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기도(손진길 소설)

다윗의 기도27(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1. 13. 03:03

다윗의 기도27(작성자; 손진길)

 

주전 1,011년 이스라엘왕국의 북부 이스르엘 평원에서 블레셋의 원정군과 이스라엘의 군대가 대회전을 하고 있다. 이스르엘 평야와 길보아산은 블레셋 그랄 평야의 동쪽 국경 성읍인 시글락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 그러므로 시글락에 거주하고 있는 다윗장군이 그 전쟁의 상세한 결과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스르엘 평원에서 전투가 시작된지 열흘이 지나자 시글락에서 다윗이 그 전쟁의 결말에 대하여 알게 된다. 왜냐하면, 길보아 산에서 사울왕의 죽음을 확인한 이스라엘 군대의 탈영병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시글락에 들러 다윗장군에게 전쟁의 결과를 자세하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 청년이 시글락 성에 들어와서 대뜸 수문장을 찾는다. 그리고 급히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멀리 북쪽 이스르엘 전장에서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 전쟁의 결과에 대하여 긴히 다윗장군에게 보고할 내용이 있습니다. 저를 다윗장군에게 안내해주십시오”.

그날 시글락 성문을 지키고 있는 수문장이 백부장 아사헬의 부하이다. 그가 경비대장인 아사헬에게 그 사실을 보고한다. 아사헬이 먼저 그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가 이스르엘 전장에서 탈출하여 남행길에 나선 것이 맞다. 그래서 그를 데리고 다윗장군의 막사로 들어간다.

백부장 아사헬의 간단한 구두보고를 들은 다윗이 성주의 자리에 앉아서 단 아래에 있는 그 청년에게 묻는다; “그대는 이스르엘 길보아 산에서 이곳으로 탈출해왔다고 들었다. 그래 전쟁의 결과가 어떠하냐?”. 그 청년이 먼저 한마디로 답변한다; “블레셋의 원정군을 맞아 이스라엘의 군대가 이스르엘 평원과 길보아 산에서 결사적으로 싸웠지만 완전히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 말을 듣자 다윗장군과 그의 주위에 서있던 백부장들이 탄식한다. 다윗장군이 그 청년에게 말한다; “구체적으로 한번 설명을 해보아라”. 그 청년이 상세하게 설명한다; “먼저 양군은 이스르엘 평원에서 5일간 대회전을 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이스라엘 군사의 수가 부족하여 중과부적으로 밀리게 되었지요. 특히 블레셋의 기병의 수가 많아서 도저히 더 이상 이스르엘 평원에서 상대할 수가 없어서 길보아 산으로 후퇴를 하였습니다”.

다윗장군과 여러 백부장들이 숨소리조차 죽이고 경청하는 것을 보고서 그 청년이 신이 나서 설명을 계속한다; “우리 이스라엘의 군대는 길보아 산의 지세를 활용하여 이틀간 결사적으로 블레셋의 군사를 쳐부수었습니다. 그 결과 블레셋의 군사 6천명이 길보아 산을 둘러싸고서 포위망을 좁혀왔지요. 나중에는 우리 이스라엘 군사가 1천명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듣자 다윗장군이 잠시 눈을 감았다 뜬다. 마치 토끼몰이를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의 귀에 그 청년의 설명이 계속 들려온다; “저는 사울왕과 세자 요나단 그리고 두 왕자를 지키는 호위무사들과 함께 행동했습니다. 사령관 아브넬 일행과는 헤어져서 서로 생사를 모르고 있었지요. 그때 적의 저격수들이 숨어서 쏘는 화살에 그만 사울왕 전하께서 중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다윗장군과 백부장들이 깜짝 놀란다. 그 모습을 보고서 그 청년이 더 설명한다; “사울왕 전하께서는 겨우 자신의 창을 의지하여 두 발로 서있기는 하셨지만 더 이상 산을 탈 수는 없게 되었지요. 그러자 왕께서 저를 포함한 우리 패잔병들과 호위부관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자신의 목을 치고 그 수급을 가지고 빨리 이 산을 벗어나 도성 기브아로 가서 군대를 모아 블레셋에게 복수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다윗장군이 급히 묻는다; “그래, 사울왕 전하께서는 어떻게 되셨는가?”. 그 청년이 담담하게 대답한다; “저희들은 감히 그렇게 시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적들이 밀려오는 것을 보고서 급히 전하께서는 자신의 칼을 거꾸로 바닥에 곧추 세우고 그 위에 신체를 포개고 말았습니다.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지요그러자 그만… “;

 

다윗장군과 백부장들이 침통해 한다. 그 모습을 보고서 그 청년이 말한다; “세자 요나단과 두 왕자 그리고 호위부관이 모두 그 자리에서 칼로 자결을 단행하셨지요. 그러자 다른 호위부관이 부르짖었어요. 우리는 자결할 필요가 없다. 죽기 살기로 적들과 싸워 주군의 신체를 지키도록 하자. 그래서 모두들 결사적으로 그 장소를 해가 지도록 지켰습니다”.

그 말을 들은 다윗장군이 그제서야 그 청년에게 묻는다; “너는 어떻게 그 장소를 빠져나올 수가 있었느냐?”. 그 청년의 대답이 걸작이다; “저는 부친이 아말렉족인데 이스라엘군대에 용병으로 들어갔기에 저 역시 용병으로 들어가서 이스르엘 전투에 참여한 것입니다. 저도 필사적으로 블레셋의 군사들과 길보아 산 정상에서 전투를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도중에 사울왕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다윗장군과 백부장들이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귀에 그 아말렉 청년의 기가 막힌 이야기가 들려온다; “사울왕은 그처럼 피를 많이 흘렸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었지요. 그래서 정신이 들자 그 고통이 너무 심하여 부디 자신의 목을 쳐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딱한 형편을 보고서 나도 모르게 그 심장을 정확하게 칼로 찔렀습니다. 사울왕 전하는 편안하게 임종을 하셨지요. 그런데…. “.

잠시 숨을 돌리고 그 청년이 이어서 말한다; “저와 함께 산 정상에서 블레셋 군사들을 막고 있던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전부 죽고 말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져서 그런지 적들도 더 이상 산정상으로 올라오지를 아니했지요. 저는 어쩔 수가 없어서 사울왕의 왕관과 팔의 고리를 벗겨서 그것을 가지고 적진을 뚫고서 이곳 시글락까지 와서 다윗장군에게 그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그 말을 하고 있는 그 청년의 얼굴을 다윗장군이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리고 백부장에게 지시한다; “저 청년의 행랑을 한번 조사해보게. 어떤 것들이 들어 있는지?... “. 그 말을 들은 백부장이 조사를 해보고 보고한다; “장군, 세자와 왕자들의 패물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 값어치가 상당합니다”.

보고를 들은 다윗장군이 그 청년에게 말한다; “이놈, 네 놈은 세가지의 큰 잘못을 범했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신성한 이스라엘왕국의 사울왕의 심장에 칼을 찔러서 그를 완전히 죽게 한 것이다. 그것은 고통을 줄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을 해친 것이다. 그리고… “.

다윗이 잠시 숨을 쉬고서 이어 말한다; “둘째, 이방인 아말렉 족속인 네가 감히 선민의 왕과 왕자들의 패물을 도적질하여 착복한 것이다. 셋째, 팔 수도 없는 사울왕의 왕관과 왕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팔찌를 내게 가지고 와서 바치고 그 값을 받으려 한 것이 너의 간악한 죄악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를 도저히 살려 둘 수가 없다. 여봐라, 이놈을 끌어내어 즉시 그 목을 치라”.

다윗장군과 백부장들은 그 아말렉 청년의 목을 친 것으로는 도저히 분노와 슬픔이 가시지를 않는다. 따라서 애도의 기간을 정하여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블레셋과 전투를 하다가 산화한 사울왕가의 공덕을 기린다.

특히 다윗장군은 사울왕과 세자 요나단을 추모하는 애도의 시를 작성하여 그것을 시글락의 주민들에게 선포하고 모든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보내어 애국애족의 정신을 고취하도록 조치한다.

그것은 다윗장군 자신이 사울왕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은근히 드러내고자 하는 정치적인 성격의 글이다. 아울러 사울왕의 복수를 원하는 백성들은 자신의 뒤를 따르라고 하는 일종의 격문인 것이다.

그러한 의미를 담뿍 담고 있는 다윗의 애도문이 사무엘하 제1장에 기록이 되어 있다. 참고로, 그 내용을 옮겨보면서 그 의미를 간결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삼하1:19-20); 다윗이 세가지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첫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있는 선민이고 블레셋은 하나님의 할례와 같은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 이방인이라는 것이다. 둘째,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보호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방인과의 전쟁에서 패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레셋의 2도시국가인 가드와 아스글론이 앞장을 선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하였으니 그것을 다윗이 애통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의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로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삼하1:21-22); 역시 세가지의 생각을 담고 있다. 첫째, 이스라엘 북부의 산인 길보아는 비가 잘 오지 않는 건조한 지역이다. 따라서 식물이 주로 이슬을 먹고 자라고 있으며 밭에서도 이슬을 머금은 식물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왕국의 왕과 세자가 길보아산에서 죽었으므로 이제부터 그 땅이 여호와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셋째, 사울왕과 세자 요나단은 이스라엘 군대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아니하려고 끝까지 블레셋과 싸우다가 그곳에서 전사하였으니 호국의 영령이 될 것이라는 다윗장군의 말이다.

셋째로,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삼하1:23-24);

 

사울왕은 지난 10년간 다윗장군을 추격하여 잡아서 죽이려고 눈에 불을 켠 권력의 화신이다. 반면에 세자 요나단은 다윗과 마찬가지로 권력에 미친 사울왕의 견제를 받아오던 비운의 세자이다. 그런데 그 두사람을 다윗장군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들이라고 한꺼번에 칭송하고 있다. 그것은 굉장히 정치적이고도 외교적인 언사이다. 다분히 이스라엘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자 하는 의도적인 사실의 왜곡인 것이다. 특히 다윗은 사울왕이 지난 40년간 외적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왕국에 번영을 가지고 왔다고 찬양하고 있다.  

넷째로,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삼하1:25-26); 길보아산에서 죽은 왕가의 사람은 사울왕과 세자 요나단 외에도 제2왕자와 제3왕자가 더 있다. 그런데 두왕자의 이름이 쏙 빠져 있다. 그리고 다윗장군은 자신이 세자 요나단의 매제이며 그 친분이 형제보다 더하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것은 사울왕의 왕좌를 세자 요나단이 이어 받지를 못하고 함께 죽고 말았으니 이제는 세자 요나단이 지극히 사랑한 다윗자신이 이어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은연중에 주장하고 있는 대목이다. 요컨대, 다윗이 정치적으로 상당히 고단수이며 사울왕가에 대한 그의 애가가 교묘하게 다윗의 정통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로,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삼하1:27); 이제 사울왕과 세자 요나단마저 외적 블레셋의 침입을 막다가 전사하고 말았으니 앞으로 누가 이스라엘왕국을 보전할 것인지 참으로 다윗장군이 애통하게 부르짖고 있다. 그들이 전사함으로 말미암아 사울의 왕가도 끝장이 나고 이스라엘의 군대도 패망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빨리 다윗 자신이 나서서 외적을 물리치고 선민의 나라를 보전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의 방백들이 자신을 지지하여 달라고 하는 일종의 호소문인 것이다.

그와 같은 내용이 담겨있는 망명장군 다윗의 사울왕가에 대한 애도문을 받아본 이스라엘왕국 12지파의 방백들이 술렁이고 있다. 그런데 길보아산에서 피신한 사령관 아브넬이 선수를 치고 있다. 얼른 도성 기브아에 가서 40세의 막내왕자 이스보셋을 모시고 요단강을 건너 안전한 마하나임의 군사기지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스보셋 왕자를 정통성을 지닌 사울왕의 후계왕으로 즉위시킨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11지파의 방백들이 이스보셋 왕을 지지하고 만다(삼하2:9);

 

오직 유다지파만이 그에 반대하고서 시글락에서 다윗장군을 모시고 와서 헤브론에서 유다왕국을 세우고자 한다;

시글락에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기도로 묻고 있다(삼하2:1a). 자신이 유다지파의 왕이 되면 선민 이스라엘은 둘로 쪼개어지고 만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니 어떻게 처신하면 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민족의 통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뜻과는 달리 여호와께서는 즉시 헤브론으로 가서 유다의 왕이 되라고 답하신다(삼하2:1b);

그렇게 답하시는 여호와의 뜻이 무엇일까? 그 이유는 여호와신앙을 지키고 있는 다윗왕과 여호와신앙을 버린 이스보셋왕이 대립하는 구조 아래에서 과연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쪽을 지지할 것인지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고자 하신 것이다.

인생이란 매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인간들의 집단도 중요한 순간에 선택을 해야만 한다. 여호와께서는 그 선택의 방향이 어느 쪽인지를 계속 살피고 계시는 것이다. 물론 그 선택의 결과 개인과 집단은 합당한 책임을 역사적으로 여호와 앞에서 져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제 둘로 쪼개어진 이스라엘왕국에서는 12지파의 백성들이 다시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 올바른 선택을 하여야 선민의 영광이 다시 빛날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다윗왕과 이스보셋왕 가운데 어느 쪽이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시 통일하게 되는 것일까? 유다지파의 왕이 된 다윗은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자신이 이스라엘 전체 왕국의 왕이 되고 블레셋을 위시한 외적들의 침략을 전부 물리치고자 한다. 그것이 그의 기도의 제목이다;

그렇다면 다윗왕은 과연 여호와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낼 것인가? 그와 더불어 여호와의 도우심을 얻을 수 있는 다윗의 정확한 기도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그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자면 여전히 다윗의 일생을 계속 추적하는 도리밖에 없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