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제16과(11:17-34)(손진길 작성)
|OBS24-16|
Q1. 사도 바울은 교회의 전통을 설명함에 있어서 그것의 형식보다는 그 전통의 깊은 의미에 대하여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계속 설명해주고 있음. 제11장의 전반부에서 바울은 그의 독특한 “머리 이론”을 가지고 기도와 예언으로 대표되고 있는 예배의 전통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음(11:1-16). 그 내용은 예배에 임하는 남녀 성도들의 머리의 형식 보다는 그 전통의 본질적인 의미의 되살림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임(11:11-16.) 이제 제11장 후반부(11:17-34)에서는 성만찬의 전통에 대하여 설명하면서도 똑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음. 즉, 그것 역시 형식 보다는 그 본래의 의미 설명에 중점을 두고 있음.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이 예배 전통과 성례전의 전통을 설명함에 있어서 그 표면적인 형식 보다는 그 본래 취지의 깊은 내용 이해에 중점을 두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l 한 마디로 그것은 형식과 모양새는 시간과 공간의 다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본래의 취지와 의미는 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임. 하나님이 계시하고 계시는 말씀의 취지와 의미가 하나의 의식화된 문화나 종교의 형식으로 전해져 내려오기는 하지만 그 형식화된 틀 보다는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물이 훨씬 중요한 것이기 때문임. 만약에 그 틀과 형식이 깨어져 버린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과 취지가 그대로 살아서 전해지게 된다면 그것은 언제나 되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임.
l 이와 같은 입장에서 사도 바울은 성만찬 형식 속에 담겨있는 예수님 말씀의 기본 뜻을 다음과 같이 먼저 요약하고 있음; ①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말씀하시기를 이 떡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떡을 나눔으로써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다(11:23-24). ②또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나누어 마심으로써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다(11:25). ③그러므로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그것을 재림 때까지 온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11:26). ④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아니하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다(11:27). ⑤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11:29) 등임.
l 결국 예수님이 마지막 잡히시기 전 날 밤에 제정하신 성만찬의 의미는 자신의 대속의 죽음의 의미를 세상 끝까지 전하면서 세상 만민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몸과 피를 희생하셨다는 사실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또한 기억시키라는 것임. 이에 따라 성도들이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간에 그것은 모두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의 뜻대로 행해야만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임(10:31-33, 11:27-33).
l 특히 만민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모두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하고 대속의 피를 흘리신 주님의 죽으심을 생각할 때마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을 공동체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상 만민과 함께 나누어 먹고 마시는 것이 옳다는 것임. 이것이 성만찬 제정의 가장 깊숙한 의미가 될 것임. 그런데 고린도교회 내에서는 그러하지 아니했던 것임(11:17-22, 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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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그렇다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어떤 처지와 형편에 있었으며 함께 먹고 마시는 일, 특히 성만찬 행사와 관련하여서는 어떠한 불행한 일을 경험하고 있는가?
l 첫째로, 고린도교회의 내부에서는 분쟁이 발생하고 있었음(11:18). 유대주의자와 헬라주의자가 있었으며 더구나 어느 사도 어느 장로에게서 복음을 배웠느냐에 따라서 서로 그 주의 주장이 달랐으며 서로 자신들만이 옳다고 다투고 있었음(11:17-18).
l 둘째로, 파당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서로가 서로의 견해를 존중하면서 이견을 조정해 나가는 경우 가장 우수한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11:19)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그러한 긍정적인 측면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면서 아예 음식과 떡 조차 함께 나누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있으니 이것은 명백하게 성만찬에 참여하는 자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임(11:18, 20).
l 셋째로, 분파와 상호 적대 행위에 따른 폐해뿐만 아니라 개인적 이기주의도 만연하여 아예 잘 사는 자들이 못 사는 성도들을 돌보지도 아니하고 있다는 것임(11:21-22). 평소에 식물로 구제하는 행위를 하지도 아니할 뿐만 아니라 성만찬에 있어서도 빈궁한 자들을 배려하지 아니하고 있으니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헛되이 하고 있다는 것임(11:22, 26).
l 넷째로, 그 결과 교회 내에서 유산자와 무산자의 계급이 형성되고 성만찬의 본래 취지는 탈색이 되어버렸으며(11:21) 지역 사회로의 나눔의 장이 형성되지를 못하고(11:22, 30) 나아가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는 지상명령조차(11:26, 마28:19-20)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임(11: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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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제11장21절은 당시의 성만찬이 오늘 날의 성만찬 의식과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어떠한 점이며 그와 같은 해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사도행전의 말씀은 무엇인가?
l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한다고(11:21) 말하고 있으니 그것은 오늘날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성만찬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 내의 저녁 식사에 해당하고 있는 것임.
l 그런데 재빠른 사람은 식사를 혼자서 많이 가져다가 먹고 포도주까지 많이 마셔서 아예 대취하고 있는 반면에 행동이 느린 사람은 식사량이 부족하여 계속 시장한 상태에 있으니 이것은 서로 쓸 것을 나누어 사용함으로써 유대인 사회에서 칭찬을 받았던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모습이 아닌 것임(행2:44-47).
l 그렇다면 헬라의 큰 도시였던 고린도, 그곳 이방인들의 교회 성도들은 왜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신앙 공동체다운 나눔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었을까? 그 이유는 아무래도 유대인들에게는 오랜 성전 문화와 회당 문화가 있었고 근본적으로 하나의 혈통 그리고 하나뿐인 유일신 야훼를 다같이 섬기고 있다는 강한 유대감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임. 즉, 유대인 사회에서는 하나의 율법적 신앙공동체의 모습이 남아 있었지만 헬라나 로마의 세계에서는 그와 같은 유대감이 없었기 때문일 것임.
l 도시 국가가 많았던 그리스는 헬라시대에 이미 다민족사회이었으며 그들의 철학과 학문은 그들의 자유스러운 개인주의적인 여러 생활 양식 위에서 발달하고 있었던 것임. 일찍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꽃을 피웠던 제자백가의 학문의 융성도 이 점을 말해주고 있는 것임. 그런데 역사적으로 중국에서는 천하를 통일한 황제의 시대가 오래 계속되면서 학문과 과학의 발달이 지체되는 반면에 유럽에서는 중세봉건제도가 종교개혁으로 청산되자 황제와 교황의 중세시대가 끝나고 학문이 발달하기 시작했음. 특히 유럽의 많은 민족과 여러 왕들의 민족국가들이 부국강병 정책을 서로 경쟁적으로 추진한 결과 서구의 과학과 학문은 크게 발달하게 된 것임. 이와 같은 세계사적인 흐름의 하나를 여기 사도 바울의 시대 고린도교회 내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것임. 고대시대 그리스는 이미 다민족사회이며 개인적 이기주의가 팽배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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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결국 성만찬의 가장 중심 사상은 무엇인가?
l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였으며 그 피를 이 땅 위에 모두 흘렸기 때문에(11:24-25) 이제부터 성도들은 만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각자의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며(11:26) 특히 약한 자와 병든 자(11:30) 그리고 빈궁한 자들과 함께(11:22) 먹걸이를 나누어야만 한다는 것이(11:21) 넓은 의미로 볼 때 성만찬의 중심 사상이 되고 있는 것임.
l 위와 같은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일생을 살아가기 위하여서는 식사를 할 때마다 성만찬의 가르침을 의식화하는 것이 요청됨. 그것을 사도 바울이 좁은 의미에 있어서의 성만찬의 의미로서 설명하고 있는 것임. 그 내용은 신앙 공동체에서 다 함께 식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동시에 그 떡과 포도주에 대하여 주님의 말씀 그대로 그것은 영적인 말씀과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라고 고백하면서 경건하게 함께 먹고 마시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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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좁은 뜻의 성만찬을 행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유익에 대하여 끝으로 사도 바울이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가?
l 잘못한 행위에 대하여 성도들 역시 판단을 받지만 세상 사람들이 받게 되는 정죄까지는 받지 아니하게 되는 유익이 있다는 것임(11:32). 그 이유는 매 번 성만찬 때마다 자신의 신앙고백과 실제의 삶을 비교해보고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기회가 성만찬의 은혜로서 주어지기 때문인 것임(11:28-29).
l 가장 좋은 신앙 태도는 성만찬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자신의 신앙상태를 점검하는 것임(11:31). 이와 같이 자기 성찰을 하게 되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겠지만 대부분이 그러하지 못하기에 주의 판단과 징계를 받게 되는 것임(11:32a). 그렇지만 징계를 통하여 삶의 태도를 다시 올바로 가지게 되면 결코 세상과 함께 정죄되는 심판의 단계에 까지 이르게 되지 아니하게 되는 것임(11:32b).
l 바울은 신앙 공동체 내의 식사로는 부족함을 느끼는 자 또는 다 함께 먹을 때까지 기다리기 힘든 자들은 차라리 집에서 먼저 식사를 하고 오라고 권면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먹는 것으로 서로를 판단하게 되는 어려움을 사전에 피하기 위한 것임(11:33-34).
l 그래도 시정이 되지 아니하는 점이 있다면 그것들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직접 방문하게 되었을 때에 별도로 바로 잡을 생각이라고 말하고 있음(11:34). 이로 미루어 보아 바울은 급한 대로 대강의 내용만 편지로 적어서 보내고 상세한 내용은 언제나 직접 현지를 방문하여 전해주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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