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8(손진길 소설)
미도 옹주가 신중하게 말을 꺼낸다; “윤공도 알다시피 내게는 두 딸이 있어요. 내가 25대 진지왕의 아들인 김용수 왕자와 내연관계에 있을 때에 낳은 딸들이지요. 그런데 나중에 26대 진평왕이 자신의 맏딸인 천명공주를 나이 많은 사촌 김용수에게 주어 정식부인으로 삼게 했어요. 그때문에 나는 두 딸을 데리고 그 집을 나오게 되었지요... “;
잠시 숨을 돌리고서 미도 옹주가 천천히 말한다; “잘 알다시피 나의 맏딸인 가소는 어린 나이에 화랑 귀산을 좋아하여 따라다니다가 내연관계인 귀산이 젊은 나이에 전사하고 나자 친정으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나와 함께 지내고 있어요. 슬하에는 일점 혈육도 없어요. 그러니 가장 외로운 청상과부 신세이지요. 그런데 내가 나이가 들고 보니 그 모습이 참으로 안스러워요… “.
말을 하다가 무엇이 서러운지 갑자기 미도 옹주의 음성이 신세 한탄으로 바뀌고 있다; “나도 과부로 오랜 세월 살아오고 있는데 맏딸마저 나처럼 계속 그렇게 살아가게 되면 어떻게 하나!… 나는 그것이 염려가 되어요. 그런데… “.
잠시 숨을 돌리고서 옹주가 이어서 말한다; “며칠 전 참으로 뜻밖에도 가소가 만약 윤공과 같은 인물이 자신을 거두어 준다고 하면 그의 아내가 되어 남은 인생을 함께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내가 염치를 무릅쓰고 윤공의 의사를 오늘 단도직입적으로 타진하고자 합니다”;
그 말을 듣자 윤책이 다시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 다음에 또렷한 음성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녀가 부부가 되는 것은 인륜지 대사이지요. 제가 30살이 넘도록 총각으로 지내오고 있는 이유는 제 마음속에 품은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뜻을 실천하자면 평생을 바치고도 모자랄 것 같아요. 그래서… “.
조금 숨을 돌리고 이어서 말한다; “저는 쉽게 가정을 꾸린다고 하는 생각을 하지를 못했어요. 하지만 한사람의 인생을 구제할 수가 있다면 함께 부부로 살아가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요. 다만 제가 별로 수입이 없는 사람이라, 장차 처자식을 부양하기에는 좋은 남편감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
총명한 미도 옹주와 그 딸 가소가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래서 두사람이 윤책을 고마운 듯이 바라본다. 다음 순간 미도 옹주가 미소를 띄면서 말한다; “윤공의 답변은 내가 기대한 것 이상입니다. 그 대답을 들으니 나와 가소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군요. 그냥 청상과부인 내 딸 가소를 군막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사세요. 재정적인 부문은 내가 전부 책임을 질게요”;
참으로 시원하고도 딱 부러진 모친의 말씀을 듣자 맏딸 가소가 ‘어머머… ‘라고 말하면서 얼굴을 크게 붉히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그 옆에 앉아 있던 동생 영소가 짓궂게 웃으면서 한마디를 한다; “언니는 좋겠어요. 천하의 재사이며 연하남인 윤공과 같은 인물을 남편으로 맞이하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축하해요. 늘그막에 남편복이 터졌어요… 호호호… “.
그 말을 듣자 가소가 부끄러워서 그런지 갑자기 큰소리로 말한다; “영소야, 네가 나이 많은 언니를 잘도 놀려먹는 구나. 내가 나이가 좀 많아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그래도 괜찮은 신부감이야. 인물 좋지, 집안 좋지, 몸매도 좋지, 공부도 잘하고 무예도 잘하지. 모든 면이 뛰어난 재원이란다. 그러니 너무 형부감만 높이 평가하고 이 언니를 무시하지 말라고… “;
윤책이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들 자매 사이에 그동안 윤책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윤책이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 이것도 인연인 모양이다. 평생 혼자 살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나인데 이렇게 생각지도 아니하게 여기서 신부감을 얻게 되다니. 아마도 내가 이루려고 하는 대업이 당대가 아니고 후세에 가서야 모두 이루어질 모양이지… “.
마치 득도한 고승과 같은 윤책이 그 일을 통하여 벌써 자신의 ‘신라의 국력신장을 위한 5대 책략’이 그의 당대에 마무리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짐작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자손을 많이 낳아서 그 일을 후손에게 유언으로 남길 수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자신의 혼인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자신의 옆에 앉아 있던 추랑이 갑자기 일어나서 윤책에게 예를 갖추어 말한다; “형님, 이제 명실상부하게 저의 윗동서이며 형님이 되셨습니다. 앞으로 잘 지도 편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의 처형이 제 집사람 영소만큼 총명하고 대담한 여장부이니 그 점을 항상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집안이 평안할 것입니다. 하하하… “.
좋은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더니 나중에는 3살이나 나이가 많은 윤책 자신을 놀리고 있는 추랑이다. 그래서 윤책이 마주 절을 하면서 추랑에게 한마디 한다; “일찍 장가를 가고 자녀를 둘이나 낳았으니 부부생활에 있어서는 추 동생이 나보다 선배가 맞군요. 앞으로 나이 많은 이 후배를 잘 가르쳐 주세요. 기대하겠습니다. 하하하… “.
두사람의 대화를 듣고서 미도 옹주가 참으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래서 얼른 큰 딸 가소를 시켜서 왕가에서 사용하는 서라벌 법주를 내오도록 말한다. 윤책이 처음으로 그 술 맛을 보니 은근히 취하게 하면서 좌중의 기분을 풀어주는 매력이 대단하다. 따라서 모두들 그 술의 힘을 빌려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물론 좌중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그 집의 주인 미도 옹주이다. 취중 진심으로 전달하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다; “이제 나는 윤공을 나의 맏사위라고 생각하고 지금부터 그냥 책아라고 부를께요. 한가지 명심할 사항은 사실 우리 집안은 외증조부가 신라의 제1대 풍월주인 위화랑이고 부친이 제2대 풍월주인 미진부예요. 그러므로 집안의 무예가 상당하지요. 자연히… “;
술을 마셔서 그런지 50대 중반인 미도 옹주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끝내 할말을 다하고 있다; “나의 두 딸도 무예가 상당한 경지랍니다. 그러니 책이가 이제부터 가소를 아내로 삼아 군막에 데리고 다니면서 생활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예요. 다만 자녀를 생산하게 되면 이곳 처가로 데리고 오세요. 내가 모두 거두어서 키워줄 거예요. 그리고… “;
한번 숨을 길게 쉬고 나서 미도 옹주가 이어서 말한다; “생활비 문제나 사량향도의 운영비 문제는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진흥왕 시절에 외증조부이신 위화랑과 부친 미진부께서 한강유역을 정복하는데 큰 전공을 세웠기에 그 지역에 넓은 식읍을 우리 집안이 가지고 있지요. 그 가운데 나의 몫이 상당하니 그것으로 생활하고 계속 군자금을 대면 되니까요. 그러니 차제에… “;
정작 미도 옹주가 두 딸과 사위에게 당부하고 싶은 은밀한 이야기가 이것이다; “당항성으로 가는 주변의 땅이 우리 가문의 것이니 그 점을 명심하고 책이와 랑이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그 식읍지를 고구려나 백제에 빼앗기지 않도록 하세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게 하고 그 점을 명심하여 향후 최우선적으로 군사활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
윤책과 추랑이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기에 크게 고개를 끄떡이면서 동시에 미도 옹주에게 말한다; “장모님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조치하고 행동하겠으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차제에 윤책이 한가지 질문을 조용하게 미도 옹주에게 하고 있다; “그런데 장모님의 언니이며 신라의 실권자였던 미실 궁주가 수년 전에 작고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에 혹시 장모님 가문에서 그 식읍지를 계속 경영하는데 있어서 어떤 애로사항이 발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그 말을 듣자 술에 취한 척을 하고 있던 미도 옹주가 맑은 정신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역시 윤공은 나의 맏사위가 될 자격이 충분하군요. 그것이 사실은 내가 두 사위에게 부탁하고 싶은 중요한 건입니다… “.
정작 중요한 당부의 말이 이어지고 있다; “언니 미실 궁주가 살아 있을 때에는 당나라로 가는 당항성을 수호한다고 하면서 신라의 조정에서 모든 군사력을 집중하여 그 땅을 지켰어요. 그런데 언니가 사라진 지금에는 그 점이 걱정거리예요. 그러니 두 사람은 군부에 들어가서 앞으로 활동하면서 그 일에 애로사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 점을 내가 은밀하게 두 사위에게 부탁하고 싶어요… ”.
참으로 내밀하면서도 중요한 당부사항이다. 그래서 윤책과 추랑이 정색을 하고서 장모 미도 옹주에게 대답한다; “장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들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습니다. 저희들의 먹거리가 거기서 나오고 있는데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것을 우선과제로 처리하겠습니다… “.
그 대답을 듣자 미도 옹주가 만면에 웃음을 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대답을 들었으니 나는 두 사위를 믿고서 내 두 딸의 장래를 안심하고 위탁합니다. 랑이는 지금처럼 처자식을 내 집에 두고서 군부에 들어가서 활동하세요. 그리고… “;
잠시 뜸을 들인 다음에 옹주가 단호하게 말한다; “책이는 내 딸 가소를 내일 데리고 군막으로 돌아가서 생활하도록 하세요. 또한 화랑인 랑이와 함께 군부에 들어가서 재사로 활동하게 될 거예요. 그 점을 내가 친척인 장군들에게 특별히 부탁을 해놓도록 할게요. 그러면 잘 쉬도록 하세요… “.
이야기를 나누다가 방을 나서니 서라벌의 맑은 하늘에 떠있는 달님과 별님이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롭다. 밤바람은 차갑지만 청량감이 크게 느껴지고 있으니 두 쌍의 남녀들의 마음이 흡족해서 더한층 그런 모양이다.
그날 윤책은 그 넓은 집에서 일박을 하는데 혼자 몸이 아니다. 어느 사이에 청상과부 가소가 자신의 방에 새 이부자리를 마련하고서 대담하게 윤책을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6살 연상인 가소와 연하남 윤책이 그날 밤 천리장성을 쌓으면서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다. 과연 두사람의 앞날은 어떻게 전개가 되는 것일까?... ;
'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년의 바람소리10(손진길 소설) (0) | 2021.12.09 |
---|---|
천년의 바람소리9(손진길 소설) (0) | 2021.12.08 |
천년의 바람소리7(손진길 소설) (0) | 2021.12.05 |
천년의 바람소리6(손진길 소설) (0) | 2021.12.05 |
천년의 바람소리5(손진길 소설) (0) | 2021.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