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비밀(손진길 소설)

王의 비밀69(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1. 6. 21:02

王의 비밀69(작성자; 손진길)

 

서울의 명문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는 윤하선이 특히 한국의 역사 그 가운데 근세조선의 역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 이유는 1388년에 위화도 회군을 하고 1392년에 역성혁명에 성공하여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조상들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윤하선이 종진국의 흔적을 겨우 찾고 있기 때문이다;

압록강 상류의 혜산성에 왕도를 두고 북으로는 하얼빈, 서로는 심양까지를 지배했던 야율종진의 종진국이 그가 1189년에 젊은 나이로 별세하고 나자 그만 사분오열이 되고 만다. 비록 양자로 삼은 야율금호가 야율 재상과 오호대장 그리고 호위장군들의 도움으로 한동안 종진국을 유지하지만 여러 여진족의 반란으로 추장들과 군벌들이 득세하고 만 것이다.

퉁우람 대장이 자신의 기마병을 이끌고 지방의 반란을 진압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그는 혜산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만 패잔병을 이끌고 금강국의 왕도인 의주성으로 도피하고 만다. 그 이유는 그곳에 그의 여동생인 퉁예란 장군이 이린의 아내가 되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퉁우람 대장과 그의 아내인 하주옥 그리고 금강국의 대신이며 야율종진의 절친인 이린과 그의 아내인 퉁예란 장군이 의주성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자연히 퉁우람의 아들인 퉁한칼과 이린의 아들인 이양무가 친하게 지내게 된다. 그러한 인연이 두 집안의 자손들에게 대대로 이어지게 된다.

이양무의 5세손이 바로 이성계이다. 그리고 퉁한칼의 5세손이 퉁두란이다. 이성계는 부친 이자춘과 함께 오늘날의 함흥인 함주로 옮겨가서 그곳의 호족이며 군벌로서 득세하게 된다. 그와 비슷하게 퉁두란은 영주성으로 이주하여 그곳의 여진족 추장으로 군림하게 된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퉁두란은 개마고원을 호령하는 서여진의 추장이 되고, 이성계는 함주와 그 동편의 해안에서 동여진을 지배하는 군벌이 된 것이다.  

그들의 세력이 만만하지 아니하기에 원나라 말기에 황제가 회유책을 쓴다. 서로 상부상조하자는 것이다. 그렇지만 완전한 자치권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진족의 추장과 군벌인 그들이 여전히 원의 지방조직인 쌍성총관부의 감독을 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래가 불안하다;

그러한 시점에 1350년경 고려의 공민왕이 함께 원의 지방조직인 쌍성총관부를 몰아내자고 은밀하게 제안을 해온다. 원의 황실의 사정에 밝은 공민왕이 말하기로 서로 힘을 합치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진 추장인 퉁두란과 동여진의 패자인 이성계가 행동을 함께하기로 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종진국에서 시작이 된 두 집안의 인연이 후대에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야율종진이 이 세상을 떠난 1189년으로부터 200년이 되는 해에 놀라운 사건이 고려에서 발생하게 된다. 이성계와 퉁두란이 1388년에 함께 위화도에서 회군하고 4년후에 역성혁명에 성공하여 근세조선을 세운 것이다.

당시 공신이 된 퉁두란은 아예 조선인이 되고 청해 이씨가 되어 그 이름이 이지란 장군으로 불리게 된다. 참고로,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와 그의 의형제인 이지란의 초상이 다음과 같다;

그와 같은 사실을 추론하면서 윤하선은 근세조선의 역사에서 종진국의 건국이념을 찾아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모두가 잘 사는 자유와 평등이 있는 나라 종진국의 건국이념을 실천하는 조선의 왕이 있는지를 파악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윤하선이 얻은 결론은 그러한 왕은 세종 영조를 빼고서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가장 훌륭한 성군으로 불리는 조선의 국왕 세종의 모습이 다음과 같다;

사실 왕의 비밀이란 별 것이 아니다. 왕관의 무게를 비겁하지 아니하게 정당한 방법으로 감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국왕이 만백성의 어버이로서 자식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고 그들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잘못된 역사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한 군주가 백성들이 원하는 진짜 왕이 된다.

그런데 근세조선의 많은 왕들이 백성과 하늘이 원하고 있는 그러한 왕의 비밀을 모르고서 제멋데로 통치를 행하고 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신이 잘못한 모든 책임을 신하와 백성들에게 돌리고 만다. 그리고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이 전혀 없다. 국왕이 그러하니 권력을 행사하는 신하들도 마찬가지이다. 나아가서 그 후손들마저 그러하다. 조상들이 한 일이니 자신들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그와 같은 모습을 윤하선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서 똑똑하게 보고있다; 첫째가, 선조의 경우이다. 둘째가 인조의 경우이다. 셋째가 고종의 경우이다. 그러므로 윤하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파악하고 있는지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시는 동일한 역사적인 잘못을 반복하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로, 선조는 특이하게 왕이 된 자이다. 그는 왕의 아들이 아니었으며 그저 왕족의 한사람에 불과했다. 그에게 왕좌를 물려준 명종은 세자가 일찍 죽고 아들이 없다. 그는 이복형제들의 집안에서 똑똑한 조카를 양자로 삼고자 한다. 그러한 명종의 눈에 부친인 중종의 7번째 아들인 덕흥군의 3남인 하성군이 들어온 것이다;

명종이 중종의 적자로서는 마지막이다. 그러므로 당시 명종의 이복형제들은 전부 중종의 서자들이다. 적자들이 있는데 서자가 그것도 서자의 아들이 왕이 된다고 하는 것은 진실로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그런데 그 별을 하성군이 따게 된 것이다. 그것은 하늘이 하성군선조에게 준 기적의 선물이다.

그러한 하늘의 선물을 받아 국왕이 되었다고 하면 선정을 베풀어야 한다. 그런데 선조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일본이 명나라를 치겠다고 길을 빌리자고 했을 때 제대로 일본의 정계의 형편을 살폈어야 했는데 그것이 아니다;

그저 종주국인 명나라만 믿고서 일본에 큰소리를 쳤다가 한양을 적에게 내주고 의주로 제 한 목숨 살겠다고 도망을 친 군주와 대신들이다;

그 다음에는 서자인 광해군에게 임시로 세자 자리를 주고 조정을 쪼개어 일본군과 싸우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자신은 의주에서 계속 명나라 황제에게 원군을 보내어 달라고 요청한 것이 고작이다. 명나라는 자신의 영토에 일본군이 발을 붙이기 전에 조선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조선천지가 일본과 명나라의 전재터가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의병장들을 모함하고 때로는 죽이면서 자신의 권력만 유지하려고 한다. 더구나 일본군을 몰아낸 것은 이순신 장군이나 의병장의 활약이 아니라 오로지 대국인 명나라의 군대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권좌를 지키고 수치스러운 조선이라는 나라를 유지한 국왕이 바로 선조이다.

둘째로, 그러한 선조의 작태를 재현한 군주가 인조이다. 그는 반역에 성공하여 선조의 아들인 국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된다. 그는 전왕을 패주라고 폄하하고 귀양을 보내면서 광해군이라고 조선의 역사에 기록하고 만다. 그렇지만 정작 인조는 그는 국제정세를 살피고 대처함에 있어서 광해군보다 못한 위인이다.

광해군은 분조를 하여 일본군과 싸운 경력이라도 있지만 인조는 권력욕만 가졌지 전혀 국제정세를 모른다. 그저 명나라에 사대만 하면 모든 일이 순조로운지 알고 있는 한심한 군주이다. 그 결과 욱일승천하는 청나라의 침입으로 백성들이 엄청난 희생을 당했으며 그 자신도 삼전도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추태를 보이고 만다;

인조는 외침을 초래한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신흥국 청국과의 외교를 잘못하여 나라가 절단이 나버렸는데 그에 대한 국왕의 책임을 하나도 지지 아니한 것이다. 따라서 청나라에 잡혀갔다가 겨우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들을 환향녀라고 부르면서 창녀취급을 하고 만다;

슬픈 환향녀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인조이며 대신들이고 또한 당시의 양반들이다. 그런데 그 책임을 도리어 힘이 약한 백성들에게 그것도 포로가 된 여인들에게 돌리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요즘의 말로 하면, 그것이 무슨 나라인가 싶다. 그러한 역사가 인조로서 끝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셋째로, 더 기가 막힌 역사가 고종의 시대이다. 고종과 그의 부친인 흥선대흥군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사실 고종은 조선의 왕이 될 수가 없는 그저 전주 이씨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아래의 도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흥성대흥군의 조부인 이병원과 증조부인 이진익이 전부 왕족이라는 특권을 잃어버리고 그냥 전주 이씨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조 李倧
1595-1623-1649
          능창대군 李佺
1599-1615

 

 
                           
 
                 
 
소현세자 ?
1612-1645
  효종 李淏
1619-1649-1659
  인평대군 
1622-1658
 
 

 
                               
 
               
 
현종 
1641-1659-1674
          복녕군 李栯
1639-1670
   
 
 
 
                           
 

 
숙종 李焞
1661-1674-1720
          의원군 李爀
1661-1722

 

 
                           
 
             
 
영조 李昑
1694-1724-1776
  연령군 
1699-1719
  안흥군 
1693-1763

 

 
                           
 
   
 
장조 李愃
1735–1762
  낙천군 李縕
1720–1737
  이진익
1728-1796

 

 
                             
 
           
 
은언군 李裀
1754-1801
  은신군 
1755-1771
  이병원
1752-1822

 

 
                             
 
     
 
전계대원군 李壙
1785-1841
          남연군 李球
1788-1836

 

 
                             
                             
철종 
1831-1849-1863
          흥선대원군李昰應
1820-1898

 

 
                         
 
                 
 
                고종 李熙
1852-1863-1907-1919

 

 
                                                                                             

 

그런데 살다가 보면,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찾아온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의 부친인 이구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는 천우신조로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신군의 사후 양자가 되어 다시 왕족이라는 군의 칭호를 받게 된다. 그가 남연군이라고 불리게 되자 그의 아들인 이하응도 흥선군이 된다. 다시 왕족들이 된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조정에서는 외척세도정치가 한창이다. 오래 집권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에 시달린 왕대비 조씨가 섭정을 목적으로 흥선군과 짜고서 그의 차남을 자신의 양자로 삼고 철종의 뒤를 잇게 한다. 그러나 흥선군은 왕대비 조씨를 물리치고 자신이 섭정을 함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살아 있는 대원군의 통치 시대를 연다.

대원군의 십년세도를 종식시킨 장본인이 고종의 왕비인 민비이다. 따라서 고종은 부친 덕택에 그냥 조선의 국왕 자리에 앉았으며, 이제는 아내 덕분에 친정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무주물을 남의 노력으로 얻었기에 고종이 국왕으로서의 자질을 전혀 못 보이고 있다. 그저 주운 물건을 애지중지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한 고종과 그의 뒤를 이은 순종이기에 그 시대는 나라의 주권을 일본제국에게 넘겨 주면서도 국왕의 일가만 편하면 그만이라고 하는 참으로 무책임하고 몰염치한 군주들의 시대이다. 그것은 마치 그 옛날 중국 촉나라의 제2대 황제 유선의 소인배적인 행태를 재현하고 있는 것과 같다.

국왕들이 그러하므로 나라가 일제에 의하여 망하고 말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통탄하면서 자신의 잘못이라고 회개하는 사대부들을 찾아보기가 힘이 든다. 그러니 조선의 백성들이야 자신들에게 망국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를 아니하고 살아간다.

그러한 몰염치가 대물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오늘날에도 역사적인 잘못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풍조가 너무나 약하다. 일례로, 조선의 왕족의 후손이라고 족보를 자랑하면서 정작 조선이라는 나라를 망친 책임의 일환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다. 그렇게 스스로 조금도 반성하지 아니하고 살아들 가고 있으니 참으로 역사 앞에 목이 곧은 백성들이다.

한국의 근세사를 연구하면서 역사학도인 윤하선이 그렇게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군주의 책임을 인식하지 아니하는 국왕은 존재할 가치도 없으며 역사적인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왕이라고 역사책에서 불리고 있으니 그것이 역설적으로 왕의 비밀인가 보다… (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