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31(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1. 12. 24. 17:32

천년의 바람소리31(손진길 소설) 

 

신라의 장군 윤책은  26대 진평왕 52년인 서기 6308월에 서라벌의 남쪽에 있는 고허성에서 군무를 보고 있다. 지난 5월 따스한 봄철에 아래 동서인 최추랑의 집에서 며느리를 맞이하는 즐거운 잔치자리가 있어 그곳을 다녀온 지 벌써 석달이 지났다.

이제는 계절이 완전히 바뀌어 한여름이다.  그래서 그런지 성곽 앞 큰 느티나무의 무성한 잎과 가지 사이에 완벽하게 몸을 숨긴 매미 한 마리가 여름 한낮의 더위에 항의하는지 목청껏 울고 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윤책이 잠시 창을 통하여 바깥구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밖에서 자신의 방으로 저벅저벅 걸어오는 군화소리가 제법 크게 울리고 있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함께 들리고 있다. 일행이 있는 모양이다.

어린시절 8살부터 서라벌 황룡사에서 스승 원광법사로부터 호흡법과 내공을 배우고 익힌 윤책 장군이므로 그의 귀는 보통사람보다 몇배나 밝다. 그래서 그 군화소리가 자신의 부관인 비호의 것임을 알아챈다. 금년에 윤책의 나이가 38세이니 오랜 세월 30년간 내공수련을 한 결과 그 정도의 성취를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옆에서 함께 걸어오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일단 장군의 집무실 앞에서 조심스럽게 노크를 한 비호가 방안에 들어서자 군례부터 올린다. 윤책이 고개를 끄떡이자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장군님, 서라벌 북쪽에 있는 안강의 금곡사에서 인편으로 기별이 왔습니다. 그 내용인 즉… “.

윤책이 귀를 기울이자 비호의 보고가 이어진다; “원광법사님께서 긴히 장군님을 뵙겠다고 하시면서 한번 금곡사로 찾아와 달라는 부탁의 말씀입니다. 지금 문밖에는 금곡사에서 온 젊은 스님이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윤책이 비호에게 말한다; “지금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 젊은 스님을 내 방으로 들여보내 주게. 자네는 이제 나가 보아도 좋아. 수고했어”. 비호가 군인정신에 충실하게 다시 군례를 올리고 방을 나선다. 뒤이어 젊은 스님이 방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윤책은 처음보는 젊은 스님이라 우선 자리에 앉으라고 말한다. 그 스님이 장군 윤책이 좌정하는 것을 보고서 말을 꺼낸다; “저는 금곡사에서 노스님 원광법사를 모시고 있는 일광입니다. 수년 전만 해도 노스님께서는 곧잘 안강에서 서라벌 황룡사로 걸음을 하셨는데 요즘은 워낙 고령이어서 그런지 아예 금곡사에서만 기거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젊은 일광스님이 이제 시작한다; “원광법사님께서는 어쩐 일인지 지난 3년간 금곡사에 칩거하시면서 나이 40이 넘은 자를 뒤늦게 제자로 삼아 학문을 가르치고 또한 무공까지 전수하고 있습니다. 그 나이든 제자의 이름이 비담입니다. 그런데 3년의 공부가 끝나서 그런지… “.

잠시 말을 끊고 일광스님이 윤책 장군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 다음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갑자기 저 보고 고허성에 가서 윤책 장군님을 찾아 뵙고 며칠내로 금곡사로 꼭 와 달라고 당부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저야 장군님의 답변을 듣고 가서 보고를 드리면 되지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

그 말을 듣자 윤책은 스승이신 원광법사가 자신을 심산유곡에 자리잡고 있는 금곡사로 부르고 있는 까닭이 그 제자와 관련된 것으로 짐작한다. 그런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연세가 90이나 된 사부이신지라 자주 찾아 뵙는 것이 제자의 도리이다.

그래서 윤책이 일광스님에게 말한다; “일광스님께서도 원광법사님으로부터 불경과 학문을 배우고 계십니까?”. 그 말을 듣자 일광스님이 갑자기 얼굴을 붉히면서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 제가 이런 심부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전에 사형이신 장군님을 찾아 뵙고 먼저 인사를 올렸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

그 말을 들은 윤책이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저도 요즈음 수년간 스승님이 계신 금곡사로 발걸음을 하지 아니하여 송구한 마음입니다. 그러니 피장파장이지요. 아무튼 스승님의 수발을 들고 있는 일광스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부터라도 제가 사형의 도리를 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3일후에 반드시 금곡사에 들릴 것이라고 스승님께 말씀드려주십시오”.  

윤책은 일광스님에게 노자돈을 챙겨주면서 따로 스승님께 보내는 선물과 은전을 맡긴다. 그리고  3일 후에 말을 타고서 서라벌에서 크게 멀지 아니한 안강의 깊은 산골에 자리잡고 있는 금곡사를 찾아간다. 원광법사께서 젊은 시절부터 기거하며 불도를 닦던 곳이라 윤책에게도 정겹게 느껴진다;

원광법사가 윤책을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인 다음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책아, 오늘 내가 긴히 너와 상의할 일이 하나 있다. 중요하고도 은밀한 이야기이므로 내가 너를 이 먼 곳까지 오도록 불렀다. 그것은 3년동안 내가 가르친 늦깎이 제자 비담에 관한 것이다… “.

윤책이 일전에 사제인 일광스님으로부터 언뜻 비담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깊이 생각해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부의 얼굴만 쳐다보고서 경청한다. 다음 순간 실로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비담은 미실궁주진지왕의 씨를 받아서 낳은 아들이다. 미실궁주는 진지왕의 아들을 낳았기에 자신이 왕비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진지왕의 선택은 달랐다… “;

 

처음 듣는 왕궁의 비사인지라 윤책이 경청한다. 그 모습을 보고서 원광법사가 나지막하게 말한다; “진지왕은 왕자시절부터 함께 지낸 지도부인을 정식 왕비로 삼고 그들 사이에 낳은 김용수를 태자로 책봉한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미실궁주는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 아들 비담을 멀리 보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비극은 그 다음에 시작이 된다… “.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원광법사가 잠시 숨을 돌리고 이어서 말한다; “진지왕이 재위 4년만에 황음하다는 이유로 갑자기 화백회의에 의해서 폐위가 결정되고 곧 살해를 당하고 만다. 태자 김용수는 성골에서 진골로 밀려나고 멀리서 그 소식을 들은 비담은 갑자기 사생아가 되고 만 것이다… “;

 

그 다음이 어떻게 되는가? 원광스님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미실궁주가 죽고 나자 비담은 서라벌로 돌아와서 기회를 노렸다. 자신보다 몇 살이 많은 이복형 김용수가 진평왕의 신임을 얻고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신도 실력만 갖추면 진평왕이 귀하게 쓸 것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그는… “.

원광법사가 한번 숨을 쉰 다음에 이어서 설명한다; “비담은 신분을 속이고 화랑대에 향도로 들어가서 무예를 익혔다. 그 다음에는 나이가 들어 내게 와서 학문과 내공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다. 나는 그 인생을 가엽게 여겨 신분을 일체 비밀에 부치고 지난 3년간 가르쳤다. 그런데… “;

 

잠시 뜸을 들인 다음에 제자 윤책의 얼굴을 보고서 간절하게 말한다; “이제는 내가 나이가 너무 많아서 그를 더 이상 가르치거나 앞길을 개척해줄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러니 책아 네가 비담보다 나이는 적지만 그래도 사형이고 신라의 장군이니 비담의 앞길을 좀 열어다오. 내가 부탁하마… “.   

  윤책이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다. 그래서 바깥으로 나가서 사제가 되는 비담을 불러서 함께 스승 앞에 꿇어 앉는다. 그 다음에 윤책이 신중하게 말을 시작한다; “오늘 비로소 스승님의 말씀을 통하여 제가 비담 사제의 신분과 신상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었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10여세 연상이지만 그래도 스승님 앞에서는 제가 사형의 입장이라 편하게 말하겠습니다… “

비담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것을 보고서 윤책이 사부와 비담을 번갈아 보면서 말한다; “진지왕의 아들이 되는 사제가 진평왕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그것은 김용수 도독처럼 진평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입니다. 지금 진평왕은 덕만 공주를 여왕으로 세우고자 진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비담이 크게 고개를 끄떡이면서 자신 있게 말한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제가 진평왕을 예방하고 그렇게 하겠다는 저의 결심을 밝히면 되는 것이군요. 그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저의 형님 김용수 공을 찾아 뵈어야 하겠습니다. 같이 군부에서 일하고 계시니 사형께서 그 일을 좀 주선해 주시겠습니까?... “;

윤책이 겪어보니 비담은 거침이 없는 성격이다. 그것이 과연 덕이 될까? 아니면 후환이 될 것인가? 아직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총기가 너무 지나치고 그것을 안으로 잘 갈무리를 하지 아니하는 성품이다. 그렇다면 조급하게 일을 처리하다가 큰 화를 자초할 수도 있다. 그것이 윤책은 벌써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