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38(손진길 소설)
선덕여왕 6년인 서기 637년 봄이 되자 조정에서는 군부에 대한 정기적인 인사를 단행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지난해 5월 옥문관에서 백제군의 기습을 물리친 대야성주 알천 대도독을 승진시켜 유수로 삼은 것이다. 그에 따라 대야성은 일약 6관등 아찬 벼슬의 유수가 다스리는 엄청 중요한 성이 되고 있다.
사실 제7관등 일길찬에 해당하는 대도독은 무관으로서는 최고의 벼슬이다;
대도독이 되면 독자적으로 5만명의 군사를 지휘할 수가 있다. 하지만 제6관등인 아찬 이상의 벼슬에 있어서는 무관의 자리가 없다.
예를 들어, 지방의 작은 행정구역을 다스리는 6관등의 유수가 있고 큰 행정구역을 다스리는 제5관등 대아찬으로서 군주가 있는데 그들은 모두가 문관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문관이면서 동시에 지방수령으로서 군 지휘권을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관내의 무관에게 명령을 내릴 수가 있다.
조금 더 설명을 해보자면, 유수는 큰 성과 그 주변의 군을 다스리는 지방 수령이지만 군주는 여러 개의 성과 그에 부속된 군들을 전부 다스리는 최고의 지방직이다. 따라서 지방의 군주는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영역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작은 왕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유수는 성내의 군사를 지휘하고 있는 도독을 부하로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왕을 대신하여 그 지역의 성민을 다스리고 있다. 그리고 지방의 왕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군주는 그 이상의 벼슬이다. 군주는 자신의 영역에 있는 대도독은 물론 모든 백성을 다스리는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훗날 642년이 되면 신라가 합천의 대야성을 백제에게 빼앗기게 된다. 그에 따라 백제군이 오늘날 경산에 해당하는 압량 지역을 차지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서라벌이 지척이다. 그때 위기를 느낀 신라의 조정에서는 긴급하게 김유신을 압량 군주로 임명하여 전권을 가지고 대야성 백제군의 진격을 막도록 조치하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훗날 한강 유역을 백제와 고구려가 계속 침략하게 되자 신라 조정에서는 유능한 무관인 윤책과 최추랑을 군주로 발령하여 한강 유역은 물론 그 이북지역을 강력하게 지키고 다스리도록 조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 훗날의 일이고 당장은 선덕여왕 통치 6년인 서기 637년의 정기 인사에서 윤책과 최추랑 그리고 김유신과 김춘추 등이 전부 일계급 승진하여 도독이 된다고 하는 것을 눈여겨볼 만하다. 그리고 김유신의 아우인 김흠순은 대장군으로 진급하게 된다.
참고로, 오늘날의 계급에 비추어 장군을 준장, 대장군을 소장, 도독을 중장, 대도독을 대장으로 가름하는 것이 편리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휘할 수 있는 군사의 수가 장군은 5천명, 대장군은 1만명, 도독은 2만명, 대도독이 5만명 정도이기 때문이다.
만약 10만명 규모의 대군이 원정에 나서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첫째로, 국왕이 직접 친정에 나서는 것이 보통이다. 둘째는, 부득이 그러하지 못할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중앙의 군주가 국왕을 대리하여 전군을 지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해 서기 637년 가을에 추가적인 인사발령이 발표되고 있다. 선덕여왕의 내심이 반영되어 있는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제7관등인 일길찬 무관 대도독 김용수와 김서현을 제6등급 아찬으로 승진시키며 평상시에는 조정에서 문관의 일을 보게 하고 비상시에는 지방 유수가 되어 전방을 지킬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제5관등 대아찬 군주인 김비담을 4관등 파진찬에 봉하고 왕명의 출납을 맡도록 한다”.
한마디로, 선덕여왕의 지혜가 번뜩이고 있는 인사명령이다. 병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김용수와 김서현을 일단 군부에서 빼내어 조정에서 문신의 역할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나 국가비상시에는 전방이 걱정된다. 따라서 여왕은 그때에 용수공과 서현공을 전방에 보내어 무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더구나 선덕여왕은 왕명의 출납을 배우자 비담에게 전담시킴으로써 그를 통하여 조정대신들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그것은 국왕의 권력을 강화하는 조치이다. 그로 말미암아 신라의 조정과 군부는 완전히 선덕여왕이 장악하게 된 것이다;
애초 국왕에게 도전할 생각이 없는 김용수나 김서현의 입장에서는 별로 아쉬울 것이 없는 인사의 내용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이 교묘하게 비담을 사용하여 국왕의 권력을 강화하고 있는 조치에 대해서는 상당한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겉으로 보면, 누가 국왕인지 누가 신하인지 모를 지경이다. 만약 비담이 딴 마음이라도 먹는다고 하면 큰일이다. 그래서 그해 겨울 전방에서 서라벌에 잠시 들린 윤책에게 장인 김용수가 걱정을 털어놓는다; “아무래도 비담의 권력이 너무 비대해진 것이 걱정이다. 그가 딴마음을 먹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
벌써 45세의 중년이 되어 있는 천하의 재사이며 군부의 도독인 윤책이 맑은 눈으로 장인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게 우려가 되신다면 두가지 조치를 취하시면 됩니다; 하나는, 조정에서 누가 비담의 편에 서고 있는지를 예의 주시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급격하게 비담의 편이 늘어나게 되면 그것은 반역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
용수공이 가볍게 고개를 끄떡이자 윤책이 이어서 말한다; “또 하나는, 여왕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한편 시중에서 떠돌고 있는 이상한 소문을 수집하여 분석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왕의 건강에 이상이 발생하고 동시에 시중에서 새로운 별이 나타났다고 하는 이야기가 갑자기 널리 퍼지고 있으면 그것은 반역의 조짐입니다. 그렇게 확인하시면 됩니다”.
별로 어렵지도 아니한 방법이다. 그래서 아찬 김용수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거참, 사위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게 하면 사전에 알 수 있겠구만… 괜히 나 혼자 걱정만 한 셈이군. 하하하… “.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다.
다음해 곧 서기 638년 정월이 되자 군부에서 대대적인 수평인사가 있게 된다. 윤책 도독이 앵잠성을 떠나 포천에 있는 낭비성의 성주로 부임한다. 김흠순 대장군이 새로이 앵잠성주로 부임하게 된다. 그리고 대야성주인 김알천 유수가 파주에 있는 칠중성의 성주로 발령이 난다. 새로운 대야성주로는 도독 김유신이 부임하게 된다.
그와 같은 군부의 인사이동을 보고서 윤책이 혼자서 한마디 한다; “앵잠성주에 대장군 또는 도독이, 그리고 대야성주에 유수, 대도독, 또는 도독이 발령되고 있는 것을 보면 군 인사에 있어서 상당히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야. 철저하게 계급에 억매이지 아니하고 있는 비담의 자유 분망함이 엿보이는 것만 같군. 허허허… “. 윤책의 혼잣말이 사실이다. 비담의 입김이 군인사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시절인 것이다;
그런데 알천공이나 재사 윤책이나 참으로 전투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인가 보다. 그들이 칠중성과 낭비성의 성주로 부임한 그해 10월 하순에 갑자기 고구려의 대군이 남하하여 칠중성을 포위하여 공격한다. 지난 10개월간 알천 성주가 부지런히 성벽을 보수하였기에 10일간 적의 공격에 잘 버티고 있다. 하지만 그 다음이 걱정이다;
그 소식을 낭비성주인 윤책 도독이 듣고 있다. 그는 고구려군의 공성작전이 계속된다면 알천 유수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5천명의 정예 기병대를 이끌고 급히 의정부에서 파주로 올라간다. 성에서 멀지 아니한 지점에서 척후를 내보낸다;
척후의 보고에 따르면 지금 적들이 칠중성의 북문을 계속 공격하고 있다고 한다. 마침 동쪽이 산지이므로 은밀하게 그쪽으로 이동하여 적의 배후를 공격하면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척후조장이 파주지역에 살아본 경험이 있는 길사 함윤이므로 윤책이 그를 앞장세워서 조심스럽게 칠중성의 동쪽 산지로 이동한다;
고구려 군사의 수가 4만명이 넘는 것 같다. 칠중성 안에 신라의 군사가 2만명이 넘으니 쉽게 성이 함락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포위를 당한 채 오래가게 되면 위험하다. 따라서 윤책이 적들의 배후를 단숨에 기습하고자 결심한다.
고구려 군사들이 열심히 칠중성의 북면을 공격하고 있는데 갑자기 동쪽 산지에서 먼지를 일으키면서 신라의 기병대가 출몰하고 있다;
4만명의 고구려군이 절반은 성을 계속 공격하고, 나머지 절반은 신라의 기병대를 막기 위하여 돌아선다. 그런데 대오를 갖추는 사이에 그만 제1선의 기병대가 고구려군을 덮치고 있다.
고구려의 장군 검호는 수십년간 전장에서 살아오면서 기병대장의 장창에서 그렇게 푸른 빛의 검기가 한 마리의 용처럼 뻗어 나오는 광경을 처음으로 보고 있다. 그 푸른 빛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멀쩡하게 서있는 사람이 없다. 큰 파도가 바닷가를 쓸면서 지나간 것과 같이 고구려 군사들이 우루루 쓰러지고 만다;
윤책의 뒤를 따라 말을 달리고 있는 기병들이 그들의 창으로 쓰러진 적들의 목을 치기에 바쁘다. 그렇게 5천의 신라기병대에게 검호 장군의 고구려군 5천명이 볏짚처럼 쓰러지자 마침내 검호가 자신의 검에 나름대로 내력을 불어넣어 윤책의 장창을 막아낸다.
그것을 보고서 윤책이 말을 달려 검호의 옆을 번개처럼 지나치면서 장창을 날린다. 검호가 전력으로 그 창을 막아보지만 이번에는 쉽지가 않다. 자신의 검이 부러지면서 윤책의 장창이 단숨에 검호의 허리를 베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검호 장군이 쓰러지자 고구려군의 대장군 양순직이 전면에 나서면서 큰 소리로 외친다; “우리는 4만의 대군이다. 적은 기껏해야 수천명의 기병에 불과하다. 그러니 겁먹지 말고 진영을 갖추어 방패와 창으로 대항하라. 지나가는 파도는 한번 뿐이다”.
그러나 양 대장군의 말은 지나가는 바람소리에 불과할 따름이다. 한번 사기가 꺾인 고구려군이 사기를 되찾지 못하고 철저하게 신라의 기병들에게 유린을 당한다. 그것을 보고서 ‘기회는 이때다’라고 판단한 알천 성주가 성문을 열고서 1만 5천명의 군사로 고구려군을 친다.
그날 신라군 2만이 고구려군 4만을 박살낸다;
동북아의 호랑이 고구려군이 약체로 깔본 반도의 신라군에게 그렇게 대패를 당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그만 그것이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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