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의 비밀19(작성자; 손진길)
야율상의 저택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온 서우진과 애령은 그날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서우진이 애령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애령아, 아무래도 이제는 내가 움직여야 할 때인 것만 같다… “.
애령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떡이면서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서우진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를 시작한다; “3명의 사형들이 동맹을 맺고 금나라의 남진에 대하여 저항을 하려고 하는데 내가 개경에서 편안히 지내고 있어서는 안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략을 구사하려고 생각한다… “.
애령이 경청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우진이 이어서 말한다; “첫째로, 나는 내 재산의 상당부분을 투자하여 두만강 중류 남쪽에 있는 무산지역의 땅을 사려고 한다. 그곳에 학문과 무술을 동시에 가르치는 학교 겸 도장을 세우고 군의 간부를 길러내고자 한다. 그리고… “;
재산을 처분한다는 말에 애령이 더욱 진지하다. 그러자 서우진이 말한다; “무산에 여진족의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데 애령이 네가 흩어진 동족 야율족을 찾아서 그곳으로 이주를 시켰으면 좋겠다. 둘째로, 무산에는 내가 대장간을 크게 만들고 무산의 철광석으로 병장기와 농기구를 많이 생산하려고 한다”.
그 말을 듣자 애령이 말한다; “그렇다면, 개마고원 근처 영주성에서 대장간을 경영하고 있는 투란 숙부의 가족을 그쪽으로 이주를 시켜야만 하겠군요?... “. 서우진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렇지, 그렇게 하고자 해. 그리고 셋째로, 혜산지역의 땅도 구입하여 여진족의 시장으로 개발하고자 해… “.
애령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한다. 그 모습을 보고서 서우진이 설명한다; “야율상은 상인이야. 그래서 나는 그에게 부탁하여 혜산의 땅을 많이 구입하고 그곳에서 여진족의 특산물을 생산하도록 만들 생각이야. 그 상품을 개경에서 팔면 이익이 발생하지. 그러니 혜산에서 야율족이 수공예를 하면서 함께 살 수가 있을 거야… ”.
애령이 묻는다; “그렇게 압록강 남쪽 혜산에 마을을 개척하고 또 멀리 동쪽에 떨어져 있는 두만강 남쪽 무산에 마을을 형성하게 되면 그 두 곳을 나중에 어떻게 연결하실 생각인데요? 그 사이는 거리도 멀지만 다른 여진의 부족들이 살고 있어 위험한 지역이 아닙니까?... ”.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시원하게 대답한다; “그렇다. 애령이 너의 말과 같이 무산과 혜산을 잇는 것이 나의 과업이지. 나의 나라는 일단 무산에서 출발하여 혜산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의 300리가 넘는 지역을 전부 점령함으로써 시작이 되는 거야. 그 일이 성사가 되면 나는 왕도를 혜산으로 하고자 해. 그곳은 우리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이 가깝거든… “;
애령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건국사업이 아주 구체적이고 확실해서 저는 찬성이예요. 오라버니의 뜻대로 제가 따를게요. 그런데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 서우진이 대답한다; “일단 압록강과 두만강 남부에서 왕국을 세웠으니 그 다음에는 당연히 그 옛날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를 회복해야지. 그것이 자손이 된 도리가 아닌가?... “.
그러자 애령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다면, 대웅국의 국왕인 김영웅 사형은 두만강 하류에서 북진을 하고 압록강 중하류에 자리를 잡고 있는 채고수 사형과 조금강 사형은 서쪽에서 북상을 하겠군요.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가 군대를 이끌고 북상을 하면서 금나라의 군대를 치는 것이군요. 좋은 전략입니다”.
서우진은 총명한 애령이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보고서 흐뭇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그와 같은 정책을 금년안에 나는 추진할 생각이야. 그리고 당장은 이번 여행을 다녀온 뒷처리를 이곳 개경에서 해야 해. 내일은 숙부님 댁에 문안인사를 드리러 다녀와야 하고, 그 다음에는 강계성에서 개경에 심어 놓은 첩자와 만나야 하는 거지…. “;
그 말을 듣자 애령이 말한다; “그렇다면 대웅국의 첩보망과도 접촉을 하여야 하는 것이군요. 그들에게 일단 개경의 정보를 전해주어야 하겠군요?.. “. 서우진이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그래, 정보를 전해주면서 나는 그들이 과연 어느 정도 잘 움직이고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해… 앞으로 강계성과 대웅국에 연락을 쉽게 전하자면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거든… “.
맞는 말이다. 그렇게 전략을 세우고 두사람은 비밀을 서로 공유한다. 그리고 그날 서우진은 혼자서 잠을 자지 않는다. 그는 앞으로 생사와 고락을 같이해야만 하는 반려자 애령이를 품에 안고서 자기 방에서 잠이 든다.
개경의 귀족이지만 고아나 다름없는 26세의 서우진은 숙부인 서화평과 숙모인 왕숙에게 미리 말씀을 드리지 아니하고 그렇게 여진추장의 딸인 야율애령과 그날 밤 실질적인 부부관계를 맺고 마는 것이다;
다음날부터 서우진은 바쁘다. 먼저 숙부 서화평의 집을 찾는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찾아 갔더니 서화평이 잠시 조정에서 나와 집에서 식사를 하려고 한다. 장조카인 서우진을 보고서 숙부 서화평과 숙모 왕숙이 그렇게 좋아한다. 한달만에 뵙는지라 서우진이 깍듯이 문안인사로 두분에게 큰절을 한다.
점심식사를 함께하면서 서화평이 먼저 말한다; “그래 우진이 너는 한달동안 어디를 다녀왔느냐?”. 서우진이 대답한다; “무예선생인 김숙번 사부를 모시고 사형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그 말을 듣자 서화평이 질문한다; “고려에서 무사로 이름이 높은 김숙번이 우진이 너보다 먼저 제자로 받아들인 자들이 있었구나. 그런데 내가 개경에서 그 제자들에 대하여 들은 적이 없다. 어떻게 된 것이냐?... ”.
서화평은 일찍 작고한 형님을 대신하여 장조카인 서우진을 개경에서 아들처럼 키웠다. 그리고 서우진에게 학문을 가르쳤으며 무예선생인 김숙번에게 부탁하여 그의 제자가 되도록 했다.
서화평은 개경의 고관대작으로서 자신이 김숙번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눈을 반짝이면서 서우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서우진이 고려의 재상인 숙부 서화평의 의구심을 해소해주기 위하여 솔직하게 대답한다; “세분의 사형이 있었는데 그들은 무신의 난 이전에 벌써 무과시험에 합격하여 개경에서 무관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서화평이 흥미가 있는지 귀를 기울인다. 서우진이 이어서 설명한다; “그런데 정변을 막으라는 조정의 지시에 따라 그들을 막다가 실패하고 그만 고려를 떠나 북쪽으로 탈출하고 말았어요… 그러니 숙부님께서 미관말직이며 고려를 떠나 있는 그들에 대하여 모르시는 것이 당연하지요… “;
서화평이 재차 묻는다; “그렇다면 사형들에 대해서 우진이 너는 언제 알게 된 것이냐?”. 서우진이 솔직하게 대답한다; “작년에야 사부님이 비로소 제게 말씀을 하셨지요. 북쪽으로 탈출한 그들로부터 5년이 지나서여 겨우 연락을 받으셨다고 말씀하시면서 함께 그들을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그랬어요… “.
그 말을 듣자 서화평이 숟가락을 잠시 놓으면서 또 묻는다; “북쪽 여진과 금나라의 땅으로 들어가서 5년 동안 그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우진이 너는 알고 있느냐?”. 서우진이 짧지만 확실하게 대답한다; “그들은 고려의 장수들입니다. 그래서 비록 고국을 떠나 있지만 현지에서 조국을 위하여 고군분투하고 있지요… “.
서화평이 관심을 크게 보인다. 그러자 서우진이 부연설명을 한다; “하나같이 이미 여진족의 땅에서 자기 세력을 지닌 독자적인 호족이나 성주로 기반을 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기반을 침략하려는 금나라 군대의 남진을 막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 형편을 제가 사부님을 모시고 이번에 그들을 방문하고서 정확하게 파악을 했습니다… “;
서화평이 ‘후유’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나서 말한다; “나는 그들이 고려의 조정을 원망하는 세력이 되어 있지나 않는지 걱정이 되어서 우진이 너에게 상세하게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그 반대라고 하니 다행이구나. 하지만 사부를 모시고 국경을 넘어서 비밀리에 다녀오느라고 고생을 했겠구나… 그래 국경의 사정은 어떠하더냐?... “.
서우진은 자신에게 언제나 인자한 숙부 서화평이 그토록 집요하게 질문하고 있는 모습을 생전 처음 본다. 그래서 역시 고려의 재상인 서화평이 보통 인물이 아님을 차제에 실감하고 있다. 서우진이 숙부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정직하게 답변한다; “고려의 국경은 보기보다 허술합니다. 무신들이 개경의 정치에 정신이 팔려 있으니 그러하지요. 그러니 쉽게 월경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서화평이 ‘흠’하고서 고개를 끄떡인다. 고려의 문신이면서 재상의 반열에 올라 있는 서화평이지만 정작 실권이 없다. 청주 출신으로 이제 겨우 27세인 젊은 장군 경대승이 정중부 부자처럼 그 뒤를 이어 군부의 실세가 되어 고려의 황실과 조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작년에 청년장군 경대승이 노회한 정중부 일가를 기습적으로 쳐부수고 군부를 장악하고 나자 고려 왕 명종에게는 친정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내부적으로 찾아 왔다. 경대승이 정치군인들의 회의체인 중방에서 노장파의 세력을 억누르면서 고려의 국왕인 명종에게 정국의 주도권을 되돌려주고 한가지 요구만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놀랍게도 국왕에게 문신의 수를 늘리고 무신들의 적폐를 청산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러므로 국왕의 입장에서는 경대승의 도움을 받아 적극적으로 개경의 군부를 개혁하고 개혁정치에 착수하면 된다. 하지만 국왕인 명종은 주도적으로 정치개혁에 착수하지를 아니하고 그만 대권을 경대승에게 넘겨버리고 자신은 그 뒤에 숨어버리는 비겁한 선택을 하고 말았다.
배포도 담력도 없는 연약한 명종은 그저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잔꾀만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겉으로는 젊은 경대승의 비위를 맞추는 척하면서, 은밀하게는 경대승의 동지를 구어 삶아서 그를 견제하게 하는 비겁한 술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개경의 정치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니 조정과 군부가 국사를 제대로 처리하지를 못하고 있다.
군부내의 지지세력이 약하고 국왕마저 신뢰하지 못하게 된 경대승은 오로지 자신을 경호하는 호위무사들의 지휘소인 도방만을 의지하여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도방이 제멋대로 탐욕에 젖어 있어도 그 잘못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국왕은 경대승의 그 약점을 잡아서 은근히 그를 견제하기에 바쁘다. 그러한 실정이므로 국왕이나 경대승이 국사를 제대로 처리하고 국경의 수비를 확실하게 챙길 수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고려 내부의 사정이다.
한마디로, 이것이 무슨 나라인가 싶은 것이다. 그래서 서화평이 정작 중요한 질문을 서우진에게 하지를 못하고 있다. 그 3사형들이 어디에서 구체적으로 기반을 잡고 있느냐? 하는 것인데 그것을 미처 묻지 아니한 것이다. 서우진은 그것을 다행으로 여기고서 얼른 서화평에게 계속 식사를 하시라고 권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옆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던 숙모 왕숙이 서우진에게 말한다; “우진아, 너는 금년에 26살이 아니냐? 그런데 어째서 아직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있느냐? 아들이 없는 나는 우진이 너를 결혼시켜서 조카며느리를 나의 며느리처럼 여기며 살고 싶다. 언제 이 숙모의 소원을 들어 주겠니?... “.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숙모님, 제가 꼭 마음에 드는 조카 며느리가 아닐지는 몰라도. 30살이 되기 전에는 반드시 제 아내를 데리고 와서 숙모님을 시어머니처럼 잘 모시라고 인사를 시키겠습니다. 그러니 오래 건강하게만 사십시오. 제가 효도를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서화평과 왕숙이 함께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어떻게 우리가 우진이 너의 말솜씨를 따라가겠느냐? 그저 우진이 너만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을 누리며 살아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 그날 점심식사를 하면서 이제는 서우진이 숙부 서화평에게 묻는다; “숙부님, 요즘 황궁과 조정의 분위기는 어떠합니까?... “.
서화평이 한숨을 쉬면서 말한다; “허허, 조정이 백성들의 걱정을 해야 마땅한데 요즘은 백성들이 조정의 걱정을 하고 있는 시절이야. 그 모든 일이 따지고 보면, 국왕이 왕관의 무게를 감당하지 아니했기 때문이지. 작년에 젊은 경대승 장군이 정중부 일가를 해치우고 국왕에게 정치개혁을 해달라고 요청했을 때에 국왕이 당차게 그 요구를 받아 들이고 차제에 친정을 하겠다고 선포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좋은 기회를 그만 포기하고 말았으니 일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지... “.
넋두리같은 재상 서화평의 말이 이어지고 있다; “나도 국왕에게 간청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 경대승에게 정치개혁을 맡기고 그를 방패막이로 삼는 것이 훨씬 낫다는 주장이야. 그것은 너무 안이한 생각이고 자기 안위만 챙기고자 하는 것이지. 그러니 여전히 실세는 군부이고 젊은 경대승이 그 수장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 참으로 답답해… “;
한마디로, 무신정권이 계속되고 있으며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서우진이 더 알아낼 정보가 사실은 없는 셈이다. 따라서 점심식사를 마치자 마자 서화평은 조정으로 돌아가고 서우진은 숙모에게 인사한 다음에 개경의 중앙에 있는 상점거리로 나가기 위하여 길을 나선다.
큰 싸전의 주인인 오서방을 만나자 서우진이 말한다; “오늘은 내가 중요한 부탁이 있어서 들렀어요.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
오서방이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상점의 내실로 서우진을 안내한다. 사환이 가지고 온 다과를 사이에 놓고서 탁자에 마주 앉는다.
먼저 서우진이 과자를 집어서 먹으면서 차를 마신다. 오서방도 천천히 다과를 즐기면서 서우진이 말하기를 기다린다. 마침내 서우진이 무겁게 입을 연다; “오서방이 지난 10년이상 나의 곡식을 받고 그것을 판매하여 나의 재산을 불려주어서 나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 부득이하게 큰돈을 사용해야만 하는 곳이 생겼어요. 그러니 어렵겠지만 내가 맡긴 은화 천냥 가운데 그 절반인 5백냥을 내게 돌려주기 바래요… “.
오서방이 진중하게 고개를 끄떡이면서 대답한다; “어디에 사용하시는 지를 묻지 않겠습니다. 제게 그냥 맡겨 두시면 이자가 많이 붙게 되는데 그것을 포기하면서 절반의 재물을 찾아가시는 것을 보니 무척 중요한 사용처로 보입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제가 은화 500냥을 마련하여 드리면 되는 것입니까?”.
서우진이 말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언제 가능하겠어요?”. 오서방이 조금 생각을 하더니 말한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5일 안으로 마련해 놓겠습니다. 큰돈이니 호위무사와 함께 5일후에 여기 들러 주시기 바랍니다”. 싸전에서 볼일을 마친 서우진이 이제는 강계성과 온성에서 온 첩자들을 만나고자 길을 나선다;
과연 그들은 어떠한 인물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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