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바람소리(손진길 소설)

천년의 바람소리15(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1. 12. 12. 20:01

천년의 바람소리15(손진길 소설)

 

서기 624년은 신라 진평왕 46년이고 백제 무왕 25년이다. 10월 들어 추수가 끝나자 백제 무왕은 달솔 백기를 사령관으로 삼고 장군 사걸을 부사령관으로 삼아 4만명의 보병과 기병으로 신라의 아막산성을 공격한다;

그 옛날 22년전 곧 서기 602년에 실패한 전쟁을 다시 재개한 것이다. 그만큼 백제의 무왕은 집념이 강한 왕이다. 무왕은 서기 600년에 백제의 왕이 되었는데 그는 50년 전에 신라의 진흥왕이 빼앗아간 당항성 등 한강유역의 땅을 되찾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더 강력한 욕망은 지리산 자락을 타고서 동진하여 합천의 대야성을 먼저 점령하고 그 다음에는 서라벌로 직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백제로서는 그 노선이 신라를 멸망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지리산 자락을 지키고 있는 신라의 최전방 요새 아막산성을 가장 먼저 정벌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막산성을 점령하는데 있어서 또다시 실패하게 된다. 그 이유는 신라가 자랑하고 있는 도독 천랑이 아막산성을 굳건하게 잘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부하 장군들의 존경을 받고 있어 그런지 모성인 아막산성의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 4개의 자성 곧 소타, 외석, 천산, 옹잠의 성주들도 흔들림이 없이 무려 4만명이나 되는 백제군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있다.

백제의 원정군 사령관인 달솔 백기는 전투 경험이 풍부하다. 따라서 그는 부사령관 사걸에게 1만명의 병력을 주고서 계속 아막산성과 그 주변의 작은 성들을 공격하도록 조치한다. 그리고 그는 은밀하게 3만명의 병력을 6개로 나누어 대야성(오늘날의 합천)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신라의 성 6군데를 동시에 공격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렇게 62410월말에 한꺼번에 공격을 받게 되는 신라의 성 이름이 기현성, 속함성, 기잠성, 혈책성 그리고 앵잠성봉잠성이다. 그 가운데 앵잠성과 기잠성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두 성이 대야성에 이르는 직전에 있는 성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제군 5천명이 앵잠성을 공격해오자 성주 가현 장군이 제장회의에서 장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우리 앵잠성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백제군에게 뚫리게 되면 대야성으로 가는 길목 하나를 적에게 내어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기 살기로 백제군을 물리쳐라. 상대는 5천명에 불과하다”.  

흔히 적군의 성을 정벌하자면 수비군에 비해 3배의 공격군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신라의 수비군 3천에 비해 백제의 공격군은 5천에 불과하다. 게다가 재사인 윤책과 김춘추가 마련한 방어전략에 의하여 충분한 양의 기름과 물, 통나무와 화살 등이 사전에 준비가 되어 있다. 더구나 성벽도 튼튼하게 보수가 되어있다.

백제군이 근근이 성에 접근하여 사다리를 걸치고 기어올라오다가 신라군이 성위에서 아래로 끓는 기름과 뜨거운 물을 내리 붓자 그만 우수수 떨어지고 만다. 더 처참한 광경은 통나무와 화살에 맞아 죽는 군사의 수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백제군이 열흘을 공격하다가 마침내 절반도 남지 아니한 병력을 거느리고 적장이 물러가고 만다.

백제군이 순순히 물러가는 것을 보고서 가현 성주가 소감 벼슬을 하고 있는 윤책추랑 그리고 김유신김춘추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한다; “그동안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있어서 이제는 백제군이 더 많이 몰려온다고 해도 우리 앵잠성을 굳건하게 지켜낼 수가 있어요. 하지만 이웃 성들이 백제군에게 넘어가게 되면 우리 성이 외톨이가 됩니다. 그러니 차제에 귀관들이 용화향도와 사량향도를 지휘하여 기현성으로 가서 눌최 대장군을 도와주도록 하세요”.

맞는 말이다. 그래서 4사람은 자신들의 화랑대를 이끌고 남서쪽 백제와의 최전방에 위치하고 있는 기현성으로 향한다. 그런데 기현성 부근에서 백제군을 먼저 만나게 된다. 수송을 담당하고 있는 백제의 부대이다. 그것을 보고서 윤책과 추랑 그리고 김유신과 김춘추가 자신들의 향도 300명으로 이루어진 병력으로 전광석화와 같이 백제의 보급부대를 공격한다;

졸지에 후방에서 신라군을 만난 백제의 보급부대가 큰 혼란에 빠지고 있다. 신라군의 수가 300명이고 백제군은 150명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중과부적임을 깨닫고 도망을 치고 만다. 도망가는 백제군을 쫓아서 화랑부대가 기현성 가까이 이르고 보니 성을 공격하고 있는 백제의 군사가 4천명이 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감 김유신 형제와 추랑이 걸출한 장수이다. 게다가 아내 가소로부터 내공을 지도 받은 숨은 실력자가 윤책이다. 김춘추도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래서 오인회의 인물 5명이 군마에 박차를 가하면서 기현성을 공격하고 있는 백제군의 배후를 밀물과 같이 쓸어간다.      

그 뒤를 기세가 오른 젊은 낭두와 낭도들이 겁도 없이 따르고 있다. 그 광경을 성루에서 보고 있던 대장군 눌최가 기회는 이때다고 판단하고서 정예 기마병 1천명을 이끌고 나와서 백제군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전세가 기울어진 것을 보고서 백제의 장군 우백이 작전상 후퇴 명령을 내리고 만다. 오인회의 인물들이 자신들의 화랑부대를 이끌고 기현성에 들어서자 대장군 눌최의 환영이 대단하다.

승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추랑이 말한다; “우리 사량부의 자랑이신 눌최 대장군님을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사량향도를 지휘하던 화랑 추랑입니다. 지금은 앵잠성주로부터 소감의 벼슬을 받아 그곳에서 적병을 물리치고 이곳으로 지원 차 온 것입니다”.

눌최 대장군이 추랑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한다. 그리고 김춘추와 김유신을 유심히 보면서 말한다; “서라벌의 자랑인 용화향도의 지도자 분들도 함께 오셨군요. 환영합니다. 오늘은 백제군을 깨끗하게 물리쳤으니 승전을 함께 축하하도록 합시다. , 건배합시다”.

그렇게 승리를 축하한 다음날 눌최 대장군은 자신의 관할 아래에 있는 3개의 성이 벌써 적군에게 점령당하고 말았다는 기가 막힌 소식을 듣게 된다. 속함성, 기잠성 혈책성이 적군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남쪽에 있는 봉잠성에서는 아직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는 장계가 올라오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다음날 일찍 눌최 대장군이 군령을 발한다; “앵잠성에서 원병으로 온 장수들은 휘하의 화랑대를 이끌고 지금 즉시 남쪽에 있는 봉잠성으로 가서 적군을 물리치도록 하라!”.

오인회의 인물들은 자신들의 군대를 이끌고 그해 11월 중순에 오늘날 하동 땅에 자리잡고 있는 봉잠성으로 이동한다. 은밀하게 행군하여 봉잠성 근처에 이르자 무려 4천명에 이르는 백제의 군사들이 공성작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그들은 좀 떨어진 야산에 은닉하고자 한다. 마침 바람이 백제군이 주둔하고 있는 진영 쪽으로 불고 있다. 그러므로 해가 지면 어둠을 틈타서 화공을 실시하고자 한다. 그들은 앵잠성에서부터 가지고 온 기름을 지니고 있기에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재사 윤책김춘추가 그렇게 합의를 하고서 전략을 마련한 것이다.

백제군은 하루 종일 공성작전에 동원되었기에 너무 피곤하여 보초를 세워 두고서 막사 안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다. 그런데 한밤중에 갑자기 바깥이 환해지면서 큰 소리가 울리고 있다; “불이 났다. 막사에 붙고 있는 불들을 빨리 끄도록 하라. 군마들이 제멋대로 뛰놀지 못하도록 빨리 조치하라 “.

겨울에 들어서기 전 11월 중순이라 바람이 차갑고 천지가 바짝 말라 있다. 그런데 북풍을 타고서 화염이 진지안으로 번져오니 병사들이 불을 끄기에 정신이 없다;

 

 그때 일단의 기마병력이 백제군의 진영으로 쳐들어온다. 오인회가 지휘하고 있는 3백의 기마대이다.

멀리 성루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봉잠성의 장수들이 성주 다루에게 말한다; “성주님 기회가 왔습니다. 지금 백제군이 대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도 과감하게 성문을 열고 나가서 저들을 모조리 몰아내야 합니다”.

장군 다루가 결단을 내린다. 갑자기 성안에서 1천명의 기마대가 밖으로 나와서 백제군의 진영을 공격한다. 백제의 침략군은 아닌 밤중에 화공을 당하고 게다가 앞과 뒤에서 공격을 받게 되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패주하기 시작한다.

그 뒤를 쫓아서 오인회의 기마대와 성주 다루의 기마대가 적의 수급을 취하기에 바쁘다. 날이 밝아오자 그들은 적병에 대한 추격을 멈추고 있다. 그리고 서로가 간밤에 백제군을 물리친 신라군임을 확인한다.

장군 다루가 미관말직 소감에 불과한 오인회 장수들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그들은 함께 성안으로 들어간다. 그날 하루 다루 성주가 승리의 잔치를 벌인다. 그리고 승전의 소식을 기현성에 있는 대장군 눌최에게 비둘기를 이용하여 급히 보내고 있다. 파발로 장계를 보내는 것보다는 그것이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이틀이 지나자 비둘기 통신을 통하여 대장군 눌최의 명령이 시달된다. 그 내용이 소감 5인은 휘하의 군대를 이끌고 급히 대야성으로 이동하여 대도독 일품의 군령을 따르도록 하라는 것이다. 서라벌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중요한 요새지 대야성이므로 그곳을 방어하는 것이 급선무인 모양이다.

그와 같이 생각하면서 오인회의 인물들이 자신들의 화랑대를 이끌고 대야성으로 들어간다. 그때가 1120일경이다;

 

 과연 눌최 대장군의 기현성은 장차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앵잠성과 봉잠성은 끝까지 지켜질 수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신라의 지원군은 물론 백제의 추가병력의 투입과 관련되고 있는 문제이다. 이제부터 그 점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