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24(손진길 소설)
한밤중에 백제의 대군이 갑자기 기습할 것으로는 동소 대장군이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탈영한 장수 동천이 앞장서서 적국인 백제의 특수부대를 인솔하여 주재성의 성곽을 뛰어넘어 졸지에 성문을 열어 버렸기에 제대로 성을 지켜보지도 못하고 그만 백제군의 포로가 되고 만다;
승전에 목이 말라 있던 백제의 대장군 사걸은 얼른 동소 대장군의 목을 치고 그 수급을 파발 편으로 백제의 무왕에게 보낸다. 그리고 백제군에게 적극 협조한 신라의 장수 동천을 백제의 장군으로 삼는다는 무왕의 허락까지 받아낸다.
그와 같은 사건이 서기 626년 8월에 발생하자 신라의 군부에서는 그 대책에 몰두하고 있다. 백제의 군대가 이제는 고령의 주재성까지 진출하여 있다. 경산을 지나 동진하게 되면 서라벌이 위험하다. 그러므로 왕궁이 있는 서라벌을 지키는 수비군을 증강해야 한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 ;
48년간 신라를 통치하고 있는 노련한 진평왕이 신하들에게 명령한다; “왕도 서라벌에 대한 수비를 강화하라. 동시에 향도들의 훈련장 단석산 가까이 있는 그 옛날 돌산 고허촌의 산성을 중건하고 그곳에 전국의 화랑부대를 집결시켜라. 그들에게 강도높은 훈련을 실시하여 서라벌을 수비하는 병력으로 활용하도록 하라. 그 일을 전담할 수 있도록 용화향도의 지도자로서 군부에 들어가 있는 모든 간부들을 전원 고허성으로 소환하라!”.
그 명령에 따라 졸지에 용화향도 출신 김유신 형제와 김춘추가 서라벌 남쪽으로 떠나간다;
그것을 보고서 한때 사량향도의 지휘자였던 추랑이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루는 윤책에게 말한다; “형님, 참 이상합니다. 돌산 고허촌은 본래 우리 사량부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그곳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우리 사량부의 군 간부들을 제외하고 어째서 용화향도 출신의 장교들을 모두 그곳에 발령 내고 있는 것일까요?... “.
그 말을 듣자 윤책이 단순하게 설명하고 만다; “아마도 서라벌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용화향도 출신의 군간부들을 그곳 고허성으로 발령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겠지. 전국에서 몰려든 여러 화랑들과 낭도들이 신라에서 향도들의 우상이 되고 있는 김유신이나 김춘추로부터 훈련을 받게 되면 큰 영광으로 생각할 것이야… “;
생각이 우직한 무사 추랑은 책사 윤책의 그 정도의 답변을 듣고서 그만 만족한다. 그는 더 이상의 생각을 진행하지 아니한다. 그렇지만 재사 윤책의 생각은 훨씬 복잡하다. 그는 진평왕이 의도적으로 수도 서라벌 가까이 국왕의 지지세력인 김용수 장군과 김서현 장군의 자제를 불러모은 것임을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이 백제군의 기습으로 위험하게 되면 국왕을 끝까지 지킬 부대는 신흥 귀족인 김용수와 김서현의 군대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제들이 지휘하고 있는 군대와 향도들이다. 반면에 구 귀족들은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그들은 화백회의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진골 귀족을 다음 국왕으로 선출하면 그만이다.
진평왕은 슬하에 왕자가 없으므로 유사시에는 후계구도가 화백회의에 참여하는 구 귀족들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국왕은 자신을 끝까지 지켜줄 서라벌의 수비군이 절실하다.
그 일환으로 진평왕은 서라벌 지근거리 남부에 있는 돌산 고허촌에 옛 성을 수리하고 고허성이라고 이름하면서 그곳에 친위부대 성격의 향도들을 집결시키고 있다. 따라서 그 지휘관으로서는 김유신 형제와 김춘추가 가장 믿음직스러운 것이다.
그와 같은 서라벌의 정치적인 상황을 재사 윤책이 나름대로 분석하면서 그는 이제 아래 동서인 추랑과 함께 백제와의 공방전에서 승리를 얻을 전략을 수립하고자 한다. 그것이 당장은 서부전선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먼저 윤책은 백제군에게 넘어가 있는 주재성을 탈환할 계획을 은밀하게 세우고 있다. 그 계획을 수립하고 적기에 실천하기 위해서는 아막성보다 앵잠성이 유리하다. 그 이유는 주재성 가까이 있는 신라의 성은 서부전선 최전방에 있는 아막성이 아니라 대야성에 이웃하고 있는 앵잠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속히 앵잠성으로 전출을 가야 한다. 윤책은 그와 같은 자신의 생각을 먼저 추랑에게 밝힌다. 그러자 추랑이 동의하면서 함께 아막성주인 천랑 도독에게 당장 가보자고 한다. 그때 윤책이 서류더미에서 급히 한 장을 꺼내어 추랑과 함께 성주의 방을 찾아간다.
천랑 도독에게 윤책이 대표로 말한다; “성주님, 저희들이 작년부터 수립하여 실시한 모성인 아막성과 주변의 4개 자성에 대한 수비태세 완비에 대한 최종 보고서입니다. 이것으로 저희들이 아막성에서 할 일은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한번 훑어보아 주십시오… “.
아막성주인 도독 천랑이 재사 윤책이 건네 준 한 장의 서류를 읽어본다. 수비계획과 그 성취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다. 천랑 도독이 이해를 하고서 서류에서 눈을 떼고 이제는 재사 윤책과 그 옆에 서있는 길사 추랑을 바라본다.
그때 윤책이 말한다; “이제는 저희들이 처음 발령지인 앵잠성으로 돌아가서 그 주변에 있는 백제군의 성들을 공략할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가 됩니다. 아무쪼록 윤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들은 천랑 도독이 속으로 생각한다; “김춘추와 김유신 형제가 서라벌로 떠나가고 나니 이들도 아막성을 떠나고 싶은 것이야… 그런데 백제군이 지근거리에 있는 작은 성 앵잠성으로 가겠다고 하니 그것 참 별일이군. 서로 가지 않겠다고 하는 앵잠성으로 보내주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 그곳 성주 가현 장군에게 생색이 나는 일이군… “.
속으로 계산이 끝나자 도독 천랑이 아주 시원하게 말한다; “좋다. 귀관들이 작은 성 앵잠으로 전출 가는 것을 허락한다. 인사참모에게 내가 말해 놓을 터이니 내일 전출허가서를 받고 모레 일찍 출발하도록 하라. 별도의 하직인사는 생략해도 좋다”.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풀리고 있어 윤책과 추랑이 큰소리로 말한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성주님,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천랑 도독도 길사 윤책과 추랑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두 사람을 떠나 보낸다.
앵잠성주 가현 장군이 길사 윤책과 추랑의 전입을 참으로 환영한다. 그는 용맹한 추랑도 좋아하지만 책략에 밝은 재사 윤책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윤책이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다; “가현 성주님, 저희들은 어떻게 하면 주재성에서 백제군을 몰아낼 수 있는지 그 방책을 찾아내고 싶어서 이곳으로 전입 왔습니다… “.
가현 성주가 쾌히 승낙한다; “좋다. 나도 서라벌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 주재성의 백제군을 하루빨리 몰아내고 싶다. 그 계획을 부디 실효성 있게 세워 주기 바란다.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그날부터 재사 윤책이 참모실에서 그 계획을 수립한다.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이 주재성의 형편을 살피는 것이다. 따라서 윤책이 추랑에게 부탁한다; “사량향도 출신의 장교나 하사관 가운데 적정을 살필 수 있는 척후의 능력을 가진 자를 내게 붙여주면 고맙겠다. 내가 그들과 함께 주재성의 형편을 한번 살펴보고 싶다”.
그 말을 듣자 추랑이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가장 출중한 척후는 바로 앞에 있는 나 길사 추랑이지요. 그리고 내가 소감 비룡과 조의 비호 두 사람을 참모로 삼아 그 일을 맡으면 되겠네요. 윤책 형님까지 가세한다면 4명의 척후조가 되니 그것으로 충분하겠어요… “;
윤책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한다; “그러면 됐어. 우리 두 사람이 비룡과 비호 형제와 함께 움직이도록 하지. 그들 형제에게는 추랑 동생이 설명을 좀 해주게. 그리고 나는 앵잠성 내에서 주재성으로 가는 지리에 밝은 사람을 한번 찾아볼 테니까”.
다음날 윤책은 군사 가운데 앵잠성 토박이로서 주변의 길에 훤한 인물을 한사람 찾아낸다. 그가 소싯적에 봇짐장사를 한 경력이 있는 조의 태평이다. 따라서 그 다음날부터 윤책이 추랑은 물론 비룡과 비호 그리고 태평 등과 함께 5사람이 회의를 계속한다.
회의 결과 그들 5명은 우선 앵잠성에서 주재성까지 은밀하게 갈 수 있는 길을 찾아내고 도중의 지형지물을 탐색한다. 그 일에는 조의 태평이 앞장서고 있다. 수차례 탐사를 한 다음에 대략적인 지도로 완성한다. 그들은 그 지도를 암기하면서 주재성을 은밀하게 다녀올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도의 사본을 여러 개 만든다. 나중에 군사작전에 동원이 될 부대의 지휘관들에게 제공할 생각이다. 참고로, 오늘날의 작전지도와 비슷한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해서든지 주재성 안의 형편을 살피고자 한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 5명이 지혜를 모은 결과 하나의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 방법은 우연한 기회에 발견이 되고 있다. 하루는 그들 5명이 봇짐장사로 변장하고서 앵잠성에서 주재성으로 가는 소로를 걸어가고 있는데 뜻밖에도 기잠성에서 주재성으로 가는 보급부대를 만난 것이다;
백제병사들이 소달구지 10개에 큰 건초더미를 가득 싣고서 길을 가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갑자기 조의 비호가 그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다; “수고들 많으십니다. 저는 이곳 변방에서 봇짐장수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성으로 가시는지 몰라도 저희들도 함께 따라가서 성내에서 물건을 팔 수가 있을런지요?... 성사가 되면 소개비를 두둑하게 드리겠습니다… “;
봇짐장수로 꾸미고 있는 신라의 척후조 비호가 대담하게도 백제군 보급부대에 접근하여 말을 붙이고 있다. 그 결과 일이 어떻게 전개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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