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기도10(작성자; 손진길)
청년장군 다윗은 사울왕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스라엘왕국에서 자신의 목숨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유일한 창조주이시며 사람들의 인생과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사울왕의 핍박으로부터 다윗자신을 구원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사울왕의 박해가 다윗의 여호와신앙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고 있다고 하겠다.
이스라엘왕국의 국왕인 사울은 왕국내의 제1인자이며 최고권력자이다. 특히 사울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제 욕심껏 실행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안중에는 세자 요나단을 비롯한 어떤 왕자나 어떠한 신하라도 국왕인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진언을 할 수가 없다. 그러한 왕자나 신하는 즉시 국왕모독죄로 처형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울은 자신의 왕국에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무자비한 국왕이다. 그러한 사울왕의 명령에 따라 왕국의 모든 군대가 움직이고 있다.
그러므로 다윗이 비록 공주 미갈의 남편이며 사울왕의 사위라고는 하지만 사울이 군대를 보내어 다윗장군을 없애고자 하면 언제나 죽을 수밖에 없는 마치 파리 목숨과 같은 연약한 운명인 것이다.
반년 전에 다윗장군은 사울왕에게 악령이 깃들어 그가 난동을 부리고 있을 때에 신하들의 간곡한 청으로 사울왕 앞에서 수금을 탄 적이 있다. 2년전 처음 발병의 경우보다 이번에는 더 심하다. 그래서 악령을 쫓아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
그 사이에 평소 청년장군 다윗을 시기하고 있는 사울왕이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그가 두번이나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던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말미암아 다윗이 기적적으로 거듭 그 창을 피하게 된다;
제 정신으로 돌아온 사울왕이 그 다음에는 다윗을 자신의 부마로 삼아 곁에 둠으로써 그를 확실하게 견제하려고 한다. 청년장군 다윗은 그 올무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실제로 4개월 전에 사울왕이 다윗을 왕궁으로 불러서 말한다; “다윗장군은 들으라. 그대의 전공을 생각하여 내가 늦게 얻은 장녀 메랍 공주를 아내로 줄 것이니 그리 알라”.
그러자 청년장군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 놓고 고사한다; “국왕전하, 저의 집안은 귀족의 가문이 아닙니다. 천한 백성의 가문이니 감히 제가 공주의 남편이 될 수가 없습니다. 부디 황망한 왕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 말을 듣자 이상하게도 사울왕이 다윗을 왕명을 어긴 죄로 처형하지를 아니한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신 것이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있는 동안에 사울왕은 첫째 공주인 메랍을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내고 만다.
그런데 그 다음에 또 다윗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1달전에 사울왕이 다시 청년장군 다윗을 불러서 이번에는 두번째 공주인 미갈과 혼인을 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말한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미갈이 부친에게 자신이 미소년 장군인 다윗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차제에 혼수감으로 다윗에게 블레셋 군사 100명을 홀로 쳐죽이고 그 목을 가지고 오라고 사울왕이 명령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한 왕명을 거역하면 다윗은 ‘천하의 겁쟁이’라고 소문이 나고 말 것이다. 겁쟁이가 아님을 증명하자면 1대 100으로 전투를 해야만 한다. 그때는 분명히 블레셋 군사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울왕은 블레셋의 손을 빌려서 정적을 해치우게 된다.
한마디로, 참으로 무서운 ‘차도살인’의 흉계이다. 그 흉계를 벗어나고자 청년장군 다윗이 이번에도 자신의 신분이 천하다고 국혼을 극구 사양한다. 그러나 어림도 없다. 사울왕의 의지가 확고하다. 따라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한다; “저에게 기름을 부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주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만 믿고서 적진으로 뛰어 들겠습니다”.
여호와의 뜻은 다윗을 이스라엘왕국의 제2대 국왕으로 만드는 것이다. 만약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그 말씀의 뜻과 분부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그를 위대한 국왕으로 그리고 훌륭한 신앙인으로 살 수 있도록 보호하고 인도하신다.
하지만 그 반대로 다윗이 행동할 때에는 어떻게 되는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른 자를 대신 세우고 그를 버릴 것이다. 그렇지만 한번의 기회를 훗날 다윗에게 더 주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즉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철저하게 회개한 후에 하나님의 처벌을 달게 받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어쨌든 청년장군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소수의 부하들과 함께 블레셋의 군사의 목을 따기 위하여 적진에 숨어든다. 다윗은 말을 달리면서 야습을 감행하여 블레셋의 군사들을 쓰러뜨린다. 그리고 그들의 수급을 취한다;
마침내 200개의 목을 취하여 사울왕에게 나타난다(삼상18:27). 그것을 보고서 사울왕이 깨닫는다; “청년장군 다윗을 여호와께서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구나. 내가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되는구나”.
그렇지만 정적을 제거하는 일에 집요한 사울왕이다. 그는 자신이 손을 대지 아니하고 블레셋의 손으로 청년장군 다윗을 죽이고자 다시 획책한다. 그래서 아예 블레셋을 국경지대에서 막도록 지시한다. 다윗은 자신의 기병 1,000명만 이끌고 블레셋 국경지대에서 근무하게 된다.
청년장군 다윗이 담당하고 있는 그 지역이 가장 위험하다. 블레셋 족속 가운데 가장 용맹한 방백들이 군대를 지휘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투가 그칠 날이 없다. 기나긴 전투로 다윗의 군대가 지쳐만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왕이 고의로 다윗의 군대에 대한 보급과 군사지원을 일체 중단한다.
그러한 어려움에 처해있지만 다윗의 군대가 이상하게도 승승장구한다. 적의 보급품을 얻어서 전투를 계속한다. 거친 전쟁에서도 별로 전사자가 없다. 그것을 보고서 사울왕이 마지막 수단을 사용한다. 그것이 바로 전선사령관에게 밀명을 내리는 것이다; “다윗을 암살하도록 하라”;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충신을 암살하는 일은 이스라엘왕국의 국왕으로서는 해서는 안되는 범죄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용서함을 얻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일에 협조하는 자도 여호와의 용서를 얻을 수가 없다.
현지사령관 아브넬이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아브넬이 은밀하게 세자 요나단을 만나 상의한다;
그렇게 여호와께서는 아브넬 사령관에 이어서 세자 요나단을 움직인다. 그 결과 세자 요나단이 두가지 조치를 취한다;
첫째, 암살단의 시야에서 다윗을 벗어나게 하고자 사전에 그를 은신하게 한다. 둘째,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부왕에게 읍소를 한다; “여호와께서 청년장군 다윗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적의 침략으로부터 수없이 구원하고 있는데 이제 부왕께서 그를 죽이시면 그 죄를 어찌 감당하시겠습니까? 그러니 다윗을 살려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사울왕이 이상하게도 그렇게 하겠다고 선선히 말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세자 요나단과 사울왕 모두 그 이유를 모른다. 그러나 변함이 없는 사실은 세자 요나단은 구국의 영웅인 청년장군 다윗을 살리고자 하고, 사울왕은 기회를 보아 다윗을 다시 죽이고자 한다는 것이다.
세자 요나단이 일단 암살의 위기가 지나갔다고 다윗에게 알려준다. 그때부터 다윗은 왕궁에도 출입하고 왕도에서 공주 미갈과 함께 부부생활을 하면서 블레셋이 쳐들어오면 전선으로 투입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더 큰 위험이다. 이번에는 사울왕이 직접 다윗을 죽이려고 나서기 때문이다.
사울왕에게 악령이 찾아오면 신하들이 어쩔 수가 없어서 청년장군 다윗에게 연락한다. 유일한 치유방법이 다윗이 연주하는 수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이 열심히 수금을 연주하는데 전혀 효과가 없다. 순간 사울왕이 험악한 얼굴을 한 채로 단창을 집어서 지척에 있는 다윗에게 힘껏 던지고 만다;
다윗이 정신없이 그 단창을 피하고 보니 그것이 벽에 깊이 박혀서 부르르 몸을 떨고 있다. 이제는 다윗의 수금도 효과가 없다. 그러니 그 자리에 그냥 있으면 단창공격에 다윗의 목숨이 위험하다. 따라서 다윗이 황급하게 피신한다.
자택에 돌아온 다윗이 아내인 미갈 공주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다윗을 사랑하는 미갈이 그를 살리고자 한다. 그래서 급히 창에서 밧줄로 내려주어 피신을 시키고나서 도망할 시간을 벌어준다;
마치 다윗이 집에서 병이 든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탄로가 나고 만다.
공주 미갈이 부친인 사울왕에게 변명한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저를 죽이겠다고 다윗이 위협하므로 제가 어쩔 수가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용서해주세요”. 그 말을 들은 사울왕은 다윗을 발견하면 즉참하라고 엄중하게 신하들에게 왕명을 내리고 만다. 그리고 미갈과 다윗과의 혼인을 무효라고 선언하고 그녀를 다른 곳으로 다시 시집을 보내고 만다.
이제 다윗은 혈혈단신으로 도망자신세가 되고 있다. 그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 구체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를 어떻게 지키고 또한 이스라엘왕국의 국왕으로 만드는 것일까?
무엇보다 일국의 국왕이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한 개인에 불과한 자를 쳐죽이려고 한다. 그러니 다윗의 목숨은 마치 태풍 앞에서 일렁이고 있는 호롱불과 같다. 그는 어떠한 여호와신앙으로 그 위기를 벗어나게 되는 것일까? 사실은 그것이 주요 관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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