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하나님의 역사섭리 호크와 하마(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0. 26. 09:47

제목; “하나님의 역사섭리 호크와 하마”(5:5-12)(참고구절; 6:11-13, 24:23, 27:9, 14:12, 6:4-10, 40:8-14, 19:4-11)

설교일; 주후 20211031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1026일 화요일 작성)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1:1).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한 것에 그치지 아니하시고 지금도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뜻대로 운행되고 있는지를 항상 감찰하고 계십니다(1:2, 40:8-14, 4:6). 그 결과 하나님께서 정해준 율례를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우에는 피조세계의 안녕과 질서회복을 위하여 반드시 처벌하십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섭리는 두가지의 히브리어 용어 곧 호크(חֻקֹּ)하마(הֲמָ)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율례가 히브리어로 호크이며 피조물이 하나님의 율례를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하마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게 보아 하나님의 율법을 계명과 율례 그리고 규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율법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대체로 다음과 같이 구별하고 있습니다;

(1)  출애굽기 제20장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계명은 율법의 취지를 선포하고 있는 헌법이나 총칙과 같아서 도덕법의 성격이 강합니다.  

(2)  출애굽기 제21장 이하에서 규정하고 있는 율례는 계명을 구체화하고 있는 여러가지 각론으로서 종교법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3)  규례는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강제적인 효력을 지니고 있는 율법으로서 사회적인 심판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백성들의 일상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율례입니다. 그 이유는 율법사회에 있어서 일종의 행정행위와 같은 것이 율례이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부의 행정행위는 구체적인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헌법과 같은 계명이나 사법적인 규정인 규례보다 더 폭넓게 백성들의 삶을 규제하는 것이 율례 곧 호크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어로 율례를 regulation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호크로 구체화되어 있다고 한다면 창조주의 뜻을 거역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하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마를 싫어하십니다. 참고로, 하마에서 파생되고 있는 두가지 용어를 살펴보게 되면 어째서 그것이 하나님의 미움의 대상이 되는지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을 죽이고 해치고자 하는 인간의 포악함이 바로 히브리어로 하마스(חָמָֽס)입니다. 그와 같은 인간의 폭력행위를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십니다. 당장 창세기 제6장을 살펴보면, 노아 시대 홍수심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간의 잘못이 다음과 같습니다; “11. 그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חָמָֽס)이 땅에 가득한지라. 12. 하나님이 보신 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6:11-13);

 

둘째,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피조세계에서 가장 뜨겁고 에너지가 강렬한 태양(חַמָּ֑ה)을 신으로 섬기고자 합니다(24:23);

 

 그래서 사람들이 만든 우상이 바로 태양신상인데 그것이 히브리어로 하만’(חַמָּנִֽ)입니다. 사람들이 만든 우상 곧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인 아세라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상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태양신을 싫어하십니다. 따라서 그 제단을 완전히 없애 버리라고 백성들에게 강력하게 명령하십니다;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의 죄 없이함을 받을 결과는 이로 말미암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을 부서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태양상이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27:9).

기타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오늘의 본문말씀을 한절 씩 강해하면서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5.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되,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거늘, 6. 그가 내 규례를 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율례도 그리함이 그를 둘러 있는 나라들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7.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요란함이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보다 더하여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의 규례대로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5:5-7);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그대로(15:18) 가나안 땅을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주고 계십니다(3:8). 어째서 가나안 땅을 선민 이스라엘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가나안의 지정학적인 위치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고대사회에 있어서는 문자를 가진 백성들이 살고 있는 대륙이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입니다. 동방의 아시아와 서방의 유럽 그리고 남방의 아프리카 대륙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는 지점에 가나안 땅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 3대륙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호와신앙을 보고서 배우라고 은연중에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의미에서 선민 이스라엘은 지정학적으로 가나안을 둘러싸고 있는 3개 대륙의 여러 종족들에게 여호와신앙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영적인 책무를 지니고 있는 민족입니다. 더구나 가나안 땅 이스라엘의 중심이 그들의 수도이며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따라서 여호와를 섬기는 선민 이스라엘의 행동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온세상에 이르기까지 믿음생활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구절이 바로 본문에서, “5.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되,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거늘이라고 하겠습니다.  

(3)  그런데 선민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창조주 여호와를 섬기는 모범을 신앙적으로 주변의 온 세상 모든 이방인들에게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요? 역사적으로 선민들은 여호와의 기대를 완전히 배신하고 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례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온세상에 전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방인들이 섬기고 있는 우상을 도입하여 더 적극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 점을 지적하고 계시는 여호와의 말씀이 본문에서 6. 그가 내 규례를 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율례도 그리함이 그를 둘러 있는 나라들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는 구절입니다.

(4)  선민 이스라엘이 주변의 이방인들보다 우상을 더욱 요란하게 섬기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히스기야 왕의 아들인 므낫세 왕이 그 옛날 가나안 땅의 원주민인 아모리 족속보다 더욱 심하게 우상문화에 빠져서 다윗의 왕국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여호와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계십니다; “10.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유다 왕 므낫세가 이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함이 그 전에 있던 아모리 사람들의 행위보다 더욱 심하였고 또 그들의 우상으로 유다를 범죄하게 하였도다. 12.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3.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14.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들을 버려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긴즉, 그들이 모든 원수에게 노략거리와 겁탈거리가 되리니, 15.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 하셨더라”(왕하21:10-15);

 

(5)  위의 열왕기하 말씀을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첫째, 동일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동일한 처벌이 임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섭리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동일하게 역사하며 그것이 창조주의 공의의 원칙입니다. 따라서 그 옛날 가나안 땅의 원주민 아모리 족속이 범한 우상숭배의 죄악을 똑같이 범한 므낫세 왕의 유다 나라가 동일하게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15:16, 왕하21:11-13). 둘째, 15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주전 15세기의 출애굽 이후부터 주전 7세기 므낫세 시대에 이르기까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기대를 철저하게 배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주전 722년에 먼저 망하고(왕하17:21-23) 이제는 므낫세의 다윗왕조 유다 왕국마저 여호와의 진노로 멸망을 당하게 되는 역사가 곧 전개된다는 말씀입니다(왕하25:1-7).  그와 같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이미 확정되었다는 뜻을 에스겔 선지자가 본문에서 거듭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에스겔 제5장 제6절의 내용이 중복적으로 제7절에 수록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둘째로, “8.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에게 벌을 내리되, 9. 네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벌을 내릴지라. 10. 그리한즉 네 가운데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먹고 아들이 그 아버지를 잡아먹으리라. 내가 벌을 네게 내리고 너희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5:8-10);

(1)  선민 이스라엘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는 것이 주변의 이방인들에게 큰 경종이 되고 있습니다(5:8).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한 민족 이스라엘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현세적인 욕심을 쫓아 이기적으로 살아왔기에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멸망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자신의 백성이라고 선포한 이스라엘 족속마저 불신앙에 빠지게 되자 여호와께서는 비참하게 멸망을 당하도록 역사를 섭리하십니다(5:8-9);

(2)  그러므로 평소 그 마음에 들지 아니하는 이방 족속과 나라들이 우상을 섬기며 여호와를 멸시하고 계속 살아가게 되면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전부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참고로, 그 점을 웅변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글이 다음과 같습니다;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5:29).

(3)  이방인들의 입장에서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들의 멸망이 선민 이스라엘의 멸망의 경우보다 더 심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본문에서는 네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벌을 내릴지라”(5:9)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가장 처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전무후무한 멸망의 비극이 어느 정도로 비참한 것일까요? 역사서인 열왕기하 제25장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시드기야 왕 11년까지 (3년동안) 포위되었더라. 그해 49일에 성 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가(시드기야 왕이) 아라바 길로 가더니”(왕하25:2-4), “그들(바벨론 왕과 신하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유다 왕)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왕하25:7);

(4)  예루살렘성이 3년간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포위를 당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성중에 양식이 바닥나고 맙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가족들을 잡아서 서로 삶아 먹고 있는 지경입니다. 그 점을 액면 그대로 예언하고 있는 구절이 바로 본문 제10절 전반부의 내용입니다; “그리한즉 네 가운데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먹고 아들이 그 아버지를 잡아먹으리라”(5:10a). 그 장면은 그곳이 바로 아비규환의 지옥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5)  그 뿐만이 아닙니다. 유다 왕 시드기야가 시위대와 함께 도망치다가 붙잡히게 됩니다. 신바벨론제국의 황제인 느부갓네살은 그를 괘씸하게 생각하여 그 앞에서 붙잡혀온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모조리 참살하고 맙니다(왕하25:7). 그 다음에 패전한 유다 왕 시드기야를 소경으로 만들어 바벨론으로 압송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민족적으로 하나님의 백성 유다 왕국에 임한 가장 처참한 비극을 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시드기야와 더불어 많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됩니다. 그들이 이방 땅에서 장차 겪게 되는 비극이 무엇일까요? 그 점을 선지자 에스겔이 다음 대목에서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11.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 12. 너희 가운데에서 3분의 1은 전염병으로 죽으며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며, 3분의 1은 너의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3분의 1은 내가 사방에 흩어버리고 또 그 뒤를 따라가며 칼을 빼리라”(5:11-12);

(1)  선지자 에스겔은 주전 597년 신바벨론의 갈대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을 때에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항복한 유다 왕 여호야긴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간 제사장입니다(1:2, 왕하24:15). 그는 포로생활 5년째인 주전 593년에 바벨론에서 여호와의 임재로 말미암아 선지자가 되어 그곳에서 활동하게 됩니다(1:2-3). 그보다 30년 남짓 앞선 주전 626년경 예루살렘에서는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부름을 받아 선지자로 활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1:2-3).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는 주전 586년에도 선지자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40:1-6). 따라서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같은 시대를 다른 장소 곧 예루살렘과 바벨론에서 각각 살아가면서 선지자 활동을 하게 됩니다.

(2)  예레미야의 선지서를 참조하면 다윗왕조가 멸망을 당할 때에 그곳에 임하게 되는 3가지의 큰 재앙의 특징이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14:12). 그 점이 선지자 에스겔에 의해서는 다음과 같이 본문에서 진술되고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3분의 1은 전염병으로 죽으며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며, 3분의 1은 너의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5:12a).

(3)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자면, 3가지의 큰 재앙 곧 전염병과 기근 그리고 칼이 임하게 되는데 그것으로 인한 사망자의 수가 구체적인 예언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 전염병과 기근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성에 피신하고 있는 유대인 3분의 1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적병이 예루살렘성을 파괴하고 침입하여 3분의 1의 주민을 도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4)  다행스럽게 예루살렘성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이 전체의 3분의 1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전쟁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비참하게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훗날 그들은 여호와의 긍휼과 배려로 주전 539년 바사왕 고레스에 의하여 포로의 신세를 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9할 이상의 유대인들이 고토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여전히 이방의 제국에 흩어져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무려 2,500년의 시간이 지난 다음 주후 1948년에 기적적으로 고토 가나안 땅에 그들의 현대 이스라엘 국가가 재건됩니다. 하지만 본문 에스겔의 예언 그대로 중동 땅에서 아랍 족속들과 계속 전쟁하면서 겨우 생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3분의 1은 내가 사방에 흩어버리고 또 그 뒤를 따라가며 칼을 빼리라”(5:12b);

 

결론적으로, 본문 제11절의 말씀을 재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11.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5:11).

한마디로, 선민이라고 하더라도 여호와를 창조주 하나님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떠나서 우상을 만들어 섬기거나 이웃에게 포악을 행하게 되면 반드시 역사 가운데 여호와의 멸망의 심판을 당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모든 피조물을 하나같이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그 정신에 의거하여 하나님의 율례인 호크(חֻקֹּ)가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온세상에 보여 주어야 하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율례마저 어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창조주를 버린 인간들이 만든 세상의 무질서와 대 혼란인 하마(הֲמָ)입니다.

하마의 세상에서는 힘이 자가 으뜸이며 정치적 경제적 지배자입니다. 그들은 피조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하는 태양신(하만) 아들이라고 자신을 즐겨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생명을 해치는 폭력(하마스) 거침없이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회는 선민의 사회이거나 이방인의 사회이거나 동일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에 의하여 멸망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그러한 사실을 선지자 에스겔이 11절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본문의 내용을 음미하시면서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율례 호크를 존중하면서 말씀의 뜻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실천함으로써 이웃의 생명을 돌보고 살리시는 의미 있는 여호와의 종으로 끝까지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