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비밀(손진길 소설)

王의 비밀22(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29. 07:32

王의 비밀22(작성자; 손진길)

 

3. 서우진의 꿈; 무산에서 혜산까지

 

서우진은 함주에서 하후란이 명마 4필을 제공하자 그 값으로 가장 큰 은덩어리 하나와 그보다는 조금 작은 또 하나의 은괴를 내놓는다. 그것을 보고서 하후란이 말한다; “주공, 저는 그 말들을 그냥 제공하고자 합니다. 사례를 하지 아니하셔도 됩니다”;

그러자 서우진이 말한다; “4필의 명마는 제가 무산지역에 야율족의 마을을 개척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사들이는 재산입니다. 우리 야율족 공동체의 기념비적인 첫번째 재산이므로 제가 그 값을 지불하고 정당하게 사들이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자 하후란이 웃으면서 말한다; “제가 주공의 큰 뜻을 잘 알겠습니다. 이 돈으로 말을 더 사서 우리 야율족의 군사들이 나중에 완안족을 쳐부수는데 사용할 수 있는 군마로 조련하겠습니다. 그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서우진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아주머니, 제가 나중에 은화를 더 드리겠습니다. 그 돈으로 말을 더 구하여 군마로 조련하시면 됩니다. 저는 우리 야율족 백성들이 모두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추장이 백성들의 재물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싶습니다. 그러한 왕국을 저는 만들고 싶습니다”.

하후란이 새삼스럽게 고려사람인 서우진을 쳐다본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야율애령 아가씨는 참으로 복이 많구나. 명군이 될 수 있는 분을 배우자로 만났으니 말이다. 서우진 주공은 우리 야율족의 추장으로 그칠 인물이 아니다. 그의 그릇은 능히 만주 전체를 지배하고도 남겠구나… “.

다음날 아침 일찍 서우진야율애령퉁우람퉁예란 남매와 함께 무산을 향하여 힘차게 출발한다. 4필의 명마가 얼마나 잘 달리는지 모른다. 하여튼 여진족의 한 갈래인 야율족 사람들의 기마술은 대단하다. 그들은 심심한지 마상에서 온갖 기교까지 부리고 있다;

 

서우진이 새삼 그들이 달리는 모습을 곁눈으로 보면서 자신의 무예가 부족했더라면 그들의 짐이 될 뻔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무산지역까지 그 먼 길을 단 3일만에 주파하고 있다. 놀라운 속력이다. 막상 무산지역에 들어오자 퉁우람이 앞장을 선다.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들판을 지난다;

들판을 지나 퉁우람은 스스럼이 없이 한 채의 큰 집으로 다가간다. 그가 대문 앞에서 크게 여진말로 외친다; “외숙부 저 우람입니다. 문을 열어주세요”.

그 소리에 육중한 대문이 열리고 있다. 그리고 안에서 칼을 찬 여진족 한 사람이 마당으로 나오고 있다. 그가 대문을 들어서는 퉁우람을 보자 두 팔을 벌리면서 말한다; “허허, 우리 우람이가 이 외숙을 찾아서 먼 길을 왔구나. 어서 오너라. 그리고 예란이와 함께 온 두 분은 누구시냐?... “;

순간 야율애령이 그 집 주인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본다. 그러더니 갑자기 다음과 같이 부르짖는다; “아니, 당신은 우리 야율족의 말들을 맡아서 한꺼번에 관리하던 하타르 선생이 아닙니까? 여기서 뵙게 되다니 뜻밖입니다… “. 그 말을 들은 40대 중반의 하타르가 더 크게 놀란다.

그가 야율애령의 얼굴을 한참 살펴보더니 갑자기 마당에서 그대로 예를 올린다. 그리고 말한다; “야율종 추장님의 영애이신 애령님이시군요. 장성하셨기에 제가 한눈에 미처 알아 뵙지를 못했습니다. 불충을 용서하십시오. 그동안 험한 세월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

야율애령이 다가가서 하타르의 손을 잡아서 일으킨다. 그리고 말한다; “저는 구사일생으로 고려 땅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제 다시 여진족의 땅으로 들어와서 우리 부족을 재건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타르 선생을 만나게 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조상님께서 저의 길을 인도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하타르가 일단 모두에게 안으로 들어가자고 말한다. 그는 서우진이 누구인지 궁금하지만 당장 마당에서 묻지를 아니한다. 사랑채에는 큰 접견실이 마련이 되어 있다. 하인들이 금방 다과상을 큰 탁자위에 차리자 일행이 그 주위의 의자에 앉는다.

그러자 야율애령이 먼저 말문을 연다; “하타르 선생이 하후란 아주머니의 남동생인 줄을 이제서야 저는 알았네요. 함주에서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어째서 남동생 이야기를 제게 전혀 하지 아니했을까요?... “. 그 말을 듣자 하타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퉁우람이 나선다.

퉁우람의 설명이 다음과 같다; “아가씨는 그동안 고려 땅에서 사셨으므로 이곳의 실정을 잘 모르십니다. 전란 가운데 살아남은 소수의 우리 야율족 백성들은 그 신분이 노출이 되면 지배 족속인 완안족에게 끌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점조직으로 철저하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대장부인 퉁우람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다; “그렇게 지난 6년의 세월을 마치 유령처럼 저희들은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모르는 척하고 신분을 숨기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지요. 그러한 습관 때문에 은연중에 일이 이렇게 되었지요. 부디 애령님께서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듣자 야율애령이 말한다; “제가 여진족의 땅에 남아서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겨우 생존하고 있는 우리 부족사람들의 고초에 대하여 다 헤아리지를 못했군요. 미안합니다. 이제는 떳떳하게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들의 나라를 만들고자 합니다. 그러니 하타르 선생께서도 우리를 도와주세요”.

그 말을 들은 하타르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6년 전에 마침 우리 부족의 말을 팔기 위하여 동여진의 말시장에 나가 있었습니다. 완안족에 의하여 우리 추장이 돌아가시고 부족이 멸망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저는 말을 판 대금과 남은 말들을 몰고서 일단 무산으로 피신했지요. 그리고 여기 동여진의 땅에서 신분을 숨기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남은 말들은 어떻게 처분했다는 것일까?... ‘. 그에 대한 설명을 하타르가 이어서 한다; “제가 지니고 있었던 말은 누님인 하후란에게 맡겨서 멀리 함주로 가서 말장사를 하라고 조치를 했지요. 저는 마시장에 얼굴이 알려져서 더 이상 야율족의 상인으로서는 상행위를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애령 아가씨께서 야율족 재건의 큰 뜻을 품고서 이렇게 저를 찾아 주시니 감격할 따름입니다”.

야율애령이 하타르의 처지를 이해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위로한다; “무사히 동여진의 땅에서 살아남아 계시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아저씨가 큰 힘이 됩니다. 이제 저와 함께 우리 야율족을 재건하기를 원하는 저의 남편을 소개할께요. 이분이 저의 남편이며 이름이 서우진입니다. 고려의 무사이지요… “.

하타르가 상인 특유의 육감을 가지고 서우진의 관상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한참만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서 절을 하면서 서우진에게 말한다; “저는 상인 출신입니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에 그 관상을 보는 것이 저의 오랜 버릇입니다. 그런데 남편분의 상을 보니 우리 야율족이 추장으로 모시기에는 너무 과분합니다... “;

이것이 무슨 말인가 싶어서 일동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때 하타르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이어서 말한다; “우리 추장을 신하로 거느릴 수 있는 대영웅의 관상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부족하지만 신하가 되기를 원합니다. 부디 저를 받아 주십시오”.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천천히 걸어가서 하타르의 손을 잡고 일으킨다.

그리고 서우진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온다; “하선생은 관상을 보는데 일가견이 있군요. 제가 그 정도의 귀인은 못되지만 그래도 아내인 야율애령을 도와서 야율족을 재건하고 숙적인 완안족을 치고서 동족들을 구출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 군사들을 키울 수 있도록 이곳 무산에 훈련소를 세우고자 합니다. 그 일에 하선생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그 말을 듣자 하타르의 얼굴에 웃음이 만발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돕다 마다요. 제가 오히려 그 일을 저에게 맡겨 달라고 부탁을 드려야 마땅하지요. 분부만 하십시오. 제가 어떻게 일을 시작하면 될까요?”. 서우진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하선생은 20대의 젊은이보다 더 정열적이십니다. 그러면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하타르를 자리에 앉게 한 다음에 서우진이 설명한다; “첫째로, 저는 무산지역의 철광석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을 포함하여 그 주변일대의 땅을 전부 구입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그곳에 살아남은 야율족을 이주시킬 마을을 짓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내일부터 하선생께서는 당장 그 땅의 구입 건을 착수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자금으로 제가 은 300을 여기에 내놓겠습니다”;

서우진이 함주를 출발하기 전날밤에 자신의 전대에 은을 250이 아니라 300으로 채워서 여행을 시작했다. 그 이유는 무산에서 땅을 은 300으로 사고자 하는 계획이 미리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준비를 서우진이 미리 한 것을 보고서 애령이 서우진의 얼굴을 다시 쳐다본다.

생각할수록 자신보다 분명히 한발 앞서고 있는 남편 서우진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대단한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을 적으로 삼는다고 하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애령이 속으로 생각한다; “내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지만 분명히 남편복은 있는 여자이구나!... “.

거금을 보고서 하타르가 말한다; “오늘 처음 만난 저를 보고서 어떻게 이렇게 큰 돈을 맡기십니까?”. 그러자 서우진이 말한다; “큰일을 도모하자고 하면서 자신의 신하를 믿지 아니하면 누구를 믿고서 대업을 성취하겠습니까? 저는 야율족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목숨을 걸고 완안족과 장차 전쟁을 치르고자 합니다”.

그 다음에 서우진이 웃으면서 말한다; “만약 하선생께서 그 일을 두려워하신다면 그 돈을 가지시고 이곳을 떠나셔도 됩니다. 그렇지만 제가 하선생의 관상을 보니 그러한 사소한 장사치가 아닙니다. 천하를 두고서 판을 짜시는 재사의 상을 지니고 계시는 군요. 야율상에 비하여 결코 뒤떨어지지가 않습니다”.

그 말을 듣자 하타르가 깜짝 놀라면서 질문한다; “주공께서는 벌써 야율상을 만나신 것입니까? 야율상 형님은 우리 야율족이 낳은 가장 뛰어난 인물이지요. 그런데 저를 그러한 천재와 견주어 주시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주공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제가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하타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두 손을 긴 소매 속에서 마주잡고 서우진에게 예를 올리면서 그렇게 다짐한다. 그것을 보고서 서우진이 이어서 말한다; “둘째로, 저는 이곳에 야율족의 마을을 만들게 되면 다음과 같은 시설을 갖추고자 합니다; 첫째, 자녀들에게 학문과 무술을 가르칠 수 있는 5년과정의 학교와 도장을 설립하고자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일동이 고개를 끄떡인다. 특히 하타르가 크게 고개를 끄떡이면서 동의를 표한다. 그러자 서우진이 이어서 설명한다; “둘째, 대규모 대장간을 짓고 이곳의 철광석을 이용하여 병장기와 농기구를 대량으로 생산하고자 합니다. 셋째,  야율족의 특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공방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잠시 말을 끊은 다음에 서우진이 하타르를 쳐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말을 마무리한다; “공방에서 생산한 물건을 고려와 금나라 그리고 남송에 파는 일은 야율족의 재상인 야율상이 맡게 될 것입니다. 한편, 이곳 무산의 야율족 마을을 다스리는 촌장으로 저는 하타르 선생을 임명하고자 합니다. 그 일을 맡아 주시겠습니까?”;

하타르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은 채 신하의 예로써 대답한다; “저를 촌장으로 임명해 주시니 반드시 이곳 무산에 야율촌을 형성하고 주공께서 원하시는 대업을 이루는 기반을 이곳에서 다지도록 하겠습니다. 내일부터 당장 주신 자금으로 그 일에 착수하겠습니다. 아무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듣고 본 일동이 박수를 친다. 이제 야율촌을 재건하는 첫 단계의 일이 그렇게 시작이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날 저녁 하타르의 저택에서 서우진과 애령 그리고 퉁우람과 퉁예란이 가지고 있는 식사와 술자리는 더할 나위가 없이 흥겨운 것이다. 그들은 서로 축배를 들면서 야율족 재건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그날따라 무산지역을 비추고 있는 달빛이 더욱 밝은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