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6(손진길 소설)
윤책이 처음으로 서라벌 인근 단석산에서 화랑 추랑을 만나 그의 낭도들과 함께 무예를 연마하기 시작한 때가 진평왕 37년인 주후 615년경이다. 그때부터 한 2년 동안 추랑이 이끌고 있는 화랑대는 서라벌 주변의 동서남북 여러 산지를 돌아다니면서 단체수련을 했다;
하지만 주후 617년부터는 그러하지를 아니하고 오로지 단석산에서만 추랑의 화랑대가 훈련을 계속하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화랑 추랑이 원광법사의 제자인 윤책에게서 집중적으로 학문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랑이 윤책을 자신의 학문선생으로 모신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왜냐하면, 윤책이 학문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대단히 뛰어난 선생이기 때문이다. 윤책은 어린 시절 8살때부터 23살이 될 때까지 무려 15년 동안이나 당대 신라에서 가장 학문이 높다고 정평이 나 있는 원광법사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로부터 체계적으로 학문을 배운 인물이다;
그러므로 윤책이 불교와 도교 그리고 유학에 이르기까지 그 사상과 학문의 흐름을 줄줄이 꿰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깨달은 학문의 이치를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화랑인 추랑을 가르치고 있으니 늦은 나이에 배우기를 시작한 추랑으로서는 진실로 선생을 잘 모신 크나큰 행운을 얻은 셈이다.
더구나 윤책이 빠른 기간 내에 추랑의 공부를 크게 진보시키려고 마음을 먹고 있다. 그 이유는 추랑을 조기에 신라의 군부에 진출하게 하여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윤책은 자신이 고안한 ‘신라의 국력신장을 위한 5대 책략’을 제대로 한번 실현시켜보고 싶은 것이다. 그 일의 성취를 위해서는 자신이 키운 인물이 신라의 조정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일을 위하여 화랑 추랑을 가르치기에 여념이 없는 윤책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619년이 되자 화랑의 세계에서는 대단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25세의 화랑인 김유신이 이끌고 있는 용화향도의 명성이 서라벌을 크게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유신은 일찍이 532년에 신라의 압력에 굴복하여 금관가야를 신라의 제23대 법흥왕에게 바친 구해왕의 증손자이다. 그 덕분에 신라의 진골로 편입이 되었으나 크게 대접을 받는 귀족의 신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친 김서현이 진흥왕의 남동생인 숙흘종의 딸 만명공주와 결혼하게 됨으로써 진골 내에서 그 신분이 높아지고 있다;
김유신의 집안이 신라에 항복한 조상 구해왕 때부터 김해지역을 식읍으로 가지고 있었기에 김유신이 화랑으로 활동하는데 있어서 재정적인 도움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 점을 화랑 추랑을 돕고 있는 책사 윤책이 유심하게 살피고 있다.
따라서 윤책은 추랑에게 학문을 가르치면서 그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다. 그러자 윤책이 화랑인 추랑에게서 두가지 사실을 발견한다; 하나는, 추랑이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을 낭도로 데리고 다닐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의 모친으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사량부의 가주의 지원을 상당히 받고 있다는 것이다.
화랑인 추랑은 619년부터 자신의 화랑대를 사량향도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은 다분히 당시 서라벌에서 명성을 크게 얻고 있는 김유신의 용화향도를 의식하고 있는 행동이다. 또한 그것은 자신의 화랑대가 사량부의 인정과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정통 화랑대임을 선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귀족 가문에서 그렇게 화랑대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백명이 넘는 낭도들을 데리고 단체훈련을 하고 있는 화랑대에게 재정지원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랑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화랑대를 운영하기 위하여 큰손이 필요하다.
물주가 되고 있는 그 큰손이 은밀할 수록 좋다. 그래야 마치 비자금을 가지고 있듯이 화랑의 위세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책사 윤책은 화랑 추랑이 재정적인 측면에서 얼마나 단단한지를 은밀하게 점검하고 있는 것이다.
화랑대는 낭도의 수가 100명 정도가 되면 3명 정도의 간부를 두고 있다. 흔히 지대장으로 불리고 있는 간부가 30명 남짓의 낭도들을 지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말하자면 화랑 추랑은 3명의 지대장을 거느리고 있는 화랑대의 대장인 셈이다.
그런데 추랑의 화랑대에는 제4지대장이 한사람 있다. 그는 남자가 아니고 여인이다. 그러나 그녀의 무예솜씨가 상당하다. 그러므로 남장을 하고서 단체훈련에 나서게 되면 그녀가 여인이라는 사실을 낭도들이 잊어버릴 정도이다;
그 여인이 사실은 추랑의 아내인 영소이다. 그리고 영소의 모친이 미도 옹주이다. 본래 미도 옹주는 신라에서 군주로 불리고 있는 실력자 미실의 여동생이다. 미도 옹주는 일찍이 제25대 진지왕의 아들인 왕자 김용수(다른 이름 김용춘)와 동거하여 딸 둘을 낳았지만 제26대 진평왕에 의하여 남편이 천명공주와 정식으로 결혼하게 됨에 따라 아내의 지위를 잃어버린 여인이다. 그런데 천명공주가 낳은 아들이 바로 김춘추인 것이다;
그후 미도 옹주는 맏딸인 가소가 사량부의 화랑인 귀산과 사귀게 되자 귀산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602년에 귀산이 아막산성 전투에서 전사하게 됨에 따라 가소가 과부 아닌 과부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둘째 딸인 영소가 무예를 좋아하다가 그만 역시 사량부의 젊은 화랑인 추랑과 사귀고 그의 아내가 되고 만 것이다. 영소는 아예 추랑의 화랑대를 따라 다니면서 생활을 함께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미도 옹주는 어쩔 수가 없어서 화랑 추랑에게 뒷돈을 대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자세한 사정을 머리가 좋은 책사 윤책이 파악하게 되었지만 화랑인 추랑이 직접 말할 때까지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아니하고 있다. 왜냐하면, 윤책은 이상과 현실을 모두 살피면서 나름대로 은밀하게 대비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소위 신중한 지략가(智略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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