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13(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1. 12. 11. 13:30

천년의 바람소리13(손진길 소설)

 

6월에 들어서자 느닷없이 서라벌에서 가소가 앵잠성을 방문한다. 그 먼 길을 여자 혼자의 몸으로 찾아온다고 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다. 윤책이 깜짝 놀라서 아내 가소를 자신의 막사로 안내한다;

막사에 들어서자 가소가 남편 윤책의 얼굴을 정답게 쳐다보면서 말한다; “여보, 제가 우리들의 아기를 가졌어요. 당신이 지난 3월초에 단석산에서 전선으로 출발하고 저는 교리에 있는 친정으로 가서 잘 지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38살이나 된 저에게 갑자기 태기가 있는 거예요. 당신에게 인편으로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생각했다가 아무래도 몸이 더 무거워지기 전에 제가 한번 당신을 만나보고 싶어서 이렇게 무리인 줄 알면서도 전방으로 당신을 찾아왔어요… “.

그 말을 듣자 윤책이 사랑스러운 눈길로 아내 가소를 내려다보고서 말한다; “당신이 장해요. 애기를 임신한 산모의 몸으로 이 먼 전방까지 나를 찾아온 것을 보니 분명 보통사람이 아니군요. 우리 애기가 태어나면 당신을 닮아서 대단한 인물이 될 거예요. 나는 오늘 참으로 기쁜 소식을 들은 것이요. 고마워요… “.

그 말을 하면서 윤책이 가소를 가슴에 안는다. 헤어진 지 4개월이나 되어서 다시 상봉을 하는 것이니 신혼부부와 같은 그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만남이다. 특히 32살이나 된 재사 윤책에게 이제 자식이 태어난다고 하지 않는가!...

그 기쁜 소식을 그들 부부만 간직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윤책이 가소와 함께 아래 동서인 추랑을 방문한다. 그 소식을 듣고서 추랑이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말한다; “정말 기쁜 소식이군요. 그런데 제 집사람은 친정에서 여전히 잘 지내고 있습니까? 장모님도 평안하시고요?... “. 가소가 짧게 대답한다; “물론입니다. 다들 무탈하시지요”.

윤책이 막사로 돌아가서 아내와 하룻밤을 지내면서 전방에서의 생활에 대하여 이야기하다가 은연중에 김유신과 김춘추를 만났다고 가소에게 말한다. 그러자 가소가 큰 관심을 표명하면서 남편에게 묻는다; “그래 김춘추는 지금 어디에서 근무하고 있나요?... “;

윤책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아니하고 대답하면서 동시에 물어본다; “나와 함께 성주의 재사가 되어 같은 방 참모실에서 근무하고 있지요. 그런데 김춘추에 대하여 어째서 물어보고 있는데요?... “. 그 말을 듣자 가소가 한마디로 대답한다; “누나가 동생의 안부를 묻고 있는데 무엇이 이상한가요?... “.

그때서야 윤책이 눈치를 채고서 말한다; “, 당신과 김춘추가 이복형제 사이라고 하는 것은 알겠는데그렇다면, 장인어른 김용수 장군께서 춘추에게 이복형제들에 대하여 벌써 말씀을 하신 것인가요?... “;

 

그 말을 듣자 가소가 담담하게 말한다; “저희 아버님은 미도 옹주의 소생인 저희들의 존재에 대하여 벌써 천명공주에게 말했지요. 그래서 김춘추도 자신의 누나가 되는 저희 자매들에 관하여 이미 알고 있어요. 그러니 내가 여기 앵잠성에 온 김에 내 동생을 좀 만나보고 싶군요”.

다음날 윤책이 아내 가소를 데리고 참모실에 출근한다. 김춘추가 먼저 출근하여 있다가 윤책이 부인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 깜짝 놀란다. 그 다음에 더 놀랄 일이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가소가 춘추야, 그 동안 잘 지냈니?... 나야, 네 큰 누나인 가소란다… “.

그 말을 듣자 김춘추가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고 말한다; “정말 가소 누나가 맞군요. 그래 영소 누나도 안녕하시지요?... “. 가소가 김춘추를 품에 안으면서 말한다; “물론 잘 지내고 있지. 그래 아버님도 안녕하시지? 그리고 천명공주님도 평안하시고?... “.

김춘추가 가소 앞에서는 철없는 남동생만 같다. 그러다가 가소의 곁에서 빙그레 웃고 있는 윤책을 쳐다보고서 그제서야 말한다; “그런데, 누나. 어째서 윤책 형과 함께 이 방에 들린 것이야?... “.

가소가 깔깔 웃으면서 대답한다; “천하의 인재 내 동생 춘추가 오늘은 영 덜 떨어진 소리를 하는구나!... 그래, 내가 내 남편과 함께 이 방에 온 것이 무어 그리 이상한 일이냐?... “.

그 말을 듣자 김춘추가 화들짝 놀라면서 말한다; “아니 그럼, 재사 윤책이 누나의 남편인 것이야?... 언제 그렇게 혼사를 했는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잖아!... “.

그 말에 그제서야 가소가 자초지종을 말한다; “금년 초부터 함께 지냈으니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 이제 금년이 가기 전에 애기도 태어난단다. 그러니 춘추야 너는 외삼촌이 되는 것이지… “.

그 말에 김춘추가 허리를 숙여서 윤책에게 절하면서 말한다; “윤책 형이 저보다 10년이나 연상이어서 그동안 편하게 형이라고 불렀는데 이제 보니 저의 매형이 되는군요. 앞으로 저의 누나를 많이 사랑해주세요”.

그 말을 듣자 윤책이 마주 절하면서 어느 사이에 김춘추의 손을 잡고 말한다; “이렇게 부족한 매형을 환대해주니 반가워요. 춘추 처남은 벌써 결혼한 것으로 아는데 내 인사가 늦었군요. 그래 자녀가 어떻게 되세요?... ”.

그 말에 22세의 김춘추가 씨익 웃으면서 대답한다; “저는 3년 전에 설원랑과 미실 궁주의 아들인 제16대 풍월주 보정공의 딸 보랑 궁주와 혼인하여 슬하에 딸 하나가 있지요. 그 이름이 고타소입니다. 지금 모녀가 서라벌에서 살고 있답니다… “;

 

그 다음에 김춘추가 생각이 났는지 가소 누나에게 한가지를 질문한다; “그런데 큰 누나, 영소 누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가소가 즉시 대답한다; “영소는 벌써 자녀가 둘이나 된다. 그래서 서라벌 친정집에서 지내고 있지. 그리고 그 남편이 여기 앵잠성에서 근무하고 있어. 춘추야 너는 너의 작은 매형이 누구인지 알고 있니?... “.

서라벌에서 똑똑하기로 소문난 김춘추가 그 말을 듣고서 깜짝 놀란다. 그래서 즉시 물어본다; “누나, 그 작은 매형이 누구인데?... “. 그 말을 듣자 윤책이 가소를 대신하여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어허, 아주 가까이 있지요. 화랑 출신 소감 추랑이 바로 영소의 남편이지요. 하하하… “;

 

그 말을 들은 김춘추가 얼마나 좋은 지 껄껄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내 주위에 매형이 두 사람이나 있는데 내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니세상에 살다 보니 이렇게 좋은 일이 다 있군요. 제가 빨리 두번째 매형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윤책이 두 사람을 데리고 아예 추랑이 근무하고 있는 부서를 찾아간다. 막 출근하여 문서를 정리하고 있던 추랑이 그들 3사람을 보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부터 한다; “이거 서라벌에 계시는 처형께서 이 먼 곳까지 어떻게 방문하신 것입니까? 그리고 형님과 춘추 공이 함께 제 방에 오시다니 어쩐 일이십니까?... “.

반가운 김에 김춘추가 먼저 추랑에게 다가가서 반절을 하면서 말한다; “매형, 이 부족한 춘추가 가까이 계시는 둘째 매형을 그동안 몰라보고 실례를 많이 했습니다. 이제서야 정식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제가 영소 누나의 동생인 김춘추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 인사를 받자마자 추랑이 고개를 숙여서 말한다; “춘추 공과 같은 처남을 두었으니 제가 더 영광이지요. 과한 인사는 마시고 자리에 앉으세요. 처형 내외분도 앉으시고요; 제가 맛있는 차를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

세상을 살다 보니 이렇게 기이하고도 좋은 인연과 만남이 다 있는가 보다. 6월 초여름 날씨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전방 앵잠성에서 뜻밖에도 장차 신라의 운명을 책임질 인재들이 서로 처남 매부 사이로 만나서 수인사를 하고 있다. 그렇게 서로가 한 가족임을 가르쳐 주고서 가소가 며칠 머물지 아니하고 다시 서라벌로 떠나간다.

그 일이 있고나서 김춘추가 자주 김유신을 데리고 자신의 매형인 윤책과 추랑을 방문한다. 그저 단순하게 우의를 다지는 자리는 아니 것만 같다. 도대체 이제 22살의 청년 김춘추는 그 마음속에 어떤 원대한 뜻을 품고 있는 것일까?...

거구이며 사람이 좋은 추랑은 김유신과 김춘추를 격의 없이 대하고 있지만 지혜가 남다른 윤책은 그것이 아니다. 모임이 잦아질 수록 김춘추와 김유신 사이에 흐르고 있는 교감이 무엇인지를 서서히 눈치채고 있다;

그 실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면서 재사 윤책은 장차 신라의 권력구조가 어떻게 재편되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다. 과연 윤책의 생각이 무엇이고 김춘추와 김유신의 계획은 어떠한 것일까?... ;

 

그러한 중요한 인물들이 우연히도 변방의 산성 앵잠성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그때가 바로 26대 진평왕 46년인 AD 624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