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7(손진길 소설)
3. 윤책이 추랑과 함께 미도 옹주의 집을 방문하다.
책사 윤책이 화랑 추랑의 화랑대에서 지내는 동안 한반도에 자리를 잡고 있는 예맥족의 삼국은 전쟁에 휘말려 있다. 가장 큰 전쟁은 중국의 통일왕조인 수나라가 614년에 4번째로 고구려를 침공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하고 격퇴를 당하고 만다;
그런데 무리하게 원정을 여러 차례 수행한 결과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 수의 황제인 양제가 통치력이 약화되자 그만 618년에 전임 대장군 우문술의 두 아들에게 살해를 당하게 된다. 그 호기를 이용하여 이연이 반란에 성공하여 당나라를 세우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수나라가 고구려를 4차례나 무리하게 침략하다가 급기야는 자신들의 제국이 멸망을 당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북방에서 강력한 고구려가 수나라의 침입을 성공적으로 물리치고 있는 동안 한반도의 남부에서는 백제와 신라 사이에 크고 작은 전쟁이 발생하고 있다.
갑자기 백제의 무왕이 616년에 신라의 모산성을 공격한다. 그 이유는 602년에 억울하게 신라에게 빼앗긴 남원의 아막산성을 탈환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성공하지를 못한다. 도리어 신라 진평왕의 보복공격이 괴산 지역의 가잠성에 기습적으로 퍼부어진다. 그로 말미암아 618년에 백제의 가잠성주가 전사하고 만다;
그와 같은 전쟁 이야기를 서라벌 남쪽 교외지역 단석산에 자리를 잡고 있는 화랑 추랑의 막사에서 윤책이 상세하게 듣고 있다. 윤책은 추랑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한편 신라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의 전쟁 이야기를 계속 수집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적당한 때가 되면 추랑의 화랑대를 전투에 동원하여 공을 세우도록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620년에 접어들 때까지 마땅한 참전의 기회가 나타나지 아니하고 있다. 그리고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 아직 추랑의 학문이 군부의 지도자로 나서기에는 미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전쟁 상황을 수집하면서 그대로 지켜보고만 있다.
그렇게 지루하게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623년에 백제의 무왕이 신라를 또다시 침공하여 국경지대 가잠성 인근 늑노현에 있는 성을 차지하고 만다;
아무래도 45년간이나 오래 신라를 다스리고 있는 진평왕이 노쇠하여 그만 전투에서 밀리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을 보고서 이제 31살이 된 윤책이 28살이 된 화랑 추랑에게 말한다;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요. 이제는 전선에 나아가 공을 세워야 합니다. 백제와의 크고 작은 전쟁이 서부국경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으니 참전해야 합니다”.
그 말을 듣자 추랑이 의외의 대답을 한다; “형님, 안 그래도 제가 며칠 전 처자식을 만나기 위하여 남산 교리에 들렀을 때에 장모님이 그와 관련하여 두가지 말씀을 하셨어요. 하나는, 이제 군부에 직위를 얻어 제가 우리 사량향도를 이끌고 전투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형님을 모시고 처가에 한번 들리시라는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형님을 만나서 말씀하겠다고 하셨어요… “.
윤책이 첫번째 말의 뜻은 대충 알아듣겠는데 두번째 말에 대해서는 감이 잡히지를 않는다. 그래서 한번 물어본다; “추 동생, 내가 하나는 알겠는데 또 하나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그래 미도 옹주께서 내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도대체 무엇인지 귀띔이라도 좀 해주게나… “.
그 말을 들었음에도 추랑이 빙그레 웃기만 한다. 그러면서 한마디만 한다; “오늘 저와 함께 가보시면 자연히 아실 텐데 무어 그렇게 미리 알려고 하십니까?... 형님께 별로 손해가 나는 일이 아니니 저와 함께 옹주님을 만나러 가보시지요. 제가 잘 안내를 하겠습니다”.
어쨌든 추랑의 군부진출과 관련된 건이 걸려 있으니 그와 함께 미도 옹주를 만나러 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날 윤책이 말을 타고 추랑과 함께 단석산에서 남산 교리까지 가게 된다. 벌써 겨울이 시작되고 있어서 그런지 날씨가 제법 차다;
추랑은 아내 영소가 친정에서 자녀를 키우고 있으므로 장모 미도 옹주가 살고 있는 남천내의 집을 자주 방문하고 있지만 윤책으로서는 생전 처음 방문이다. 그래서 서라벌에 들어서자 우선 가게를 찾아 작지만 선물을 하나 마련한다.
벌써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 영소가 처가로 들어서고 있는 남편 추랑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미도 옹주는 영소의 언니 가소를 데리고 나와서 함께 윤책을 맞이하고 있다. 처음 방문하는 윤책을 나이가 든 옹주가 혼자서 맞이하기가 어색한 것 같아서 큰 딸을 데리고 나온 것인가 하고 윤책이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옹주가 살고 있는 집이라서 그런지 규모가 상당하다. 게다가 집안일을 하고 있는 하인들도 여럿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31살이 되도록 황룡사 절과 화랑대의 군막에서 주로 생활한 윤책으로서는 그렇게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가정집을 방문하는 것이 처음이라 그런지 자신과는 크게 어울리지 아니한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하지만 손님으로 온 입장이라 공손하게 미도 옹주와 가소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사랑방에 들어선다. 그곳에는 제법 큰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 있다. 윤책이 자리에 앉아서 옹주 모녀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는데 조금 지나자 안채에서 처자식을 만난 추랑이 아내 영소를 데리고 그 방으로 들어선다.
모두 모이게 되자 비로소 미도 옹주가 입을 연다; “오늘 내가 사위 추랑 뿐만 아니라 책사 윤책 공을 함께 우리집으로 모신 것은 특별히 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내가 개인적으로 군부에 알아본 결과 사위가 낭도들을 이끌고 출전할 수 있는 길이 이제 열린 것이지요. 그 점을 먼저 말씀 드리고 그 다음에 또다른 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합니다… “.
차를 마시면서 윤책이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미도 옹주의 목소리가 위엄 있게 들려온다; “백제의 무왕이 최근 파상적인 공격을 감행하고 있어요. 당장은 우리 신라의 서북지역 늑노현을 공격하였지만 그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이제는 서남 국경지대의 여러 성들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어요. 따라서 군부에서 화랑대를 참전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차제에 내가 부탁했어요. 추랑이 이끌고 있는 사량향도들을 포함시켜 달라고 말이예요. 물론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어요… “;
그 말을 듣자 추랑과 윤책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 다음에 윤책이 개인적으로 추랑이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꺼낸다; “그렇다면, 화랑인 추랑에게는 어떠한 직책을 맡긴다는 언질이 혹시 있었는지요?... “. 미도 옹주가 윤책의 얼굴을 보면서 대답한다; “나의 사위라고 하여 다른 화랑보다 더 높은 자리를 줄 수는 없는 모양이예요, 그래서 처음으로 출전하는 화랑에게 통상적으로 주고 있는 소감(少監) 자리를 주겠다고 했어요”;
조용하게 고개를 끄떡이고 있는 추랑과 윤책을 바라보면서 미도 옹주가 이야기를 계속한다; “자세한 내용은 군부에서 화랑대로 직접 파발을 보낼 것이라고 했어요. 그러니 그 지시를 따라서 움직이면 될 것으로 보여요.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
미도 옹주가 이번에는 윤책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서 천천히 입을 뗀다; “윤공에 대해서는 사위가 하도 많이 이야기를 해서 나는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어요. 추랑에게 지난 7년 동안 여러가지 학문을 가르쳐주어서 참으로 감사해요. 이제는 그 정도 오래 공부하였으니 추랑이 군부에서 활동하고 진급하는데 있어서는 애로사항이 없다고 판단이 되어요. 그래서 이제는 내가 개인적인 부탁을 하나 윤공에게 하고 싶어요. 그것은… “.
천천히 말끝을 흐리면서 미도 옹주가 신중하게 윤책의 안색을 살피면서 그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 순간 옹주 옆에 앉아 있는 맏딸 가소의 얼굴에 갑자기 홍조가 물들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천하의 재사인 윤책이 ‘아차’ 하면서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거, 청상이 된 37세의 장녀를 내게 맡기려고 하는 속셈이구나. 이것은 피해야 하는 인연인가? 아니면 순순히 받아 들여야 하는 운명인가?... “;
윤책이 다음 순간 눈을 감으면서 고요하게 명상에 잠긴다. 그 모습을 미도 옹주와 가소가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미도 옹주가 속으로 생각한다; “내가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아니하고 있는데 윤책이 벌써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원광법사의 제자라고 하더니 과연 허명이 아니구나. 이와 같이 신통한 인물을 사위로 삼아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
윤책이 천천히 눈을 뜨고 있다. 옹주와 그녀의 두 딸 뿐만 아니라 화랑 추랑까지 평소와 다른 윤책의 행동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그의 입술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단지 윤책이 말하고 있는 조용한 말 한마디만 들었을 뿐이다; “저는 준비가 되었으니 옹주님께서는 주저없이 말씀하시지요… 제가 귀 기울여 듣겠습니다… “.
그날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그들 사이에 오가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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