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갈렙 장군(손진길 작성)

소설 갈렙 장군24(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1. 24. 21:03

소설 갈렙 장군24(작성자; 손진길)

 

5. 아모리 족속의 남진과 갈렙 장군

 

애굽과의 전쟁이 끝나자 갈렙 장군은 상세한 장계를 전령편으로 후방에 있는 최고지도자 모세와 후방사령관인 벗 여호수아에게 각각 보낸다;

 

그 내용은 두가지로 되어 있는데 첫째가, 전투의 경과에 대한 것이다. 둘째가, 전쟁의 결과에 대한 것이다.

그 가운데 후자 곧 전쟁의 결과에 관한 보고의 요지가 다음과 같다;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결과 애굽에 나가 있는 첩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바로인 아멘호텝2가 다시는 시나이반도를 침략하지 않겠다고 중신들에게 선언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안심하시고 시내광야에서 생활하셔도 됩니다. 다만… “.

정작 중요한 내용이 다음과 같다; “이번 전투로 전방의 군단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얻은 포로와 전리품을 군단의 복구를 위하여 우선적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후방에서도 물자가 필요할 것이므로 전방에서 아껴 사용하기로 하고 상당량의 물자를 후방으로 보냅니다. 요긴하게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살롬”.

모세와 여호수아가 장계를 받고서 그렇게 처리하라고 동의한다. 따라서 갈렙 장군은 이번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지만 군단병력의 손실이 큰 3월군단에 병력을 보충하고 전리품을 우선적으로 배분한다. 1차 전투에서 1천명, 2차 전투에서 3천명의 병력이 희생되었다.

따라서 갈렙은 3월군단4천명의 애굽포로병을 주어서 보충하도록 한다. 그리고 전방에 있는 688백명의 장병들에게 골고루 돌아가도록 애굽군에게서 얻은 전리품을 분배한다. 그 다음에는 가람 장군이 지휘하고 있는 1천명의 호위부대에 2백명의 전사자가 있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그 수를 애굽포로병으로 보충한다.

그 다음에 갈렙 장군이 가람 장군과 수석백부장 옛블렛 그리고 자신의 시종이며 호위 백부장인 아비노를 한자리에 불러 놓고서 말한다; “1차 전투를 한 결과 먼저 얻은 애굽의 포로병 1만명이 남아 있고, 2차 전투에서 획득한 포로 가운데 아직 1천명이 남아 있다. 그리고 나의 호위부대1천명이다. 나는 그 수를 모두 합하여 하나의 친위부대를 편성하고자 한다… “;

 

가람옛블렛 그리고 아비노가 놀라는 모습이다. 그래서 갈렙이 이어서 말한다; “그 총수는 12천명이다. 일반 군단의 절반에 해당하는 별동부대인 셈이다. 그 친위부대장에 나는 가람 장군을 임명한다. 또한 수석 천부장에 옛블렛을 임명하고 둘째 천부장에 아비노를 임명한다. 그리고… “.

뜻밖의 진급에 감격하는 그들에게 갈렙 사령관의 지시사항이 뒤를 잇는다; “나머지 10명의 천부장과 기타 백부장들은 가람 장군이 두 천부장과 협의하여 결정하도록 한다. 다만 10명의 천부장은 기존 호위부대의 백부장들을 먼저 승진 발령하고 부족한 천부장과 친위부대의 백부장은 애굽포로병 가운데서 훈련을 통하여 실력이 출중한 자를 가려내어 임명하면 될 것이다. 이상이다. 이의들이 없겠지?... “;

 

그 명령을 받은 가람, 옛블렛, 아비노가 무슨 말씀인지 그 뜻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다. 따라서 군말없이 군례를 올리면서 한 목소리로 말한다; “삼가 사령관님의 명령을 받듭니다. 감사합니다”.

그것으로 순전히 외인부대 성격의 친위부대 12천명이 구성된다. 그 부대는 갈렙 장군의 호위부대이며 동시에 신속한 작전에 투입하는 별동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주둔지는 언제나 전방사령관 갈렙 장군이 머무르고 있는 가데스 바네아이다.

12천명에 달하는 외인 별동부대를 자신의 호위부대 겸 친위부대로 보유하고자 하는 갈렙 장군의 생각은 사실 그 뿌리가 깊은 것이다. 그 생각의 뿌리가 구체적으로 두가지이다;

하나는, 이제 30년내에 이스라엘의 기성세대 가운데 30세 이상은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된다. 여호와의 심판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전투력의 공백이 초래된다. 그 공백을 전투경험이 풍부한 외인부대가 메꾸어야 한다.

또 하나는, 멀리 정탐을 하거나 장차 에돔의 후삼 장군을 돕거나 하는 일에 이스라엘 정규군을 동원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그 일에 친위부대를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참으로 용의주도한 갈렙 장군의 성격과 그 혜안이 번뜩이고 있는 조치이다.

애굽의 원정군을 모두 물리친 그 다음부터 5년동안에는 시나이반도에 변화를 초래하는 전쟁이 발생하지 아니하고 있다. 따라서 출애굽 10년부터 15년까지가 평화로운 시기이다. 그사이에 갈렙 장군의 집안에서는 2가지 경사가 발생한다;

첫째, 갈렙의 아내인 마아가가 3남과 4남을 낳은 것이다. 갈렙이 3남의 이름을 나암그리고 4남의 이름을 그나스라고 지어준다. 이제 갈렙은 4아들의 아버지이다. 그 이름이 이루, 엘라, 나암, 그나스인 것이다;

 

둘째, 갈렙의 동생인 그나스가 결혼한다. 그나스의 아내는 디나인데 그녀는 유다지파의 장로인 나손의 딸이다(1:7). 그들 부부 사이에서 장남 옷니엘이 태어난다(대상4:13). 훗날 그가 사사기 시대의 처음 대사사가 된다(3:9-11)

출애굽 제16년이 되자 요단강 동편에서 큰 변화가 발생한다. 그 이유는 히타이트에게 쫓긴 아람족속아모리족속이 대거 남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 땅의 원주민인 아람의 일파가 유프라테스 강을 타고서 남하하여 바벨탑의 고토인 시날평지로 들어간다(10:10, 11:2).

참고로, 아브라함 시대 아모리족속의 원거주지를 보여주고 있는 지도가 다음과 같다. 아람족속과 이웃하여 살고 있던 그들이 모세의 시대에 외생적인 조건에 의하여 불가피하게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남하한 것이다;

 

그들은 그곳의 원주민들을 물리치고 그 지역을 자신들의 새로운 지명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지파가 갈대아족이므로 그 지명이 시날평지에서 갈대아 우르로 바뀐다. 훗날 히브리정경을 편찬하면서 율법학자들이 그 지명을 후세대가 알기 쉽도록 아예 갈대아인의 우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11:31);

갈대아인들은 갈대아왕조를 세우고 그들이 그 옛날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발생한 바벨론제국의 계승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와 같은 연유로 그들 갈대아왕조는 주전 7세기말에 앗수르를 치고 신바벨론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그들이 훗날 마지막 선민의 나라를 지상에서 말살하게 되는 것이다(왕하25:1-7).

갈대아인들과 이스라엘인들과의 관계는 먼 훗날의 일이고 당장은 갈렙의 시대에 요단강 동편으로 남하하고 있는 아모리족이 문제이다. 당시 아모리족을 이끌고 요단강 동편으로 남하하고 있는 인물이 두사람의 족장이다. 한사람이 거인인 바산의 족장 이고 또 한사람이 족장 시혼이다. 족장 은 갈릴리 동편의 땅을 차지하고 그곳에 자신의 옥의 바산왕국을 세운다. 그것이 이름하여 아모리 북왕국이다;

그런데 족장 시혼은 자신의 부족의 군대를 거느리고 더 남하한다. 그는 사해 동편에 있는 모압족속의 비옥한 땅을 탐낸 것이다. 당시 모압은 사해의 동편 옆구리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아르논 강을 사이에 두고 이남과 이북의 땅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모압의 왕 발락은 이남과 이북지역을 모두 지킬 수 있는 군사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시혼 족장의 아모리 군대에게 밀려서 아르논 강 이북지역을 상실하고 만다. 시혼은 일단 그곳에 아모리 남왕국으로 불리는 시혼 왕국을 세운다;

 

그러나 시혼은 그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아르논 강을 건너서 계속 남하한다. 이제는 지도상에서 모압왕국이 사라질 형편이다;

남쪽국경으로 내어쫓긴 모압의 왕 발락이 급히 에돔왕에게 원군을 요청한다. 그는 자신이 에돔의 땅으로 피신하게 되면 아모리의 군대가 에돔까지 정복하고자 남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에돔의 왕 하달은 중신회의를 거친 후에 모압을 도와 아모리족속의 남침을 저지하기로 결정한다.  

급히 에돔의 원정군이 편성된다. 그 가운데 내일을 꿈꾸고 있는 후삼 장군이 두사람의 사령관 가운데 하나로 들어 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자신의 오랜 꿈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래서 후삼 장군은 급히 가데스 바네아에 있는 갈렙 장군에게 밀사를 보낸다.

갈렙이 후삼의 밀서를 읽어본다; “나의 형제 갈렙이여, 나는 지금 왕명을 받아 모압을 지원하기 위하여 북상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나는 남진하는 아모리를 치고 틈을 보아 회군하여 에돔의 하달왕을 칠 생각입니다. 그러니 갈렙 그대는 나를 도와주세요. 그 신분을 내가 이스라엘에서 얻은 용병으로 꾸밀 것이고 충분한 보수를 지급할 생각입니다”;

 

그 밀서를 보고서 갈렙이 깊이 생각한다; “나는 의리상 후삼 장군을 도와 조상인 에서의 후손을 다시 에돔의 왕으로 세워야 한다. 그것이 우리 이스라엘을 위하여 좋은 일이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남하하는 아모리를 치고 그들이 가나안을 얻고자 하는 우리 이스라엘의 앞날에 방해가 되지 아니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결심이 선 갈렙 장군이지만 하나의 고민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내심을 모세여호수아에게 설명하자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결단을 내린다; “이번 아모리와의 전투와 후삼을 에돔의 왕으로 세우는 전투에 있어서는 이스라엘의 상비군을 사용하지 말고 나의 호위부대인 친위부대만을 동원하도록 하자. 그것이 잡음을 없애는 방법이다”.

출애굽 제16년이 되는 주전 1,431년에 갈렙은 가데스 바네아 본영을 2월군단장 도도에게 맡기고 자신의 친위부대를 이끌고 에돔의 땅으로 들어간다. 후삼 장군이 사전에 밀사를 통하여 보내어준 용병의 표시가 있기에 편하게 에돔 땅을 횡단하고 또한 종단하고 있는 왕의 대로를 사용할 수가 있다;

갈렙의 친위부대가 세렛 시내를 건너자 후삼 장군이 영접을 나온다. 그는 갈렙 장군이 12천명의 친위부대를 이끌고 자신을 돕고자 용병의 신분으로 멀리 와준 것이 엄청 고맙다. 갈렙을 자신의 막사에 데리고 가서 후삼은 비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후삼이 은밀하게 말한다; “갈렙, 드디어 때가 왔다. 에돔 왕 하달이 북쪽의 국경을 지키면서 동시에 남하하는 아모리 족장 시혼의 군대를 막으라고 나에게 5만명의 군사를 내주었다. 물론 에돔의 또다른 사령관 알람에게도 비슷하게 5만명의 군사를 내주었다. 따라서 모압왕 발락을 도와 남침하고 있는 아모리 군대를 치는 에돔의 원정군이 도합 10만명이다. 그런데 나는… “.

갈렙이 경청하는 모습을 보고서 후삼이 이어서 설명한다; “나는 일단 아모리 족속을 먼저 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전쟁에서 희생을 최소화하고 싶다. 그 이유는 내가 아모리를 친 후에 즉시 알람을 포섭하거나 제거하고서 에돔의 수도로 회군할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알고서 갈렙 자네는 나와 함께 너무 무리하지 말고 남하하는 아모리 족속부터 치도록 하자”.

갈렙이 후삼의 전략을 충분히 알아 들었다. 그래서 안심하라는 표시로 후삼의 두 손을 꼭 쥔다. 그리고 그에게 말한다; “나의 형제 후삼이여, 나는 그대가 우리 조상들의 뒤를 이어 반드시 에돔의 왕가를 다시 이루도록 도울 것이다. 아무 염려하지 말아라. 그 큰 뜻이 이번 기회에 필히 이루어 질 것이다”.

두 영웅이 두 손을 마주 잡고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두사람은 56세의 적지 아니한 연령이지만 아직도 청운의 꿈을 꾸고 있는 젊은이와 같다. 그들은 이제 말머리를 나란히 하여 함께 북진한다;

 

그들의 야망이 과연 순조로이 이루어질 것인가? 이제부터 그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