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비밀(손진길 소설)

王의 비밀66(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1. 6. 20:28

王의 비밀66(작성자; 손진길)

 

훗날 세종이라고 불리게 되는 대금의 제5대 황제인 완안옹은 참으로 영특한 군주이다. 그는 작년에 압록강 이남의 혜산성에서 종진국을 세운 야율종진이 완안족의 고향인 만주의 완안부를 정복하고 그 세력이 계속 서진하여 마침내 만주의 관문인 심양까지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 경악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베이징으로 불리고 있는 당시 대금의 수도인 중도 또는 연경에서는 연일 대신들이 열띤 토론을 전개하고 있다. 다수의 주장이 종진국의 야율종진을 그냥 두어서는 안되고 즉시 대규모 원정군을 보내어 그를 토벌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종의 판단은 그것이 아니다;

영민한 세종은 그 사태를 참으로 냉정하게 보고 있다. 그가 판단하고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로, 1182년인 지금은 양자강 유역을 차지하고 있는 남송이 최고전성기이다. 훗날 효종으로 불리게 되는 남송의 제2대 황제가 장강의 치수사업에 성공하게 되자 농업생산량이 급증하고 한족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진작에 7천만명을 넘어서고 훗날에는 1억명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반면에, 대금의 세종이 다스리고 있는 땅에서는 황하에 대한 치수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황하의 격랑에 실리어 온 상류의 황토가 매년 강유역의 경작지를 덮어버린다. 또 하나는, 남에서 북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남으로 흘러오는 황하의 물줄기가 북쪽의 얼음 때문에 봄철에 크게 범람하고 만다. 그러니 치수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홍수와 황토로 말미암아 계속 흉년이 찾아온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는,  300만명에 불과한 자신의 여진족으로써는 4천만명이나 되고 있는 회수 이북의 한족을 다스릴 수가 없다. 그래서 거란인들까지 관료로 활용하고 있는데 그들의 수가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여진족이나 거란족이나 모두 유목민 출신들이라 황하유역에서 농사를 짓는데 서툴기 그지없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빈궁해진 그들을 대금 조정에서 모두 먹여 살려야 하는 형편이다. 세종은 어쩔 수가 없어서 부자인 토착 한족들에게 세금을 많이 징수하고 있다. 그 때문에 억압을 받고 있는 한족의 분위기가 좋지 아니하다;

그러한 판국에 대금의 조정이 여진족과 거란족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 기마병을 수십만명 만주로 원정군으로 보내게 되면 대금 자체의 안보가 위험하다. 영특한 세종이 다음과 같이 우려하고 있다;

첫째는, 남송의 군대가 회수를 넘어 대금을 공격할 것이다. 팽팽한 균형이 깨어지므로 남송의 북진은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대금 내부의 한족들이 봉기할 것이다. 엄청난 세금 때문에 크게 시달리고 있으며 유목민 왕조에게 눌리고 있는 그들이 남송과 연합하여 내부 봉기를 하는 것이 영특한 대금의 황제 세종의 눈에 환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한 판단으로 대금의 황제가 조정의 소수의견인 화친론을 채택하고 만다. 황제의 사신을 심양으로 보내어 종진국의 왕인 야율종진을 심양왕으로 봉하고 그에게 만주를 지배할 수 있는 정통성을 대금 황제의 조서로 부여하고 만다. 세종은 그렇게 야율종진을 회유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대금의 황제인 세종보다 더 머리가 좋은 야율종진이 그러한 세종의 정책결정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벌써 따지고 있다;

첫째로, 만주는 땅은 넓지만 경제적으로 빈곤하다. 추운 날씨 때문에 농업 생산성이 높지 못하여 넓은 땅에 유목을 영위하고 있는 주민이 대부분이다. 결국  인구가 많지 못하여 기껏해야 7백만명 정도이니 중원을 차지하여 5천만명의 인구를 목전에 두고 있는 대금의 입장에서는 무시해도 된다는 세종의 생각일 것이다.

둘째로, 만주의 새로운 실력자가 된 야율종진을 대금과 제휴하는 세력으로 만들 수만 있다고 하면 대금으로서는 부유한 남송의 위협을 상당히 감소시킬 수가 있다고 세종이 보고 있을 것이다. 남송은 바다 건너 종진국과 제휴하기가 힘들지만 대금은 연경심양이 가까우니 야율종진과 친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러므로 야율종진이라고 하는 패를 정벌하여 버리는 것이 아니라 대금의 황제가 그를 회유하여 손에 쥐고 있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셋째로, 대금의 제5대 황제인 세종은 참으로 제국의 통치자로서 경륜이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1171년에 황제자리에 올라 벌써 12년째 북부 중원의 대금을 지배하고 있다;

그가 볼 때에 야율종진의 건국이념이 너무 이상적이다. 백두산의 정기를 받은 모든 족속은 자유와 평등을 함께 누려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배족속과 피지배족속의 차이가 없다고 하는 대혼란에 빠지고 만다. 현실적으로, 이 세상에 지배세력이 없어지면 중구난방이 되고 모든 국가의 질서가 깨어지며 마침내 무정부상태가 되고 만다.

 요컨대, 권력을 결집하고 국가의 가치를 올바르게 배분할 권위체가 없는데 어떻게 국가가 계속 유지되고 발전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냥 내버려두더라도 세월이 지나가면 종진국은 덧없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것이 뛰어난 대금의 황제인 세종의 판단일 것이다;

과연 그와 같은 미래에 대한 생각을 야율종진이 개인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다. 야율종진이 심양성에 머물면서 대금과 화친이 이루어지자 그때부터 계속 그 생각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신이 사라지고 나면 만주를 경영하는 종진국의 건국이념이 과연 뿌리를 내릴 수 있겠는가?하는 질문이다. 그 대답은 아무래도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건국이념이란 것이 너무나 시대를 앞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야율종진 자신은 그러한 이상적인 건국이념을 제창한 군주이며 종진국의 건설자이므로 그 이념에 충실하게 국왕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함께 종진국을 건설한 공신들과 신하들이 동참하고 헌신할 것이다. 그리고 완안웅 형제들과 대금의 지배 아래에서 억눌리고 착취를 당했던 여러 여진족들이 그러한 자유와 평등의 국가를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 세대로 넘어가게 되면 국가의 힘을 결집할 수 있는 권위체계가 중앙으로 집중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방으로 분산이 되어 있기에 분명히 대혼란을 겪을 것이다.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백성들의 역량이 가까운 미래에 갖추어 질 것인가?야율종진은 그것이 어렵다고 본다.

그러므로 결국, 자신의 건국이념도 장차 퇴색하고 말 것이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가? 여러 지방의 족속과 군벌들이 나라의 권력을 쪼개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서로 지배 족속이 되고자 전쟁을 벌일 것이다. 그러한 미래를 통찰하면서 종진국의 국왕인 야율종진이 심양성에서 그리고 수도인 혜산성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실제로 훗날 야율종진이 떠나고 나면 만주의 역사가 그렇게 진행이 되고 만다. 그러나 그것은 수십년 후의 일이다. 이제부터는 그 사이에 어떠한 사건들이 전개가 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차례이다.

과연 종진국의 분열은 어떻게 도래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흔적은 어째서 고려나 중원의 역사책에 기록이 되지 못하고 그냥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그렇지만 종진국의 역사는 분명히 신기루처럼 그리고 이해하기 힘든 역사적인 사실을 풀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로 아직도 남아 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11825월에 야율종진이 심양성을 정벌한다. 그는 2달에 걸쳐서 8만명이나 되는 대금의 투항군을 강도높게 교육시키고 훈련을 시켰다. 그들에게 종진국의 건국이념을 뼈에 새기게 한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완안족에 의하여 차별을 받았기에 야율종진의 주장에 크게 호응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출신성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능력만 있으면 승진하고 출세를 할 수가 있다고 하는 희망에 부풀고 있다.

그들을 전부 종진국의 기마병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여 편입을 시키고 있는데 7월말이 되자 대금의 중도에서 심양성으로 황제의 칙사가 도착한다;

그들이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왔는데 그 내용이 야율종진을 만주의 지배자로 인정하여 심양왕으로 책봉한다는 것이다.

그 칙서의 내용을 보고서 야율종진을 보좌하고 있는 2명의 호위장군과 5명의 기마대장 그리고 심양성주인 팽호남이 분노를 터뜨린다. 그리고 모두가 말한다; “대금의 황제와 우리의 주군은 동일한 군주이다. 감히 자기는 황제이고 우리의 주군은 일개 왕으로 봉한다고 하는 망언을 하고 있으니 연경을 정벌하고 혼을 내주어야 한다”.

그러나 야율종진의 생각은 그들과 다르다. 지금 대금은 남송의 번영과 여러 주변 유목국가들의 노림 그리고 내부 한족의 저항의식 등으로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따라서 영리한 세종이 자신을 회유하자는 것이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앞으로 평화는 정착이 된다.

야율종진은 이제 시간을 벌어서 종진국의 체제를 제대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 모습을 보고서 은밀하게 하공영 대장과 혜산성의 재상 야율상이 크게 환영한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야율족이나 동서 여진족의 군사보다 동북여진의 군사의 수가 월등하게 많기에 그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심양에서 얻은 8만명의 대금의 군사가 대단한 위협이 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불안요소를 빨리 제거하기 위하여 나라의 기틀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 대금 황제의 화해를 받아들이고 종진국의 국왕과 신하들이 그 일에 전념하는 것이 순리인 것이다. 그러한 깊은 생각으로 주군 야율종진이 결단을 내린 것이니 그 용단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야율종진은 역시 군부에서는 하공영 대장이 자신의 의중을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직감하고 있다. 그리고 재상인 야율상이야 본래 그 정도로 경륜과 식견이 뛰어난 인물인 것이다. 그래서 그해 10월말에 야율종진이 자신의 기마병 4만명을 이끌고 수도인 혜산성으로 돌아온다. 수도의 주민들의 환영이 대단하다.

그러나 야율종진은 혜산성의 궁전에서 아내인 왕후 야율애령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국사에 전념하고 있다. 매일같이 재상 야율상과 함께 종진국의 법령을 제정하고 경제적인 번영을 가져올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그렇게 지내고 있는 그해 곧 118212월에 의주에서 귀한 손님이 찾아온다. 그가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