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16(손진길 소설)
윤책과 추랑 그리고 김유신 형제와 김춘추가 휘하의 화랑대를 이끌고 대야성에 들어와서 성주인 대도독 일품에게 전입신고를 한 때가 서기 624년 11월 20일이다;
성주 일품은 서라벌에서 명성을 떨친 용화향도와 사량향도의 지휘관들이 미관말직인 소감의 벼슬을 받고서 금번 백제의 침략군을 물리치는데 있어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을 먼저 치하한다.
그 자리에서 대도독 일품은 그들의 벼슬을 한 단계 올려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6등급인 소감(少監)의 벼슬은 그대들의 전공과 비교할 때 너무 낮은 등급이다. 그러므로 나는 대도독의 권한으로 김춘추와 김유신은 물론 그의 동생인 김흠순 그리고 추랑과 윤책의 벼슬을 한 단계 높여 주고자 한다. 따라서 그대들은 오늘부로 제15등급인 대감(大監)이다”;
오인회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전공을 인정해주고 있는 대도독 일품이 마음에 든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야성에 머물면서 예상되는 백제군의 침입에 적극 대응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희망은 11월 말이 되자 물거품이 되고 만다.
백제의 무왕은 전투경험이 풍부한 달솔 백기를 사령관으로 삼아 4만의 보병과 기마병으로 신라의 남서부 지역을 정복하도록 원정군을 보냈지만 한달이 지나도록 통쾌한 승전보가 날아들지 아니하고 있다. 겨우 작은 성 3개를 점령했다는 장계만이 올라오고 있다;
무왕의 목표는 대야성을 얻고 그 다음에는 서라벌까지 진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백기의 원정군이 아막성 전투와 기현성 전투에서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무왕이 과감하게 정예병 1만명을 추가로 파견한다. 갑자기 백제군의 사기가 오르고 있다.
따라서 백제군은 적극적으로 대야성으로 가는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가장 가까운 길목에 있는 앵잠성을 얻고자 한다. 그리고 계속 저항하고 있는 기현성과 봉잠성에 대하여 다시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한다;
전황이 그와 같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신라의 군부에서는 대장군 갈군에게 상주, 하주, 귀당, 법당, 서당 등 5군에서 도합 1만명의 군사를 추려서 빨리 전선으로 달려가라고 명령한다. 갈군이 백제군의 대공세를 막아내고 있는 신라의 3성 곧 기현성, 앵잠성, 봉잠성에 바로 달려가지 아니하고 꾀를 써서 먼저 대야성에 들러 대도독 일품과 그 문제를 상의한다;
대야성주 일품의 입장에서는 1만명의 구원군을 이끌고 당장 자신의 성으로 달려온 대장군 갈군이 고맙다. 하지만 돌아가는 전황을 두루 살피면서 ‘어떻게 하면 함락 위기에 처해 있는 3성을 구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고 있는 재사 윤책과 김춘추의 시각으로 볼 때는 대장군 갈군과 대도독 일품의 행동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따라서 미적거리고 있는 갈군과 일품에게 비록 말단에 불과하지만 재사 윤책과 김춘추가 충언의 말씀을 드린다; “저희들 참모들이 판단하기로는 시간이 지체되면 인근에 있는 3개 성 곧 앵잠성, 기현성, 봉잠성이 적군에게 넘어갈 공산이 큽니다. 그렇게 되면 대야성도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빨리 3개 성에 구원병을 보내야 합니다”.
일품과 갈군의 입장에서는 윤책의 말은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들은 아직 윤책이 원광법사의 제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부에서 나날이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김용수 장군의 자제인 김춘추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다.
더구나 김춘추가 아직 나이는 적지만 국왕의 딸인 천명공주의 아들이다. 두 사람이 국왕의 손자의 말을 소홀하게 처리했다가는 정치적으로 어떠한 곤경에 처할지 모르는 것이다;
따라서 대도독 일품이 다음과 같이 결단을 내린다; “대장군 갈군은 휘하의 장군 3명에게 각각 2천명의 군사를 내주어 앵잠성, 기현성, 봉잠성을 지원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
대야성의 일품 성주가 차제에 김춘추를 멀리 보내 버리고자 묘하게 다음과 같이 추가 명령을 내린다; “봉잠성에서 전공을 세우고 최근에 대야성으로 들어온 대감 추항, 윤책, 김유신, 김흠순, 그리고 김춘추는 휘하의 향도들을 데리고 봉잠성으로 다시 가서 그 성을 구원하세요… “.
겉으로 보면, 전혀 하자가 없는 명령이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대야성주인 대도독 일품이 얼마나 간사한 인물인지 쉽게 간파가 된다. 왜냐하면, 아막성과 함께 신라의 최전방에 자리잡고 있는 기현성을 구원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대장군 눌최가 곤경에 처해 있다. 따라서 구원군 2천에 김춘추 등의 화랑대를 더하여 함께 그곳으로 보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대야성주 일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대야성만 무사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대장군 갈군이 끌고 온 1만명 가운데 4천명을 대야성에 머물게 한다;
그리고 6천명을 위기에 빠진 3성에 구원병으로 보내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국왕의 외손자인 김춘추와 그의 동료들을 멀리 봉잠성으로 다시 보내 버리고 만다.
군령이니 따르지 아니할 도리가 없다. 따라서 12월 1일에 오인회의 장수들이 휘하의 향도 300명을 지휘하여 봉잠성으로 이동한다. 그 옆에서는 서라벌에서 온 장군 유강이 2천명의 군사를 지휘하여 함께 봉잠성으로 가고 있다;
이틀 후 그들이 봉잠성이 멀리 보이는 지점에 도착한다. 일단 그곳에 있는 산지에 군대를 은닉하고서 척후를 먼저 내보낸다. 전황을 살피고 돌아온 척후의 보고가 다음과 같다; “6천명 정도로 보이는 백제군이 한참 봉잠성을 공격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주 다루 장군이 근근이 버티고는 있지만 그 피해가 극심한 것으로 보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입니다. 빨리 적을 치고 성을 구해야 합니다”.
머뭇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따라서 가장 빠른 시간에 기병대를 앞세워 성을 에워싸고 있는 백제군을 기습한다. 한창 봉잠성에 대한 공성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백제의 장졸들이 후방을 공격하는 신라 기병대를 보고서 혼비백산한다;
전혀 예상하지 아니한 급습이다. 하지만 백제의 장군 백천이 침착하게 대응한다. 그는 원정군 사령관인 달솔 백기의 아들이며 무관으로서 그 능력이 출중하다. 그래서 백제군 6천을 둘로 갈라서 3천으로 후방을 기습하는 신라군에게 맞서도록 급히 조치하고 있다.
백제군 3천에 신라군 2천 3백이 봉잠성 들판에서 맞붙어 전투를 벌인다. 이제는 어느 쪽의 무예가 더 뛰어난 것이지에 따라서 승패가 갈릴 것이다. 그와 같은 급격한 전황의 변동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성루에서 봉잠성주 다루 장군이 관심 깊게 내려다보고 있다;
공성작전에 투입이 된 백제군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그러므로 적군을 섬멸할 적기이다. 그렇게 판단한 다루 장군이 휘하의 장수들을 독려하여 차제에 성 가까이 접근하여 있는 적군을 모조리 섬멸하라고 강력하게 명령한다. 그에 따라 수성작전에 머물고 있던 신라군이 기병대를 앞세우고 일시에 성밖으로 달려 나온다.
백제군은 졸지에 전방과 후방에서 동시에 신라군의 반격을 맞이한다. 아무리 백제 장군 백천이 강심장이라고 하더라도 간담이 서늘하다. 그것을 보고서 신라의 대감이 된 김흠순이 27세의 젊은 혈기로 적장 백천을 향하여 돌진한다. 역시 29세의 젊은 장수 추랑이 마치 전공을 다투기라도 하듯이 동시에 적장 백천에게 돌진한다;
양옆에서 신라의 장수 둘이 전속력으로 긴 창을 들고서 달려오고 있기에 백제장군 백천이 방심하지를 못하고 전력을 다하여 말머리를 돌린다. 바로 그때 의외의 상황이 발생한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갑자기 엄청난 속도를 가진 화살이 백천 장군의 옆구리에 박히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부상을 입고서는 신라의 장수 둘을 상대할 수가 없다. 결국 백천 장군의 수급이 대감 김흠순의 창에 그만 잘려 나가고 만다. 땅에 떨어진 적장의 수급을 다시 자신의 창에 꿰고서 김흠순이 큰 소리로 외친다; “백제군은 들으라. 너희들의 장군이 이렇게 나의 창에 죽임을 당했다. 그만 항복하도록 하라”.
사기가 급격하게 떨어진 백제의 군사들이 재빨리 도망을 치고 있다. 그 뒤를 신라의 기병대가 추격한다. 그날 토끼몰이를 하듯이 그렇게 신라의 기병대가 백제군의 수급을 많이 취하게 된다.
대승을 거둔 신라군이 성안으로 들어가자 승전을 축하하는 모임이 준비가 된다. 그 자리에서 김유신이 김춘추에게 귓속말로 속삭이고 있다; “춘추 공, 기이한 화살이 오늘 전장에 날아와서 단숨에 적장 백천의 옆구리에 박히고 말았어요. 그 덕분에 내 동생이 백천의 수급을 손쉽게 취했지요... “.
그에 대한 김유신의 판단이 다음과 같다; “그렇게 먼 거리에서 강궁을 사용하여 적장을 저격하자면 그것은 보통 무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내력을 사용해야 해요. 그렇다면 우리 신라진영에 그러한 비범한 무공을 가진 인물이 숨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가 과연 누구일까요?... “.
김춘추가 역시 귓속말로 대답한다; “적장에게 달려간 장수는 김흠순과 추랑이지요. 그리고 유신 공과 저는 적병을 베어 넘기느라고 바빴고요. 재사인 윤책이야 나이가 많아서 무예를 배웠다고 하니 그러한 재주가 있을 리가 없지요... “.
서라벌 귀족사회에서 소위 천재라고 소문이 난 김춘추가 책사 윤책에 대하여 그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그 다음에 김춘추의 말이 이어진다; “ 그렇다면 과연 누가 그런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을까요?... 적장을 저격한 것으로 보아서는 분명히 우리 신라군에 그러한 인물이 숨어 있는데 말이예요!... “;
김춘추와 김유신마저 그 정체를 확실하게 모르고 있는 그자는 과연 누구일까?... 혹시 신라의 장군 유강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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