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기도(손진길 소설)

다윗의 기도54(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1. 18. 10:17

다윗의 기도54(작성자; 손진길)

 

한편, 다윗왕은 자신이 임종을 맞이하기 전에 신왕으로 즉위한 사랑하는 아들 솔로몬에게 가장 중요한 내용을 유언으로 남기고자 한다. 따라서 다윗왕이 병상으로 솔로몬왕을 불러서 내밀하게 다섯가지 사항을 유언으로 남긴다. 그 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여호와의 뜻을 받들고 그 명령을 지키라. 모세오경과 모든 율법에 관한 내용을 공부하고 부지런히 그 뜻대로 실천하면 솔로몬 너의 왕국은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형통할 것이다;

둘째, 여호와 앞에서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는 왕들이 계속 뒤를 잇게 되면 다윗의 왕조는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라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계셨음을 명심하라.

셋째, 군부의 실세이며 아도니아 왕자를 지지한 요압 사령관을 살려 두지 말라. 그가 살아 있는 한 솔로몬 너의 치세는 여전히 불안하다. 그는 권력을 좋아하고 손에 피를 묻히기를 즐긴다. 그러므로 그 피의 값을 그의 목숨으로 갚도록 하라.

넷째, 짐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요단강 건너 마하나임 요새에서 어렵게 지내고 있을 때에 전혀 보답을 원하지 아니하고 순수하게 나를 재물로 도와준 길르앗의 호족이 바르실래이다. 너는 나를 이어 그의 아들들을 선대하고 끝까지 돌보아 주도록 하라;

 

다섯째, 베냐민 지파이며 사울왕의 먼 친척인 시므이가 짐이 반군에게 쫓기고 있을 때에 나를 조롱하고 저주하였다. 내가 이스라엘 12지파의 화합을 위하여 그를 용서하였지마는 훗날에 그 반골세력이 우환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제거하도록 하라.

그와 같이 상세하게 조목조목 솔로몬왕에게 유언을 마친 다음에 기력이 진하여 다윗왕이 그만 우여곡절이 많은 생애를 마치고 만다. 그가 밧세바와 우리야 사건을 일으킨 다음부터 남은 25년의 세월은 한마디로, 그의 신민들이 그를 의심하고 비방하여 크고 작은 3번의 반란이 발생하였다.

그 때문에 노년의 다윗왕은 끝까지 칼날 위에서 참회와 눈물의 세월을 견디고 살아간 왕이다. 비록 이스라엘왕국을 제국으로 만든 위대한 다윗왕이지만 그의 치세는 이스라엘 12지파를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한 왕이 아니라 유다지파 그것도 자신의 친족과 친위세력에게 너무나 권력과 부를 집중시킨 왕이라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스럽지가 못한 것이다(삼하19:42-43).

특히 다윗왕은 전리품의 분배에 있어서 여호와의 성막을 책임지고 있는 제사장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으며 그 다음이 자신의 친위세력이다. 그러므로 같은 유다지파 내에서도 불만세력이 발생하고 있으며 기타 11지파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압살롬의 반란과 세바의 반란이 발생했다고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윗왕은 자신의 친위세력과 군부에 대하여 많은 특혜를 주고 있었기에 그 결과 소용돌이 치는 반란의 와중에서도 그는 군부의 지지를 받아서 이스라엘 12지파를 군사력으로 다시 통합하고 있다. 요컨대, 선민의 왕 다윗은 군사력에 크게 의존한 정치적인 능력으로 동족인 기타 11지파를 통제하고 다스린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것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근본적으로 여호와신앙을 가지고 종교적으로 하나의 이스라엘을 만드는 것이 제국의 안정을 위하여 긴요하다고 다윗왕이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다윗왕은 끊임없이 제사장 집안과 선지자 집단에게 지시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모세오경의 여호와 율법을 잘 가르치도록 강조했던 것이다;

그렇게 다윗왕이 신앙적으로는 여호와를 잘 섬기기 위하여 노력하는 한편 자신의 잘못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징벌에 대하여 승복하고 감수하는 훌륭한 여호와의 종의 삶으로 일관하였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제국을 경영하기 위하여 군사력을 우선적으로 사용하여 손에 피를 많이 묻힌 제왕이라고 하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다윗왕이 그러한 인물이기에 훗날 그의 후계자인 솔로몬왕의 행태가 다음과 같이 또한 그러하다;

첫째로, 솔로몬왕은 평생 부왕인 다윗대왕이 그토록 소원했던 그 성전을 여호와 하나님께 지어서 올린다. 무려 7년간 공사를 하여 호화스러운 성전을 짓고 그 안에 성막을 안치한 것이다;

둘째로, 여호와를 위하여 솔로몬왕이 성전만 지었으면 참 좋았을 것인데 그는 과시욕이 심하여 그만 자신의 왕궁을 크게 증축한다. 그 기간이 무려 13년이다. 성전을 짓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물자보다 배 이상의 정성과 물자를 자신의 왕궁을 증축하는데 사용한 자가 솔로몬이다. 그렇게 그는 여호와를 섬기면서도 세상적인 권위와 영화를 크게 누리고자 한 인물이다.

셋째로, 20년간 솔로몬왕이 예루살렘과 수도권의 정비사업을 추진한다. 그에 사용이 되는 재화는 거의 해상무역을 통하여 벌어들인 것이다. 세상의 문물에 밝은 솔로몬왕이 페니키아의 무역항 두로를 통한 지중해 무역과 에시온게벨의 항구를 이용한 인도양 무역을 통하여 막대한 수익을 얻은 것이다;

 

 그렇게 얻은 수입으로 성전도 짓고 자신의 왕궁도 크게 증축하며 수도권의 정비에 박차를 가하였으므로 그의 통치 전반기 20년 동안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부담이 별로 없다.

넷째로, 그러나 후반기 20년 동안 솔로몬왕은 사치와 향락 그리고 세상적인 자랑에 온통 빠지고 만다. 이스라엘 주변의 여러 나라에서 공주와 귀족들의 딸들을 무지하게 많이 데리고 와서 호화스러운 궁중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그렇게 솔로몬왕이 예루살렘에서 무려 1,000명의 처첩을 두고서 호사를 누린 것이다(왕상11:1-3);

게다가 처첩들의 끈질긴 요청을 받아들여서 그만 그녀들 친정의 우상을 그대로 도입하여 섬기도록 허용하고 만다. 그것으로 솔로몬왕의 여호와신앙이 사라지며 그 똑똑한 솔로몬왕이 한없는 영적인 타락의 길로 접어들고 만다.

다섯째로, 솔로몬왕은 승하할 때까지 후반기 20년 동안 전국을 요새화하고 군비를 강화하며 군사력을 키우는 정책을 계속 추진한다. 이미 국가의 재정은 바닥이 나고 없는데 건설사업과 군비확충사업은 계속되고 있다.

솔로몬왕은 강압적으로 그 모든 부담을 자신의 지파인 유다지파를 제외한 이스라엘의 기타 11지파에게 전가하고 만다. 그 때문에 솔로몬왕이 죽고 나자 40세의 왕자 르호보암이 그 뒤를 잇게 되지만 그 다음해에 나라가 둘로 쪼개어지고 만다. 남조 유다왕국과 북조 이스라엘왕국으로 분리가 되자 그만 이스라엘제국은 역사 가운데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윗왕보다 그의 아들인 솔로몬왕의 여호와신앙이 더 못하다. 그렇지만 솔로몬왕은 부왕의 약점을 쥐고 있는 요압 사령관을 일찍 해치우고 군사령관에 공신인 브나야 장군을 임명하여 군부를 성공적으로 장악함으로써 제왕으로서는 좋은 출발을 한 인물이다.

그는 영리하게도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조기에 필요한 조치를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취하고 있다;

첫째, 아도니아 왕자를 지지한 대제사장 아비아달을 낙향하게 하고 사독을 유일한 대제사장으로 삼는다. 그때부터 대제사장의 자리는 비느하스의 직계인 사독의 자손으로 한다는 원칙이 전통적으로 확립이 된다.

둘째, 그는 부왕인 다윗왕이 승하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비삭을 아내로 삼겠다고 하는 아도니아에게 반역의 죄를 물어서 단호하게 처단한다. 그리고 그러한 요청을 자신에게 전한 모후 밧세바도 멀리하고 만다. 그렇게 조치함으로써 솔로몬왕은 조기에 확실하게 권력을 장악하고 전제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이 비정하면서도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는 인물이 솔로몬왕이기에 그의 치세는 부왕인 다윗왕에 비하여 더 문제가 많다. 그 점을 마지막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흔히 여호와의 지혜와 세상의 학문을 두루 섭렵한 천하의 기재가 솔로몬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과의 친밀성을 반영하고 있는 시편 가운데 다윗의 이름으로 발표가 된 시가가 73편인데 비하여 솔로몬의 이름으로는 단 2편만이 실려 있다.

그만큼 칼날 위에서 오로지 여호와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생을 살아간 다윗왕의 영적인 깨달음이 절실하고도 위대하다. 그 반면에 편히 왕의 자리를 얻은 솔로몬왕은 권력을 독점하고 제국을 단속하는데 있어서는 세속적으로 성공하였지만 여호와의 정직한 의로운 종이라고 부르기에는 불충분한 인물인 것이다.

둘째로, 그러한 습관과 행태를 지니고 있는 솔로몬왕에게서 위대한 여호와신앙을 기대한다고 하는 것은 무리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통치 후반기 20년 동안에 세상의 온갖 환락을 즐긴 다음에 노경의 솔로몬왕이 크게 참회하면서 잠언과 전도서를 남겼다고 하는 것도 사실이다;

 

솔로몬왕이 그러한 마지막 참회의 글들을 남긴 공로로 다윗왕의 후계왕으로서 오늘날에도 이스라엘 제국의 제2대왕으로 역사에 기록이 되고 있다고 하겠다. 돌이켜보면, 솔로몬이 초창기에는 여호와께 기도하여 백성들의 재판을 잘할 수 있는 지혜를 요청하고 여호와의 성전을 짓는 등 현군과 성군의 자질을 보였다.

그렇지만 끝까지 그러한 올바른 여호와의 종의 길을 달려가지 못하고 그만 현세적인 욕심과 과시욕과 향락에 사로잡히고 이방의 우상을 허용하는 영적인 타락의 길을 선택하고 만 것이다.

그와 같은 솔로몬왕의 행적을 생각해본다고 하면, 역시 다윗의 눈물의 기도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면서 각자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는 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가 있다;

 

다윗왕의 후계자인 솔로몬왕의 경우가 세상적으로는 제국의 황금기를 이끌고 있어 화려하고 위대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영적인 측면에서는 엄청난 아쉬움을 남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세상적으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일수록 다윗왕의 기도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