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2(손진길 소설)
윤책이 평소 김유신을 젊은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실제로 윤책은 유신보다 2살 연상에 불과하다. 김유신이 주후 595년생이고 윤책이 593년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어울리고 있는 김춘추는 그 신분이 높아서 그렇지 사실은 윤책보다 10살이나 연하이다;
신라는 철저한 신분사회이다. 조부나 부친이 왕을 지낸 경우 그 자녀들이 성골이며 그러하지 못한 오래된 왕족이나 하야를 당한 왕의 자녀들이 진골이다. 그리고 신라의 왕들은 초창기에 화백회의에서 귀족인 6부족의 장에 의하여 선출이 되었다;
6부족장은 토착적인 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후에 한자를 빌려와서 이(李), 최(崔), 손(孫), 정(鄭), 배(裵), 설(薛) 씨 등으로 불렀다.
그런데 6부족장이 화백회의에서 왕과 왕비를 선출하면서 왕에게 다른 성을 부여하였으며 왕비마저 자신들의 가문에서 분리하였다. 그렇게 철저하게 왕족과 귀족을 분리하였기에 자연히 6부족이 귀족가문에 머무르면서 스스로 6두품이나 5두품을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6두품의 경우에는 6부족 가운데 세력이 큰 3가문이고 5두품은 나머지 3가문이다.
기타 4두품과 그 이하의 귀족들은 평민 출신 가운데 특별히 국가발전에 공로가 있어 귀족으로 편입된 경우이다. 예를 들면 서라벌 인근에서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기계면의 유씨나 윤씨 가문이 그러하다. 따라서 총명한 윤책은 자신의 신분이 기껏해야 4두품이라는 사실을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다.
윤씨 가문에서는 영특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윤책이지만 그와 같은 신라사회의 엄격한 신분제도를 알게 되자 큰 관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꿈을 진작에 접었다. 그 대신에 그가 선택한 것은 가장 뛰어난 학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그 학문을 전수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윤책이 8살 꼬마였을 때 곧 주후 600년에 우연히 서라벌에 갔다가 신기한 구경을 하게 된다. 59살이라는 원광스님이 수나라에서 유학하고 왔다고 하여 신라왕 진평이 친히 왕궁을 나와서 그를 영접하는 진귀한 광경을 본 것이다;
당시 꼬마에 불과한 윤책이 속으로 생각했다; “원광이 도대체 얼마나 뛰어난 인물이기에 왕이 직접 왕궁밖까지 나와서 그를 귀빈으로 영접하고 있는가?… ”.
관심이 생긴 윤책이 어른들에게 원광법사에 대하여 묻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의 주변에서는 시원하게 그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인물이 별로 없다. 그 결과 윤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라벌 나들이에 나선다. 자신의 궁금증을 풀기 위한 걸음인 것이다.
그는 원광법사가 서라벌에서 가장 큰 황룡사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자주 그 사찰을 방문하여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인연이 있어서 그런지 몇 달 만에 마치 우연인 것처럼 원광의 눈에 어린 윤책이 들어오게 된다. 그 눈과 관상을 보니 굉장히 총명한 인재이다. 원광이 만면에 흡족한 미소를 띄면서 윤책을 자신의 제자로 거두어들이고 있다.
박(朴)씨라는 그 옛날 왕성을 가지고 있는 원광은 스님이면서 동시에 학자이다. 그러므로 윤책을 동자승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장차 자신의 학문을 계승할 제자로 선택한 것이다. 그렇지만 스승의 학문을 주야로 습득하기 위해서는 함께 생활을 해야 한다. 그것이 사숙제도이다. 따라서 8살에 불과한 윤책이 아예 안강 기계마을을 떠나서 서라벌에서 그것도 황궁이 가까운 황룡사에서 스승과 함께 지내게 된다.
원광법사는 진평왕에게 자문을 하고 있는 국사의 신분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두차례나 중국에 유학하면서 그 옛날 남북조 시대 진(陳)나라의 학자들과 친하고 동시에 중국천하를 통일한 수(隋)(581년 - 618년) 나라의 왕족들과도 친분이 있어 국제적인 사정에 밝기 때문이다;
원광이 어린 제자 윤책에게 학문을 가르쳐보았더니 발군의 진보를 보이고 있다. 한문을 배우고 경전을 읽는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그 해석에 있어서 논리와 체계가 분명한 것이다. 그래서 원광은 윤책이 13세가 되었을 때에 중국의 경전 뿐만 아니라 역사서적까지 구하여 많이 읽게 한다;
윤책이 마치 수세미와 같이 지식을 흡수하고 있다. 제자의 영특함에 재미가 난 원광이 608년에 16세가 된 윤책에게 하루는 질문한다; “책아, 나는 최근에 국왕으로부터 수나라의 황제에게 보내는 친서를 작성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내용이 수나라의 군사를 동원하여 부디 북쪽의 고구려를 견제하여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신라가 대국 수나라의 군사지원을 구걸하는 것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
그 말을 듣자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서 제자 윤책이 말한다; “스승님, 저의 생각으로는 진평왕이 평소 수나라의 황제와 친분이 있는 스승님의 경력을 알고서 그와 같은 친서를 부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에는 공짜가 없듯이 우리 신라가 수나라의 출병을 부탁하게 되면 나중에 반드시 그 이상의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먼저 우려가 됩니다… “.
그 대답을 들은 원광이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제자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책아, 네 생각이 나의 생각과 같구나. 당장은 걸사표(乞師表)를 수나라에 보내는 것이 국익에 부합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쪽의 고구려가 그 막강한 군사력으로 우리 소국 신라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
잠시 말을 끊고서 원광이 자상하게 제자 윤책을 바라본다. 그리고 말을 잇는다; “하지만 훗날 중국의 황제가 우리 예맥족을 정복하고자 대대적으로 나설 때에는 오늘의 외교정책이 이리를 피하려다가 범을 만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야…. 그러므로 아무리 소국이라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자체 역량을 키워야만 한다. 국력을 키워 스스로 자주 자립 자강을 할 수가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역시 모범 답안인 것이야… “;
윤책이 스승의 말씀을 듣고서 크게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때부터 윤책의 화두는 어떻게 하면 신라의 국력을 강하게 키워서 예맥족의 일통을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많은 서책을 읽으면서 윤책이 끊임없이 그 해답을 얻고자 한다. 그러는 동안에 세월이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젊은 윤책의 학문이 깊어지면서 새로운 교우관계가 서라벌에서 그리고 그의 고향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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