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3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1. 12. 25. 06:49

천년의 바람소리32(손진길 소설)

 

하지만 사부이신 원광법사 앞에서는 내색을 할 수가 없다. 모처럼 제자인 윤책 자신에게 부디 비담의 앞길을 열어 달라고 간청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윤책이 스승에게 말한다; “사제의 결심도 들었고 하니 제자가 사제를 데리고 서라벌에 가서 김용수 도독을 만나도록 주선하겠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아무 염려하지 마시고 제게 맡겨 주십시오. 그러면 다음에 또 찾아 뵙겠습니다”.

윤책이 비담과 함께 절 문을 나서기 전에 원광법사가 비로소 생각이 난 듯이 말한다; “아 참, 일전에 일광 편으로 선물과 돈을 보내어 주어 잘 받았다. 그리고 여기 나의 시중을 들고 있는 일광도 나의 제자이니 책이 네가 사형으로서 일광도 잘 보살펴다오. 내가 오늘은 부탁할 것이 많구나!... .

그 말을 듣자 윤책이 사부 옆에 서있는 일광을 쳐다본다. 그리고 원광법사를 보고서 말한다; “일광은 일전에 스승님의 심부름으로 고허성에 왔을 때 제가 사제임을 알아 보고서 벌써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승님의 제자이면 다 저의 사제이지요… “.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윤책이 원광법사에게 하직인사를 하면서 말한다; “스승님,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사제들에게 사형의 도리를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더운 날씨에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다음에 저와 함께 또 한번 당나라를 다녀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 말을 들은 원광법사가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내가 건강이 허락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지. 책이 너와 함께 장안을 다녀온 것이 꿈만 같구나. 네가 다음에 또 장안에 가게 되면 이 사부와의 추억을 반추해다오. 나는 그것이면 된다. 책아… “.

90세의 노승 원광스님은 벌써 득도를 하신 모양이다. 제자의 삶 속에 자신의 흔적이 남아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말씀이다. 마치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과 같다. 그래서 윤책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말한다; “어릴 때부터 저를 키워 주시고 학문과 무공을 전수하여 주신 스승님을 제가 어떻게 잊어버리겠습니까? 항상 제 마음속에 부모님처럼 자리잡고 계십니다. 그러니 편안히 계십시오… “.

서라벌에 돌아온 윤책은 바쁘다. 우선 비담이 지낼 곳을 알아보아 주고 그 다음에는 장인이신 김용수 도독을 방문하여 만난다. 윤책 장군의 소상한 이야기를 들은 도독 김용수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먼저 비담을 한번 만나보겠다. 가진 바 포부와 학문 그리고 그의 무예의 경지를 자세하게 살펴본 다음에 판단하겠다. 그러니 자네는  “.

 잠시 말을 끊고 생각을 하다가 김용수가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 “이틀 후 비담을 데리고 내방으로 다시 오게. 내가 일단 나의 부관으로 비담을 발령한 후에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그가 가문을 위하여 쓸 만한 인재인지, 아니면 버려야 할 자인지 파악을 하도록 하겠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후에 김용수 도독이 큰 사위인 윤책에게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네가 알아 두어야 할 일이 하나 있어. 그것은 며칠 후에 병부에서 고위층 도독에 대한 인사발령을 낼 것이야. 그 가운데 고허성주가 포함이 되어 있지. 현재 당항성주로 근무하고 있는 알천 도독이 고허성주로 부임할 것이야. 그리고… “.

김용수 도독이 윤책의 눈을 보면서 말한다; “자네가 상관으로 모신 적이 있는 아차성주인 유강 도독이 당항성주로 전보가 되고 그 자리에는 지금의 고허성주인 염종 도독이 가게 될 것이야. 일단 그 정도만 알고 있게나… “;

 

참으로 중요한 군부의 고위직 인사에 대한 내용을 장인 김용수가 사위인 윤책에게 미리 알려준다. 그것은 맏사위인 재사 윤책을 그 정도로 신임하며 의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점을 윤책이 고맙게 생각하면서 한가지 질문을 한다; “고맙습니다. 저를 믿고 말씀해 주시니 혼자서만 명심하고 있겠습니다. 그런데 알천 도독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

윤책이 다른 사람은 다 알겠는데 그가 생소한 인물이라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장인의 대답이 그의 상상을 초월한다; “자네만 알고 있게나. 알천 도독의 본래 신분은 진흥왕의 서자인 천주의 아들이야. 진흥왕의 적자인 장남 동륜 태자가 부왕보다 먼저 죽고 나자 그 동생인 금륜이 태자가 되어 즉위했지. 그가 진지왕이야. 그렇게 적자들이 대통을 잇는 성골의 사회에서 서자인 천주는 완전히 밀려나고 말았지… “;

 

윤책이 관심있게 듣고 있다. 그러자 김용수 도독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주의 아들인 알천은 완전히 진골이 되고 말았어. 하지만 그가 성골에 가까운 진골인 것은 사실이지. 따라서 언젠가는 내 아들 춘추와 용상을 두고서 경쟁하게 될거야. 하지만 알천의 나이가 나와 동갑이니 나이가 많은 그에게 훗날 보좌가 쉽게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야… “.

김용수 도독이 먼 장래의 일까지 벌써 염두에 두고 있다. 장인의 말을 들으면서 윤책은 그가 부친이 잃어버린 왕좌를 자신의 아들인 김춘추에게 돌려주고자 얼마나 노심초사를 하고 있는지 십분 이해가 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인 어른,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삼한일통의 꿈을 저와 함께 꾸고 있는 처남이 반드시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제가 적극 보좌하겠습니다”.

그러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 윤책이 약속대로 이틀 후에 사제인 비담을 서라벌 병부로 데리고 가서 김용수 도독에게 인계한다. 그것으로 윤책이 사부 원광법사와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그 후에 윤책은 53세의 나이 많은 사제인 비담7살 연상인 이복형 김용수 도독의 신임을 얻어 그 보좌관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비담은 생각보다 유능한 인물이고 그 처세술이 놀라운 사람이다. 윤책은 비담이 개인적으로 사제이면서도 장인어른의 이복동생이고 또한 나이가 많으니 그를 공대하지도 못하고 동시에 하대를 할 수도 없다. 그러한 어정쩡한 관계가 윤책비담과의 관계이다. 따라서 두 사람이 쉽게 친하게 지낼 수는 없는 사이이다. 그래서 그런지 윤책이 비담에게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비담은 윤책의 생각보다 훨씬 유능하고 그 처세술이 실로 대단한 인물이다. 그가 훗날 선덕여왕의 시대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가서 다음 국왕의 자리를 넘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아니다.

다만 고허성에서 새로운 성주로 알천 도독이 부임하자 참모부를 총괄하고 있는 장군 윤책의 업무가 무척 바빠지고 있다. 알천 성주는 전임 염종 성주와 비교할 때 무척 신중한 인물이다. 전임 성주 설염종 도독은 대범하게도 참모장인 윤책에게 대부분의 업무를 맡겨 두고 편하게 지냈는데 신임 성주 김알천 도독은 그것이 아니다.

알천 성주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자신이 챙기고자 하는 성실파이다;

 

 그러므로 참모장인 윤책 장군의 보고사항이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윤책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좋은 현상이다. 상관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업무를 확인하며 감독을 철저하게 하겠다고 하니 그를 보좌하고 있는 윤책이 다소 고달프지만 그만큼 책임은 경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회나 군부에서나 제일 문제가 많은 상관이 나는 도장만 찍을 테니까 모든 업무의 책임은 참모인 자네가 지게!라는 말을 쉽게 하는 자이다. 그런데 알천 성주는 그러한 행태를 제일 싫어하는 인물인 것이다.

따라서 윤책은 알천 성주가 정식보고를 요청하기 전에 필요한 사항을 먼저 챙겨서 모조리 보고하고 있다. 서기 6309월에 고허성주로 부임한 알천 도독이 12월이 되자 윤책에게 개인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네는 정말 유능한 참모장이구만. 어떻게 내 생각을 먼저 알고 그렇게 미리 자료들을 준비하여 보고하고 있는가? 나는 군부에 몸을 담은 이후 자네와 같이 머리가 좋은 참모는 처음이야. 대단허이… “.

분명히 칭찬인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다소 염려가 된다. 따라서 윤책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저도 군부에 몸을 담은 이후 성주님과 같은 분은 처음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업무를 챙기시니 보좌하는 저로서는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보고만 미리 빠지지 아니하고 사전에 드려 두면 저의 책임을 벗을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도리어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그 말을 듣자 알천 성주가 하하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야. 나는 우리 신라에 자네와 같은 유능한 참모가 있고 나와 같은 성주가 많다고만 하면 그 옛날 진흥대왕과 같은 시대를 다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렇게 되어야 할 터인데… “;

 

그 말을 들은 윤책이 속으로 생각한다; “역시 피를 속일 수는 없는 모양이구나. 사실은 알천 성주의 조부가 진흥대왕이 아니신가!... 그러니 알천 도독이 그 옛날 조부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겠지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군부의 업무를 보아 장차 그러한 욱일승천하는 신라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야!... “.

알천 도독의 신분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윤책이기에 그러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윤책의 판단이 맞다. 훗날 진덕여왕이 승하하자 화백회의에서 상대등 알천에게 신라의 국왕이 되라고 말하지만 그가 그것을 고사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나이가 80이 넘은 자신보다 30년이나 젊은 김춘추가 더 적임자라는 것이다. 그렇게 젊은 인재가 신라를 이끌어가야 삼한일통을 소원하신 진흥대왕의 꿈을 이룰 수가 있다고 알천 상대등이 말한 것이다;

그와 같은 인물과 고허성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윤책은 나름대로 행복하다. 그리고 군사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부()장군 김흠순도 열심히 군무를 보고 있다. 그렇게 고허성에서의 서기 630년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