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1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1. 12. 15. 13:20

천년의 바람소리18(손진길 소설)

 

눌최 대장군의 뛰어난 활약으로 인하여 그동안 수많은 백제군의 공격에도 무너지지 아니한 신라 최전방의 요새가 기현성이다. 그러나 대장군 눌최가 그렇게 허무하게 전사하고 나자 그만 방어능력을 상실하고 만다. 그 다음날 백제군의 수중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 소식이 가장 먼저 전서구로 대야성주인 일품 대도독에게 전해진다. 그제서야 일품은 마음이 급해 진다. 그는 속으로 ‘이거 최전방의 기현성이 적의 수중에 넘어 갔으니 앞으로 손쉽게 백제군이 대야성으로 몰려오겠구만. 차제에 서라벌에 더 많은 원군을 요청해야 하겠어… ‘라고 중얼거리면서 장계를 써서 파발을 왕성이 있는 서라벌로 보내고 있다. 

사실 신라 군부의 입장에서는 최전방의 요새인 기현성을 최우선적으로 구원하고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그 북쪽에 있는 아막성과 함께 기현성이 지리산을 타고서 들어오는 백제군의 침입을 저지하는 제1선의 요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원병을 이끌고 간 신라의 대장군 갈군이 적을 두려워하여 그만 대야성주인 일품의 그늘에 숨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엉뚱하게 기현성을 백제에게 내줌으로 말미암아 훗날 642년에 백제의 의자왕이 보낸 윤충의 군대에 의하여 대야성이 함락되는 대참사를 맞이하게 된다. 대야성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면 수도인 서라벌이 위험하다. 그와 같은 절체절명의 시기에 김춘추가 애타게 고구려와 당나라에 구원을 호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오인회의 인물들이 한동안 앵잠성에 머물면서 성벽을 보수하는 등 그곳의 방비를 철저하게 해두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성주 가현이 끝까지 버티어 백제군이 물러가고 있다. 대야성에 가장 가까운 앵잠성이 살아남아 있기에 대야성이 그나마 숨을 쉬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훗날 서기 642년에 대야성이 백제군에게 함락을 당하고 나자 책사 윤책은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오인회의 재사인 그는 김춘추와 끝까지 행동을 같이하게 되는 것일까? 그 점을 알기 위해서는 현재 서기 625년 정월 서라벌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김유신과 김춘추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그것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윤책이 서기 6241210일 전선에서 오래간만에 서라벌에 돌아와서 교리에 있는 처가 미도 옹주의 저택을 찾아가보니 자신의 아내 가소가 쌍둥이 아들을 출산한지 보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 기쁜 소식을 전방에 있는 남편 윤책에게 전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마침 애기 아빠가 어떻게 알고서 아들을 보러 왔는지 참으로 신기하다고들 말한다;

아직 아기이지만 두 아들의 근골을 윤책이 유심히 살펴본다. 무예에 능한 아내 가소를 닮아서 그런지 근골이 튼튼해 보인다. 그리고 두 아들이 모두 눈에 총기가 들어있는 것만 같다. 그것을 보고서 윤책이 아내 가소에게 말한다; “참으로 수고를 많이 했군요. 아들 둘을 그것도 모두 튼실하게 생산하였으니 우리 집안의 홍복입니다. 자 그러면… “.

잠시 숨을 쉬고서 윤책이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두 아들의 이름을 나는 윤상신윤하신으로 정하고 싶어요. 둘 다 믿음직한 대장부로 자라주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아서 말이예요. 혹시 당신은 더 좋은 이름자가 생각납니까?... “. 가소가 생긋 웃으면서 말한다; “저도 그 이름자가 좋아요. 상신하신이니 기억하기도 쉽군요. 그렇게 하세요”.

그 기쁜 소식을 윤책이 기계에 살고 있는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아직도 황룡사에 머물고 계시는 스승 원광법사에게 전해 준다. 사부는 벌써 춘추가 84살이 다 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정정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래서 문안을 드리고 나오면서 윤책이 혼자서 생각한다; “불도와 선도를 동시에 닦아서 그런지 스승님은 마치 신선과 같으시구나. 능히 백수를 누리실 것만 같애… “;

 

그렇게 윤책이 서라벌에 있는 친가와 처가 그리고 사부의 처소 등을 다니면서 다사다난한 한해 서기 624년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런데 새해가 밝아온 지 보름도 되지 아니하여 윤책은 서라벌에서 기이하면서도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된다. 귀골인 김춘추가 김유신의 누이동생인 문희와 혼인을 할 것이라고 한다. 그 내막이 어떠한 것일까?...

우선 서라벌 내에 퍼져 있는 소문이 다음과 같다; “진평왕 47년인 서기 625년 새해가 되자 김춘추가 벗인 김유신의 집을 방문하여 뜰에서 함께 공을 차고 놀았다고 한다;

 

 그런데 김춘주가 그만 실수로 넘어지면서 옷이 일부 찢어졌다. 마침 김유신 집에 두 누이동생이 있는데 유신이 바로 아래 누이 보희에게 춘추 공의 옷을 좀 수선해주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 큰 처녀 보희는 그것이 부끄러워 사양한다. 그러자 그 여동생 문희가 나서서 대담하게 춘추공의 옷을 벗기고 바느질을 해주었다;

 

 그 일로 두 사람이 급속히 가까워져서 잠자리를 같이하였다고 한다. 그 사건을 알게 된 김유신이 처녀가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내와 잠자리를 하였으니 화형에 처하겠다고 집 뜰에 크게 불을 붙였다고 한다. 그 연기를 보고서 진평왕이 시집 가지 아니하고 계속 왕궁에 머물고 있는 공주 만덕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현지조사를 한 만덕 공주의 설명을 들은 진평왕은 차제에 김서현 장군의 딸 문희를 김용수 장군의 아들 춘추에게 주어 정식 부부로 삼으라고 왕명을 내렸다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고 있는 소문은 그 정도이다. 하지만 책사인 윤책은 수면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치적인 흐름을 벌써 헤아리고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윤책의 판단을 조금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4년전 서기 621년에 진평왕은 지난 618년에 당나라를 세운 당고조에게 사신단을 보내면서 자신의 두가지 뜻을 은밀하게 전했다; 하나는, 작은 나라 신라를 괴롭히고 있는 북쪽의 큰 나라 고구려를 혼내어 달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당고조께서 새 나라를 세우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으니 신라의 국왕인 자신도 총명하고 예지력이 뛰어난 공주를 후계자로 세워 신라의 태평성대를 이어가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둘째로, 사신단이 받아온 당고조의 모란꽃병풍을 신하들에게 보이면서 진평왕은 중원을 지배하고 있는 대국의 황제가 꽃병풍을 보낸 뜻은 모란꽃과 같은 공주를 신라가 후계왕으로 삼는 것을 지지한다는 뜻을 은연중에 내비친 것이 아니겠느냐고 선전하고 있다;

 

 그것은 대국의 힘을 빌려서 여왕의 즉위에 대한 그럴듯한 명분을 부여하고 있는 진평왕의 속셈이다.

셋째로, 26대 진평왕은 자신의 숙부인 25대 진지왕이 화백회의를 장악하고 있는 구 귀족들의 불신임으로 폐위를 당하고 살해가 된 전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왕자가 없는 자신이 공주를 후계자로 삼게 되면 틀림없이 구 귀족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할 것임을 눈치채고 있다. 따라서 그 세력을 누르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신흥 귀족세력을 육성하고 있다. 그들이 폐위당한 진지왕의 아들인 김용수 장군이고 또한 구 귀족사회에서 가야출신이라고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김서현 장군인 것이다.

넷째로, 두 장군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똑똑한 아들들이 있다. 그들이 김춘추이고 김유신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을 처남 매부 사이로 맺어준다면 대를 이어가면서 신흥 귀족의 힘이 강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평왕은 덕만 공주가 국왕이 되더라도 그들의 강력한 지지를 계속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진평왕의 정치적인 속셈을 재사 윤책이 금방 눈치를 채고 있다. 그래서 그는 서기 625년 한해를 기분 좋게 빙그레 웃으면서 시작하고 있다. 싱글벙글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서 하루는 아내 가소가 말한다; “여보, 당신 요즈음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예요. 제가 아들 둘을 한꺼번에 생산하니 그렇게도 기분이 좋으신 거예요?… “;

 

그 말을 듣자 윤책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6살이나 연상인 아내 가소의 눈을 바라보면서 대답한다; “그렇지요. 마흔이 다 되어 가는 아내가 한꺼번에 떡 두꺼비 같은 아들 둘을 생산하였으니 내 기분이 좋고 말고요... 금년 한해는 내내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정말 장한 일을 하셨소, 부인… “.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윤책은 김유신 집안과 김춘추 집안의 묘한 인연에 대하여 더 깊이 생각을 해보고 있다.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 그 역시 다음과 같이 체계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제법 복잡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1)  24대 진흥왕의 아우인 숙흘공은 딸 만명 공주가 가야계 귀족인 김서현과 사귀는 것을 반대한다. 하지만 숙흘공의 건강이 좋지 못하여 그만 만명 공주가 김서현과 혼인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장남 유신을 낳은 것이다. 그런데 과부가 된 숙흘공의 아내 만호부인이 죽은 남편의 조카이자 진흥왕의 장남인 태자 금륜과 재혼하여 얻은 아들이 진평왕이다. 그러한 이상한 모습의 재혼은 오늘날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상당히 이상하다. 하지만 당시 성골 왕족의 번성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골품제 신라에서는 흔한 일인 것이다;

(2)  모친 만호부인의 이상한 재혼으로 말미암아 만명 공주와 진평왕은 이부(異父)오누이 사이가 되고 있다. 아버지는 다르지만 어머니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진평왕과 김서현 장군은 자신들이 사실은 처남 매부 사이임을 알고서 내부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김서현 장군은 김용수 장군이 자신처럼 귀족사회에서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있기에 그와도 친한 것이다.  그 점을 알고 있는 진평왕이 두 사람을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3)  김용수와 김서현은 서로 자식들을 주고 받음으로 대를 이어가면서 끈끈한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진평왕 역시 바라고 있다. 진평왕으로서는 김용수 장군이 가장 가까운 4촌 형제이다. 그리고 김서현 장군은 매부가 된다. 이제 그들의 유대관계가 후대로 공고히 되어 나간다고 하면 자신의 뒤에 여왕이 들어서더라도 강력한 지지기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춘추와 문희와의 혼인을 추진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4)  그러한 이면의 역사를 이해하게 되면 진평왕이 어째서 덕만 공주에게 그 연애사건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는지를 금방 알게 된다. 당연히 덕만 공주의 조사결과 보고가 긍정적이며 진평왕이 왕명으로 그 혼사를 당장에 성립시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신라 왕족과 귀족 사이의 문제를 분석하고 이해를 넓히다가 보니 어느 사이에 6251월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바로 그때에 윤책은 스승이신 원광법사의 호출을 받게 된다. 84세의 고승 원광스님이 윤책 자신에게 무슨 부탁을 하고자 하시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