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3(손진길 소설)
윤책은 8살이 되던 해 곧 주후 600년에 신라에서 가장 학문이 높고 뛰어난 승려인 원광법사의 제자가 되어 서라벌 황룡사에서 스승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윤책은 자신의 나이가 23살이 되던 해 곧 615년까지 무려 15년 세월을 서라벌에서 지내면서 원광법사의 학문을 전부 습득하게 된다.
원광법사에게서 윤책이 배운 것은 4가지나 된다; 첫째, 도교의 사상과 학문을 배웠다. 둘째, 중국의 제자백가의 사상과 공자의 가르침을 배웠다. 셋째, 중국의 역사와 예맥족의 역사에 관하여 배웠다. 넷째, 불교의 여러 경전에 관하여 공부하였다.
윤책이 그와 같이 다양한 사상과 학문을 공부하며 습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대의 원광법사의 사상과 학문이 그만큼 넓고도 깊었기 때문이다. 당시 신라에서 가장 높은 학문과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원광법사이다. 그러므로 윤책이 원광법사의 직전제자가 되어 그의 진전을 잇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큰 행운이다;
그런데 한가지 참으로 이상한 것은 원광법사가 결코 제자 윤책에게 스님이 되라고 권하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득도한 원광법사가 어느 정도 사람의 자질과 미래를 보는 눈을 얻고 있는데 그가 판단하기로는 제자 윤책이 불가에 그 몸을 온전히 의탁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윤책은 불교의 가르침보다는 오히려 속가의 일에 더 관심이 큰 사람이다. 그의 조국인 신라가 어떻게 하면 국력을 키워서 예맥족의 일통을 얻을 수 있느냐? 하는 화두를 가지고 많은 서책을 섭렵하면서 깊은 연구를 하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그러니 신라의 천년 왕업을 튼튼히 하는 사상이나 경륜을 설파할 인물이지 특정 종교의 가르침에 완전히 휘둘릴 인물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제자의 기질을 알아보고서 그에 맞는 가르침을 베풀었기에 윤책이 18세에서 23세가 되는 5년의 세월을 홀로 칩거하면서 마침내 작은 나라 신라가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는 방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 내용이 크게 보아 5가지이다;
첫째, 종교적인 통일이 필요하다. 지금 왕족과 귀족들이 불교를, 평민들이 도교에서 비롯된 토속신들을 섬기고 있는데 그것을 하나로 통합해야만 한다;
그래야 사상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신라인들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가 있다.
둘째, 군사력을 기르고 정신전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 일을 위해서는 상무정신을 높이는 한편 젊은이들을 조직하여 스스로 무술을 연마하고 단체훈련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일에 국가가 그리고 지도층이 적극 지원해야 한다. 따라서 왕족과 귀족의 자제들이 자발적으로 화랑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평민출신인 낭도들과 한 몸이 되어 움직일 때에 삼국통일을 위한 강력한 인적자산이 마련되는 것이다;
셋째,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국왕이 필요하다. 특히 예맥족의 나라인 삼국을 일통할 수 있는 이상과 능력을 가진 자를 신라의 국왕으로 세워야만 하는 것이다;
넷째, 국론을 통일해야 한다. 통일의 대업보다는 개인적인 사욕이나 파당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하는 세력을 사전에 분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늦어지게 되면 반란을 맞이하고 내란에 휩싸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신라가 내분으로 국력이 쇠퇴하고 결국에는 멸망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섯째, 말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글을 만들어야 한다. 천재소리를 듣고 있는 윤책이 스승 원광법사에게서 한문을 배운 결과 한자를 익히고 한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경지까지 이르는데 무려 4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한문을 배우고 사용하는데 있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한문은 생활이 넉넉하고 시간이 있는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유용한 것이고 그 반면에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 평민들에게 있어서는 그림의 떡이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윤책은 하나의 학설을 세우고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한문을 읽는 것을 소리라고 정의하고 그 뜻을 풀이하여 전하는 것을 말이라고 분리하여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만약 한문을 풀이한 말을 쉽게 글로 적어서 그대로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만 있다고 하면 의사소통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만약 군에서 그런 편리한 글자를 사용하게 되면 군사활동이 빨라지고 전술전략의 전개가 신속하고 원활해질 것이다. 그만큼 군사력이 강해지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5가지 책략을 윤책은 이름하여 ‘국력신장을 위한 5대 책략’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가운데 그가 살아 생전에 몇가지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렇지만 그 전체내용은 그가 말년에 저술하여 후세에 남긴 문집 ‘천년풍음’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윤하선의 화신인 윤책이 23세의 젊은 나이에 벌써 5대 책략을 마련하여 스승 원광법사에게 설명하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윤책이 지난 5년 세월을 투자하여 얻어낸 국가경영의 방책을 진지하게 듣고서 스승인 원광법사가 크게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자신이 제자 하나는 제대로 키워냈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스승인 자신이 내심 하고 싶은 일을 제자 윤책이 스스로 연구하여 그 방책을 잘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광법사가 윤책에게 질문하고 있다; “책아, 훌륭한 방책을 마련하였구나. 그대로만 된다고 하면 우리의 조국인 신라가 국력을 키워서 능히 분열되어 있는 같은 민족 예맥족의 나라들을 하나로 일통할 수가 있겠구나. 그런데 문제는 현실이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아 너는 어디서부터 그 일을 추진할 생각이냐?... “.
그 말에 윤책이 조용히 머리를 끄떡이면서 신중하게 대답한다; “스승님, 저는 무엇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사람을 만나서 뜻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제부터 그 일을 시작해야지요. 그것도 저와 같이 젊은 사람들이면 좋겠습니다… “.
원광법사가 빙그레 미소를 띄면서 말한다; “좋은 생각이다. 동지가 있어야 큰 일을 도모할 수가 있는 법이지. 그래 당장 누구부터 만나볼 생각이냐?”. 윤책이 눈을 반짝이면서 답한다; “지금 서라벌에서는 4사람의 동지가 저와 뜻을 같이해주면 좋겠습니다. 젊은 김춘추와 김유신 그리고 역시 화랑으로 지도력이 뛰어난 추랑이 되겠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서 원광법사가 생각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신중하게 제자 윤책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째서 김춘추와 김유신을 가장 먼저 만나보고자 하느냐? 그 이유를 내게 말해줄 수가 있겠는가? 책아 너의 깊은 생각이 과연 무엇이냐?... “.
윤책이 조용히 눈을 들어 스승의 깊은 혜안을 응시한다. 그 다음에는 승방에 자신과 스승 원광법사 밖에 없다는 사실을 한번 더 확인한 다음에야 말문을 열고 있다; “스승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지금의 국왕인 진평은 아들이 없습니다. 그리고 보좌에 앉아 있은지도 오래됩니다. 그러므로 공주를 여왕으로 삼는 궁여지책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국력을 하나로 모으기가 힘이 들지요. 그러므로 제자는… “;
조금 뜸을 들이다가 윤책이 자신의 말을 마무리한다; “따라서 저는 훗날 삼국일통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젊은 피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은 공주를 도와서 성골의 신라 왕가를 이어가겠지만 그 다음에는 진골의 나라가 되는 것이 국력신장에 더 좋습니다. 저는 그 일을 왕족 가운데 진골로 편입되어 있는 김춘추가 맡아야 하고 동시에 그를 군사력으로 돕기 위해서는 가야 출신의 진골이며 뛰어난 화랑인 김유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윤책의 담담한 말을 들으면서 원광법사가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한참 후에 한마디를 한다; “진평왕이 보위에 있은지가 벌써 37년이 되었구나. 하지만 13살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올랐으니 아직 그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 그리고 조부인 진흥왕의 유업을 잘 계승하고 있는 훌륭한 국왕이지… 그러나… “.
원광법사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천천히 다시 말한다; “결국 슬하에 왕자가 없다고 하는 것이 큰 하자이구나… 누가 진흥왕과 진평왕의 위업을 제대로 계승할 것인지가 나도 염려가 된다. 그러므로 책이 너는 앞으로 김춘추나 김유신과 같은 인재들을 사귀면서 매끄러운 승계가 이루어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나이가 많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 책이 너와 같은 젊은 세대가 해내야 하는 일이야… “;
23세인 윤책과 74세인 원광법사 두사람이 사제간에 오손도손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승방 바깥에서는 서라벌 황룡사의 가을바람이 휘익 제법 큰소리를 내면서 마당을 쓸듯이 지나가고 있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사위가 조용한데 바람소리만이 외로이 울리고 있다. 그렇게 서라벌에서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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