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기도16(작성자; 손진길)
다윗은 청소년 시절인 17세쯤에 그를 차기 이스라엘왕국의 국왕으로 세운다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대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들었으며 그 증거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때부터 청소년 다윗은 외적을 물리치는 놀라운 전승의 기록을 보여준다.
3년동안 미성년자인 다윗이 어떻게 블레셋의 영웅인 가드 출신 거인용사 골리앗을 쓰러뜨렸으며 가는 곳마다 전선에서 외적을 물리쳤는가 하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하지만 놀라움을 잠시 접어두고 자세하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젊고도 젊은 다윗이 힘에 겨운 적들과 전투를 하면서 겪은 그 어려움은 실로 말로 다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전승을 기록한 것은 오로지 그가 자신의 힘과 능력 그리고 인간적인 지혜를 의지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점지하심과 자신을 차기 국왕으로 세우신다는 그 예언의 말씀의 능력만을 의지하고 기도로 전진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 자리에 이를 때까지 다윗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은 여호와의 일이라고 생각하고서 전폭적으로 창조주의 능력과 그 섭리를 믿은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여호와신앙의 모습보다 더 귀한 신앙의 모습을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늙은 사울왕의 목을 치도록 굴속에서 절호의 기회를 주었지만 다윗이 그 기회를 스스로 마다한 것이다;
그 시기는 대충 다윗이 도망자가 되어 광야에서 피신생활을 한지 5년쯤 지난 시점으로 보인다.
나이 20에 도망자가 되어 5년간 사울왕의 집요한 추격에 시달리고 있는 다윗이다. 그의 피곤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자신만을 바라보고 함께 그 고난의 세월을 견디고 있는 600명의 사병들의 처지를 생각한다고 하면 다윗장군은 즉시 사울왕의 목을 치고 왕도 기브아로 개선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17세부터 20세까지 젊은 나이에 수많은 전쟁에 참여하면서 그리고 5년간 억울한 도망자생활을 하면서 다윗이 남다르게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다. 그것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심과 선택에 대해서는 결코 후회함이 없으시다는 것이다.
설령 기름부음을 받은 종이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제마음대로 행동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바로잡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주인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종인 다윗이 확실한 여호와의 명령이 없는데 함부로 지레짐작으로 여호와의 종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왕의 목을 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주인인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다. 그러한 자에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나라를 결코 맡기지 아니하실 것이다. 따라서 굴속에서 무방비 상태에 노출이 되어 있는 정적 사울왕의 목을 치고 손쉽게 이스라엘왕국을 차지하느냐? 아니면 그 절호의 기회를 고사하고 여호와의 손에 사울왕의 운명을 맡겨드리느냐? 하는 것이 다윗의 생각으로는 여호와의 시험문제인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시험 앞에서 다윗은 망서리지 아니하고 후자를 선택한다. 그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크게 고개를 끄떡이신 것으로 짐작이 된다. 권력에 집착하고 있는 사울왕과는 전혀 다른 신앙생활의 모범을 젊은 다윗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관심을 가지시고 엔게디 광야의 염소바위 굴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진풍경을 들여다보신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서에서는 참으로 상세하게 그 대목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참고로, 그 대목에 대한 기록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절호의 기회를 포착한 다윗의 부관들이 주군에게 말한다;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그러나 다윗이 찬성하지 않는다. 그는 사울의 목을 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사울의 옷자락 끝만 살짝 베고 만다;
그것조차 하나님 앞에 죄스러운 것만 같아 다윗은 그 굴속 깊은 곳에서 부하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아주 작은 소리로 토로한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그러므로 사울을 해치지 말고 조용히 우리의 갈 길을 가도록 하자”.
그 굴에서 벗어난 다음에 다윗이 높은 바위 위에서 아래에 있는 사울왕과 이스라엘의 군대를 보고서 외친다; “내주 왕 사울이여, 그리고 이스라엘의 군대여… “. 그들이 고개를 들어 바위산 위를 쳐다보자 다윗이 다짜고짜 사울을 향하여 큰절을 올린다;
그리고 그가 소리를 높여서 외친다;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모두가 위를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다윗의 설명이 계속된다;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이어서 다윗이 자신의 결심을 밝힌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쫓고 있는 사울왕의 일이 여호와 하나님의 개입으로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다윗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다윗의 여호와신앙이 어떠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므로 이스라엘의 역사서가 굉장히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한 다윗의 외침에 대하여 사울왕의 반응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사울왕이 큰 소리로 바위산을 올려다보면서 대답한다;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그 말을 하고나서 늙은 사울왕이 갑자기 통곡하면서 말한다;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사울왕 역시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종이다. 따라서 악령이 떠나가고 성령이 임하자 그가 진심으로 말한다;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비로소 사울왕의 입에서 예언의 말이 나타난다;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그 말을 듣자 바위산 위에서 다윗이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큰소리로 대답한다; “여호와의 영으로 말하는 것이니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사울왕의 자손을 내손으로 멸하지 아니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 맹세를 듣고서 사울왕이 회군한다. 하기야 사울왕이 욕심을 내어 다윗을 추격한다고 하더라도 다음 그림에서 보듯이 엔게디 골짜기는 남과 북으로 도망할 수가 있는 지점이기에 사울왕의 군대는 다윗을 잡지 못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대목은 워낙 중요하기에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훗날 예수 그리스도가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마5:44-45);
그리스도의 복음을 풀이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글이 다음과 같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12:19),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
인간관계가 이 정도의 큰 깨달음의 실천과 상대방의 회개로 온전히 새로워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가 아니하다. 궁궐로 되돌아간 사울왕의 생각이 다시 권력욕으로 불타게 되고 정적 다윗을 없애고자 혈안이 된다. 그리고 다윗은 고난의 도망자신세를 면하지 못한 부하들의 불평과 불만으로 그 심적 고통이 대단하다.
그러한 가운데 여호와께서 확실하게 늙은 사울왕을 처리하실 때까지 다윗의 도피생활이 계속된다. 이제 어떠한 일들이 또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다윗은 어째서 더 많은 고통을 받으며 눈물의 기도로 여호와 하나님께 부디 살려 달라고 매어 달려야만 하는 것일까?
그 해답은 아무래도 다윗이 불완전한 피조물이며 그의 백성들이 지도자인 다윗보다 여호와신앙이 뒤떨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다윗장군이 완벽한 여호와 신앙인이고 그의 부하들이 여호와 보시기에 의로운 자들이라고 한다면 다윗의 도피생활이 그토록 길어질 이유가 없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은 자신의 생각만 하지 말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의 공평과 공의가 무엇인지를 언제나 묵상해야 한다. 그 가운데 모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역사섭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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