 서라벌 집을 급습하였다는 수하의 보고를 길가는 도중에 석품이 받게 된다.
자신이 다스리는 지방이 백제의 국경과 가깝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국경을 통과하여 백제 땅으로 피신할 생각을 먼저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무래도 서라벌에 살고 있는 자신의 처자식에 대한 걱정이 몰려온다.
따라서 석품이 결단을 내린다; “나의 행렬을 둘로 나누자. 하나는 백제의 국경으로 그대로 향하게 하여 체포조의 시선을 끌게 한다. 그리고 나는 변장하여 서라벌로 몰래 들어가서 가족의 안전을 확인한 다음에 그들을 데리고 백제로 넘어가자. 그것이 최선이다”;
그렇지만 지장 윤책의 지혜를 그가 당할 수가 없다. 그와 같은 석품의 계획을 염두에 두고서 윤책이 비룡과 태평으로 하여금 수하와 함께 계속 석품의 행렬을 뒤쫓게 하고 자신은 비호를 데리고 석품 일행이 어떻게 나누어지는지를 세심하게 확인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 가던 가마에서 몇 사람이 분리하여 뒤돌아오고 있다. 그것을 모르고 비룡과 태평이 그 뒤를 쫓고 있다. 윤책과 비호는 행렬에서 분리한 후 변복하고서 가던 길을 되짚어오고 있는 그들을 포위한다. 그 결과 윤책의 체포조가 석품을 제대로 붙잡아 서라벌 병부로 압송한다.
서라벌 병부에 죄인을 감금한 다음날부터 엄중한 심문이 시작된다. 심문관은 도독 김용수이다. 그리고 심문 보좌 참모가 장군 윤책과 김춘추이다. 먼저 심문관 김용수가 이찬 칠숙부터 심문한다. 김용수의 심문이 추상같다; “죄인은 들으라. 그대는 높고도 높은 이찬 벼슬에 있으면서 무엇이 부족하여 감히 역심을 품고 모반을 획책하였는가?... “;
이찬 칠숙이 눈을 질끈 감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지금의 국왕은 제정신이 아니다. 어떻게 자신의 공주를 새로운 국왕으로 세우고자 하는 생각을 내비치고 있는가? 만약 여왕이 신라를 다스리게 되면 나라가 약해져서 백제와 고구려의 침략을 저지하지 못하고 끝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러한 미래를 사전에 예방하고자 하는 충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더 들어볼 필요도 없는 항변이다. 그러므로 김용수 도독이 그 다음에는 석품을 감옥에서 끌어내어 심문한다. 그 결과가 칠숙의 경우와 동일하다. 따라서 김용수 도독이 심문의 결과를 즉시 진평왕에게 보고한다.
그 결과 참으로 무서운 처벌이 왕명으로 나타난다; “모반을 도모한 주범 칠숙과 석품을 처단하고 그들의 구족을 모조리 잡아서 처형하라. 그리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전부 국고에 환수하라”.
신라가 시작한 이후 9족을 멸한 전례가 없다. 친가와 외가 그리고 처가를 의미하는 3족의 멸문이라는 전례는 있지만 친가 외가 처가 각각에 대한 친가와 처가와 외가를 더불어 멸하는 그와 같이 악독한 9족을 멸하는 경우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평왕이 덕만 공주의 앞날을 위하여 반대하는 신하를 일벌백계로 가장 엄중하게 처벌하고자 작심한다. 따라서 전대미문의 강력한 조치 곧 9족을 멸하라는 처벌이 26대 진평왕 53년인 서기 631년 5월 서라벌에서 시행되고 만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참고로, 서기 631년 칠숙과 석품의 모반을 고발한 자의 정체를 621년부터 626년까지 17대 풍월주를 지낸 염공 또는 김염장으로 보는 견해가 있음. 여기서는 그와 달리 봇짐장수로 보고 이야기를 꾸민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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