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후서 OBS교재(손진길 작성)

고린도전서 제19과(14:1-19)(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1. 11. 20. 11:49

고린도전서 제19(14:1-19)(손진길 작성)

|OBS24-19|

 

Q1. 하나님의 속성은 영원한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인데(13:1-3, 13 3:16, 요일4:7-8) 사도 바울은 그것을  평생 동안 추구하라고 말하고 있음(14:1a, 12:1-2). 그런데 영생을 추구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반드시 함께 얻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인가?

 

l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신령한 것들임(spiritual things, 14:1b).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은사로 주실 수 있는 신령한 것들에 대해서는 이미 “12:8-11”절에서 거론한 바 있는데 바울은 그 가운데 특히 예언을 얻을 것을 강조하고 있음(14:1c).

l  그렇다면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질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임; ①타락한 인간들이 과연 타인의 생명을 나의 생명처럼 사랑할 수가 있을 것인가? ②왜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라고 하시는가? ③신령한 은사를 얻게 되면 이와 같은 생명사랑의 기적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④예언의 은사를 얻게 되면 그와 같은 기적을 이루는데 어떠한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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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타락한 인간들이 과연 타인의 생명을 나의 생명처럼 사랑할 수가 있을 것인가? 왜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불가능한 일을 추구하라고 하시는가?

 

l  생명을 사랑하도록 인간에게 율법이 주어졌지만(20:6, 12, 17, 12:30-31) 마음속으로부터 그 행위에 이르기까지 완전하게 지킨 의인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사도 바울이 이미 로마서 제319-20절에서 지적한 바 있음. 그리고 비록 타인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킨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15:12-17) 그것이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음을 성경은 또한 증언하고 있는 것임(5:5-11, 13:37-38, 14:10-20, 21:15-18, 7:27-28).

l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에게 타인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과 같이 사랑하고 돌보라고 계명을 주신 이유는 그것이 본래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었기 때문임(1;26-31, 4:7-12).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과 모습을 닮도록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와 같은 사명을 인생의 본분으로서 부여하신 것으로 볼 수 있음. 인류의 조상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각 생물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을 잘 돌보고 있는 모습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임(2:19-20).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서 오로지 인간의 힘과 육체적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이른바 약육강식과 이기주의에 물든 육체화된 인간사회를 하나님께서 떠나시고 또한 버리시는 것도 이와 같은 관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임(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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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신령한 은사를 얻게 되면 이와 같은 불가능한 일을 실현시킬 수가 있게 되는가?

 

l  14:10-21절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그 일이 가능하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적시하고 있음; ①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임재하여 계심으로써 그 분의 일을 시행하고 있다(14:10). ②하나님 아버지의 임재하심을 믿지 못하겠다면 성취되는 그 일로 미루어 보아 그 분의 임재하심을 믿으라(14:11). ③보혜사 성령께서 너희 안에 임재하시게 되면 똑 같은 기적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14:12-17). ④다만, 두 가지의 전제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하는데 그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14:15) 그 둘째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다(14:13-14). ⑤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성도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 거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14:18-21)는 것 등임.

l  그러므로 신령한 은사라고 하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것임. 만약 성도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하나님 말씀의 화신(化身)으로 거듭나게 된다면 그 때부터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을 돌보는 인생의 본래 목적이 성취되어나갈 것임.

l  요컨대, 은사 중의 은사는 사랑이라고 하는 동기부여라고 할 수 있음. 그리고 그것은 피조된 세계에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을 되살리는 새 역사를 가져오고 있는 것임(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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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예언의 은사를 얻게 되면 어떠한 유익이 있게 되는가?

 

l  신령한 것을 피조 세계에서 현실화시키자면 반드시 신령한 말씀과 그 말씀을 받아 들이는 창조물 사이에 통역의 필요성이 요청되는 것임. 정확하게 그 뜻이 전달이 되어야 추상적인 계획과 하나님의 설계도면이 현실세계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의도대로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은 자명(自明)한 이치임.

l  예언의 은사는 통역과 같은 것임. 미래에 구축되어야 할 하나님의 청사진과 세부 계획에 대하여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님(14:2, 6). 반드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예언인 것임(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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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악기가 음을 정확히 내주어야 타 악기와 구별도 할 수 있고 그 음악을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가 있듯이(14:7-8) 예언도 그와 같이 분명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14:9) 사도 바울은 어떠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말하고 있는가?

 

l  세상에 뜻 없는 소리가 없듯이(14:10) 모든 소리에는 그 뜻이 정확하게 실려 있어야 하는 것임. 그 때에야 소리가 능력으로 나타날 수가 있고 교회의 덕을 세울 수가 있다는 것임(14:11-12, 19).

l  외국인에게 외국어로 말하여야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듯이(14:11) 방언도 통역이 되어야 예언처럼 신령하지 못한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임(14:12-13).

l  사도 바울은 신령한 것을 영으로만 알아 듣고 마는 경지를 넘어서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통용할 수 있는 마음의 것으로 바꾸어 나가는 경지를 더욱 강조하고 있는데(14:14-19) 세부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음; ①영으로 기도할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알아 들을 수가 있다. 찬송도 마찬가지이다(14:15). ②만약 영으로 축복하고 만다고 하면 누가 그것을 알아듣고서 감사할 것인가? 상대방의 마음에 그 뜻을 전할 수 있도록 하고 말로써 분명하게 축복해야 한다(14:16-17). ③방언의 은사를 많이 받은 것을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14:18). 그러나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자신에게 예언과 지식을 주신 것이다(14:19).

l  요컨대, 바울은 방언보다는 예언을, 중언부언하는 것보다는 확실한 깨달음의 전달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과 정확한 예언만이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14:19, 1:16-17). 그리고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낫다”(고전14:19)는 바울의 명제는 성경공부의 필요성을 한 마디로 웅변하고 있는 명언이라고 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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