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11(손진길 소설)
진평왕 46년인 AD 624년 4월말에 앵잠성의 성주 가현이 사량향도를 이끌고 있는 화랑 추랑과 책사 윤책을 성주의 방으로 호출한다;
두 사람이 성주의 방에 들어서자 환하게 웃고 있는 가현 장군을 마주하게 된다.
가현 성주가 참으로 반갑게 추랑과 윤책을 맞이하면서 말한다; “두 사람은 여기 와서 회의실 의자에 앉게나. 내가 오늘 긴히 할 말이 있네… “. 추랑과 윤책은 평소와 달리 너무나 자신들을 환대하고 있는 가현 성주의 태도가 좀 이상하지만 상관의 명이라 순순히 탁자 의자에 앉아서 그의 입을 쳐다본다.
가현 장군의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화랑 추랑이 사량부의 화랑대를 지휘하고 있어서 그런지 지난 번에 이곳을 방문한 대장군 눌최의 관심이 대단하더군. 그래서 내가 오늘 두 사람을 조용히 만나고자 불렀어… “.
그 말을 듣자 화랑 추랑은 상당히 얼떨떨하게 생각한다. 자신이 대장군 눌최를 만난 것은 전번 환영잔치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사 윤책은 속으로 빙그레 웃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윤책은 장모 미도 옹주가 벌써 군부에 손을 쓴 것으로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눌최 대장군에게 까지 손을 쓴 것일까?...
그 이유가 드디어 성주 가현의 입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 “사량부는 서라벌 귀족인 최씨의 문중이 아닌가!... 대장군 눌최가 본래 사량부 출신이야. 그래서 그 이름이 사실은 최눌최이지. 또한 추랑 자네의 이름은 최추랑이 아닌가!... 두 사람은 남이 아니고 사실은 일가인 것이지… “;
그제서야 추랑이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는 단지 같은 부족 출신이기에 눌최 대장군이 가현 성주에게 추랑을 잘 보아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만 여기고 있다. 그러나 책사인 윤책의 경우에는 그 생각이 더 깊은 것이다. 그는 장모인 미도 옹주가 생각보다 훨씬 깊이 군부 인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자꾸만 생각이 된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윤책은 나중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그 궁금증을 해결해보려고 한다. 당장은 가현 성주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고자 한다. 그때 가현 장군이 성주의 위엄을 갖추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명일 곧 5월 초하루를 기하여 화랑의 지도자들에게 군 장교의 신분을 부여할 생각이야… 그런데 그 인사조치에 있어서 공정을 기하여야 하겠기에 자네들을 먼저 내 방으로 부른 것이야... “.
잠시 두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가현 성주가 이어서 말한다; “비록 나의 상관인 눌최 대장군이 사량향도를 이끌고 있는 자네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달라고 은근히 부탁했지만 나는 그렇게 처신할 수가 없어. 왜냐하면, 나는 앵잠성의 성주로서 공정한 인사를 실시해야 하거든… “.
정작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래서 부득이 사량향도의 지도자인 화랑 추랑과 책사 윤책 두 사람을 용화향도의 지도자인 김유신 및 김춘추와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소감 벼슬에 임명하고자 하는 것이네. 그 점을 사전에 이해해주기 바라네… “.
소감 벼슬은 신라의 17관등 가운데 16등급에 속하는 소오에 해당하는 낮은 관리의 벼슬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초급 무관의 관직인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전투에 임하는 화랑이나 낭두가 그 정도의 관직이라도 마다할 수가 없다;
신라의 관직 17등급
구 분 | 관 직 명 | 성 골 | 진 골 | 6 두품 | 5 두품 | 4 두품 | 중 시 (령) | 도 독 | 사 신 | 시 랑 (경) | 군 태수 | 현 령 |
1 | 이벌찬, 이벌간, 우벌찬, 각간, 각찬, 서발한, 서불한 | |||||||||||
2 | 이척찬, 혹은 이찬 | |||||||||||
3 | 잡찬, 혹은 잡판, 소판 | |||||||||||
4 | 파진찬, 해간, 파미간 | |||||||||||
5 | 대아찬 | |||||||||||
6 | 아찬, 혹은 아척간 | |||||||||||
7 | 일길찬, 혹은 을길간 | |||||||||||
8 | 사찬, 혹은 살찬, 사돌간 | |||||||||||
9 | 급벌찬, 혹은 급찬, 급복간 | |||||||||||
10 | 대나마, 혹은 대나말 | |||||||||||
11 | 나마, 혹은 나말 | |||||||||||
12 | 대사, 혹은 한사 | |||||||||||
13 | 사지, 혹은 소사 | |||||||||||
14 | 길사, 혹은 계지, 길차 | |||||||||||
15 | 대오, 혹은 대오지 | |||||||||||
16 | 소오, 혹은 소오지 | |||||||||||
17 | 조위, 혹은 선저지 |
인사에 공평을 기하겠다는 좋은 원칙을 내세운 성주 가현 장군의 말에 토를 달 수는 없다. 그저 자신의 출신 사량부에 애정을 보이고 있는 대장군 눌최의 마음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화랑 추랑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표로 말한다; “잘 알겠습니다, 성주님. 저희들은 조국 신라를 수호하기 위하여 예상되는 적의 모든 침략으로부터 전심전력으로 앵잠성을 굳건하게 지켜낼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추랑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윤책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결심을 밝힌다; “감사합니다, 성주님. 저 같은 책사에게 화랑과 동일한 소감 벼슬을 내려 주시겠다니 하시니 감읍할 뿐입니다. 맡은 바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서 가현 성주가 참으로 기뻐한다. 그래서 두 사람의 손을 잡으면서 포옹까지 한다. 그러한 환대를 받고나서 두 사람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 있다. 함께 걷는 도중에 추랑이 한마디 한다; “역시 장모님의 말씀이 맞구만. 처음 출전하는 화랑에게는 똑같이 소감 벼슬을 줄 것이라고 이미 말씀하셨거든… “.
그 옆에서 걷고 있는 윤책이 동의한다는 표현으로 자신의 고개를 가볍게 끄떡이고 있다. 그렇지만 윤책은 장모 미도 옹주의 영향력이 군부에 대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문제를 한번 나름대로 깊이 파헤쳐보고자 한다.
윤책은 일찍이 사부 원광법사로부터 들은 조국 신라의 역사와 최근 전쟁의 이야기를 자신의 방에서 곰곰 되짚어보고 있다. 그 이야기 가운데 제2대 풍월주 미진부의 딸인 미도 옹주가 어떻게 개입이 되어 있는 것일까?...
한참 생각을 하던 윤책이 갑자기 자신의 허벅지를 손으로 치면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렇다, 내가 그 생각을 왜 진작에 못했을까?... 진흥왕 시절에 한강유역을 정복하면서 풍월주 위화랑과 미진부가 큰 공을 세웠지… 그리고 진평왕 시절에는 김용수 장군이 김서현 장군과 함께 역시 큰 공을 세웠지… 그러니 미실 옹주 뿐만 아니라 그 동생인 미도 옹주가 한강 유역에서 선대의 식읍을 일부 얻고 있는 것이야… “.
윤책의 생각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미도 옹주는 김용수 장군이 얻은 철원지역의 식읍까지 일부 얻고 있는 것이겠지. 그러니 벌써 미실 옹주가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 동생인 미도 옹주가 재력을 가지고 그 옛날 부친과 남편의 부하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야!... “.
책사 윤책의 추측이 상당히 정확하다. 왜냐하면, 당시의 전쟁 이야기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그 전쟁의 출발점은 진흥왕이 백제와의 약속을 깨고서 전광석화와 같이 한강유역을 독차지한 550년의 사건이다.
당시 당항성을 위시한 한강유역을 신라가 무리하게 홀로 집어 삼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고구려와 백제에 의하여 신라가 마치 섬에 갇힌 것처럼 고립무원의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서로는 백제가 동으로는 백제의 속국인 왜가 그리고 북으로는 고구려가 신라를 완전 포위하고 있어서 신라가 멸망하는 것은 한마디로 시간문제였다.
그와 같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진흥왕은 두가지의 책략을 밀어 부쳤다;
하나가, 540년에 무예가 가장 뛰어난 자를 풍월주를 임명하여 그로 하여금 화랑대를 많이 설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신라의 젊은이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단체로 무예수련을 하게 된다. 그것이 신라의 무력증강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 하나는, 바다 건너 당나라와 군사적인 동맹을 체결할 수 있도록 그곳으로 가는 바닷길을 열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항성으로 가는 한강 유역의 땅을 점령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실제로 550년에 신라가 당항성 일대를 얻을 수 있었던 요인은 고구려와 백제의 군대를 한꺼번에 물리칠 수 있는 가공한 무공을 소유하고 있었던 두 사람의 장군이 국내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름이 제1대 풍월주 위화랑 그리고 제2대 풍월주 미진부이다.
위화랑은 540년에 제1대 풍월주가 된 인물이고 그 직위를 8년후에 미진부가 이어 받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이 신라 무인들의 최고의 영예인 풍월주의 자리를 주고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무공실력이 당대에 신라에서 단연 으뜸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나이가 위화랑이 훨씬 많았기에 초대 풍월주였고 젊은 미진부가 그 다음이 된 것이다;
한강유역을 차지하는데 있어서 풍월주 출신 두 장군의 전공이 대단했기에 진흥왕은 두 사람을 공신으로 삼고 넓은 식읍지를 하사했다. 그 식읍지가 두 풍월주의 자손인 미실 옹주와 미도 옹주에게 승계가 되고 있다.
그런데 미도 옹주의 경우에는 또다른 은밀한 식읍지를 얻고 있다. 그 이유는 그녀가 진지왕의 아들인 김용수의 아내가 되어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김용수는 무예를 좋아하는 젊은이였는데 미도 옹주와 함께 살게 되면서 옹주 집안의 무공을 은밀하게 전수받게 된다. 그 결과 비록 폐위를 당한 진지왕의 아들이지만 장군 김용수가 외적을 물리치는데 크게 전공을 세우게 된 것이다;
장군 김용수는 김유신의 부친인 김서현 장군과 함께 진평왕 24년인 602년 그리고 그 이듬해인 603년에 전장에서 크게 활약을 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602년에는 아막산성을 침입하는 백제 무왕의 군대를 막아낸다. 그리고 603년에는 북한강 유역을 타고서 아차산을 침범하고 있는 고구려의 군대를 물리치고 멀리 철원까지 후퇴하는 적군을 쫓아 그곳을 점령하는 전공을 세운 것이다.
개인적으로 진평왕은 자신의 사촌인 김용수가 아막산성에서 백제의 군대를 크게 물리치는 것을 보고서 그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나의 계책을 사용한다. 그것이 나이가 많은 김용수(다른 이름이 김용춘)에게 자신의 딸인 천명 공주를 정식아내로 준 것이다;
김용수의 입장에서는 미도 옹주와 동거한지가 오래이며 그들 사이에 두 딸이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왕명을 어길 수가 없다. 그래서 눈물로 아내 미도 옹주와 헤어지면서 그녀에게 장차 물질적으로라도 크게 보상하고자 마음먹게 된다.
천명공주와 결혼한 김용수가 다음해 곧 603년에 아들 김춘추를 얻게 된다. 그런데 그해에 고구려의 장군 고승이 대군을 이끌고 북한강 유역을 통하여 아차산까지 침범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난 590년에 그곳에서 전사한 고구려 온달 장군의 복수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고구려 26대 영양왕의 매부인 온달 장군이 신라가 점령하고 있는 한강유역을 탈환하고자 남침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전사한 바가 있다;
그 복수를 하겠다고 영양왕이 고승 장군의 군대를 603년에 원정군으로 내보낸 것이다. 그러나 신라의 진평왕이 1만 대군을 이끌고 전선으로 달려오고 있다.
게다가 고구려 군대에 불운이 겹치고 있다. 고승 장군마저 전장에서 전사하고 만다. 고구려의 대군이 패잔병이 되어 정신없이 동북쪽으로 도망을 치고 있다. 그 뒤를 신라의 장군 김용수가 바짝 추격한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철원의 평야까지 점령하게 된다;
김용수는 자신이 얻은 지역을 전처 미도 옹주에게 은밀하게 식읍지로 주고 있다.
그 식읍지를 지키기 위하여 미도 옹주는 부친 미진부의 부하 장군들과 전 남편 김용수의 부하 장군들에게 비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그 자금은 자신의 식읍지에서 나온 것의 일부이다.
그 자금의 일부가 사실은 사량향도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는 사량향도의 지휘자였던 금산과 추항이고 그 다음은 추항의 아들이 화랑 추랑인 것이다. 여기까지 지난날의 전쟁 이야기를 두루 살핀 책사 윤책이 장모 미도 옹주가 어떠한 인물인가를 넉넉하게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 이야기를 일체 남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훗날 자신의 문집 ‘천년풍음’에만 기록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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