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후서 OBS교재(손진길 작성)

고린도전서 제18과(13:1-13)(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1. 11. 19. 21:03

고린도전서 제18(13:1-13)(손진길 작성)

|OBS24-18|

 

Q1. 고린도전서 제13장은 흔히 사랑의 장이라고 불리고 있음. 그런데 13:1-3절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랑은 어떠한 것인가?

 

l  성도의 모든 능력과 은사의 행함 그리고 엄청난 헌신과 희생의 근본 동기부여(動機附與, motivation)로서의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임(13:1-3).

l  사랑의 동기가 없으면 그 행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임. 사랑이 담겨 있지 아니한 방언은 비록 천사의 말처럼 아름다울지라도 그것은 한낱 징 소리나 꽹과리 소리처럼 공기의 진동에 불과한 것임.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마음과 보좌를 흔들 수는 없다는 것임(13:1). 예언의 능력, 엄청난 믿음, 전 재산을 기울인 구제 활동, 자기 몸을 불사르는 희생 등 실로 어마어마한 믿음의 행위 조차 그것이 사랑의 동기 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소용이 없다는 것임(13:2-3). 이것은 온전한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삼상15:22)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는 듯하며 오로지 하나님의 목소리 청종, 곧 올바른 순종 위에 서있는 헌신과 희생 그리고 봉사 만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라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언하고 있는 것임.

l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사랑의 동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큰 계명을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됨(12:30-31). 하나님 사랑과 그로부터 말미암은 인간 사랑을 말하고 있으며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임. 그 힘으로 만민의 생명을 구하고자 나설 때 그와 같은 성도의 행위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다는 뜻이 되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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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사랑의 동기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눈에 보이는 성도의 성품과 습관으로 나타날 수가 있음. 그 외면적인 사랑의 15가지 특징을(13:4-7) 바울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l  그 동기가 사랑으로 충만할 때 성도의 성품과 습관은 다음과 같이 15가지로 표출이 된다고 바울이 열거하고 있음; ①오래 참음 온유 시기하지 아니함 자랑하지 아니함. ⑤교만하지 아니함(이상은 13:4절임) ⑥예의를 지킴 타인의 유익을 먼저 배려함 성내지 아니함 선한 것을 먼저 생각함(이상은 13:5절임) ⑩의로움을 기뻐함 진리를 기뻐함(이상은 13:6절임) ⑫모든 것을 참음 모든 것을 믿음 ⑭모든 것을 바람 모든 것을 견딤(이상은 13:7절임) 등임.

l  여기서 첫째로, 타인의 유익을 먼저 배려한다는 것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는 이른 바 자기 희생의 정신을 말하고 있음. 둘째로, 선한 것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행위이며 그것은 근본적으로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행위인 것임(3:4). 셋째로, 진리를 기뻐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본래 취지가 드러나는 것을 기뻐한다는 것임(6:40, 14:6-7).

l  끝으로, 모든 것을 믿고 바라며 관용하고 인내한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믿음과 인내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님.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며 인내인 것임. 그 점을 조용기 목사는 사차원 영성 이론에서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하고 있음; “믿음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줄 알고 그것을 미리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에 정진하는 자는 반드시 그와 같은 미래를 믿음의 열매로 현실적으로 얻게 된다는 것임”(11:1). 풀이하자면, ①하나님 안에서 꾸는 그것을(vision) ②이미 주어진 것으로 믿고서”(faith) ③자신의 로써 선포하고(lema & word) ④그것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전진하면”(see & go)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임. 그 중심사상을 소위 바라봄의 법칙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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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13:8)는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l  예언도 방언도 지식도 모두 한시적인 것이지만 사랑만은 가장 본질적인 것이며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이라는 뜻으로 풀이가 되는 것임.

l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1:31, 3:16) 인간들에게 행복한 인생과 사회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율법을 주셨는데(10:13)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율법의 기본 취지라는 그 사실을 잊어버렸음. 그 대신에 율법사회의 모양새만을 유지하기에 급급하였음. 이에 따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그의 계명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 위하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으로 볼 수 있음(14:23, 31).

l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가 있고 하나님은 그 자를 사랑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사랑 가운데 살 수 있도록 영생을 주신다”(14:23, 15:9-12)라고 말할 수 있음. 결론적으로, 사도 요한의 명제 그대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4:16)라고 하나님의 속성을 정의할 수 있게 됨.

l  종국적으로 생명을 창조하시고 돌보시며 영원히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 인간은 그 분을 사랑한 것, 그리고 그 분의 사랑의 말씀을 따라 인간을 사랑하면서 평생을 살았다는 증거 그 것 밖에 가지고 갈 것이 전혀 없는 것임. 이 점을 사도 바울은 사랑은 영원한 것이지만 예언과 방언과 지식은 유한한 것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임(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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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예언과 방언과 지식이 유한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사도 바울은 어떻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는가?

 

l  인간의 예언이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임(13:9). 따라서 완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불완전한 것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모두 사라져버리듯이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서 예언하던 그것들은 완전한 계시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게 되면 장차 모두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설명임(13:10).

l  성령의 은사에 속하는 방언도 그 의미를 성도들이 모두 알지를 못하고서 자신의 영적인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임(12:10, 14:4-6). 바울은 이와 같은 방언의 속성을 어린 아이의 것과 같다고 비유하고 있음. 그리고 장성한 사람이 되면 어린 아이 때의 기억과 말투를 잊어버리는 것처럼 장차 방언도 그와 같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임(13:11).

l  인간의 지식이 온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바울은 거울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고 있음.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실상이 아니고 허상에 불과하듯이 인간의 지식이라고 하는 것도 창조주의 실상인 지혜와 지식을 반사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다는 것임(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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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그 얼굴을 보지 못하고 거울에 비친 허상만을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죄 범한 인간의 현주소라고 한다면 장차 심판대 앞에서 그 분을 대면하게 될 때에는 어떠한 현상이 발생할 것인가? 그리고 부분적으로 알던 이 땅의 시대가 지나가고 종말로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무엇과 무엇만이 살아 남아 있을 것인가? 그 점에 대하여 바울은 어떠한 주장을 하고 있는가?

 

l  이 땅에서 죄 범한 인생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게 되면 바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하고 있음(32:30, 19:12, 20:19, 33:20, 5:8). 그러므로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는 그 때는 이 땅의 목숨이 이미 끝난 후의 시점, 즉 종말의 때가 될 것임.

l  그 때에는 실체와 실상을 대하게 됨으로 모든 의문과 불완전한 것들이 사라지게 될 것임. 바울의 설명 그대로 사랑만 남게 되고 인간의 예언과 방언과 지식도 사라지게 될 것임(13:8-10). 그리고 사랑과 더불어 믿음과 소망이 끝까지 자리를 함께하게 될 것임(13:13a).

l  그런데 사랑이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되면 믿음과 소망은 별로 강조할 필요가 없게 될 것임(13:13b). 그 이유는 첫째로, 천국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망하였으나 이제 그 일이 실현되었기에 더 이상 소망을 거론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임. 둘째로, 천국에서 항상 하나님과 거처를 함께 하게 되었으므로(14:23) 하늘과 땅에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에 이 땅에서 강조되고 있었던 믿음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그토록 강조할 필요가 없어지기 마련인 것임.

l  참고로,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신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해주고자 매우 창조적인 방법을 선택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는 성육신의 방법이었던 것임. 그것은 완벽하게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었기에 죄인인 사람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더라도 결코 죽지 아니할 수 있는 기가 막힌 방안이었던 것임(14:9).

l  그렇지만 하나님이 인간이 된다고 하는 것, 그것은 창조주가 피조물이 된다고 하는 이른 바 굴욕 중의 굴욕이었던 것임. 그 만큼 그것은 하나님의 지극하신 인간 사랑의 표현인 것임. 만약 하나님의 속성이 생명 사랑, 그것도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 있는 자식과 같은 인간 사랑이 아니었더라면 있을 수 없는 역사적인 대 사건이었던 것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13:13)는 사도 바울의 언명은 하나님의 정체성과 그 분의 사랑의 본성을 날카롭게 꿰뚫고 있는 소위 신앙적인 깨달음의 극치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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