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12(손진길 소설)
윤책은 5월초에 초급장교의 직급인 소감(少監)으로 임명을 받는다. 그때부터 그는 더 이상 사량향도의 책사가 아니다. 앵잠성주를 보좌하는 재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가현 성주의 집무실 옆방이 참모실인데 그곳에 재사들이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그 방에는 윤책 혼자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10살 연하이지만 역시 재사로 근무하게 된 김춘추가 있다.
두사람은 가을에 쳐들어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백제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앵잠성의 수비태세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에 대하여 매일같이 토론하게 된다. 그 결과 윤책이 다음과 같은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첫째, 앵잠성이 높은 산 가파른 지형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산성이므로 그 산세에 너무 의존하여 성을 방어하고 있다. 그것은 장단점이 있다. 자연적인 험한 지형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장점이다. 하지만 근접하는 적을 더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효율적으로 공격하기 위해서는 외성을 튼튼히 구축하는 한편 더 많은 성루를 만들어 지휘체계를 원활하게 해야 한다. 한마디로, 성벽을 더 쌓아야 한다;
둘째, 수비병을 보충해야 한다. 그 방법은 서라벌에서 더 많은 화랑대를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다. 작금의 서라벌에는 그만한 능력이 없다. 화랑대가 전방으로 전부 이동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근에 살고 있는 백성 가운데 성안에서 적을 막는 군사로 일하겠다고 하는 자들을 모집하여 말단 관직 곧 17등급인 조의에 임명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그것이 하사관이다. 그리고 윤책과 화랑 추랑이 얻은 관직 소감은 16등급으로서 오늘날의 소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셋째,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들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많은 화살, 긴 창, 통나무, 기름, 물 등을 미리 비축해야 한다. 기름과 물을 펄펄 끓여서 붓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넷째, 척후병과 저격병을 많이 양성하여 활용해야 한다. 아울러 대장군 눌최가 상주하고 있는 기현성이 백제의 국경과 마주하고 있으므로 그곳에서 척후와 세작을 통하여 얻고 있는 적에 대한 고급정보를 우리도 조기에 획득하여 사용해야 한다. 그 일에 대해서는 귀족신분이 우리 성에서 가장 높은 김춘추 공이 적임자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인근에 있는 큰 성 곧 모산성으로도 불리고 있는 아막성의 성주가 취득한 정보도 얻어서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이 된다;
이상과 같이 재사 윤책이 방어전략을 마련하여 동료인 김춘추와 상의했더니 그도 대찬성이다. 따라서 윤책과 김춘추가 성주 가현의 집무실을 찾아가서 그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러자 가현 장군이 딱 한군데서만 난색을 표명하고 나머지는 전부 찬성하고 있다.
가현 성주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좋습니다. 당장 시행하도록 합시다. 다만 우리가 아막성주의 도움을 얻기는 힘이 들어요. 그 이유가 두가지나 되지요; 하나는, 우리 앵잠성이 대장군 눌최의 관할아래 있기 때문이죠. 또 하나는, 아막성주의 직급이 눌최 대장군보다 높아서 그를 상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예요. 그 점을 빼고서는 다 좋아요. 당장 시행하도록 합시다”.
성주 가현은 역시 전선에서 잔뼈가 굵은 장군이다. 그래서 결정이 빠르고 그 시행에 적극적이다. 그때부터 참모인 윤책과 김춘추가 시행계획을 더욱 자세하게 마련하여 성주를 보좌하게 된다. 그 일을 하다가 보니 어느 사이에 봄이 지나가고 벌써 늦여름이 되고 있다.
하루는 윤책이 시간을 내어 현장에서 뛰고 있는 소감 추랑을 방문한다. 마침 추랑의 방에 김유신이 찾아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재사 윤책을 보고서 두 사람이 반가워한다. 그 자리에서 윤책이 그들에게 물어본다; “우리 신라의 17관등이 어떠한 직무의 구분을 말하고 있는지 아시는 것이 있으면 좀 가르쳐 주세요… “.
먼저 김유신이 빙긋 웃으면서 말한다; “천하의 기재이신 윤책 공이 다 모르는 것이 있으시군요. 허허허… 그런데 그것은 가야 출신인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라서 나름대로 말씀 드릴 수가 있지요. 우리가 모두 하급장교 소감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16등급으로서의 무관을 말하고 있지요. 문관의 경우에는 소오라고 불러요. 그런데 무관이 전방에서 가장 높이 올라가게 되면 대도독까지 될 수가 있는데 그가 7등급인 일길찬이지요. 그리고… “;
김유신이 잠시 숨을 쉬고서 이어서 설명한다; “무관보다는 역시 문관이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지요. 그래서 대도독 위에 지방 유수가 있고 또 유수들을 관할하는 지방군주가 있어요. 그렇게 6등급과 5등급을 거치고 나면 그 다음에는 1등급에서 4등급까지가 남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우리 신라의 정책을 국왕과 함께 결정하는 정승과 판서들이지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입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서 김유신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비로소 말한다; “우리 신라는 특이하게도 최고의 관등인 1등급 이벌찬 위에 또 하나의 높은 신분이 있어요. 그것이 화백회의의 장인 상대등이지요. 그는 갈문왕과 같아서 국왕의 것보다는 작지만 역시 왕관을 머리에 사용할 수가 있지요. 그리고… ”;
김유신이 조용하게 말하고 있는 마지막 설명이 다음과 같다; “신라의 골품제는 어느 관직까지 출세를 할 수가 있는지 곧 귀족의 신분을 제한하고 있는 제도이지요. 예를 들면, 성골과 진골은 자색 옷을 입으며 1등급까지 출세할 수가 있지요. 반면에 6두품의 귀족은 연한 하늘색 옷을 입는 6등급 아찬까지 출세할 수가 있어요. 그런 점을 참고하세요… “;
윤책이 김유신의 말을 듣고 보니 그 설명이 알기 쉽고 논리가 정연하다. 그래서 그가 내심 생각한다; “나보다 2살이 적은 김유신이 상당히 머리가 좋은 친구이구나. 그는 무관이지만 나름대로 대세를 판단하는 재사의 자질을 훌륭하게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그렇게 문과 무에 두루 능통한 자를 참모로 두고 있는 자가 장차 큰 일을 이룩할 수 있겠구나!... “.
하지만 윤책은 그러한 속마음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 자리에서 김유신에게 말한다; “이거 설명을 듣고 보니 참으로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유신 공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종종 신세를 지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
칭찬을 겸한 윤책의 말에 김유신이 흐뭇한 모양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화답한다; “저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윤책 재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그렇게 서로 도우면서 험한 세상 함께 동지로 잘 살아보도록 하십시다. 하하하… “.
그 방에 함께 있는 주인 추랑이 덩달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래서 크게 웃으면서 말한다; “이거 참으로 좋은 말씀들만 하십니다. 저도 그 자리에 끼워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하하… “.
신라의 전방에 있는 작은 산성 앵잠성에서 젊은 인재들이 그렇게 화합을 다지고 있다. 그들의 방 바깥에서는 봄기운이 완연하여 온갖 화초가 꽃망울을 피우고 있다. 더구나 나무들에 물이 올라 생기가 약동하고 있다.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그들이 일하고 있는 그곳은 역시 최전방이다. 따라서 사나이의 큰 웃음을 마음껏 터뜨리고 있는 그들 젊은이들도 미구에 닥쳐올 백제군의 침략에 맞서야 하는 책무를 언제나 무겁게 느끼고 있다. 과연 백제군은 언제 어떠한 모습으로 진격을 해올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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