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비밀(손진길 소설)

王의 비밀25(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29. 16:38

王의 비밀25(작성자; 손진길)

 

서우진은 애령과 함께 다시 여진의 땅 함주에 들어온 때가 11801025일이다. 말사육장을 운영하고 있는 하후란에게 문안을 하고서 그녀의 자식인 퉁우람과 퉁예란의 소식을 묻는다;

그러자 그녀가 대답한다; “애초에 저는 이곳 마장의 일을 제가 나머지 일꾼들과 전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제 자식들에게는 무산으로 가서 추장님을 도와 다른 일을 처리하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무산에 살고 있는 외숙 하타르와 함께 그곳에 야율촌을 세우는 일이지요. 그러니 우람이와 예란이는 그 일이 끝나야 저를 보러 함주에 올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야율종진이 하후란의 손을 잡으면서 위로한다; “자녀분들을 마치 전장에 내보내신 심정이겠군요. 무슨 말씀인지 제가 잘 알겠습니다. 빨리 하타르 선생과 함께 무산에 야율족의 마을을 조성하고 군사를 길러 완안족을 치겠습니다. 그래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퉁투랑 선생도 구출해야지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후란이 그 말을 듣자 활짝 웃으면서 2필의 말을 내준다. 열흘 남짓 전에 서우진과 애령이 그곳에 맡겨 둔 명마들이다. 야율종진과 야율애령은 하후란과 작별하고 동북방향으로 무산을 향하여 열심히 달린다. 그들은 1029일에 하타르의 집에 도착한다. 그들에게 하후란의 소식을 전해준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야율종진이 하타르 선생에게 질문한다; “그래, 무산의 땅을 좀 사 모으셨습니까?”. 하타르가 씨익 웃으면서 대답한다; “이곳 여진족들은 농사를 별로 짓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농기구를 만드는 일이 드물지요. 그래서 그런지 무산 철광석의 가치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곳의 광산지역을 귀찮게 생각할 정도입니다. 따라서 저는 헐값으로 사들이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야율종진이 구체적으로 질문한다; “호씨 일족이 가지고 있다고 하는 광산지역은 쉽게 샀겠지만 들판에서 방목을 하고 있는 장씨 일족의 땅을 사들이는 것은 돈이 많이 들고 쉽지가 않겠군요?... “. 그 말을 들은 하타르가 역시 씨익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것도 다 싸게 사들이는 방법이 있지요… “.

야율종진이 궁금하여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하타르가 신이 나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동여진족들이 무산의 들판에서 주로 키우고 있는 것은 소입니다. 양과 말들은 두만강 북쪽에서 많이 방목하고 있지요. 그런데 소를 키워보았자 쇠고기의 판로가 크지 못하여 별로 수익성이 없습니다… ”;

개경에서는 쇠고기가 비싸다. 고려인들이 소금으로 간을 하고 무우를 썰어 넣은 맑은 쇠고기 국을 명절음식으로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경출신인 야율종진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아니하여 고개를 갸웃한다. 그것을 보고서 하타르가 부연설명을 하고자 한다.

하타르의 설명이 다음과 같다; “무산의 들판은 두만강 이북에 비하여 넓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대규모 방목을 할 수가 없지요. 양을 키우자니 들판이 좁고, 돼지를 키우자니 사료가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가 없어서 소를 키우고 있는 형편이지요. 한마디로, 동여진족의 꿈은 두만강 이북의 넓은 땅을 차지하여 대규모로 양을 치는 것입니다”.

야율종진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경청하자 하타르가 신이 나서 설명한다; “그런데 동여진족들이 두만강을 넘어 북진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곳은 본래 동여진의 영토였지만 지금은 동북여진의 땅이며 대금을 세운 완안족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그곳으로 이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돈을 주고 완안족의 땅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돈을 장씨 일족에게 준 것입니다. 무산의 들판을 제게 파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하타르가 또 씨익 웃으면서 말한다; “이곳 무산의 들판을 제게 팔고 먼저 강을 건너간 사람들은 그 돈으로 10배나 넓은 들판을 살 수가 있게 된 것이지요. 그러자 무산의 장씨 일족이 너나없이 제게 경쟁적으로 들판을 팔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값을 떨어뜨려가면서 점점 싸게 구입하여 며칠 사이에 전부 사들이고 말았지요. 하하하…”.

그 말을 듣자 야율종진이 말한다; “여진족들은 쇠고기를 많이 먹지 않고 주로 돼지고기와 양고기를 즐기고 있는 모양입니다. 추운 지방이라 기름기가 더 많은 육류를 찾고 있는 것이군요. 그러니 이곳 무산보다는 두만강을 넘어 북쪽에 가서 양과 말을 대규모로 방목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되겠습니다… ”;

그 말을 하고나서 야율종진이 자신의 허리춤에서 전대를 풀어 은괴를 꺼낸다. 그것을 하타르에게 주면서 말한다; “여기 제가 약속한대로 은 200을 더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으로 하타르 촌장은 무산의 북쪽 강유역과 남쪽 산지를 공씨 집안으로부터 전부 사들이도록 하세요. 그 다음에는 흩어져서 점조직으로 살고 있는 야율족을 이곳으로 모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곳 무산에 야율촌을 빨리 만들어야 합니다. 일이 급하게 되었어요… “.

그 말을 듣자 하타르와 그의 조카들이 긴장한다. 그것을 보고서 야율종진이 말한다; “제가 개마고원으로 가보았더니, 완안웅이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금나라 화북지역에서 생산한 향미를 배로 실어와서 여진족들에게 비싸게 팔고 있었어요. 그는 그 돈으로 만주에 주둔하고 있는 금나라 군대를 움직이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전쟁이 임박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차제에 야율족의 군대를 빨리 양성하여 완안웅을 대적하는 세력과 연합해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하타르와 그의 조카인 퉁우람과 퉁예란이 크게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자 야율종진은 이왕 말을 껴낸 김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적과 싸워서 이기자면 병서에서 말하기를 적의 허실을 먼저 파악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야율애령과 함께 신분을 속이고 완안족이 살고 있는 동북여진의 땅으로 한번 정찰을 다녀오고자 합니다. 내일 바로 출발할 생각입니다”.

하타르가 즉석에서 찬성한다; “좋으신 생각이십니다. 변복을 하시고 완전한 동여진족으로 꾸며서 들어가십시오. 이름도 공종진공애령으로 바꾸어서 행세를 하시기 바랍니다. 야율이라는 성씨를 절대로 꺼내지 마십시오. 저희들이 지금 이곳 무산에서의 일이 바빠서 호위를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안전에 각별하게 신경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야율종진과 야율애령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야율종진이 대표로 말한다; “넉넉잡고 20일 정도이면 돌아올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아시고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무산에 야율촌을 조성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하여 주시고요… “. 그 말을 남기고 야율종진은 다음날 새벽에 애령과 함께 북쪽으로 말을 달린다. 두만강에 물이 상당하다. 그렇지만 물이 적은 쪽을 선택하여 조심스럽게 말을 타고 강을 건너간다.

두만강을 건너니 무산의 맞은편 만주지역이 펼쳐진다. 오늘날의 길림성 남평 지역에 해당하는데 그곳은 산지를 한참 지나야 넓은 들판이 전개가 된다;

땅만 넓다 뿐이지 무산지역과 별로 차이가 없다. 하지만 완안족이 지배하고 있는 동북여진의 땅이기에 야율종진과 야율애령은 각별히 조심한다. 그들은 계속 북쪽으로 말을 달린다.

가는 곳곳마다 대규모로 양을 방목하는 지역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촌락에는 조그만 텃밭들이 만들어져 있다. 야채는 그곳에서 재배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북쪽으로 갈수록 날씨가 추워지니 벌써 두꺼운 털옷들을 입고 있다. 차림새로 보아서는 동여진이나 동북여진이나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이틀을 달렸더니 길림성에 도달한다. 두사람은 성내로 바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성 바깥에 있는 주막에서 일박한다. 다음날 아침에 주막주인에게 자신들이 타고 온 말 2필을 맡기면서 먼저 후하게 선금을 치룬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름을 동여진의 성씨를 사용하여 공종진공애령이라고 알려준다. 요즈음 공씨들이 길림성에 많이 들리는지 주막주인이 금방 아는 체를 한다.

주막을 떠나 오기 전에 공종진이 주막주인에게 작은 은괴를 하나 주면서 여진의 돈으로 좀 바꾸어 달라고 요청한다. 은 하나를 주었더니 주막주인이 대신 주는 금나라의 철전이 한 주먹이다. 그것을 공종진이 개나리 봇짐에 넣고서 공애령과 함께 성문으로 다가간다. 

성문지기에게 공종진이 미리 허리춤에 넣어둔 금나라 철전을 하나 빼내어 슬쩍 그 손에 쥐어 준다. 그랬더니 두사람을 그냥 통과시킨다. 공종진이 조심스럽게 공애령과 함께 길림성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한다. 그 성이 마치 온성과 비슷하다. 시가지가 잘 정비가 되어 있다. 아무래도 금나라의 아골타가 그 옛날 그곳에서 추장을 지냈으므로 성안을 잘 정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공종진과 공애령 두사람이 길림성의 시가지를 구경하고 또한 시전 상가를 돌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웅성거린다. ‘무슨 일인가?’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돌연 여진말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완안웅 추장님의 행차이시다. 모두들 엎드리고 길을 비켜라”. 마치 잘 훈련이 되어 있는 병사들과 같이 성안의 백성들이 일시에 바닥에 엎드리고 있다. 두사람도 예외일 수가 없다. 그대로 부복하여 눈치껏 행차를 살펴보게 된다.

일개 완안족의 추장에 불과한 완안웅의 행차가 마치 고려왕의 행차와 같다. 화려한 복색을 갖추고 마차 안에 좌정해 있는 모습이 이미 추장이 아니고 왕이다. 하기야 대금 황제인 세종의 친척이라고 하니 황족이다. 그리고 대금의 발상지인 동북여진을 다스리고 있는 추장이다. 그러니 그 세도가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 생김새는 쥐 모양이며 간신의 얼굴이다. 그 얼굴에 꾀가 졸졸 흐르고 있는 것만 같다;

슬쩍 눈을 들어 공종진이 그 모습을 정확하게 보고 있다. 그런데 옆에 함께 엎드려 있는 공애령은 그것이 아니다. 그 눈에 원독의 기운이 흘러 넘치고 있다. 금나라 군대를 끌고 와서 야율족을 공격하여 자신의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하고 동족들을 살해한 불구대천의 원수가 바로 완안웅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고서 공종진이 슬며시 애령의 팔을 잡는다. 눈치를 채고서 공애령이 눈을 질끈 감고 만다.

그 행차가 지나가자 공종진은 애령이를 데리고 성을 빠져나온다. 성밖의 주막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자신의 말들을 찾아서 다시 북쪽으로 말을 달린다. 3일을 더 달리자 하얼빈이 나타난다;

남쪽의 길림보다 훨씬 춥다. 두사람은 하얼빈 지역의 군사적인 동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동북의 여진족들은 어느 정도의 군비를 갖추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크게 많은 병사를 볼 수가 없다. 어디에 가면 금나라의 주둔군을 많이 볼 수가 있을까? 슬며시 공종진이 공애령을 시켜서 유창한 여진의 말로 지나가는 동북여진족 백성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역시 남자보다는 여자가 상냥하게 묻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 백성의 말은 서쪽으로 가서 심양지방에 이르게 되면 금나라의 대군을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심양이라고 하면 압록강 하류에서 북쪽으로 엄청나게 진행을 해야 나타나는 곳이다. 심양은 중원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산해관으로 진출할 수 있는 요지이다.  만약 산해관이 만주족에게 뚫리게 되면 대금의 수도인 연경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심양에 대금의 군대가 많이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동만주 하얼빈에서 서만주 심양까지는 굉장히 멀다. 말로 달리더라도 일주일은 걸릴 것이다. 그래서 공종진이 공애령에게 말한다; “심양을 방문하는 것은 다음번으로 미루도록 합시다. 일단은 다시 개경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남쪽으로 진행하여 곧바로 무산으로 돌아가도록 하지요하지만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심양과 대금의 수도인 연경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두사람이 다시 남쪽으로 말을 달린다. 이번에는 다른 성에 들릴 일이 없다. 그러므로 5일만에 두만강을 건너 무산까지 들어온다. 참으로 빠른 속도인 것이다. 그만큼 야율종진과 야율애령이 타고 있는 말이 명마라고 하겠다;

자신들의 말의 수고를 아는지 야율종진과 야율애령이 무산 하타르의 저택에서 애마를 쓰다듬고 맛있는 풀을 많이 준다. 이제 무산에서 하루를 머물고 그들은 다시 개경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어떤 일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