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제14과(6:10-15)(손진길 작성)
|OBS23-14|
Q1. 제6장 제10절에서 알 수 있는 사실 두 가지는 무엇인가?
l 첫째로,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대한 언급인 것임(6:10a). 그 땅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달라고 간청한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바 있는 땅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임. 일찍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셨는데 그 내용은 ①반드시 훗날 그들의 자손을 출애굽 시켜줄 뿐만 아니라 ②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해주시겠다는 것이었음. 그와 같은 언약의 사실을 모세가 창세기에서 여러 차례 반복하여 기록함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약속된 기업을(조상에게 할당된 일종의 유산과 같은 것임) 받을 수 있는 근거를 확실히 마련해두고 있는 것임(창12:6-7, 15:16, 26:2-5, 35:12, 46:4).
l 두 번째 사실은 그 곳에 이미 원주민들이 그 땅의 주인으로 수 백년 동안 살고 있었다는 것임(6:10b). 그들은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건축하여 그 곳에서 대대로 뿌리내리고 잘 살고 있다는 점을 모세가 거짓없이 말하고 있는 것임.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그들과 전쟁을 벌여서 그들처럼 땅을 뺏고 빼앗기는 “약육강식의 정복전쟁”을(창6:1-7) 자신들도 수행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할 일(출19:4-9, 욥42:7-9, 욘3:3-10)이 아닌 것이 분명한 것이었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원주민의 손에서부터 거두어 들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주신다는 조건의 약속(일종의 turn key base contract)으로 해석이 되는데 그 정당한 이유와 근거는 과연 무엇인가?가 여기에서 연구 대상이 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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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가나안 땅에서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모두 죽이거나 내쫓아버리고 그들의 땅과 성읍과(6:10) 집안의 재물과 모든 전답과 과수원까지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조리 빼앗아버린다고 한다면(6:11) 이것은 인간의 탐욕을 만족시키는 정복 전쟁의 하나이지 결코 모든 민족의 창조주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하실 일은 아닌 것이 분명한데 모세오경은 이 점에 대하여 어떻게 그 정당성을 말하고 있는가?
l 첫째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원주민으로부터 그들의 땅과 재산을 빼앗거나 얻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맹세와 약속을 철석같이 지키시고 이행하시는(이른 바 “헤세드”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그것은 정당하다는 것임(6:18-19). 성경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그리고 피조 세계의 모든 것이 그 주인이 인간이 아니라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소유임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기 때문에(욥1:21, 롬11:36) 이 주장은 성경상 나름대로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 것임.
l 둘째로, 원주민들이 그 땅에서 멸망 당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을 바로 그 때에 심판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임(창15:16, 신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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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그렇다면, 가나안 원주민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l “신6:14-15절”에 언급되어 있음.
l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인간이 만든 신들을 자기들의 편의와 이익만을 위하여 우상으로 섬기는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멸절되는 심판을 당하게 된다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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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이와 같은 심판의 위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이미 두 번이나 있었음을 모세가 잘 알고 있는데 앞으로 그가 없이 가나안 땅에서 살게 될 그의 백성들에게 그는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심판을 면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가?
l 이와 같은 경우를 모세는 광야생활 중에 두 번이나 경험한 적이 있는데 ①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제사를 지내고 애굽식으로 축제를 벌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전부 몰살시켜버리고 모세의 자손만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새로 만들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모세에게 그 의향을 물은 바가 있는 것임(출32:10) ②또한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원주민들의 강성함을 알게 되자 그만 불신앙에 빠져버린 것임.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전쟁이며 약속의 성취를 하나님께서 보장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임.
l 자신들의 힘으로 적들과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저 전쟁승리의 도움만 주시면 된다고 하는 그들의 사고 방식은 이방인들의 기복신앙이나 무속신앙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임. 그나마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아니하는 강한 적이라는 사실을 인간적으로 판단하고서 아예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던 것임.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번에야 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염병으로 몰살시켜버리고 모세의 자손만으로 크고 강성한 믿음의 나라를 건설하시겠다고 모세에게 그 생각을 재차 밝히신 것임(민14:12).
l 다행히 모세가 하나님께 대신 사죄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출32:31-32)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고 또한 출애굽의 하나님의 영광과 그 이름의 거룩하심을 의존하여 설득하는 이른 바 중보자의 사명을 다한 결과 두 번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의 심판을 면한 바 있음. 이제 이와 같이 무서운 심판이 중보자가 없는 땅 가나안에서 발생할 것인데 특히 ①그 원주민들에게는 임박한 현실이고 ②그것이 장래에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임할 수도 있다고 하는 사실을 모세가 느보 산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것임. 이미 지난 반년 동안 요단 강 동편 땅에서 아모리 족속들을 몰살시키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직접 경험한 바 있는 모세인지라 요단 강 서편의 가나안 땅 원주민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 심판은 당장 눈에 환하게 보였던 것임.
l 선민과 이방인 구별 없이 불신앙과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면 그 정도가 하나님의 기준을 넘어서는 경우(일종의 표시된 눈금을 넘어서는 것과 같은 “관영”을 말함, 창15:16,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10명이 없는 경우도 이에 해당됨, 창18:32) 전멸당하는 심판이 임한다는 하나님의 심판의 공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모세로서는 그의 동족의 장래를 심히 걱정한 것임.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멸망 당하지 아니하고 약속의 땅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임.
l 중보자 모세가 사라지고 없는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앙과 우상숭배에 빠지지 아니하고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을 모세는 “율법준수”에서 발견할 수 있었음. 왜냐 하면, 출애굽 직후에 하나님깨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율법을 잘 지키면 애굽 사람에게 내린 재앙과 진노를 너희들에게는 하나도 내리지 아니하겠다”라고(출15:25-26) 약속하신 바가 있기 때문이었음. 그래서 그토록 모세오경에서 율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신명기에서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임. 그렇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계속적인 창조의 섭리를 간과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한다”(신34:10)는 고정관념에 너무 묶여 있었으며 그 자신 유일하게 하나님과 대면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자라는 자부심이 너무 강했던 것임.
l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선택하여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창조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인자로 이 세상에 보내실 수도 있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모세는 일찍 간파하지 못했던 것임. 그렇다면 이방인이었던 현자 욥 조차 이미 신앙고백하고 있는 바, 구속자가 이 땅에 서는 그 날을(욥19:25) 모세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율법준수”만을 강조한 것일까? 그렇지는 아니한 것으로 보이는 것임. 왜냐 하면, ①느보 산에서 “그만하면 족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모세가 새로운 안식을 찾고 있으며 ③변화산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옆에 모세가 엘리야와 함께 서 있기 때문임(막9:4). 그렇다면 모세는 완전한 중보자이신 메시아가 오시는 그 때까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무쪼록 살아 남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심정으로 “율법준수”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임.
l 율법을 강조한 모세의 이와 같은 심정을 통찰하게 된 선지자는 훗날 사도 바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임. 그 이유는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왜 그와 같은 사건이 모세의 율법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자신 앞에 발생했는가를 확실하게 알기 위하여 모세오경과 선지자들의 모든 글들을 새로운 안목으로 연구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임.
l 그는 마침내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밝혀내었는데 그것은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는 인간의 약함과 이를 강하게 일으켜 세워주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었던 것임(롬1:16-17). 또 한 사람의 선지자를 들 수 있다면 히브리서의 저자이겠지만(히11:13-16) 그 사람은 익명으로 남아 있음. 따라서 실명으로서는 사도 바울이 율법을 강조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모세의 심정을 통찰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임. 요컨대, 사도 바울이 모세가 종말적인 기대를 걸었던 완전한 중보자요 구속자이신 메시아의 오심에 대하여 복음과 율법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가장 깊이 있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 인물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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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결국 모세는 자신의 동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래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서 신명기의 기록을 유언처럼 남긴 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압 땅에서 눈을 감게 되는데 그렇다면 그가 깨달았던 ①율법과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②그의 인생 목표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과연 무엇인가?
l 선민 이방인 구별 없이 인류의 구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구속자이신 메시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많은 선지자들이 말하고 있으며 더구나 이방인 현자로 알려지고 있는 욥까지 그 사실을 예언하고 있음(욥19:25, 욜2:23, 27-32, 욘3:4-10, 마12:41, 사11:10, 19:20-25). 그런데 모세 역시 신명기에서 메시아의 오심과 만인에 대한 성령의 강림을 의미하고 있는 요엘 선지자의 상징어인 “이른 비와 늦은 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임(욜2:23, 27, 신11:14).
l 그리고 모세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자손이 온 세상에 전할 큰 복(창12:3, 22:12, 18, 26:4-5) 과 그 자손 요셉이 증거하는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창50:20)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그 내용상 만민 구원의 복음과 관련하여 두 가지 사실이 다음과 같이 드러나고 있음; 첫째로, 아브라함 때에는 영생의 하나님만 믿고서(창21:33, 22:1-3, 히11:17-19) 믿음으로 행하는 하나님 경외의 삶이(창21:33) 만민에게 구원을 얻게 하는 관건이 되고 있음. 둘째로, 이삭의 때에는 그것이 모세의 율법을(창26:5, 하나님의 명령, 계명, 율례, 법도) 잘 지켜서 그와 같은 만민 구원의 효과를 얻는 것으로 그 표현이 바뀌고 있는 것임.
l 그렇다면 모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삶이 구체적으로 율법의 지킴으로 행동화되는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임. 이것은 유일한 적장자인 후계자를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하나님의 요구이고 또한 만민에게 복을 전할 수 있는 똑같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임. 그리고 신명기에서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셔서 풍작을 주시듯이 하나님께서 율법을 지키고자 진심으로 하나님 경외의 믿음을 가지고 애쓰는 자에게 적당한 때에 적절한 도움을 항상 주시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임.
l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고자 마음속으로 진심으로 애쓰는 자는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이른 비인 메시아의 오심과 늦은 비인 성령의 강림으로 그 자손을 도와주실 것이라는 사실이 여기서 드러나고 있는데 이것이 모세가 깨달은 율법과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볼 수 있을 것임(요5:46, 눅24:44, 행26:22).
l 모세는 평생의 소원이 동족을 출애굽 시켜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함께 들어가는 것이었음. 그런데 그의 인생의 목표가 세 번이나 좌절되었는데 ①시내 산 금송아지 우상숭배사건 ②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불신앙 사건 ③요단 강을 건너지 못하고 모압 땅에서 죽게 되는 모세의 운명 등임. 결국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몰살 당하는 위기를 두 번이나 경험했으며 자신이 가나안 땅에 함께 들어가지 못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게 되는 마지막 좌절까지 맛보고 있는 것임. 여기서 모세는 자신의 인생 목표를 수정하게 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음; ①이스라엘 민족이 몰살 당하고 나면 그의 인생 목표도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함께 가야할 동족이 멸망 당해버린다면 출애굽과 가나안 입성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②그리고 동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데 정작 자신이 못 들어가게 되면 이것 역시 인생의 목표가 좌절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임.
l 결론적으로 모세가 깨달은 진리는 첫째로, 인생의 목표는 동족의 출애굽이나 가나안 땅 입성이 아니라는 것임. 민족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한 이상 이제는 자신의 인생의 목표는 동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되어야 한다는 뜻인 것임.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만 있다면 완벽한 출애굽과 약속의 땅 입성은 자연히 주어지는 것임을 그가 깨달았던 것임. 둘째로, 이제부터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자신의 인생 목표가 아니라 그 목표 성취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분에게 편안하게 돌아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의 달성이라는 것임. 결국 민족의 생명도 자신의 생명도 모두 하나님께 달려 있으므로 그 생명의 주인의 뜻과 의도를 알고서 그 분의 역사 섭리 속에서 인생의 목표를 추구하라는 것이며 율법 속에 그 분의 요구 사항이 담겨있다는 모세의 설명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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