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기도(손진길 소설)

다윗의 기도29(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1. 13. 23:47

다윗의 기도29(작성자; 손진길)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이 되자 마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왕국의 국왕은 자신이라고 대대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 그 증거로서 다윗은 13년전 당시 이스라엘의 대사사이며 대제사장이던 사무엘이 은밀하게 베들레헴을 방문하여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전하면서 자신에게 국왕이 되도록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다.

모압의 미스베로 피난했던 다윗의 부모형제가 귀국하여 다윗의 증언이 사실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다윗은 전령을 마하나임의 인근에 있는 길르앗 야베스에 보내어 사울왕과 세자 요나단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지내 준 그곳 주민들의 공로를 치하하는 한편, 그들에게 이스라엘 통일전쟁에 앞장을 서달라고 내부선동을 하고 있다.

그와 같은 유다왕 다윗의 행동에 격분한 인물이 사울왕의 막내왕자로서 이스라엘 11지파의 왕이 된 이스보셋이다. 그는 사울왕의 왕좌를 왕자인 자신이 이어받는 것이 당연한데 부마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사울왕에 의하여 쫓겨난 다윗장군이 여호와의 뜻을 조작하여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으니 그 버릇을 고쳐야만 한다고 신하들에게 말하고 있다;

이스보셋왕의 주장이 이스라엘왕국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는데 있어서 중요하다고 판단한 군사령관 아브넬이 마하나임에 주둔하고 있는 이스라엘군대를 이끌고 유다왕 다윗을 치기 위하여 요단강을 건너오고 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왕은 요압을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아브넬의 군대를 막도록 기브온으로 파견한다;

기브온에 있는 큰 못을 사이에 두고서 북쪽에는 아브넬의 군대가, 남쪽에는 요압의 군대가 대치한다. 그 자리에서 이스라엘의 군사령관 아브넬이 먼저 제안한다; “이제 우리는 동족상잔의 내전에 돌입하게 된다. 우리 이스라엘 12지파가 이곳에 피를 뿌림으로써 통일전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제안한다... “.

아브넬이 상대방인 요압을 멀리 바라보면서 큰소리로 말한다; “먼저 동족인 우리 이스라엘 12지파가 서로 원수가 되어 전쟁을 시작한다는 의식을 치루도록 하자. 나는 그 의식으로 서로 12명의 용사를 내보내어 머리를 잡고서 칼로 상대방을 치게 하는 것이다.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눌 용기가 있으면 12명의 대표를 내보내어 서로 머리를 잡고 겨루어 보도록 하자꾸나”.

그것은 아브넬이 다윗왕의 정통성에 영향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이제는 서로 피를 본 원수지간이 되게 하여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관계가 되도록 만들려고 하는 깊은 계략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요압은 그 위험한 제안에 그만 응하고 만다.

그에 따라 양진영에서 12명씩 내보낸 24명의 용사들이 서로 손으로 머리를 잡고서 근접하여 칼을 휘두르게 된다. 그 결과 24명이 동시에 서로 칼을 찌른 후에 쓰러지고 만다. 옆구리들이 깊이 찔렸으니 즉사한 것이다. 그 자리에는 선홍색의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그러한 의미로 그곳을 그때부터 헬갓 핫수림이라고 부른다(삼하2:16);

 

그 모습을 보자 양진영의 군사들이 흥분한다. 정신없이 상대방 진영을 향하여 무기를 휘두르며 돌진한다. 그렇게 육탄전이 시작되는데 이스라엘의 진영이 유다의 진영에 의하여 형편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날의 혈전이 끝나고 아브넬이 군사를 이끌고 산을 넘어 도망치고 말았는데 그는 360명의 군사를 잃어버린다.

그와 달리 요압의 군사는 20명의 전사자에 불과하다. 지난 10년간 사울왕에게 쫓기면서 광야에서 전투를 계속한 요압의 군대가 그 전투력이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전투를 끝내고 요압과 아비새 형제는 큰 슬픔에 빠진다. 그 이유는 그들의 동생인 아사헬이 그날의 전투에서 아브넬의 뒤를 쫓다가 그만 그의 창에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브넬 사령관은 요압의 군대가 막강하여 자신들의 희생이 너무 커지자 전군에 후퇴를 명한다. 그들은 산지를 타고서 요단강 쪽으로 급히 퇴각한다. 그 뒤를 장수 아사헬이 발빠르게 뒤쫓고 있다. 아사헬은 오로지 아브넬만을 바라보고서 전속력으로 달려든다. 적의 사령관만 해치우면 완전히 승리할 것으로 여긴 것이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산전수전의 노장 아브넬이 뒤를 돌아보면서 아사헬에게 충고한다; “내가 너를 죽이지 않도록 너무 뒤쫓지를 말라. 네가 전공을 세우고 싶다면 내가 아니라 다른 자를 상대하는 것이 쉽다”.

아사헬은 노장 아브넬이 자신을 놀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직 20대의 한창나이인 자신이 나이 50이나 된 늙은이 아브넬 정도는 충분히 해치울 수가 있다고 자신한다. 따라서 계속 뒤를 쫓는다. 한참을 진행하더니 아브넬이 다시 큰소리로 말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요압과 원수가 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그의 동생인 너를 해치우게 되면 나중에 요압을 볼 낯이 없다. 그러니 여기서 돌아가라”.

그 순간 발걸음이 빠른 아사헬이 칼을 휘두르면서 아브넬에게 돌진한다. 그것을 보고서 아브넬의 긴 창이 본능적으로 적을 꿰뚫고 있다. 평생을 전장에서 보낸 아브넬의 무예가 대단한 것이다. 그 예리한 창 끝을 젊은 아사헬이 그만 피하지를 못한다. 그 결과 그 자리에서 꼬꾸라지고 마는 것이다;

요압과 아비새는 먼저 아브넬의 뒤를 쫓아간 동생 아사헬을 멀리서 쫓아가고 있다. 그들의 군대가 산지의 정상에 도달하자 쓰러져 있는 아사헬이 눈에 보인다. 깜짝 놀라서 산아래를 내려다보니 도망을 치고 있는 아브넬의 주위에 인근 베냐민의 용사들이 갑자기 몰려들어 합세하고 있다.

노련한 아브넬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산아래에 베냐민지파의 친위군을 대기시켜 놓은 것이다. 그는 자기 지파의 군사를 아끼고 주로 용병을 가지고 오늘 전투에 임한 것이다. 그 점을 깨닫고 요압은 패잔병의 뒤를 쫓는 일을 그만둔다. 날이 어둡기도 하지만 베냐민의 용사들이 최정예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다군대의 사령관인 요압은 전쟁을 끝내면서 그 마음이 아프다. 막냇동생 아사헬이 전사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유별나게 요압은 동생 아비새와 아사헬을 돌보고 있다.

요절한 선친을 대신하여 그가 모친 스루야와 함께 집안을 돌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금쪽같은 막내동생이 아브넬에 의하여 죽고 말았으니 반드시 피값을 받고야 말겠다고 결심한다. 그 마음은 동생 아비새도 동일하다.

형제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헤브론으로 개선하는 길에 베들레헴에 있는 선산에 아사헬의 시신을 안장한다(삼하2:32);

 

그리고 형제는 맹세한다; “우리들의 손으로 반드시 마하나임왕국을 요절내고 말 것이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평화가 없다. 전쟁을 통하여 그들을 박살내고 말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피의 보복을 원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다른 것이다. 창조주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자식과 같이 귀한 생명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서로 죽이고 해치는 전쟁을 보고만 있으실 것인가? 그 명분이 민족의 통일이라고 하는 고상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피의 보복을 합리화하고 더 큰 전쟁의 악순환을 초래하는 요인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다윗왕은 더 이상 무력으로 민족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생각을 접는다. 그리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린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예언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그 방법은 동족상잔의 전쟁이 아님을 이제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부디 창조주의 역사섭리에 의하여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의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해주십시오”.

유다지파의 왕인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그와 같은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에 마하나임에서는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군사령관인 아브넬과 국왕인 이스보셋이 서로 힘겨루기를 한다. 물론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아브넬의 힘이 월등하다. 하지만 그가 도덕적인 차원에서 궁지에 몰리게 된다.

50세인 아브넬은 마하나임에서 거칠 것이 없다. 무신정권의 실세인 그는 겁낼 것이 없다. 교만해진 그는 사울왕의 애첩 가운데 가장 젊은 미인 리스바를 침실로 끌어들여 잠자리를 같이하고 만다. 그 정보를 입수한 40세의 이스보셋왕이 아브넬을 비난하고 나선다. 이번 기회에 군사령관 아브넬을 굴복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자 실권자 아브넬이 더 강하게 맞선다. 그는 이스보셋이 은혜를 모르는 자라고 비난한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사울왕가가 절단이 난 와중에서 내가 이스보셋 왕자를 살려내어 이스라엘 11지파의 왕으로 세웠다. 그런 은혜를 모르고 감히 그가 나를 비난하다니 배은망덕한 처사이다. 내가 사울왕의 첩과 통간을 하였다고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구나. 어디 그 물증을 한번 제시하여 보아라”;

 

이스보셋 국왕이 멈칫하자 아브넬이 더 밀고 나간다; “나를 계속 비난하면 내가 이 나라를 들어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기름을 부은 다윗왕에게 바치고 말 것이다”. 그 말을 듣자 이스보셋왕이 꼬리를 내리고 만다. 아예 입을 다물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마하나임에서는 대신들 사이에 군사령관 아브넬의 독재를 싫어하는 기운이 생겨나고 있다. 일찍이 사울왕의 측근으로서 오래 생활을 한 군사령관 아브넬은 눈치가 빠르며 그 처신술이 놀랍다;

 

그래서 보험을 하나 들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사절을 다윗왕에게 보내어 화친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는 아브넬이 이스보셋왕과 대신들에게 말한다; “지금 유다의 군대와 우리 이스라엘의 군대가 서로 국경선에서 대치를 하고는 있지만 상대방의 세력이 날로 강성해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게 되면 우리가 망하게 됩니다. 따라서 빨리 화친사절을 보내어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는 것이 좋습니다”.

지도상으로 보면, 이스보셋의 왕국이 다윗의 왕국보다 훨씬 크다;

 

하지만 군부의 실력자가 도저히 다윗왕의 군대를 막을 수가 없다고 말하는데 별다른 도리가 없다. 따라서 조정에서는 공식적으로 화친을 청하는 사절을 파견한다. 하지만 사절을 맞이하자 다윗왕이 엉뚱한 요구를 한다; “화친을 요구하는 이스보셋왕의 마음이 진실이라고 하면 내게 그 증거를 보여주세요. 그것은 본래 나의 아내인 미갈 공주를 다시 내게 돌려 보내주는 것이요”.

별로 어렵지 아니한 조건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절의 보고를 받은 이스보셋왕과 아브넬 사령관이 즉시 행동에 나선다. 재가한 미갈 공주를 부마 발디엘의 집에서 억지로 데려와서 사절과 함께 헤브론의 다윗왕에게 보내어 주는 것이다.

미갈 공주는 이제 유다의 왕이 된 전남편 다윗에게 돌아가는 것이므로 지금의 시집에 큰 미련이 없다. 그렇지만 미갈 공주를 끔찍하게 아끼고 있는 부마 발디엘은 그것이 아니다. 그녀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울면서 바후림까지 뒤를 쫓아온다(삼하3:16);

 

그것을 보고서 사절단을 이끌고 있는 군사령관 아브넬이 엄포를 놓는다; “더 이상 따라오면 목을 칠 것이다”. 그 말을 듣자 발디엘이 속절없이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그렇게 무리를 하면서 다윗왕이 공주 미갈을 다시 찾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미 다윗에게는 처첩이 많다(삼하3:2-5).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왕이 미갈 공주를 다시 아내로 얻고자 하는 것은 정치적인 목적이 농후하다;

다윗은 사울왕에 의하여 쫓겨난 부마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미갈 공주를 얻고 부마가 되었다고 하는 명분과 위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죽은 사울왕의 왕국을 자신이 온전히 차지할 수 있는 관건이 된다.

만약 이스보셋왕이 죽고 나면 그 다음은 부마인 다윗이 왕위계승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인간적으로 이스라엘 통일의 명분을 착실하게 쌓아가고 있는 다윗이다.

다윗왕의 그 다음 통일전략이 무엇일까? 그것이 사절단장으로 헤브론에 온 아브넬과의 담합이며 밀약이다.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이며 그것을 바라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판단은 무엇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