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하나님 역사섭리의 방향성 둘, 북에서 남으로 그리고 남에서 북으로(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1. 2. 13:46

제목; “하나님 역사섭리의 방향성 둘, 북에서 남으로 그리고 남에서 북으로”(20:40-49)

설교일; 주후 2021117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112일 화요일 작성)

 

지난 주일 저는 에스겔 제5장의 말씀 한대목을 가지고 강해설교를 하였는데 그 가운데 제5절 말씀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되, 이것이 곧 (거룩한 백성 이스라엘의 수도이며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선민 이스라엘을)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이방)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거늘”(5:5).

그 내용은 한마디로,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성전이 고대사회 3대륙의 중앙인 예루살렘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선민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모범적인 삶을 끝까지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19:4-6 말씀을 동시에 참고하시기 바람).

그리할 때에는 선민들의 올바른 여호와신앙의 모습을 보고서 온 세상 이방인들이 모두 회개하고서 여호와의 구원을 얻고자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산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나아오겠지만 만약 그리하지 못할 경우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들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부터 먼저 멸망시킬 것이며 그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동일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이방나라 온세상으로 파급되고 만다는 것입니다(이 대목은 특히 25:29 참조하시기 바람).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오늘 강해할 에스겔 제20장의 본문말씀 제40-49절에서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두가지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하나가 모든 이방나라들이 회개하고서 북에서부터 남쪽에 있는 하나님의 성산 곧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온세상에 흩어진 선민 이스라엘과 함께 손에 손잡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만약 여호와를 섬기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예루살렘에서 계속 창조주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어기고 이기적으로 우상을 섬기며 포악한 죄악을 행하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부터 먼저 심판하실 것이며 그 다음에는 그 역사적인 여호와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온세상이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요컨대, 그것이 남쪽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진행되고 있는 또다른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방향성입니다. 그것을 인류역사의 종말을 고하고 있는 하나님의 최후심판의 방향성이라고 한다면 그와 달리 오늘의 본문말씀 앞부분에서 먼저 기록되고 있는 것 곧 북에서 남으로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섭리는 그 성격상 인류의 구원에 관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알 수 있는 것 하나는 먼저 구원의 방향이 기록된 다음에 역사심판의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에스겔 선지자가 이방 땅에서 포로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여호와의 역사섭리에 관한 설명의 순서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삼모사(朝三暮四, 많은 것을 나중에 주겠다는 약속을 믿지 못하고 어리석은 원숭이들이 당장 많은 것을 아침에 달라고 보채고 있다는 것임)의 교훈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배가 고픈 원숭이들은 당장 먹을 것을 많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만민구원의 일꾼이 되고 있는 성도들은 그와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설명을 해봅니다;

(1)  무엇보다도 여호와의 신실한 종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의 일꾼들인 성도들은 너나없이 영원한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거룩한 뜻을 먼저 마음에 새기고 영생의 소망 가운데 이 세상의 환난 가운데에서도 거룩한 성도의 삶을 끝까지 살아가라는 것입니다(8:17-18).

(2)  구체적으로, 부디 선민 이스라엘이 역사 가운데 보여주고 있는 우상숭배와 포악한 범죄행위를 본받지 말고 아무쪼록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모든 생명을 살리는 복음의 용사로 끝까지 성도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28:18-20).

(3)  그리하면 영생의 하나님나라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서 영원히 하나님자녀로 살 수 있게 된다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나라에서의 상급에 해당하는 것입니다(22:28-30).

그와 같은 에스겔 선지자의 본문말씀은 100년 앞서 기록되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의 대선지서 끝부분 곧 제65장 및 제66장의 말씀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그 예언의 말씀이 확실한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라고 하는 증거를 성경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제21장과 제22장에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말씀들을 참고삼아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19.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65:17-20);

(2)  16.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죽임 당할 자가 많으리니, 17. 스스로 거룩하게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에 있는 자를 따라 돼지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8. 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뭇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나의 성산으로)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19. 내가 그들 가운데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에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나라에 전파하리라. 2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뭇나라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21.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66:16-21).  

(3)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21:1-4).   

(4)  1.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2:9, 3:22-24, 에덴동산에서 선을 보인) 생명나무가 있어 12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22:1-5);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참조하여 이제부터는 본문말씀을 한 구절 씩 풀이하면서 그 가운데 중요한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4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있어서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나를 섬기리니, 거기에서 내가 그들을 기쁘게 받을 지라. 거기에서 너희 예물과 너희가 드리는 첫 열매와 너희 모든 성물을 요구하리라. 41.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나오게 하고 너희가 흩어진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낼 때에 내가 너희를 향기로 받고, 내가 또 너희로 말미암아 내 거룩함을 여러 나라의 목전에서 나타낼 것이며”(20:40-41);

(1)    주전 1,446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내 산 아래에 집합시키고 그들에게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의 뜻은 제사장들이 다른 사람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듯이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의 속죄를 위하여 한마음으로 제사를 드리는 그러한 제사장나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선민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18:23-33) 이방인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일을 담당하라고 여호와께서는 믿음의 조상에게 이미 약속한 가나안 땅 그곳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들이는 것입니다(15:16);

(2)    따라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예루살렘성전을 중심으로 가나안 땅에 살면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삶의 본보기를 온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올바른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 그것을 보고서 이방인들이 감사하여 예루살렘으로 와서 함께 창조주 여호와를 섬기고자 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로 본문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다음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4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있어서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나를 섬기리니, 거기에서 내가 그들을 기쁘게 받을 지라. 거기에서 너희 예물과 너희가 드리는 첫 열매와 너희 모든 성물을 요구하리라”(20:40).

(3)    41절에서 출애굽의 목적이 다음 2가지로 선지자 에스겔의 입을 통하여 선포되고 있습니다;

1)    첫째, 이스라엘 자손을 향기로운 중보의 기도를 여호와께 드리는 민족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20:41a). 그것은 자신의 구원을 넘어서서 이웃과 이방 족속들의 구원을 위하여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룩한 백성 선민 이스라엘의 책무를 말하고 있습니다(19:6). 그 선례를 창세기 제18장에서 선민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당시 유황불 심판에 직면하게 되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주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한 대목에서 넉넉하게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훗날 그 대목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계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4:44-45).

2)    둘째,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은 현실적으로 자신의 원수를 용서하고 그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창조주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릴 수가 없는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브라함과 같은 중보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가 있을까요? 그 비결은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옷 입어야 가능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부디 대속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임재의 은혜를 얻어서 이방세계에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신 만민구원의 역사를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선지자 에스겔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600년전에 본문에서 그와 같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예언으로 동족들에게 벌써 다음과 같이 전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내가 또 너희로 말미암아 내 거룩함을 여러 나라의 목전에서 나타낼 것이며”(20:41b).

(4)    본문 에스겔의 예언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전제로 하여 훗날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라고 가정하게 되면 제40절의 풀이가 다음과 같이 달라지게 됩니다;

1)    첫째,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는 선지자 나라 제사장나라의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 여호와의 역사섭리의 목적입니다. 그 뜻이 새로운 이스라엘인 성도들에게 대속의 어린양 그리스도의 오심과 진리의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에스겔이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있어서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나를 섬기리니”(20:40a)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방민족들을 예루살렘성으로 기쁘게 맞아 들이기 위하여 성도들에게 3가지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예물과 첫 열매 그리고 모든 성물입니다. 여기서 예물은 이방인에게 전도하여 그들을 하나님의 전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28:19);

 

 첫 열매는 전도자가 먼저 거룩한 하나님 자녀의 빛 된 삶으로 자신의 생애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16:24). 모든 성물은 먼저 믿은 자들이 나중에 믿게 된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훌륭하게 양육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28:20). 그렇게 되어야 그들 모두가 성소의 성물처럼 어두움을 밝히는 빛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42. 내가 내 손을 들어 너희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 곧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들일 때에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고, 43. 거기에서 너희의 길과 스스로 더럽힌 모든 행위를 기억하고 이미 행한 모든 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미워하리라. 44.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0:42-44); 여호와의 능력으로 출애굽의 은혜를 얻게 된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제 하나님의 역사섭리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업으로 얻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 중심에 예루살렘성전을 두고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동안에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떠한 영적인 깨달음을 얻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여호와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1) 첫째, “42. 내가 내 손을 들어 너희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 곧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들일 때에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고”(20:42); 신앙생활의 첫걸음은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창세기 제1장에 선포되어 있는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동시에 이 세상의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주권자이십니다. 그리고 창세기 제3장과 제6장에서 알 수 있는 그대로 창조주 하나님은 이 세상의 심판주이십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창세기 제50장에서 결론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은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구원주이십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성전에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성도들은 여호와께서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여 새 예루살렘성으로 인도하기를 원하고 계신다고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섭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서 믿음생활에 나서야 합니다.

(2) 둘째, “43. 거기에서 너희의 길과 스스로 더럽힌 모든 행위를 기억하고 이미 행한 모든 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미워하리라”(20:43);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서를 참조하면 선민들의 여호와신앙이 신실하지를 못합니다. 그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여호와로 섬기며 자신들의 세속적인 욕심을 이루고자 약자를 착취하고 그 생명을 함부로 빼앗고 있습니다. 더구나 선민 이기주의에 사로잡혀서 주변의 이방인들을 미워하고 그들을 멸망시켜 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잘못된 신앙생활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새로운 예루살렘에서 올바른 성도의 삶을 살아가라고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3) 셋째, “44.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0:44); 이스라엘 족속들이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를 벗어버리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복음의 일꾼으로 나서는 때가 언제일까요? 그 시기가 그리스도의 공생애와 진리의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초대교회의 역사가 발생하는 그때에 비로소 성도들에게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전반적인 이스라엘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본문 뒷부분의 말씀을 미리 참고하여 알기 쉽게 말씀을 드리자면 북에서 남으로또는 북쪽의 이방제국에서 남쪽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20:40, 66:20-21).

(4)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자손들은 북쪽에서 쳐들어오는 여러 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앗수르제국, 신바벨론제국, 헬라의 시리아제국, 로마제국의 군대들이 하나같이 북쪽에서 남쪽에 있는 예루살렘성으로 쳐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달리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온세상에 복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회개하는 이방인들이 온세상에 흩어진 성도들과 함께 새로운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침략의 길이 훗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섭리에 의하여 새로운 구원의 길로 바뀐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19:22-25). 그러한 현상을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새로운 방향성으로 표현하자면, “북에서 남으로가 될 것입니다.  

셋째로,45.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46. 인자야 너는 얼굴을 남으로 향하라. 남으로 향하여 소리내어 남쪽의 숲을 쳐서 예언하라. 47. 남쪽의 숲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너의 가운데에 을 일으켜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없애리니, 맹렬한 불꽃이 꺼지지 아니하고 남에서 북까지 모든 얼굴을 그슬릴지라”(20:45-47);

(1)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 북에서 남으로나타나게 된다고 한다면 여호와의 역사심판의 길은 그 반대 곧 남에서 북으로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45.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46. 인자야 너는 얼굴을 남으로 향하라. 남으로 향하여 소리내어 남쪽의 숲을 쳐서 예언하라”(20:45-46)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남쪽에 있는 예루살렘에서부터 하나님의 역사심판이 임하여 그것이 세상의 제국을 향하여 북진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 쉽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서두에서 말씀드린 그대로 25:29 말씀과 동일한 선지자 에스겔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2)   남쪽 예루살렘과 그 주위 유대 땅의 산지와 나무숲에 있어서는 선민 유대인들의 어떠한 영적 타락과 성적 타락이 자행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점을 일찍이 모세가 기록한 민수기 제25장의 내용에서 벌써 다음과 같이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25:1-3);

 

 간략하게 설명해봅니다;

1)    첫째, 이스라엘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싯딤에서 10리쯤 남쪽에 비스가 산지가 있습니다. 그 중앙에 높은 산 브올이 있는데 그곳에서 모압 사람들이 그들의 주신인 바알과 여신인 아스다롯에게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2)    둘째, 모압 여인들이 이웃에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유혹하여 브올 산으로 데리고 갑니다. 높은 산 브올에서 우상에게 절을 한 다음에 2부순서로 모압 여인들이 여사제가 되어 이스라엘 남자들과 혼음을 하고 있습니다.

3)    셋째, 그와 같은 혼음행위를 서슴지 아니하고 있는 이유는 하늘에서 주신 바알과 여신 아스다롯이 합방을 하여 이 세상에 풍년을 들게 하는 것이므로 이 땅에서도 그 제사에 참여한 여사제들과 남성들이 혼음을 하는 것이 풍년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제사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4)    한마디로, 물질적 풍요를 바라는 인간의 욕심이 농사의 신 바알을 주신으로 섬기는 우상문화를 만들고 나중에는 혼음이라는 성적인 타락을 소위 이 땅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의 일환으로 미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여 그 땅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자 선민 이스라엘이 그만 실족하고 맙니다. 그 이유는 까다로운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는 풍요의 신 바알을 섬기고 2부순서로 성욕을 만족시키는 것이 더욱 쉽고도 재미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영적인 타락과 성적인 타락이 유대 땅의 산지와 모든 푸른 숲에서 만연하고 맙니다. 선지자들이 하나같이 그 점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은 회개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주전 586년에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마저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4)   본문 제47절에서 푸른 나무는 이스라엘의 성적인 타락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산당의 주변 푸른 나무 아래에서 그들이 음행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마른 나무는 영적인 타락과 성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여호와를 떠나 살게 되어 결국 생명의 기운을 상실하고 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타락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진노하시고 푸른 나무의 숲과 더불어 마른 나무와 같은 선민들을 모두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 임하고 있는 여호와의 역사적인 심판입니다; “47. 남쪽의 숲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너의 가운데에 을 일으켜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없애리니”(20:47a).  

(5)   선민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는 여호와의 역사심판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것으로 먼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동일한 잘못을 범하고 있는 주변의 모든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심판의 불길이 옮겨 붙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먼 곳에 있는 모든 이방나라와 족속들에게 여호와의 진노의 심판이 역사적인 멸망으로 임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본문에서는 맹렬한 불꽃이 꺼지지 아니하고 남에서 북까지 모든 얼굴을 그슬릴지라”(20:47b)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제25장에서 예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역사심판의 순서가 본문에서는 위와 같이 기술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선지자 에스겔은 남쪽 예루살렘에서부터 여호와의 진노의 불길이 북쪽에 있는 이방인의 제국까지 번져 나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심판의 방향성으로서 남에서 북으로라는 용어의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넷째로, 48. 혈기 있는 모든 자는 나 여호와가 그 불을 일으킨 줄을 알리니, 그것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 49. 내가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그는 비유로 말하는 자가 아니냐? 하나이다 하니라”(20:48-49);

(1)  주전 25세기에 발생한 노아 시대의 여호와의 홍수심판은 코로 숨을 쉬는 모든 생물에 대한 멸망을 말하고 있습니다(7:22). 따라서 아가미로 숨을 쉬고 있는 바다의 생물들은 모두 죽임을 면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선지자 에스겔이 선포하고 있는 여호와의 역사심판은 그 옛날 노아 시대의 것보다 더욱 처참합니다. 그 이유는 피가 돌고 있는 모든 생물을 남김없이 태워버리겠다고 하는 여호와의 심판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20:48).

(2)  그렇다면 피가 흐르고 있는 몸을 지니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생물들은 도저히 여호와의 역사심판 곧 멸망의 불길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멸망심판에서 구원을 받자면 새로운 육신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속하는 영적인 몸입니다. 훗날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여 얻게 되는 영생의 몸이 그것입니다(20:17, 고전15:44). 그 몸으로 스스로 승천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1:9-11);

 

 사도 바울이 그 비밀을 알고서 그 영생의 몸을 얻고자 남은 평생을 오로지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3:10-16).

(3)  히브리정경에 수록되어 있는 선지자들의 글이 하나님의 비유의 말씀으로 가득합니다(20:49). 그렇게 비유로 기록되어 있는 이유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예언의 말씀이 장차 이 세상에 임하게 되는 영적인 말씀 곧 미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역사이므로 당장의 인류가 그 뜻을 정확하게 헤아리기가 힘이 듭니다. 지금 존재하고 있는 물건이나 자연환경으로서 미래의 물건이나 생태를 그대로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것이기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융통성이 있게 비유의 말씀으로 선포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훗날 역사 가운데 동일한 사건을 만나게 되면 그대로 적용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당장 이해하기 힘든 비유로 되어 있다고 하여 함부로 무시할 것이 아닙니다. 마치 판례집과 같이 그 상황적인 틀을 자세하게 이해하고서 그 메시지를 정확하게 파악해 두어야 합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본문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방향성 두가지는 그 깊고 다양한 의미를 자주 음미하면서 그 뜻을 보다 확실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에서 남으로 곧 세상의 나라에서 영생의 나라 새 예루살렘으로 몰려들고 있는 구원받은 인생들이 있는 반면에 남에서 북으로 곧 타락한 예루살렘 선민들을 태워버리는 여호와의 심판의 불길이 모든 세상나라와 제국에 번지게 되는 소위 종말론적인 역사심판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하나입니다; 선민의 멸망에 이어 함께 종말을 고하는 인생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회개하고서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가는 구원의 길로 달려갈 것인가? 창조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의 모습은 멸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을 얻는 길 그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 구원과 영생의 길에 함께 나서서 끝까지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