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제53과(33:22-29)(손진길 작성)
|OBS23-53|
Q1. 단과 납달리 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 내용은(33:22-23) 어떠한가?
l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33:22). 납달리에 대해서는 “은혜가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방과 남방을 얻을찌로다.”(33:23)라고 모세가 축복기도를 하고 있는 것임.
l 단 지파는 ①갓 지파가 암사자 같이 용맹스럽게 아모리 족속을 꺼꾸러뜨리고 바산 땅을 차지하는 것을 눈여겨본 바 있었음. ②따라서 단 지파는 그 보고 배운 바대로 요단 강을 건너가서 가장 비옥한 해변 땅을 점령하기 시작한 것임. ③그 동복(同腹, 같은 어머니) 동생 집안인 납달리 지파는 단 지파와 달리 갈릴리 호수의 서쪽과 남쪽에 거주하기 시작하였음.
l 그런데 갈릴리 호수 주변은 비교적 점령하기가 쉬웠는데 그 이유는 가나안의 용사들인 거인족들이 북상하는 것을 가나안 해변가에서는 단 지파가, 요단 강 주변에서는 므낫세 지파가 강력하게 막고 있었기 때문임. 그 덕택에 납달리 지파는 비교적 용이하게 갈릴리 서쪽 땅을 차지할 수 있었음. 더구나 그 곳은 척박한 땅인지라 당시에는 다른 족속들이 크게 눈독을 들이지 아니했던 것임. 그렇지만 1400년 후에는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장 많이 선포되고 또한 유대지역 전체로 퍼져나가는 소위 복음의 진앙지가 된 것임. 그러므로 납달리 지파가 차지한 땅이 훗날 가장 신령한 복을 누리며 복음의 열매를 거두는 이른 바 추수꾼의 행복함이 가득한 장소가 될 것임이 이미 모세에 의하여 무려 1400여년 전에 예언되어지고 있는 것임.
l 여기서 모세가 단 지파를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은 다음 세 가지의 뜻이 있다고 볼 수 있음; 첫째로, 단과 납달리는 그 어머니가 같으며 단이 납달리의 형이기 때문에 자연히 모세가 그 서열을 고려하여 먼저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음.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서 원주민들과 전투를 벌릴 때 단 지파가 납달리 지파보다 앞장서서 사자처럼 용맹스럽게 적을 공격할 것임을 모세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언급한 것임. 셋째로, 그렇지만 모세는 단 지파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납달리 지파가 비록 세상 서열과 용맹에서는 뒤처지고 있지만 사실은 갈릴리 호숫가 서편 땅을 차지함으로써 먼 장래에 “추수꾼의 복”을 누릴 수 있는 행운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끝으로 예언하고 싶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임.
l 이와 같은 추수꾼의 복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한 사람은 심고 다른 사람은 그 열매를 거둔다”(요4:37-38)라고 훗날 언급하시고 있음. 조금 더 묵상을 해보면, 납달리 지파가 누리고 있는 추수꾼의 복과 단 지파가 벌리고 있는 전투의 모습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두 가지 인생살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임. 그 이유는 “단”의 이름의 뜻이 “하나님께서 내 억울함을 풀어 주셨다”(창30:6)는 일명 “한풀이 신앙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는데 비해서 “납달리”라는 이름의 뜻이 “경쟁에서 이겼다”(창30:8)는 뜻이므로 이른 바 세상과 싸워서 이기는 자, “승리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임. 이 두 가지 신앙의 모습 가운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후자인 신앙의 승리자의 모습이지 결코 자신의 한풀이를 하기 위한 신앙의 모습이 아닌 것임. 그래서 성경은 장자가 되지 못한 한을 풀고 있는 야곱의 거부가 된 이야기 보다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그의 마지막 신앙 모습에 더욱 큰 비중을 두고 있음. 야곱이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여 자신과 가족의 목숨도 살리고 하나님의 얼굴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비록 육체적으로는 쩔뚝거리게 되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의 경지에 올라서고 있었던 것임. 그래서 그는 승리하는 신앙의 모습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소위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당대에 얻을 수 있었던 것임(창32:24-30).
l 성경은 끝까지 세상과 싸워서 이기는 자의 신앙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기게 해주는 주체와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임; 첫째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인간적인 그리고 세상적인 방법이 결코 아니며 더구나 자신의 한풀이적인 방법이 아닌 것임(마26:52-54). 그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방법인 것임(마26:39). 원수 갚는 일과 정죄하는 심판의 결정은 모두가 하나님의 고유 권한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임(롬12:17-21). 둘째로, 인간의 능력과 지혜로서는 도저히 세상과 사탄의 힘을 이길 수 없는 것임. 그러므로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그 분에게 완전하게 의탁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인 것임. 이와 같은 깨달음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끝까지 살아내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특권을 주시겠다고 요한계시록에서 최종적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임(계21:7).
l 사족을 더하자면, “단의 전투와 납달리의 추수꾼의 복”은 마치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음부의 권세를 부수어 놓음으로써 성도들이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생명으로 옮겨지는 큰 복을 미리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음(요5:24, 창12:3). 따라서 그리스도인이야말로 납달리 지파처럼 “은혜가 족하고 하나님의 복이 가득한 자들인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게 되는 새로운 이스라엘 족속인 것임”(벧전2:9, 요1:12, 롬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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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마지막으로 아셀 지파에 대한 모세의 예언은(33:24-25) 어떠한가?
l 갓(Gad)의 이름이 “복”을 의미하고 있으며 그 동복 동생인 아셀의 이름은 “기쁨”을 의미하고 있음. 그 이름의 뜻을 원용하여 모세가 다음과 같이 축복기도를 하고 있음; “아셀은 다자(多子)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발이 기름에 잠길 것이다. 네 문 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며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33:24-25. “Most blessed of sons is Asher; let him be favored by his brothers, and let him bathe his feet in oil. The bolts of your gates will be iron and bronze, and your strength will equal your days.”).
l 모세는 아셀 지파에게 ①풍요와 다산의 복이 있고(33:24) ②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지켜주실 것을 축복의 기도내용으로 하고 있음. 이로 미루어보아, 아셀 지파의 번성과 장수함을 미리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음. 참으로 복 있고 열두 지파의 기쁨이 되고 있는 아셀 지파는 그 이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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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 여수룬에게 하나님은 왕의 위엄으로 임하시는데(33:5) 그 분은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멸망시키려고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대적을 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임하시는 것이라고 모세가 주장하면서 그의 축복기도를 마치고 있음(33:26-29). 그렇다면 여수룬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첫 번째 방법은 무엇인가?
l “불 같은 율법”(33:2, “a fiery law”, KJV)을 선포하고 율법의 두려움을 알게 하는 것이 첫 번째 방법임(33:3-4). “불 같은 율법”이란 ①그 율법에 처벌조항이 있으며 ②그 집행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불같이 오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음(단7:9-10).
l 모세는 백성들에게 만약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는 경우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임한다는 사실을 “여수룬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로 설명하고 있음(33:5). 모든 지파의 백성을 그들의 두령과 함께 한 자리에 모아서 왕의 위엄으로 직접 강력하게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모세가 말하고 있는 것임.
l 여기서 ‘불 같은 율법”은 다니엘의 묵시를 참조하면 진노와 심판의 율법을 의미하고 있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왕좌(王座) 앞에서부터 강같이 흘러 나오는 “불의 강”(단7:10, “a river of fire”)의 위력을 그 율법이 보유하고 있다는 뜻을 “불 같은 율법”이라는 용어 속에 담고 있기 때문임. 실제로 모세는 신명기 제27장 15-26절과 제28장 15-68절에서 만약 백성들이 율법을 어기게 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저주와 제사장 나라의 멸망이 뒤따르게 된다는 사실을 단서조항으로 부기하고 있는 것임.
l 한 마디로, 고집이 세고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력하게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여수룬의 왕”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임. 여수룬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준수하지 아니하는 백성들에게 저주와 심판의 채찍을 휘두르실 것임(29:19-21). 모세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그리고 심판이 여수룬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대적과 이웃 나라에까지 미칠 것임을 예언하고 있음(33:27). 그리고 모세의 예언대로 역사 심판과 종말 심판이 이루어질 것임을 훗날 예레미야 선지자가 더욱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음(렘25:15-29). 끝으로, 예레미야와 함께 선지자 이사야는 이와 같은 진노와 심판의 하나님을 “포도즙 틀을 밟으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음(사63:3, 6, 렘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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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두 번째 방법은 무엇인가?
l 대적을 내어 쫓고 이스라엘을 보호해주었으나(방패가 되시는 하나님, 33:29) 백성들이 끝내 율법을 저버렸으므로 하나님의 칼이 이스라엘에게 향한 것이 두 번째 방법이 되고 있음. 이에 따라 제사장 나라가 멸망되고 백성들이 흩어져서 이방 땅에서 유민이 되고 만다는 것임(33:27, 29:24-28).
l 이것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시는 것이 아니고 이방 땅에서 잘못된 선민의식을 버리고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기를 바라고 계시는 하나님의 고육지책이며 오묘하신 역사 섭리임을 모세가 미리 예언한 바 있음(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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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세 번째 방법은 무엇인가?
l 하나님의 오묘하신 구원의 섭리가 현실화되는 것임(29:29-30:8).
l 이 점을 모세는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穹蒼, 푸른 하늘 또는 공중을 말함)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 도다.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防牌)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33:26-29)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임.
l 모세가 열 두 지파에게 축복기도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노래하고 있는 이 대목의 특징은 다음과 같음; 첫째로, “여수룬(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을 일컫는 일종의 별명)이여”라고 시작하여 “이스라엘이여”라고 끝나고 있음(33:26a, 28a). 즉 비정상적인 불편한 관계에서 정상적인 화목의 관계로 되돌아가는 것인데 그 매개 작용을 한 자가 훗날 예수 그리스도임을 사도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것임(롬5:1-2, 6-11). 둘째로,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끊임없이 대적을 물리치고 제사장 나라를 보전하기 위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듭 말하고 있는 것임(33:27-28). 셋째로, 여수룬의 잘못을 회개하고 마지막 구원을 얻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방패가 되심은 물론 성령의 검 곧 그 영광의 칼을(엡6:17, “하나님의 말씀”) 주셔서 숨은 대적과 악한 영의 세력과 싸우도록 하시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임(33:29). 사도 바울은 이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의의 병기”로(롬6:13) 드리라고 성도들에게 권유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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