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비밀(손진길 소설)

王의 비밀21(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29. 05:06

王의 비밀21(작성자; 손진길)

 

서우진은 애령과 함께 말을 달리고 있다. 1180928일에 청춘남녀가 말을 타고서 화주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들은 화주에서 일박을 하면서 전번처럼 주막주인에게 돈을 많이 주고서 한달동안 2필의 말을 맡긴다. 그리고 고려의 국경을 넘어 은밀하게 여진족들이 살고 있는 함주로 들어간다.

이번에는 서우진과 애령이 함주에서 은자를 주고서 2필의 말을 사려고 한다. 함주성에서 애령이 여진말로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성 바깥 동쪽에 대규모 말 사육장이 있다고 한다. 그곳으로 서우진과 애령이 찾아서 가고 있다. 

지금 서우진과 애령은 며칠 전 개성의 싸전에서 오서방으로부터 받은 은자 500냥이라고 하는 거금을 서로 반반 나누어서 몸에 지니고 있다. 워낙 큰돈이므로 안전을 생각하여 허리에 아예 돈주머니 띠 곧 전대를 만들어서 차고 있다;

물론 그 전대에는 엄청난 은자가 들어 있는 것이다.

날씨가 상당히 추워졌으므로 여진족처럼 서우진과 애령이 두꺼운 털옷을 입고 있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아서는 큰돈을 지니고 있는 여행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두사람은 이번 여행이 오래 걸릴 것으로 생각하여 아예 개경을 떠나올 때 철원댁과 천서방에게 두가지를 단단히 부탁했다;

하나는, 천서방에게 금년 농사의 수확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당부한 것이다;

마름인 그가 철원 땅의 소작인들로부터 곡수를 받아서 자신의 몫을 챙기고 나머지를 싸전의 오서방에게 가져다 준다. 물론 지주인 서우진의 집에 있는 곡간에 양식을 가져다 주는 것은 별도이다. 그와 같이 매년 똑같은 일을 천서방이 알아서 처리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철원댁에게 2달 동안 개경의 저택을 잘 돌보아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항상 사례비를 후하게 지불하고 있으므로 철원댁과 천서방이 그렇게 좋아한다. 특히 서우진이 다른 지주들보다는 소작료를 적게 받고 있다. 그러므로 철원 땅의 소작인들이 마름인 천서방에게 서우진의 전답을 부치게 해달라고 서로 부탁들을 하고 있다. 그러한 형편이므로 천서방 부부의 인기가 철원 땅에서 좋은 것이다.

서우진과 애령은 함주성 근교에 있는 말사육장에서 뜻밖의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그 사육장의 주인이 여진족 여인인데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인다. 그리고 여러 명의 젊은이들이 말들을 돌보고 있다. 그 가운데 몇 사람을 보고서 애령이 깜짝 놀란다. 그녀가 잘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령이 일부러 그들에게 접근하여 질문한다; “너희들은 영주성에 살고 있던 퉁우람퉁예란이 아니냐?”. 애령의 말을 듣자 두 젊은 남녀가 깜짝 놀란다. 그리고 애령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더니 마치 유령을 보는 것처럼 부르짖는다; “너는 죽었다고 하는 야율애령이 아니냐?”.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여진족 여인이 갑자기 가까이 다가온다. 그녀가 애령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본다. 그러더니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말한다; “아가씨, 제가 야율종 추장을 섬기던 퉁투랑의 아내 하후란입니다. 일전에 영주성에 살고 있는 집안의 여동생 하오란으로부터 아가씨께서 살아 계신다고 하는 이야기를 은밀하게 들었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영광입니다”.

그 말을 듣자 두 젊은이 퉁우람과 퉁예란이 동시에 바닥에 무릎을 꿇으면서 말한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 옛날 추장님의 따님인 야율애령 아가씨가 틀림이 없습니다. 저희들이 인사를 드립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애령이 하후란에게 먼저 말한다; “아주머니, 일어나세요. 옛정을 생각하여 저를 아가씨라고 불러주니 제가 황송할 따름입니다”.

그 다음에 애령이 두 젊은 남녀를 보고서 말한다; “우람과 예란이 너희들은 나의 동무들인데 어째서 새삼 이렇게 예의를 다 차리고 그러니? 이러면 내가 민망하잖아?.. “. 그 말을 듣자 퉁우람이 대답한다; “아닙니다. 아가씨, 6년전에 완안족에게 끌려가면서 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

그 말을 듣자 애령이 급히 묻는다; “그렇다면, 퉁투랑 아저씨가 아직 살아 계신다는 말이구나. 완안족에게 끌려갔다고 하면 어디로 가신 것일까?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아저씨께서 남기신 말씀이 무엇이냐?”.

퉁우람이 야율애령을 쳐다보면서 말한다; “아버지께서는 혹시 추장님의 가족 가운데 살아남는 자가 있으면 그분을 주군으로 모시고 우리 야율족을 반드시 재건하라고 당부하셨어요. 그러니 저희들은 이제 야율애령 아가씨의 신하들입니다. 주군을 모시고 함께 우리 야율족을 재건하겠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신하의 예로써 주군을 대할 것이니 부디 우리 야율족을 재건하여 주십시오… “;

그 말을 하면서 퉁우람과 퉁예란 남매가 눈물을 흘린다. 그것을 보고서 야율애령이 그들에게 다가가서 말한다; “그래 잘 알겠다. 이제는 우리가 살아남았고 또한 장성하였으니 반드시 부모님들의 원수를 갚아야지. 그리고 우리 야율족을 재건해야 하고 말고. 그것이 살아남은 우리들의 의무이지. 또한 완안족에게 끌려간 인질들도 반드시 되찾아오자. 그것이 우리가 힘을 합쳐서 해야 하는 일이야… “.

그러면서 야율애령이 그들 모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고 모두들 일어나라고 말한다. 그제서야 그들이 일어선다. 그러자 야율애령이 서우진을 그들에게 소개한다; “하후란 아주머니, 그리고 내 친구 우람과 예란아, 이분은 나의 남편인 서우진이야. 고려의 무사이지요. 내 남편이 이제부터 나를 도와서 우리 야율족을 함께 재건할 것입니다. 그러니 많이들 도와주세요”.

서우진이 여진말로 그들에게 부탁한다; “서우진입니다. 제가 부족하지만 아내를 도와 야율족을 개건하고자 합니다. 뜻이 같으니 함께 힘을 모으기를 원합니다. 저를 고려사람으로 대하지 마시고 같은 야율족으로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 말을 듣자 하후란과 두 자녀가 다시 바닥에서 예를 하면서 말한다; “아가씨의 남편이면 역시 저희들의 주군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하명만 하십시오. 저희들이 신하의 도리를 다할 것입니다”. 서우진이 그들 세사람을 일일이 손을 잡아 일으킨다.

그리고 서우진이 그들에게 말한다; “저희들은 벌써 개경에서 예전부터 야율종 추장님을 섬기던 재무상인 야율상을 만났습니다. 그가 몇 달 후에 이곳을 방문할 것입니다. 야율상이 저희들을 대신하여 여러분들에게 야율족을 재건하는 구체적인 방도를 말해줄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하후란은 물론 그녀의 아들과 딸인 퉁우람과 퉁예란이 그렇게 좋아한다. 그들도 야율족의 자랑이며 지식이 풍부한 재무상 야율상에 관하여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야율애령 아가씨 부부와 함께 발벗고 나섰으므로 반드시 야율족이 재건이 되고 집안의 가장인 퉁투랑도 찾아올 수 있을 것으로 믿고서 좋아하는 것이다.

그날 서우진과 애령이는 하후란의 집에서 하루를 같이 지낸다. 그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야율애령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영주성에서 함께 자란 동무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녀가 두 동무와 신나게 이야기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서우진을 돌아본다.

애령이 서우진에게 여진말로 말한다; “여기 내 동무 우람이와 예란이는 쌍둥이예요. 나이가 21살로 저와 동갑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무예를 함께 배운 동문이예요. 왜냐하면, 두사람의 부친인 퉁투랑 아저씨가 추장의 호위대장을 지낸 후에 부족 젊은이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어요. 그래서 저희들에게도 무예를 가르쳐 주었지요”;

서우진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런데 그 말을 하다가 야율애령이 동무인 퉁우람과 퉁예란에게 묻는다; “너희들은 그동안 계속 무술을 연마한거니? 앞으로 완안족과 싸우자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 그 말을 들은 퉁예란이 대답한다; “꾸준히 연마를 했어요. 그래서 우람이는 아주 무술의 고수가 되었어요. 자기 손으로 반드시 아버지를 찾아오겠다고 결심이 대단해요”;

그 말을 옆에서 들은 하후란이 말한다; “아가씨, 저도 예전에 남편과 함께 무술을 연마한 무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조련하고 이곳에서 말을 사육하고 있지요. 그리고 두자녀에게 무술을 계속 연마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적에게 포로로 끌려간 가장을 되찾고 우리의 야율족을 재건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애령이 하후란의 손을 잡고서 말한다; “아주머니, 잘 알겠습니다. 저희들이 힘을 모아서 반드시 완안족의 심장부를 치고 그들에게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부족원들을 모두 구출하도록 합시다. 이제 야율족의 새로운 재상으로 취임한 야율상 아저씨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저희 부부도 그 계획을 추진하기 위하여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랍니다”. 

그 말을 듣자 하후란이 애령에게 묻는다; “당장 저희들이 도울 일이 없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애령이 대답한다; “저희들은 내일 아주머니의 말을 2필 사서 무산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곳에 땅을 사서 일단 야율족의 마을을 형성하려고 해요. 그리고 야율족의 자녀들을 모아서 병사로 훈련을 시키고 키워내고자 합니다”.

애령이 잠시 숨을 쉰 다음에 모두에게 말한다; “그것이 일단 야율재상과 저희 부부가 합의를 한 부분이지요. 그 다음 계획은 훗날 애율재상이 이곳을 방문하여 또 말해줄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하후란이 무엇을 곰곰이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가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 마장의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를 할 것이니 저의 두 자녀를 데리고 함께 무산으로 가세요. 땅을 사고 부락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들은 무술도 상당한 실력이니까요그리고 말은 아주 잘 달리는 말 4필을 내어 드릴께요 “;

그 말을 듣자 야율애령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하후란에게 말한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저는 그 일을 아주머니에게 부탁드리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무산에서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지요”.

애령이 잠시 숨을 쉬고서 이어서 말한다; “저와 남편은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고려의 개경에 자주 들러야 하기에 무산에 계속 머물면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요. 우람이와 예란이가 그 일을 맡아준다고 하면 빨리 그곳에 야율족의 부락을 건설할 수가 있을 거예요”.

그 말을 들은 하후란과 두 자녀가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하후란이 야율애령의 두 손을 잡고서 말한다; “아가씨,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야율족이 재건되고 저의 남편이 무사히 돌아올 수만 있다고 하면 저는 더 이상의 소원이 없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그 일만을 꼭 성사시키고 싶습니다”.

야율애령이 대답한다; “아주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넉넉잡고 한 5년만 기다려주세요. 반드시 완안족을 쳐부수고 저희 부족원들을 구해내고 말 것입니다. 그것이 살아남은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

야율족을 재건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기가 함주성 교외 하후란의 마장에서 흘러 넘치고 있다. 집 바깥에서는 북녘 땅이라 그런지 10월초의 가을바람이 차갑게 불고 있다. 하지만 집안의 식사 분위기와 5사람의 결의는 그렇게 뜨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