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기도13(작성자; 손진길)
3. 사울왕이 다윗을 잡으려고 레위인과 유다지파를 탄압하다;
베들레헴 남쪽에서 다윗은 친구 엘하난 및 헬렙 그리고 헬렙의 부친인 바아나와 함께 브엘세바까지 남하한다. 젊은이들이 안전하게 그곳까지 피신하는 것을 보고서 그 옛날 유다지파의 장군출신인 바아나가 베들레헴 동남쪽에 있는 고향 느도바로 되돌아간다.
다윗은 브엘세바에 있는 큰누나 스루야의 집을 찾는다. 42세인 스루야는 지금 2남인 아비새 및 3남인 아사헬과 함께 집에 있다. 장남인 요압은 일찍 별세한 부친을 대신하여 바깥일을 본다고 외출한 모양이다.
요압의 선친은 베들레헴에 정착한 그나스 사람의 후손이다. 그런데 그 집안이 유다지파에서 유명하다. 왜냐하면, 그나스 사람으로서 유다지파의 대영웅이 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초대 대사사인 옷니엘이 그들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유다지파의 땅을 거의 확보한 갈렙 장군의 무덤은 에브라임지파의 땅 딤낫 세라에 있다. 그 이유는 평생 그의 절친인 여호수아의 묘 곁에 갈렙 자신이 묻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수24:33, 19:50);
하지만 갈렙의 자손들 가운데 요압의 직계조상들의 무덤은 베들레헴의 선산에 있다(삼하2:32).
그의 조상이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서 그런지 요압은 자신이 유다지파의 수호자라고 하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래서 그는 다윗장군을 도와서 유다지파가 이스라엘왕국의 대권을 차지하도록 하자고 적극 나선다. 그의 동생인 아비새와 아사헬도 그러한 마음으로 외삼촌인 젊은 다윗장군과 생사고락을 함께하고자 한다.
한편 다윗의 나이 많은 누나들이 멀리 브엘세바와 브엘라해로이에 와서 살고 있는 것은 베들레헴의 유지인 이새 곧 다윗의 부친과의 관계 때문이다. 그녀들의 친부는 이새가 아니고 나하스이다(삼하17:25). 모친이 이새와 재혼했기에 그녀들이 다윗의 누나가 된 것이다.
그녀들은 의붓아버지인 이새의 집을 빨리 떠나기 위하여 일찍 시집을 갔다.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에 와서 자리를 잡았다. 그녀들은 그곳 황량한 땅에서 아들들을 엄하고 강하게 키우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무력이 강하고 세력이 있어야 큰소리를 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목축사회인 유다지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스루야의 여동생인 아비가일이 더 멀리 브엘라해로이에서 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녀의 남편이 본래 이스마엘족속인 에델이기 때문이다. 에델은 아비가일과 결혼하면서 유다지파로 들어오고 그 이름도 달리 이드라로 부르고 있다(삼하17:25).
역사적으로 유다지파는 함께 살기를 원하는 다른 족속을 잘 받아들이고 있다. 일찍이 그나스 사람인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조상들이 유다지파가 되고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들인 겐족속도 유다지파에 편입이 된다(삿1:16). 그리고 시므온지파는 아예 유다지파와 같이 행동하여 집단적으로 유다지파의 남서부의 땅을 얻어서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다(삿1:17, 수19:1-9).
그렇게 포용력이 크기에 유다지파가 계속 팽창하고 있다. 그것이 작은 베냐민지파 출신의 왕 사울에게는 통치에 있어서 크게 위협이 되고 있다. 따라서 사울왕은 다윗장군을 추격하면서 동시에 유다지파를 효과적으로 탄압하고자 한다.
그 때문에 베들레헴의 유지인 이새는 아예 식솔을 이끌고 요단강 건너 모압 땅으로 피신하고 만다. 다행히 이새의 조모인 룻이 모압 출신이기 때문에 모압왕이 호의적이다. 따라서 이새는 물론 한때는 다윗장군도 모압왕의 허락을 얻어서 모압의 미스베 성읍에서 머무르게 된다(삼상22:3-4);
다윗이 큰누나 스루가의 3아들과 작은 누나 아비가일의 아들 아마사까지 자신의 휘하에 장수로 거두어 들인다. 그래서 함께 네게브 지역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는데 한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이 사울왕이 보낸 추격군이 그곳까지 남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측근들만 데리고 추격군의 의표를 찔러서 도리어 북상한다. 다윗의 애초 생각은 멀리 라마 나욧에 있는 대선지자인 사무엘의 선지동산을 찾아가서 그에게 몸을 의탁하는 것이다. 그곳에 잠시 체류하는 동안에 다윗은 사무엘이 여호와의 능력으로 사울왕은 물론 그가 보낸 군대를 전부 방언으로 물리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호와의 뜻은 그것이 아니다. 다윗의 도피생활 때문에 라마 나욧에 있는 선지자들이 전부 죽게 되는 불행을 피하고자 한다. 그래서 도중에 식량이 떨어진 다윗이 일행을 멀리 두고 혼자서 놉에 있는 대제사장 아히멜렉을 방문한다;
다윗이 초라한 행색으로 대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부탁한다; “저는 지금 사울왕의 밀명을 받아 지방을 순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눈에 뜨이지 아니하게 내 부하들을 멀리 숨겨두고 나 혼자 이곳에 왔습니다. 마침 먹을 것이 떨어져서 곤경에 처해 있으니 먹거리를 좀 주시지요”.
일찍이 사울왕 초기에 그를 모신 경험이 있는 아히멜렉은 놉에서 크게 멀지 아니한 도성 기브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울왕과 다윗장군 사이의 알력에 대하여 벌써 알고 있다. 하지만 모른 체하고 다윗장군을 돕고자 한다. 그만큼 레위인들이 유다지파와 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사장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성소의 진설병상에서 물린 떡덩어리를 5개나 한꺼번에 준다(삼상21:2-6). 그리고 그곳에 보관하고 있던 골리앗의 유품인 큰칼도 다윗장군의 요청에 따라 제공한다(삼상21:9). 얼마 후 그 때문에 아히멜렉과 놉 땅의 제사장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전부 사울왕에 의하여 진멸을 당하게 되고 만다(삼상22:18-19).
나중에 다윗이 그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살해의 장면에서 기적적으로 빠져나온 아히멜렉의 어린 아들 아비아달이 다윗장군에게 와서 그 비보를 전해준 것이다(삼상22:20-21). 다윗은 여호와를 직접 섬기고 있는 제사장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이방인 신하의 손을 빌려서 모두 잔인하게 죽이고 있는 사울왕의 처사에 몸서리를 친다.
당시 사울왕이 이스라엘 백성인 장수들에게 군대를 끌고가서 다윗의 도망을 도와준 놉 땅의 제사장들과 그들의 자손들을 모두 없애 버리라고 명령한다(삼상22:16). 하지만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무도 그 명령을 따르지 아니한다(삼상22:17). 그러자 에돔 출신으로서 장수이며 목자장으로 일하고 있는 도엑을 보내어 선민들을 살해한다;
그것은 이방인의 손으로부터 선민들을 보호하고 구원해야 하는 이스라엘왕국의 국왕으로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그때부터 사울왕의 가문을 멸절시키기로 확정하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10년의 세월을 더 주고 있다. 그것은 어째서 그런 것일까?
그 이유는 사울왕에게 동조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 때문으로 짐작된다. 백성들의 신앙수준이 바로 왕의 신앙수준과 직결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왕일가만 처벌하는 것으로는 완전한 신앙생활의 회복이 가능하지 아니하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모두 동참해야 비로소 자발적이고도 올바른 여호와신앙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한편, 다윗일행은 비록 피난생활이지만 요행히 살아남은 어린 아비아달을 자신들이 돌보고자 한다(삼상22:22-23);
그리고 훗날에는 아비아달을 자신들의 제사장으로 삼는다. 그 때문에 다윗장군을 돕고 있는 어린 대제사장의 아들 아비아달을 보는 사람마다 사울왕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대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제 사울왕이 제사장과 레위인들까지 적으로 삼고서 도피중인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혈안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왕국에 자신이 체류하게 되면 많은 레위인들과 유다지파의 백성들에게 희생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다윗과 그의 측근들이 블레셋으로 탈출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 망명을 요청하게 된다(삼상21:10).
참고로, 아히멜렉은 본명이 아히야인데 그는 사무엘의 스승인 엘리 대제사장의 증손이다. 아히야의 조부가 엘리의 차남 비느하스인데 그는 형인 홉니와 함께 실로의 언약궤를 블레셋과의 전장에 가지고 갔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이 패전한다.
그 결과 언약궤를 그만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형제는 전사하고 만다(삼상4:11). 그때 비느하스의 부인이 낳은 유복자가 이가봇인데 그의 친형이 아히둡이다(삼상4:19-21). 그 아히둡의 아들이 아히야인 것이다(삼상14:3);
그런데 이방족속이 성스러운 언약궤에 손을 대자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그 결과 언약궤를 이스라엘백성에게 되돌려주고 만다. 그래서 언약궤가 이스라엘왕국의 변방에 떠돌고 있다;
하지만 대사사나 초대왕 사울은 그 언약궤를 모시는 성막을 짓지 아니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아히야가 기브아에서 사울왕을 돕고 있다가 특청을 한다(삼상14:2-3). 자신이 기브아의 남쪽 인근에 있는 놉 땅으로 언약궤를 옮겨 성막을 짓고 잘 모시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 결과 아히야는 사울왕의 허락을 얻어 언약궤를 놉 지방에 옮기고 스스로 대제사장이 되어 자신의 이름을 아히멜렉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제사장만이 입을 수 있는 에봇을 놉 땅의 제사장들이 누구나 제작하여 입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무려 85명의 제사장들이 하나같이 율법의 규정을 어기고 제멋대로 에봇을 입고서 행세하고 있다(출29:5, 29-30, 민20:26-29);
그 결과 사울왕이 보낸 에돔사람 도엑의 칼에 함부로 세마포 에봇을 입은 자 85명이 전멸을 당하고 만다(삼상22:18, 왕상12:31, 왕하17:13-18). 그것은 초대 대제사장인 아론의 장남과 차남이 제사장 직무를 행하면서 율법에서 규정하지 아니한 불을 화로에 담아서 제멋대로 사용하다가 죽임을 당한 것과 같다(레10:1-3);
어쨌든 다윗장군과 그의 측근들이 블레셋 가드왕에게 망명을 요청하고 있다. 그것이 받아들여질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블레셋과 전쟁을 한 책임을 물어서 아기스 왕은 다윗장군을 살해하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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