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9(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1. 12. 8. 07:10

천년의 바람소리9(손진길 소설)

 

신라 26대 진평왕 45년인 주후 62312월 초겨울에 윤책은 미도 옹주의 맏딸인 가소를 아내로 맞이한다. 그리고 그녀를 서라벌 남쪽 교외에 자리잡고 있는 단석산 자락의 사량향도의 군막으로 데리고 와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8년 전에는 가소의 여동생인 영소가 그곳에서 화랑 추랑과 신혼생활을 하더니 세월이 흐르자 이제는 가소가 재사 윤책과 함께 신혼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소는 2자녀를 양육하느라 서라벌 남천내 교리에 있는 친정에 머물고 있다.

윤책은 멀지 아니하여 추랑의 사량향도가 군부의 지시를 받아 서부전선으로 이동할 것임을 미도 옹주의 언질로 벌써 알고 있다. 따라서 그 준비를 서서히 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시행해야 하는 일이 화랑 추랑으로 하여금 3명의 지대장에게 그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화랑 추랑이 그의 막사에 황오, 금장, 성건 등 3명의 지대장을 소집한다. 그 회의에 재사 윤책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추랑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한다; “금년 가을에 백제의 무왕이 군사작전을 전개하여 우리 신라의 가잠성 인근에 있는 늑노현 지역을 점령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

추랑이 크게 기침을 한번 하더니 말을 계속한다; “그 뿐만이 아니고 이제는 더 많은 원정군을 편성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오고 있어요. 그에 대비하여 조만간 우리 화랑대도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서부전선으로 출발할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어요. 그렇게 알고 하시라도 군부의 파발이 도착하면 전선으로 이동해야 하니 아무쪼록 그 준비에 만전을 기해주기 바랍니다. 이상”;

 

그 말을 듣자 3명의 지대장들이 마치 합창을 하듯이 큰소리로 대답한다; “,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연장자인 제1지대장 황오가 추랑에게 묻는다; “보통 군사작전이 가을 추수가 마무리가 된 다음에 대대적으로 시작이 되곤 하는데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요?... “.

사량향도의 대장인 화랑 추랑이 무슨 말인지 금방 알아듣고서 대답한다; “그렇지요. 내년에도 추수철이 끝난 다음에 대대적으로 쳐들어오겠지요. 그렇지만 국경지대의 여러 성을 수비해야 하는 우리 신라의 입장에서는 미리미리 수비군을 보강해 두어야 합니다. 그러니 내년 초봄에 아무래도 우리 화랑대가 서부전선 어느 곳으로 이동할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추랑의 설명을 듣고 3명의 지대장 곧 황오와 금장 그리고 성건이 대장의 막사를 떠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윤책이 추랑에게 조용하게 말한다; “대장, 그런데 우리 화랑대가 전선에 투입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야. 그러니 사전에 시간이 있을 때에 미리 낭도들에게 고향에 한번 다녀오라고 조치를 해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막상 전선으로 이동하고 나면 가족을 만날 시간이 없을 터인데… “.

사려가 깊은 말이다. 그래서 추랑이 얼른 대답한다; “맞아요.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내일부터 지대 별로 차례로 고향방문을 하고 오도록 조치하도록 합시다. 그 계획을 형님께서 마련하시고 저를 대신하여 지대장들에게 지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부탁합니다”.

재사 윤책이 비록 낭도의 신분이지만 개인적으로 자신의 윗동서가 되고 있기에 화랑인 추랑이 형님 대접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것을 의식하고서 윤책이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이거 내가 장가를 한번 잘 간 모양입니다. 화랑께서 일개 낭도 신분인 내게 형님 대접이 반듯하니 말입니다. 허허허… “.

그 말을 듣자 추랑이 역시 웃으면서 말한다; “제가 언제 스승님 대접에 소홀한 적이 있습니까? 사부는 부모와 같다고 하는데 말입니다게다가 이제는 나이 많은 처형의 남편이시니 제가 잘 모셔야지요. 하하하… “.

윤책이 허허라고 웃으면서 추랑의 막사를 떠난다. 그렇게 사이가 좋은 추랑과 윤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은 지난 8년을 마치 친 동기간처럼 잘 지내온 것이다. 하기야 윤책이 화랑인 추랑보다 3살이나 연상이고 그 가진 바 학문이 대단하기에 추랑이 그를 존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미도 옹주가 사전에 가소의 신랑감으로 윤책을 거론하였을 때에 추랑이 적극 찬성을 하기도 했다.

한편 윤책은 막사에서 아내 가소와 함께 지내면서 은밀하게 무예수련을 둘이서만 같이하고 있다. 그런데 윤책은 아내의 무예가 상당한 수준인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특히 여자인 가소가 윤책 자신과 대련할 때에 보니 그 힘이 대단하다. 그 점이 이상하여 하루는 아내에게 질문한다; “어떻게 여인인 그대가 용력에 있어서 남자인 나보다 더 강한 것이요? 그 비결이 도대체 무엇이지요?... “;

 

가소가 생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우리 집안에는 국선의 조상인 풍월주가 2사람이나 있어요. 그들이 남겨놓은 호흡법과 내력 운용법이 있으니 그것을 나와 영소가 어릴 때부터 수련했답니다. 한번 보여드릴까요?... “;

 

마침 멀찍이 떨어진 산속에서 두 사람만이 무예단련을 하고 있었기에 윤책이 조심스럽게 주위를 한번 둘러본 다음에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자 가소가 야무지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긴 호흡으로 내력을 운용하기를 시작한다. 그 모습을 윤책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일다경이 지나자 가소가 자리에서 일어나 목검을 집어서 휘두르기를 시작한다. 그녀가 내력을 목검에 불어넣고서 작은 나무를 베어가자 마치 무우가 싹둑 잘려 나가듯이 그렇게 단숨에 그 단단한 나무가 목검에 베어지고 만다.  

그 모습을 보고서 윤책이 질문한다; “내게 그 내력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한번 설명을 해주세요. 내가 일찍이 스승이신 원광법사에게서 배운 것과 어떠한 차이가 나는지 알고 싶군요… “. 그 말을 듣자 가소가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천천히 내력을 운용하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설명을 듣고 보니 윤책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스승에게서 배운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윤책은 내력을 운용하여도 그 힘이 무기로 전달되지 아니하는데 가소는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그 이치를 당장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다

그에 대하여 질문하자 가소가 남편 윤책에게 말한다; “내 앞에서 한번 당신이 알고 있는 그 호흡법과 내력 운용법을 시전해보세요. 내가 익힌 것과 무엇이 다른 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그녀의 말 대로 윤책이 내력을 운용해본다. 그것을 지켜보는 가소의 눈이 날카롭다.

한식경이나 윤책이 여러 번 내력을 운용하는 것을 오래 지켜본 다음에 가소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슨 차이인지 제가 알 것 같아요. 당신은 그 내력을 바깥으로 분출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체내에서만 사용하도록 그렇게 설계가 되어 있어요. 아마 원광법사가 살생을 좋아하지 아니하여 그렇게 변형한 것으로 보이네요. 그러니 몇 개의 혈도 순환만 변경하면 금방 내력이 바깥으로 전이가 되겠는데요… “;

 

윤책보다 6살이 많은 가소가 어릴 때부터 오래 내공수련을 해온 모양이다. 더구나 무예수련을 매우 좋아하는 그녀이다. 따라서 윤책이 운용하고 있는 내력을 변형시키는 방법까지 기어코 찾아내고 있다. 그 덕분에 윤책의 무예가 단숨에 무공의 수준으로 상승하고 만다. 그러나 그는 신중하게도 자신의 무공을 일체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속으로만 갈무리하기에 애쓰고 있다.

그렇게 무공수련을 하면서 윤책이 서서히 화랑 추랑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일을 마무리하고 있다. 며칠 후 윤책이 추랑에게 말한다; “내가 추 동생에게 학문을 가르친 지 벌써 7년이 되었어요. 이제는 상당한 수준이 되었으니 서서히 마무리를 하도록 합시다. 그래 오경과 불경 그리고 도덕경 등을 두루 공부해보니 어떤 것이 제일 마음에 듭니까?... “;

 

추랑이 신중하게 답변한다; “그 깊은 이치를 모두 깨우치지는 못하고 있지요. 하지만 역시 역사서와 불경이 마음에 들어요. 우리 집안에서 불교를 숭상하고 내가 중국과 우리 나라의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모양이지요… “.

그 말을 듣자 윤책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한다; “내가 스승이신 원광법사님에게서 들은 말씀에 따르면 우리 신라와 백제의 학문이 대단한 수준이라고 해요. 그래서 백제에서는 일찍이 오경박사들이 왜 나라로 건너가서 학문전수를 해주었다고도 해요. 그렇게 아시고 시간이 날 때에 계속 오경을 공부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추 동생의 학문수준이면 장차 군부에서도 학자 소리를 듣겠습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듣고 추랑이 말한다; “그렇지요. 7년전 내가 형님으로부터 처음으로 글을 배우던 시절에 비하면 이제는 박사가 된 기분입니다. 이 정도이면 어디가서도 학자 소리를 듣고 말고요. 고맙습니다. 형님, 무예만 알던 이 동생에게 대단한 선물을 주셨으니 제가 그 은혜에 평생 보답하겠습니다”;

윤책이 역시 웃으면서 말한다; “내가 그동안 공짜로 밥을 얻어먹고 무예를 배웠으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추 동생 덕분에 내가 결혼도 하게 되었지 않습니까?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해야지요. 고마워요, 추 동생… “;

 

그 말을 듣자 거구인 추랑이 덥석 윤책을 안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형님, 우리 군부에 들어가서도 함께 일하도록 합시다. 저는 지혜가 남다른 형님이 제 곁에 있는 것이 마음에 든든해요. 우리 함께 조국 신라의 발전을 위하여 손에 손잡고 힘써봅시다. 그리고 영화도 함께 누리도록 하고요. 저는 형님이 마음에 듭니다”.

윤책 역시 추랑을 마주 안으면서 말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동생이 미리 다하고 있군요. 좋소,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한세상 형님 동생으로 살아가는 것이 대장부의 삶이지요. 좋고 말고요. 불감청 고소원이지요. 하하하… “.

고즈넉한 단석산의 밤, 화랑의 막사에서는 그렇게 결의형제의 우애 다짐이 뜨거운데 그 바깥에서는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한겨울 차가운 바람이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제 624년 초봄에 신라의 서부전선으로 이동하게 되면 윤책과 추랑은 어떠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