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30(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1. 12. 23. 21:52

천년의 바람소리30(손진길 소설)

 

모두들 진급을 하였으니 근무지가 변경된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도독이 된 김용수와 김서현이 서라벌의 병부에서 일을 계속하고 새로 장군이 된 김유신과 김춘추가 병부로 옮겨가 수도인 서라벌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장군이 된 윤책과 최추랑도 서라벌의 남부 교외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는 고허성에 다시 배속이 되어 그곳에서 수도경비업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유신의 동생인 김흠순은 여전히 부장군인데 그도 고허성에서 그대로 근무하고 있다;

 

그와 달리 서라벌 병부에서 오래 근무하고 있던 구 귀족과 그들의 자제들이 변방의 성으로 대거 발령이 나고 있다. 하기야 그들은 수도인 서라벌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편하게 지냈으니 이제는 전방과 후방 사이의 교대근무원칙에 따라 일선으로 나가는 것이 형평성에 맞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근무지 발령을 보고서 윤책이 속으로 한가지 사실을 짐작하고 있다; “26대 진평왕이 신라를 통치한지 벌써 51년이 되었다. 13세에 즉위한 국왕이 이제는 64세이다. 왕자를 생산하지 못하여 후계체제가 상당히 불안하다. 따라서 미구에 덕만 공주에게 국왕자리를 물려주기 위하여 그 정지작업을 미리 하고 있는 것이다. 친위부대는 가까이에 두고 반대파는 멀리 보내는 것이 상책이다.  금번 인사가 그 점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와 같이 판세를 읽고 있는 재사 윤책이므로 그는 양위의 시점이 언제일지 그것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그와 같은 비상한 시기에 윤책이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는 세가지 일이 그의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첫째가, 김용수 도독이 개인적으로 윤책과 추랑을 자신의 집무실로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가, 추랑이 김유신의 딸을 자신의 며느리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가, 성골에 버금가는 진골 두 사람 곧 비담과 알천이 서라벌에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듬해 곧 진평왕 52년인 서기 630 2월에 장군 윤책과 최추랑이 고허성에서 수도경비업무를 보고 있는데 난데없이 서라벌 병부에서 일하고 있는 도독 김용수가 두 사람을 자신의 집무실로 호출하고 있다. 최추랑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윤책에게 말한다; “무슨 일일까요? 갑자기 형님과 저를 어째서 호출하고 있지요?... “.

그 말을 듣자 윤책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아우, 심려할 것이 없네. 좋은 의도로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것이야. 사람은 나이가 들면 외로운 법이지. 그러니 자신의 주변에 신뢰할 수 있는 혈육과 같은 인물을 많이 배치하고자 하는 것이야. 그리고 또 모르지아우에게 아들과 딸이 있으니 좋은 인연을 차제에 맺어주려고 하는지도 몰라… “.

그 말을 들은 추랑이 아직도 의아한듯이 반문한다; “하기야, 김용수 도독이 사적으로는 우리의 장인 어른이니 그럴 만도 하지요. 하지만 자녀들의 혼사 이야기는 아닐 거예요그것까지 신경을 쓰지는 아니하겠지요… “.

두 사람이 서라벌 시내에 들어가서 병부에 들린다. 그들은 작전지휘부에 근무하고 있는 김용수 도독의 집무실을 찾아 들어선다. 두 사람을 보고서 김용수 도독이 얼른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 있다.

두 사람에게 의자를 권한 다음 탁자 위의 차를 그들의 잔에 손수 부어 준다. 그리고 차를 천천히 함께 마시면서 말을 꺼낸다; “진작에 내가 두 사람을 불러서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너무 늦은 감이 있구만... 그래 그동안 이 장인을 무정하다고 원망들 하였겠지?... “.

우직한 추랑은 표정관리를 금방 못하고 얼떨떨한 얼굴로 앉아 있다. 하지만 재사인 윤책은 다르다. 진지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고 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사적으로 불러서 말씀을 해 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저희들은 처남인 김춘추와 잘 지내고 있으니 조금도 심려하지 마십시오… “.

그 말을 듣자 달리 김용춘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김용수 도독이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내가 사위 복이 있구만. 지장에 용장이라. 앞으로 춘추에게 대운이 트일 것만 같군. 자네들도 우리 가문의 일원이니 처남을 많이 도와주게. 나는 억울하게 돌아가신 부왕의 위를 손자인 춘추가 잇게 되기를 바라고 있어… “.

그 말을 하면서 김용수 도독이 조심스럽게 집무실 안을 다시 살펴본다. 두 사위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거듭 확인한 후에 이어서 말한다; “진평왕의 뒤를 성골인 공주들이 잇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리 길지는 아니할 것이야. 그러니 이제부터는 자네들이 처남의 뒤를 돌보아주어야 해. 그것이 처조부이신 진지왕의 한을 풀어드리는 길이야… “;

 

그 말을 듣자 윤책이 큰 사위의 자격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인어른, 아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전선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한 저희들입니다. 처남이 진지왕의 친손자이니 당연히 진평왕의 대가 완전히 끊어지게 되면 보위에 올라야지요. 그래서 진지왕의 선친이신 진흥대왕께서 일찍이 소원하신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루어야지요. 저희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그 일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윤책의 말을 듣고 있던 추랑이 그제서야 고개를 크게 끄떡이면서 말한다; “장인어른, 저의 생각도 똑같습니다. 그러니 뒷일을 저희들에게 맡겨주십시오”. 역시 추랑은 무인 다운 장군이다. 그 성품이 직선적이고 솔직 담백하다. 그 점을 생각하고서 김용수 도독이 허심탄회하게 하하라고 웃는다.

그날 그 자리에서 장인과 두 사위 사이에 그러한 이야기만 오간 것이 아니다. 윤책이 어느 정도 예상한 그대로 장인이 둘째사위인 추랑의 자녀에 대한 혼사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가소는 늦게 결혼하여 아직 두 아들이 어리지만 영소는 일찍 결혼하여 아들과 딸이 이제 혼인할 때가 되었지?... 내가 중매를 좀 서도 될까?... “.

그 말을 듣자 추랑이 얼떨떨하지만 그래도 사전에 윗동서인 윤책으로부터 언뜻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정신을 차리고 말한다; “장인어른, 제 아들 경도에게 어울리는 혼처가 있습니까?... 가문이 반듯한 집안의 규수이면 당사자인 경도도 좋아할 것입니다”.

김용수가 즐거운 마음으로 말한다; “자네도 잘 알고 있는 집안의 규수이지. 김서현 도독의 아들인 김유신 장군에게는 자녀가 많아. 김 장군이 17세에 일찍 결혼하여 14녀를 슬하에 두고 있는데 그 중 첫째딸이 인물도 좋고 총명하다고 정평이 나 있어. 그러니 김유신의 장녀인 연희를 며느리로 맞이하는 것이 어떨까?... “.

그 말을 듣자 추랑이 말한다; “장인어른, 제 아들 경도는 금년에 17살입니다. 유신공의 딸은 몇 살인데요?... “. 김용수 도독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대답한다; “내가 알기로는 17살이지. 서로 동갑이니 어울리는 나이인 것 같은데?... “;

 

추랑이 궁금한 점이 풀렸는지 큰소리로 말한다; “저는 좋습니다. 집사람 영소에게 제가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을 보고 당사자들이 좋다면 저희들도 좋습니다”. 그 말을 들은 김용수 도독이 말한다; “진골 집안에서 딸을 주는 것이니 소홀하지 말고 며느리를 잘 거두도록 하게나. 장차 그렇게 추랑 자네와 유신이 좋은 사돈이 되어야 우리 가문은 물론 나라에도 좋은 것이야… “.

의미심장한 장인 김용수의 언급이다. 그 의미를 윤책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장인 김용수 도독과 김서현 도독은 지금 신라국왕의 심복이다. 소위 좌 용수 우 서현이 아닌가!... 그들은 진평왕의 뜻을 따라 덕만공주를 후계왕으로 세울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

윤책의 분석이 날카롭다; “세월이 흘러 성골인 공주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그때는 김춘추를 신라왕으로 세울 계획이구나. 훗날 그 일을 도모하자면 김유신 형제와 우리 두 사람의 힘이 꼭 필요한 것이야. 그래서 미리 사돈관계로 묶어 놓으려고 하는 계획이지!... “.

김용수 도독의 소원대로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 결과 그해 6305월이 되자 최추랑 장군의 아들 최경도가 김유신 장군의 딸 김연희를 신부로 맞이한다. 그날 혼인잔치에서 오인회 구성원 5명이 엄청 기분이 좋아서 전우애를 더욱 돈독하게 다지고  있다.

한편, 외손주 며느리를 본 미도 옹주는 그 자리에 참석한 전 남편 김용수 도독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한다; “고맙습니다. 외손자의 혼처를 구하여 이렇게 성가를 시켜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의 자손들은 진지왕의 혈통임을 잊지 아니하고 명예스럽게 살아갈 것입니다… “;

 

김용수 도독이 고개를 숙이면서 진심으로 대답한다; “감사의 말씀은 오히려 내가 드려야 합니다. 가소와 영소를 잘 키워주었을 뿐만 아니라 서라벌에서 최고의 인물들과 짝을 맺어주었으니 그 모두가 부인의 공입니다. 미도 옹주님, 부디 강건하십시오… “.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 윤책이 다음과 같이 속으로 생각한다; “김용수 도독과 미도 옹주가 첫사랑이었구나;

 

 그러니 김 도독이 진평왕의 딸 천명공주와 정식으로 혼인하여 김춘추를 생산하였지만 여전히 별거하고 있는 옹주는 물론 두 딸 가소와 영소에 대한 사랑이 저렇게 남아 있는 것이야!... “.

그렇게 뜻깊은 혼인이 5월에 있게 되고 서기 630년 한해가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9월이 되자 신라의 정국에 영향을 미치는 두 사람이 서라벌에 등장하고 있다. 그들이 비담과 알천인데 그들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