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5(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1. 12. 4. 08:47

천년의 바람소리5(손진길 소설)

 

신라 제26대 진평왕 37년 곧 주후 615년에 윤책이 내남 박달 단석산 자락에 가서 화랑 추랑을 만난다;

 

 윤책이 통성명을 하고 보니 추랑은 23세인 자신보다 3살이나 어린 약관의 나이 20살이다. 하지만 추랑은 거구이며 그 힘이 장사이다. 더구나 칼과 창을 사용하는데 익숙하고 궁술과 기마술이 대단하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윤책이 말한다; “저는 서라벌 북쪽 기계에서 온 윤책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신라에서 뛰어난 화랑이라고 알려지고 있는 귀하를 직접 만나게 되니 영광입니다. 그런데 추랑께서는 어느 가문의 화랑이신지요?... “.

덩치가 크지만 순박하게 생긴 추랑이 웃음기를 띄면서 대답한다; “허명만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사량부 출신이며 신라 육촌의 두번째 부족인 최씨이지요. 저희 가문에서는 가주만이 성씨를 사용하고 있고 저와 같은 어린 사람들은 그저 이름자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추랑이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제가 볼 때에 귀하가 저보다 연상으로 보이니 그렇게 부르셔도 됩니다”;

 

듣고 보니 참으로 소탈한 성격이다. 그래서 윤책이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꺼낸다; “사실은 제가 9살이 되던 해에 저의 스승이신 원광법사를 방문했던 젊은이 귀산추항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장차 신라의 화랑이 되자면 자신들이 명심해야 할 계율이 필요한데 그것을 좀 알려 달라고 요청했지요. 당시 사부께서는 그들에게 세속오계를 가르쳐주었습니다만…”.  

그 이야기를 듣자 화랑 추랑이 깜짝 놀라면서 자세를 반듯이 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의 선친의 이름이 추항입니다. 같은 씨족이며 절친인 귀산과 함께 그 옛날 원광법사를 찾아가서 화랑오계를 가르침 받은 적이 있다고 제가 어머니로부터 들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그 이름이 높은 원광법사의 제자분을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그 말을 듣자 윤책이 손을 가로 저으며 말한다; “제가 원광법사의 제자이기는 하지만 아둔하여 학문이 깊지를 못하고 더구나 무예에 있어서는 백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그 옛날 어린 시절에 인연이 있는 화랑 추항의 자제분을 이렇게 방문하여 한가지 부탁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제 나이가 벌써 23살인데 지금이라도 저 같은 나이든 사람이 무예를 배울 수가 있겠습니까?... “;

추랑이 속으로 깜짝 놀라서 다음과 같이 생각을 해보고 있다; “오늘날 신라에서는 원광법사가 가장 학문이 높고 뛰어난 스님인 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제자가 느닷없이 나를 찾아와서 무예를 배우고 싶다고 한다. 그것도 십대가 아니고 이십대의 나이인데 그러한 부탁을 하고 있구나. 도대체 무예를 배워서 어디에다 쓸려고 하는 것일까?... “.

생각은 길었지만 추량의 말은 빠르다; “20대에 처음으로 무예를 배운다고 하면 성취가 크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기본적인 무예는 익힐 수 있을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그러니 필요하시다면 저희 낭도들과 함께 생활하시면서 편하게 무예를 익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도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차제에 저도 원광법사의 제자이신 윤책 형님에게서 여러가지 학문을 배우고 싶군요… “.

그 말을 들은 윤책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랑 추랑에게 허리를 굽혀 절하면서 말한다; “저에게 무예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면 앞으로 추랑께서 물으시는 내용에 대해서는 성심성의껏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람의 인연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묘한 것이다. 23세의 재사 윤책이 일면식도 없고 더구나 자신보다 3살이나 어린 화랑 추랑을 찾아가서 서로 함께 지낼 수가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두사람의 만남이 앞으로 신라의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일까?... 소위 신라의 국력신장을 위한 5대 책략을 마련하여 심중에 품고 있는 윤책이 추랑의 옆에서 그를 어떠한 길로 인도할지 그것이 궁금한 것이다.

윤책이 2년간 추랑의 낭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배운 것이 참으로 많다;

 

첫째로, 가장 기본적인 무예를 배운 것이다. 칼과 창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활 쏘기와 기마술을 익힌 것이다.

둘째로, 단체생활을 위한 규율과 화랑도를 배운 것이다.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를 가리지 아니하고 실용적으로 배워서 풍월도라는 이름으로 활용하고 있는 그들 화랑과 낭도들인 것이다;

셋째로, 개방적인 사고방식이다. 조국 신라의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고자 하는 자들은 그 신분을 따지지 아니하고 낭도로 받아 들이고 있다. 훗날에는 평민 출신의 낭도가 그 실력이 출중하여 화랑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2년간의 수련이 거의 끝나가자 하루는 화랑인 추랑이 윤책을 늦은 시간에 자신의 막사로 부른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을 꺼낸다; “제가 지난 2년 동안 형님이 편히 무예를 익히시도록 일체 따로 말씀을 드리지 아니하고 지켜만 보았습니다. 그 결과 생각보다 형님의 진보가 굉장히 빠르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십대 후반인 낭도와 같은 성취를 보이고 있으니 도대체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

 

그 말을 듣자 윤책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저는 8살 어린 나이에 원광법사의 제자가 되어 15년 세월을 한결같이 학문을 익히기에 바빴습니다. 그것은 머리로 하는 공부이지요. 그러니 몸으로 익혀야 하는 무예에 대해서는 문외한이 맞습니다. 그러한 저이지만 막상 무예를 배워보니 한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더군요. 그것은 무예의 깊은 원리가 역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저보다 어린 낭도들에게 뒤떨어지지 아니한 모양입니다. 하하하… “.

추랑이 기분 좋게 머리를 끄떡인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부탁한다; “이제는 형님께서 낭도들과 편하게 생활하실 수 있게 되었으니 지금부터 소제에게 학문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어린 시절부터 무예만 익히기에 바빠서 제대로 학문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 군부에 들어가서 일하자면 학문이 필요합니다… “;

 

사실은 그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기를 윤책이 2년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시원하게 대답한다; “그것은 2년전에 제가 벌써 추랑에게 약속한 일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매일 제가 추랑에게 학문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공부하는 시간을 어떻게 정하면 좋을까요?... “.

추랑이 얼른 대답한다; “매일 한 시진 씩 저녁식사 후에 제게 학문을 가르쳐 주십시오. 한문부터 시작하여 무인이 익혀야 하는 여러가지 학문에 이르기까지 전부 부탁드립니다. 이거 공짜로 가르쳐 달라고 하여 면목이 없습니다마는 그동안 함께 먹고 지낸 것으로 퉁을 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윤책이 역시 웃으면서 말한다; “그렇지요. 그동안 밥을 얻어 먹은 것이 상당하니 성심성의껏 가르쳐 드려야지요. 그리고 낭도에 불과한 저를 그동안 개인적으로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인간적으로 대접하여 주었으니 제가 그 은혜를 갚는 것이 맞습니다. 이제부터 추랑을 진짜 저의 아우로 여기고서 엄격하게 수업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

갑자기 추랑이 일어나서 윤책의 손을 잡는다. 두툼한 추랑의 손에 윤책의 손이 파묻힐 지경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22살의 추랑이 25살의 윤책에게 진심으로 말한다; “제가 사부소리는 하지 않더라도 윤책 형님은 이제부터 저의 스승이자 재사입니다. 그러므로 제게 학문을 가르쳐서 부디 저의 앞길을 인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멀지 아니하여 군부에 들어가서 선친의 몫까지 신라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자 윤책이 추랑을 포옹하면서 말한다; “추랑의 부친 추항님께서는 15년전에 남원 땅 아막산성 전투에서 용감하게 신라의 기마대를 구하시고 전사하셨지요. 이제는 화랑이신 추랑이 군부에 들어가서 선친에 이어 큰 일을 하셔야 할 차례입니다. 그 일에 제가 미력하나마 학문적으로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두사람이 마치 결의형제처럼 뜨거운 남아의 호기를 나누고 있는데 막사의 바깥에서는 늦가을의 낙엽소리가 들려온다. 그만큼 고요한 산지에 그들이 군막을 설치하고 있는 것이다. 밤이 깊어 가는 시간이라 더욱 그러한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