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비밀(손진길 소설)

王의 비밀56(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1. 4. 13:53

王의 비밀56(작성자; 손진길)

 

7. 종진국의 성립

 

야율종진이 원정군 2,400명과 친위대 200명을 이끌고 혜산성으로 개선하자 백성들의 환호가 대단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완안족과 대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준 은인이라고 야율종진과 그의 부대를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자면, 여진족의 한 갈래인 완안족의 추장 아골타와 그의 동생인 오걸매가 연해주에 살고 있는 흑수말갈을 치고 동북여진을 장악한 후에 1115년에 대금을 세웠기에 여진족동북여진이 바로 대금의 주도세력인 것으로 비치고 있다;

그러나 내부사정을 살피게 되면 전혀 그것이 아니다.

아골타오걸매는 정복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자신의 종족인 완안족이 아닌 기타 여진족에 대해서는 엄청난 수탈을 자행한 것이다. 장정들을 징집하여 군대로 끌고 갔으며 전쟁물자를 확보하기 위하여 세금과 공출을 과다하게 부과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기타 동북여진족의 반발이 만만하지가 아니하다.

더구나 완안족 내부에서도 아골타와 오걸매의 정복전쟁을 찬성하는 집안과 그러하지 아니한 가문들로 나누어진다. 그 가운데 찬성하는 집안들은 대금이 요나라를 서쪽으로 밀어내고 송나라를 남쪽으로 밀어냄으로써 1127년에 만주전체와 중원의 북부를 차지하자 중원의 연경으로 대거 이주하고 만다. 물론 동북여진족 가운데에서도 대금을 지지하는 여진족 세력들은 중원으로 함께 이주했다;

 

그러므로 동북여진의 땅에 그대로 남아 있는 여진족은 대금의 팽창정책을 크게 환영하지 아니한 백성들이다. 그런데 몇 십년이 지나 1172년에 대금의 황족인 완안웅이 갑자기 동북여진의 완안족 추장이 된다. 그는 일가인 완안옹이 신하들의 옹립으로 1171년에 반역에 성공하여 대금의 제5대 황제로 즉위하게 되자 그 덕분에 대단히 출세를 한 인물이다.

고향 하얼빈에서 졸지에 황족이 된 완안웅은 새로운 황제 완안옹의 은혜로 완안족의 추장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자 그는 1174년부터 자신의 동생들과 함께 대금의 만주병력을 동원하여 다른 여진족들을 정벌하거나 다시 억압하고 있으니 그것을 만주의 토박이들은 좋아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중원의 절반을 다스리고 있는 대금이 민족별로 계급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제1계급이 여진족, 2계급이 거란족, 3계급이 한인, 4계급이 발해인이다. 여기서 발해인이라고 하는 것은 발해의 후손들이라는 의미이다. 그 대목에 대한 금나라의 정책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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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는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데다가 여진족이 한족보다 적었다. 그래서 군사력을 유지하려고 여진족을 보호·우대했고, 민족을 각각 분리 통치했다. 여진족·거란족은 맹안·모극을 통해 편성했고, 한족·발해인 주현제로 통치했다. ·현의 장관은 한인 관료 임명해 자치를 권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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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1년에 즉위한 대금의 제5대 황제인 세종이 당시 1180년대에 대금의 최고 번영기를 이루고 있지만 그러한 민족별 차별정책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발해의 후예들인 한민족과 말갈족 그리고 기타 여진족들이 대부분 완안족의 팽창정책과 억압정책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완안옹의 모친이 발해인이지만 그 민족차별정책을 폐지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와 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야율종진야율상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왜냐하면, 7년전에 완안족의 추장인 완안웅이 대금의 만주군사를 이끌고 남하하여 서여진을 치고 끝까지  저항하는 야율족을 아예 멸망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당시 야율족의 추장인 야율종이 전사하고 그 가족들이 처형되었다. 천우신조로 그 외동딸인 야율애령이 살아남아 고려로 흘러 들어와서 지금 야율종진의 아내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야율상의 처자식도 그 전쟁으로 말미암아 전부 죽고 만 것이다. 지금 야율상은 그 전쟁으로 과부가 된 금하란과 재혼하여 살고 있다.

지난 연말과 연초에는 야율종진과 야율상이 대금의 큰 도시를 여행하면서 발해인을 차별하고 있는 대금의 정책을 현지에서 확인한 바가 있다. 그래서 야율종진은 야율상의 도움을 받아 종진국의 수도를 혜산성으로 정하면서 이제는 정식으로 동북여진을 지배하고 있는 완안웅의 세력을 치고 억압받는 여진족은 물론 발해인들을 전부 해방시킬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렇게 전쟁의 명분을 확실하게 선포한 야율종진과 야율상이다. 건국이념을 그와 같이 선포한 후에 야율종진은 혜산성에서 날을 정하여 대금과 달리 여러 민족 사이의 평등을 구현하는 종진국의 성립을 백성들에게 선포한다. 그리고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스스로 종진국의 국왕으로 취임하고 야율상을 재상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군부에는 최상층부에 퉁대장, 왕대장, 팽대장 등 3사람의 기병대장을 두고 그 아래에 참모조직으로 여러 명의 장군들을 두도록 한다. 그리고 장군들의 휘하에는 여러 백부장을 두도록 편제를 마련하고 또한 적임자를 임명한다. 그들이 부하들을 훈련시켜 정복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강군으로 만들고 있다. 그렇게 한 결과 각 대장은 1,000명씩의 기마병을 호령하게 된다.

야율종진이 출정하기 전에 자신의 제자들은 물론 군부의 백부장 이상의 지휘관들을 별도로 모아서 자신의 무예를 전수하고 있다. 야율종진은 자신이 오래 익히고 있는 심법을 그들에게 먼저 전수한다. 그 심법을 습득하여 내공을 키우게 되면 나중에는 내력을 주입하여 무기를 사용하게 된다. 그 방법을 야율종진이 지휘관들에게 자세하게 가르치고 또한 시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배우는 것은 단기간에 가능하지만 당사자가 그것을 매일같이 익혀서 스스로 그 효과를 보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하지만 그 비법을 배우고 아니 배우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혀 그러한 경지를 모르고 있는 무술인과 달리 일단 그러한 경지를 알고 있는 무사는 무예를 보는 눈이 달라져서 금방 월등한 깨달음으로 무술을 펼치게 되기 때문이다.

국왕인 야율종진이 장수들에게 무예를 가르치고 있는 동안에 재상인 야율상은 원정군이 사용할 군비를 마련하고 전투식량을 조달하느라고 바쁘다. 특히 기마병들이 사용할 육포생선포를 대량으로 마련하느라고 분주하다. 그리고 군마도 충분하게 조달하고자 한다. 그 준비에는 영주성에서 큰 마장을 운영하고 있는 하후란의 도움이 크다.

한편 야율애령은 종진국의 왕후가 되자 그녀 또한 하는 일이 많아진다;

애령은 야율재상의 아내인 금하란을 자신의 참모로 삼고 자신의 호위장군으로 퉁예란을 임명한다;

그리고 무산에 있는 하주옥을 불러와서 자신의 비서로 삼는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야율애령은 그들에게 자신이 남편인 서우진으로부터 배운 무예를 전수하고 있다.

그 결과 왕후 야율애령을 호위하는 장군 퉁예란이 무공수위가 높아지면서 별도의 호위부대를 만들고 있다. 야율종진을 호위하고 있는 장군인 낭추팽이호에게서 빌린 100명의 호위기병을 전부 돌려주고서 퉁예란은 전국적으로 무술을 하는 여인들을 모집한다. 그렇게 100명을 모집하여 매일 무예를 가르친다. 그 결과 무술여인으로 이루어진 왕후 야율애령의 호위기병대가 탄생한다.

그러한 준비가 4달만에 갖추어지고 추수가 끝난 시점인 118110월 중순이 되자 종진국의 국왕인 야율종진이 앞장서서 북벌에 나서게 된다. 원정에 나서기 전에 야율종진은 군부의 지휘관들과 함께 여러 차례 작전회의를 가진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작전을 실시하기로 한다;

첫째로, 두만강 중류에 있는 무산의 북부지역을 정벌하는 일을 팽호남 대장에게 일임한다. 팽대장이 지휘하는 1,000명의 기병대는 혜산성에서 출발하여 동진한다. 무산에서 두만강을 건너가 동북여진족이 차지하고 있는 5성읍을 차례대로 정복한다. 그 순서가 남평, 화룡, 두도, 안도, 돈화이다;

둘째로, 압록강 이북에 있는 동북여진의 대도시인 길림하얼빈을 정복하기 위하여 야율종진이 퉁대장과 왕대장이 지휘하는 2,000명의 기마대와 함께 출발한다;

국왕인 야율종진을 수행하는 호위장군 낭추와 팽이호의 호위기병 300명도 함께 참전한다.

셋째로, 야율애령은 완안웅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부친의 복수를 하기 위하여 남편인 야율종진과 함께 북벌에 나선다. 야율애령을 호위하고 있는 여성장군 퉁예란이 100명의 호위낭자군을 이끌고 참전한다. 그녀는 오빠인 퉁우람 대장과 함께 기필코 완안족을 물리치고 그들에게 포로가 되어 있는 부친을 구출하려고 한다.

넷째로, 3사형들에게 야율상을 특사로 파견한다;

야율족 추장인 야울종진이 북벌을 이달 중순에 감행하고자 하니 3사형께서도 때를 맞추어 동시에 도강하여 북벌에 나서 주기를 바란다는 간곡한 내용의 국왕 친서를 전달하는 것이다. 야율상은 혜산성에서 가까운 강계성까지 3통의 친서를 지니고 가서 그곳 성주인 채고수에게 모두 전해준다. 그것을 채성주가 의주성과 온성에 전달하겠다고 약속한다.

무산성으로 이동하여 두만강 이북지역을 정벌해야만 하는 팽호남 대장의 기마대는 하루 일찍 혜산성을 출발한다. 그 다음날인 11811017일에 종진국의 국왕인 야율종진이 무려 2,400명의 기병대를 이끌고 친정에 나선다. 국왕의 오른편에는 왕후인 야율애령이 말을 타고 동행한다.

그 왼쪽에는 퉁대장과 왕대장이 말을 타고 간다. 기마대장을 보좌하는 장군과 백부장들이 자신들의 휘하 기마병을 이끌고 뒤따르고 있다. 그 좌우편에서는 호위장군들의 기마병이 진행하고 있다. 그 대단한 원정군의 출전모습을 보려고 혜산성의 주민들이 엄청 길가에 나와서 환호하면서 승리를 기원하고 있다.

이제 야율종진은 야율애령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장백성을 지나가고 있다. 장백성의 경계를 벗어나자 별로 큰 성읍이 없다. 하지만 작은 성읍이 3개나 횡으로 존재한다. 그 이름이 동에서부터 서로 이도백하, 송강하, 무송이다;

그래서 야율종진이 일단 이도백하의 남쪽 산지에서 달리는 말을 멈춘다. 그는 이제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