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14(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1. 12. 11. 15:53

천년의 바람소리14(손진길 소설)

 

5. 오인회의 결성과 백제와의 공방전

 

8월말까지 김춘추가 김유신을 데리고 자신의 매형인 윤책과 추랑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 깊은 산속의 요새지인 앵잠성인지라 그곳에서는 백제의 침입을 대비하는 일에 신경이 많이 쓰이면서도 때로는 무료하다. 그래서 그런지 초급 간부인 그들이 자주 친교모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분명히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문과 무에 두루 통달하고 있는 재사 윤책이 보기에는 처남인 김춘추와 가야계 귀족인 김유신이 공유하고 있는 그 무엇이 결코 간단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두 사람의 내심을 윤책이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는 근거가 다음과 같다;

첫째, 지금의 국왕 진평왕에게는 불행하게도 아들이 없다. 정상적인 후계자가 없는 것이다. 왕자가 없으면, 신라의 전통에 따라 화백회의의 결정에 의거 가까운 왕족 가운데 남자를 선택하여 후계자로 세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평왕에게는 고역이다. 왜냐하면, 성골인 왕족 가운데 남자의 씨가 말라 있기 때문이다.

둘째, 구체적으로 진흥왕의 태자 동륜이 일찍 죽고 둘째 왕자 금륜이 태자가 되어 부왕의 뒤를 이어 진지왕으로 등극하였지만 그가 불행하게도 구 귀족들의 눈 밖에 나서 폐위를 당하고 끝내 죽음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따라서 진지왕의 아들인 김용수가 성골에서 밀려나 진골에 머물고 있다. 그런 형편에 진평왕에게 아들이 없으므로 성골 가운데 남자가 사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골로 차기 국왕을 세우자면 공주를 후계자로 지명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보통일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구 귀족의 반대를 타개하면서 덕만공주를 국왕자리에 올릴 수가 있을 것인가?... “. 당면한 진평왕의 고민이 그것이다;

셋째, 오래 보좌를 지켰기에 경륜이 풍부한 진평왕이다. 그래서 은밀하게 벌써 두가지 방책을 사용하고 있다; 하나가, 대국 당나라의 황제인 고조의 양해를 사전에 구하는 것이다. 또 하나가, 구 귀족의 세력을 억제할 수 있도록 신흥귀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먼저 당고조의 양해를 받는 과정이 다음과 같다; 진평왕이 3년전 곧 AD 621년에 당나라 고조에게 사신을 보내면서 슬쩍 자신의 딸 덕만이 지혜와 예지력이 뛰어난 여인이라고 자랑삼아 말하게 했다. 그 결과 당나라 황제로부터 꽃병풍을 선물로 받아 왔다. 그것은 왕자가 없으면 꽃 같은 공주라도 국왕의 자리에 올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무언의 언질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진평왕은 구 귀족의 눈 밖에 나서 폐위를 당하고 살해된 진지왕의 아들 김용수 장군을 가까이하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신라 귀족이 아닌 가야계 장군 김서현을 중용하고 있다. 그들이 이름하여 신라의 소장파이며 신흥귀족이다. 따라서 두 장군의 아들인 김춘추와 김유신이 벌써 덕만공주를 옹립하고 신라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은밀하게 젊은 세력을 규합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책사 윤책의 분석이 예리하다. 그렇게 신라조정의 깊은 속사정을 헤아리게 되자 그때부터 윤책이 김춘추와 김유신을 더 가까이하면서 그들의 고민을 해결할 방책을 마련하고자 한다. 그것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전공분야라고 자신하고 있는 것이다.

윤책은 물론 자신이 벌써 마련하고 있는 신라의 국력신장을 위한 5가지 대책에 비추어 김춘추와 김유신이 열고자 하는 새로운 신라의 모습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때가 되면 그가 재사로서 적극적으로 그들과 함께 활동하고자 한다.

그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 윤책 앞에 그 기회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고 있다. 하루는 4사람이 함께 모여서 정담을 나누고 있는데 별안간 김춘추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 것이다; “두분 매형과 김유신 공, 나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국왕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고 공주 덕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골로 왕위를 이어가자면 부득이 덕만 공주가 후계자가 되어야 마땅한데 그것을 여러 귀족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만… “.

그 말을 받아서 김유신이 조용하게 말한다; “우리가 순리를 쫓아 덕만 공주를 차기 국왕으로 밀게 되면 구태의연한 귀족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신진세력을 모아서 그들을 제어하고 성골인 여왕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춘추에 이어 김유신이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있다. 그 말을 듣자 천상 무골인 추랑은 다소 얼떨떨한 모양이다. 하지만 재사 윤책은 냉정을 유지하면서 한마디로 잘라서 말한다; “성골인 덕만 공주가 왕위를 이어 받는 것이 순리이지요. 나중에 성골의 대가 완전히 끊어지게 되면 그때에는 진골 가운데 가장 성골에 가까운 남성분이 왕위를 이으면 될 것이고요... “.

잠시 숨을 쉰 다음에 윤책이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기본적으로 저는 신라의 국력을 신장하고 동족인 예맥족의 삼국을 일통하는 그러한 이상을 가진 강한 군주를 소망하고 있어요. 그러한 나의 생각에 부응한다면 나는 김춘추 공이나 김유신 공의 생각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참으로 속이 시원하고 앞날을 내다보는 탁견이다. 그래서 김춘추와 김유신이 그 자리에서 동시에 일어나 재사 윤책의 손을 잡으면서 말한다; “윤공 정말 감사합니다. 천하의 기재인 윤책 공이 그와 같이 탁월한 견해를 밝혀 주시니 저희들의 앞날이 환하게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추랑 공?... “.

그 말을 듣고 추랑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단숨에 말한다; “저도 대 찬성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 네 사람이 결사를 조직하면 되겠군요. 누구 더 참여할 사람이 없습니까?... “. 그때 김춘추가 말한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진작 우리들의 의견에 찬성하고 있는 소감 김흠순을 참여시키는 것으로 하지요… “.

그러자 김유신이 활짝 웃으면서 말한다; “좋습니다. 그러면 제 동생까지 포함하여 우리 5사람이 5인회를 결성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앞으로 우리 오인회가 새로운 귀족의 기풍을 일으키고 여왕시대의 신라를 삼국일통을 위한 강한 나라로 만드는데 앞장을 서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알고서 이제 건배를 하도록 합시다”.

그 다음에 김유신이 나가서 동생 김흠순을 데리고 온다. 그리고 추랑이 맛있는 법주를 어느 사이에 끄집어 내고 있다. 역시 사량부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는 추랑의 금력이 상당한 모양이다. 그들 5사람이 비밀결사 오인회를 구성한 그때가 초가을이며 그 장소가 변방 앵잠성이다;

 

과연 그들 5사람 앞에 어떤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그해 10월달이 되자 금방 알 수가 있게 된다. 백제의 무왕의 공격명령에 따라 일시에 백제의 대군이 기현성으로 밀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 침략에 과연 신라의 군부는 어떻게 맞서게 되는 것일까?...

10월 하순부터 그해 말까지 계속이 되는 백제와의 공방전을 경험하면서 그들 5사람은 신라 군부의 속사정을 깊이 파악하게 된다. 그 결과 그들은 군부내에 새로운 기풍을 일으키고자 작심하게 된다.

이제부터 그와 같은 관점에서 624년 신라의 서남지역 전방에서 발생하고 있는 백제와의 전쟁 상황을 한번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