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27(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1. 12. 22. 10:21

천년의 바람소리27(손진길 소설)

 

백제의 대장군인 사걸은 신라백성 백명을 나란히 나무에 묶어 놓고 군사들로 하여금 성안으로 외치게 한다; “성주 관수는 들으라. 성문을 열고 빨리 항복하지 아니하면 죄 없는 백성을 일다경에 10명씩 죽일 것이다”;

기노강성의 성주인 장군 관수가 휘하의 장수들을 단속하면서 강경하게 성을 수비하고자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성안의 주민들이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친지들이 처참하게 살해가 되고 있다. 그래서 성문을 열고 자꾸만 성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한다. 성문에서는 군사들과 백성들이 힘대결을 벌이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관수 장군이 3천명의 기병과 보병으로 적과 한판 승부를 벌인다. 도저히 수성작전으로는 민심을 수습할 수가 없어서 부득이 성밖에서의 정면대결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관수 장군의 패착이다. 사걸은 정예병 5천명으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절의 전투를 벌인 결과 관수 장군이 전사하고 기노강성 마저 백제군에게 넘어가고 만다. 승리에 도취가 된 백제의 사걸 대장군은 3천명의 군사를 기노강성에 남기고 그 성에서 사로잡은 장정 2천명을 마치 굴비 엮듯이 묶어서 백제로 개선하고자 한다;

그 첩보를 취득한 천산성주 유강 장군과 재사 윤책이 백제로 되돌아가고 있는 사걸의 군대를 치고자 한다. 그들은 대담하게도 1천명의 기병만을 이끌고 혈책성 서쪽 산지에 숨어서 그곳을 지나게 될 사걸의 군대를 기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도 야간에 급습을 감행하려는 것이다.

사걸의 군대는 이제 기노강성에서 백제로 가는 서편의 길이 모두 백제군의 장악 하에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서 포로를 끌고서 행진하고 있다. 그리고 도중에서는 속 편하게 야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이다. 혈책성을 지나 지리산 기슭으로 접어들어 야영하고 있는데 갑자기 신라의 복병이 야간에 기습을 감행한 것이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대장군 사걸은 겨우 정신을 수습하여 휘하의 2천명의 군사로 신라군의 기습을 밤새 막아낸다. 그 결과 어두움이 걷히자 신라군이 물러가고 절반으로 줄어든 자신의 군대만이 남아 있다. 다행히 포로 300명이 미처 도망을 가지 못하고 전장에 남아 있기에 그들을 끌고서 백제의 구역으로 들어선다.

천산성주 유강 장군과 재사 윤책은 대승을 거두고 백제군에게 끌려가던 신라의 백성 1 7백명을 구출하여 천산성으로 돌아온다. 그때가 진평왕 49년인 서기 627 7월말이다;

 

진평왕은 아까운 성 두개를 백제군에게 넘겨주었기에 속이 상한다. 하지만 백제 무왕의 군대가 서부전선을 너무나 적극적으로 침략하고 있기에 그 공격을 막아내기에 그저 급급한 형편이다. 국면의 전환을 일으킬 마땅한 방도가 아직은 없다.

전방의 방어태세를 굳건히 하기 위하여 신라의 국왕인 진평왕이 전방에서 근무하고 있는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어 주고자 한다. 따라서 신라왕은 금번에 전공을 세운 천산성주 유강 장군에게 승진의 기회를 준다. 그 결과 유강이 대장군이 되어 8월말에 괴산 지역에 있는 가잠성주로 부임하게 된다;

또한 사지 벼슬을 가지고 있는 윤책과 추랑이 나란히 특진을 한다. 그 결과 그들은 12관등인 대사의 벼슬을 얻고 있다. 오늘날의 중령에 해당하는 대사는 휘하에 1천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다. 대사는 독자적인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장수의 계급이므로 윤책과 추랑은 나름대로 운신의 폭이 커지고 있다;

참고로, 당시 대사의 벼슬은 신라의 신진 귀족인 4두품이 진급할 수 있는 상한선이다. 애초 신라 6촌의 후예인 최추랑의 경우에는 그가 6두품이기에 그 이상으로 승진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6촌의 후손이 아닌 윤책의 경우에는 더 높이 진급하는데 있어서는 애로가 있다. 하지만 그가 미도 옹주의 사위이므로 그 점을 감안하면 신라의 5두품이 얻을 수 있는 10등급의 벼슬 대나마 곧 장군의 품계까지는 진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신라의 중요한 요새지 가잠성의 성주가 되어 있는 대장군 유강이 이번에도 윤책추랑을 자신의 참모로 삼고자 한다. 그의 요청이 군부의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서라벌의 병부에서 받아들여진다. 그에 따라 윤책과 추랑이 휘하의 군사들을 이끌고 그해 곧 서기 627 10월에 가잠성에 도착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어떠한 활약을 보이게 되는 것일까?...

서기 628년은 진평왕이 신라를 통치한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백제의 무왕은 즉위한지 29년이 되고 있다. 신라왕과 백제왕은 모두 왕이 된 지 수십년이며 나름대로 경륜이 대단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와서 서로 맞붙지를 아니하고 있다. 친정(親征)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용맹한 장군을 사령관으로 삼아 전쟁터로 내보내어 대리전을 치루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백제가 자랑하고 있는 용맹한 대장군 사걸이 백제 무왕의 특명으로 6282월에 느닷없이 대군을 이끌고 신라의 가잠성을 공격한다;

 

 그것을 보고서 가잠성주 유강은 물론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윤책과 추랑은 이상한 생각이 들고 있다.

그래서 세 사람은 입을 모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백제에는 사걸 외에는 용장이 없나? 어째서 그가 수년째 계속 원정에 나서고 있나?... 그리고 우리와 전생에 무슨 원한이 있나? 꼭 우리가 부임하는 성만 뒤쫓아와서 공격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

서로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해 놓고서는 모두들 씨익 웃고 있다. 전장에서 맺어진 형제의 정으로 세 사람은 끈끈한 유대관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한마음으로 가잠성의 방어능력을 최고도로 높여 놓은 지 벌써 한참 되었다.

그러하니 백제의 사걸 대장군이 1만명이나 되는 기병과 보병을 동원하여 줄기차게 공성작전에 나서고 있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 가잠성주 유강 대장군이 자신만만하게 수성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재사 윤책이 그의 참모가 되어 있으며 용맹한 장수 추랑이 지근거리에서 성주를 보좌하고 있는 것이다.

사걸 대장군이 백제의 대군을 이끌고 보름간이나 가잠성을 공격하지만 도무지 얻은 바 소득이 없다. 자꾸만 아군의 전사자와 부상자만 늘어나고 있다. 종래에는 2할의 병사가 죽거나 다쳐서 이제는 8천명 정도만이 남아서 공성작전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장군 사걸이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그때 사걸 대장군은 참으로 비겁한 수를 사용한다. 그것이 바로 가잠성 아래에 펼쳐져 있는 들판에 불을 놓는 것이다. 봄철에 접어든 3월이라 들판에서는 보리가 싹을 틔우고 푸른 빛을 더해가고 있다. 그런데 백제군이 그 들판을 싸잡아 태워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 광경을 멀리 떨어진 가잠성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장졸들의 마음이 새카맣게 타 들어 가고 있다. 자신들과 가족들이 먹고 살아야 하는 식량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백제군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그들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다.

드디어 윤책이 유강 대장군의 승낙을 얻어 추랑과 함께 백제군의 막사를 야간에 급습한다. 그믐이 되어 어두운 밤에 반대편 성문을 살그머니 빠져나온 윤책과 추랑의 부대가 가지고 온 기름을 백제군의 막사에 뿌리고 한꺼번에 불을 붙여버린다.

마침 봄바람이 동에서 서로 불고 있다. 따라서 불길이 삽시간에 백제의 진영으로 크게 번져간다;

 

 조석으로 찬바람이 불고 있는 3월이라 한기를 느끼고 막사 안에서 웅크리며 잠을 자고 있던 백제의 장졸들이 너무나 놀라서 바깥으로 뛰쳐나오기에 바쁘다.

그것을 보고서 윤책과 추랑이 지휘하고 있는 2천명의 기병이 박차를 가하면서 적군의 목을 인정 사정없이 치고 있다;

 

 한시진이나 계속된 살육전으로 말미암아 백제군의 절반이 쓰러지고 만다. 그 광경을 보고서 분을 참지 못한 백제의 대장군 사걸이 말을 타고 앞장서서 신라군 장수 윤책추랑에게 달려든다;

사걸 옆에는 유능한 장수 오륜이 함께 말을 달리면서 긴 창을 휘두르고 있다. 말을 달리면서 윤책이 추랑에게 눈짓을 하면서 급히 말한다; “동생, 적장 사걸을 잡아라. 내가 장창을 쓰고 있는 저놈을 해치우겠다!... “.

윤책은 그 행동이 달리고 있는 말보다도 빠르고 그의 검은 내력을 받아서 무서운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그 검으로 백제의 용장 오륜의 장창을 단숨에 쳐내고 있다. 그 순간 놀랍게도 오륜의 창이 무우처럼 잘려 나가고 만다. 말을 급히 돌린 윤책이 금방 검으로 오륜의 허리를 베어간다.

오륜이 얼른 등에 메고 있던 칼을 꺼내어 윤책의 검을 쳐내려고 한다. 그러나 생각 뿐이다. 어느 사이에 허리의 절반이 끊어지면서 몸이 말위에서 고꾸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 윤책이 적장 사걸을 맞상대하고 있는 추랑을 살핀다. 말을 달리면서 검과 검이 마주치고 있는데 막상막하이다. 용력이 출중한 추랑과 사걸이 마상대결을 하고 있는지라 훌륭한 구경거리이다. 그런데 한순간 윤책이 깜짝 놀라고 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윤책은 멀리서 백제의 장수 하나가 강궁으로 추랑을 노리고 화살을 날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윤책이 추랑의 옆을 말로 달리면서 날아오는 그 화살을 자신의 검으로 튕겨낸다. 그 광경을 멀리서 보고 조금 전 화살을 날린 백제의 장수가 기겁한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