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비밀(손진길 소설)

王의 비밀16(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28. 05:26

王의 비밀16(작성자; 손진길)

 

서우진이 애령과 함께 사부인 김숙번을 모시고 온성지역에 도착한 때가 118093일이다. 어느 사이에 가을로 접어 들었다. 특히 한반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온성지역은 차가운 날씨이다;

 

그 추위를 느끼면서 3사람이 온성의 성문으로 접근한다.

성문을 지키고 있는 수비병들이 성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군사들이 여진말과 고려말 두가지를 사용하여 대웅국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입국목적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다.

그것을 보면서 서우진이 생각한다; “그렇다. 온성은 벌써 김영웅이 세운 새로운 나라의 왕도이다. 그러므로 대웅국이라는 새로운 왕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자신의 입국목적을 신고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당연한 절차이다”.

대웅국의 주권을 국경의 수비병들이 무력으로 행사하고 있다. 그들은 대웅국의 왕과 신하들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그 권한을 위임 받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 대웅국의 주권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그 성문을 불법으로 통과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독점적인 폭력수단인 군사력에 의하여 강력하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제재를 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국가라고 하면 그들의 주권을 지킬 수 있는 군사력이 있을 때에 의미를 가질 수가 있다. 군사력이 없으면 나라도 왕도 존재할 수가 없다.

비록 국가나 왕이라고 하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허수에 불과한 것이다. 그와 같은 자명한 사실을 서우진이 온성의 성문 앞에서 새삼 온몸으로 느끼고 또한 뼈에 새기고 있다.

그는 앞으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고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강한 군사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이 왕을 왕 답게 만들고 나라를 나라 답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것이다;

그와 같은 불변의 진리를 사형인 김영웅이 벌써 깨우치고 또한 현실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점을 온성의 성문 앞에서 엿보면서 서우진은 김영웅 사형이야 말로 자신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줄 수 있는 선배라고 생각한다.

서우진이 고려말로 군사들에게 자신과 애령 그리고 사부인 김숙번이 대웅국을 방문하는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저희 3사람은 멀리 개경에서 왔습니다. 저는 이곳의 통치자인 국왕 김영웅의 사제인 서우진이고 이분은 국왕의 옛날 무예선생이신 김숙번입니다. 그리고 이 여자분은 저의 동생입니다”.

그 말을 들은 수비병들이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한 병사가 수비대장을 데리고 나온다. 나이가 30쯤 되어 보이는 수비대장은 날카로운 눈매를 지니고 있다. 장수로 보이는데 고려말이 유창하다.

그는 자신의 신분부터 밝힌다; “저는 온성의 출입문을 통제하고 있는 수비대장 김경수입니다. 개경에서 오셨다고 말씀하시기에 그 신분을 확인하고자 왔습니다. 저의 국왕과 어떠한 관계인지 다시 한번 제게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서우진이 정중하게 설명한다; “이 어르신은 사형인 김영웅 국왕에게 일찍이 개경에서 무예를 가르치신 김숙번 사부님이십니다. 그리고 저는 그 제자인 서우진입니다. 이 여성분은 저의 여동생인 서애령입니다”.

그 말을 듣자 김경수 대장이 김숙번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그 다음에 깜짝 놀라면서 이렇게 부르짖는다; “김숙번 사부님이 맞으십니다. 제가 개경에서 사촌 형님이신 국왕 전하와 함께 만난 적이 있는 그 사부님이 맞습니다. 참으로 먼 길을 오셨습니다. 얼른 안으로 드시지요. 두 분도 같이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서우진과 애령은 사부 김숙번 덕택에 수비대장인 김경수의 안내를 직접 받으면서 왕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국왕인 김영웅의 집무실이 있는 방으로 들어서면서 수비대장 김경수가 큰 소리로 외친다; “전하, 고려의 개경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무예 선생이신 김숙번 사부께서 일행과 함께 오신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큰 책상에서 서류를 보고 있던 김영웅이 벌떡 일어나서 문간으로 나온다. 그는 머리에 작은 왕관을 쓰고 있다. 김영웅이 김숙번을 보자 마자 허리를 크게 굽혀서 절을 한다. 그리고 말한다; “사부님, 이게 도대체 얼마 만입니까? 제자가 불민하여 10년만에야 이곳에서 사부님을 보게 됩니다. 용서하십시오”;

 

그 말을 듣자 김숙번이 역시 허리를 숙이면서 말한다; “일국의 왕이 되어 있는 제자이기에 내가 이렇게 허리를 굽혀서 마주 예를 차립니다. 그래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강계성에서 호족이며 성주로 살아가고 있는 채고수를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 점을 서우진이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가지를 깨닫게 된다; “그렇다. 작은 나라라고 하더라도 그 주권자인 국왕이 되면 그를 사사로이 대할 수가 없게 된다. 그는 왕관을 쓰고 있는 만인지상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왕국에 있어서는 배타적인 소유권과 생사여탈권을 행사하게 된다. 따라서 개인적인 친분이 있더라도 국왕을 대함에 있어서는 조심하고 신중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영웅이 사부인 김숙번에게 다가가서 포옹을 하면서 말한다; “사부님께서는 저를 장수가 될 수 있도록 키워 주신 은인이십니다. 사부님에게서 배운 무예와 병법으로 제자가 이렇게 작은 나라를 건설하고 국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부님께서는 그렇게 저에게 예를 차리지 아니하셔도 됩니다. 그러면 제가 오히려 불편합니다”.

그 말을 듣자 김숙번이 허허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나의 제자 가운데서 일국의 왕이 나왔으니 내가 너무 기뻐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나의 제자 가운데 또 일국의 왕이 탄생한다고 하면 나는 그를 축하하는 입장에서 존대로 대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부가 된 보람이지요. 그러니 너무 심려하지 마세요”.

김영웅이 허리를 굽혀서 사부에게 인사하면서 말한다; “사부님,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제자가 잘 알겠습니다. 사부의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처신을 똑바로 하고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 국왕이 되라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왕관의 무게를 잘 감당하라는 말씀으로 새기겠습니다”.

  김숙번이 축축한 물기가 서려 있는 눈으로 김영웅을 보면서 말한다; “그렇지요. 유독 나의 제자 가운데 김영웅은 총기가 있고 문과 무에 모두 능통을 했지요. 그가 큰 인물이 될 것임을 이 사부는 진작에 알아보았지요. 여기 또 한사람의 그러한 제자가 내게 있어요. 그가 바로 서우진이랍니다… “.

그 말을 듣자 김영웅의 시선이 서우진에게로 향한다. 그러자 서우진이 허리를 깊숙하게 숙여서 절을 하면서 말한다; “처음으로 사형을 뵙습니다. 서우진이라고 합니다. 사부님으로부터 무예와 병서를 8년간이나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실무에 있어서는 사형으로부터 앞으로 많은 지도와 편달을 받기를 원합니다”.

대웅국의 국왕인 김영웅이 친히 서우진에게 다가와서 두 손을 잡는다. 그러면서 친근하게 말한다; “나의 사부는 좀체 당사자가 있는 자리에서 칭찬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와 그대는 모두 그 희귀한 칭찬을 받았지요. 그러니 서우진 사제도 나만큼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이 부족한 사형을 많이 도와주세요”.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더욱 허리를 굽혀서 말한다; “감히 감당할 수가 없는 말씀입니다. 고려와 금나라의 사이에서 하나의 왕국을 건설하는 놀라운 업적을 세운 김영웅 국왕과 어찌 저 같은 평범한 개경의 귀족을 비교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 말씀은 거두어 주십시오. 그저 앞으로도 귀한 가르침을 주시기만 바랄 뿐입니다”.

그 말을 들은 김영웅이 속으로 생각한다; “서우진 사제는 깊은 지모를 겸비하고 있는 인물이구나. 그 깊이를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나보다 더 뛰어난 인물일 수가 있다.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고 그 또한 그러한 자이다. 앞으로 적이 아니라 동지로 삼아야 할 인물이로구나… “.

생각은 길었지만 김영웅의 행동은 빠르다. 그는 즉시 3사람을 옆방으로 인도한다. 그곳에는 벌써 푸짐하게 식사가 차려져 있다. 그리고 시중을 드는 사람들과 함께 서우진이 성문에서 만난 수비대장 김경수가 서있다. 그것을 보고서 국왕 김영웅이 말한다; “모두들 자리에 앉아 함께 식사를 하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수비대장도 함께 자리에 앉도록 하시게나… ”.

서우진 일행이 사양하지 아니하고 착석한다. 그만큼 시장하기 때문이다. 먼저 국왕인 김영웅이 각자의 잔에 술을 부어주면서 말한다; “이곳은 추운 지방입니다. 그래서 식사를 할 때에 독주를 먼저 한잔 마십니다. 그러면 몸이 빨리 데워지지요”. 그리고 건배를 제안한다.

식사를 하면서 김영웅이 말한다; “사부님께서는 지난 10년 동안 개경에서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제가 서신을 몇 번 내어 여러 번 초청을 했습니다마는 이제서야 방문을 하셨습니다. 그동안 바쁘셨던 모양입니다… ”. 그것은 일국의 국왕이 된 자신을 왜 빨리 보려고 오지 않았느냐? 하는 마음이 묻어 있는 말이다.

그 말을 듣자 김숙번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렇지요, 살아 생전에 제자가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고 초대왕이 된 그러한 경사를 보고 싶지 아니하는 사부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급한 일이 하나 있었지요. 그것은 6년전에 고려 무신정권의 지배자였던 이의방의 가문이 몰락할 때에 혼자서 살아남은 나의 제자를 찾는 것이었지요… “.

김영웅이 깜짝 놀라면서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김숙번이 이어서 설명한다; “3사람의 제자를 길러 모두 고려조정에 무관으로 출사를 시킨 다음에 나는 여기 서우진과 또 한사람의 제자를 키웠어요. 그가 바로 이린인데 이의방의 친동생이지요. 그는 그 멸문지화의 과정에서 장인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피신을 했답니다. 숨어서 사는 그를 내가 발견하는데 5년이 걸렸지요… “.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이기에 모두들 조용히 듣는다. 그러자 김숙번이 계속 설명한다; “나는 그의 소재가 파악이 되자 은밀하게 제자 서우진과 함께 파주골을 방문하여 그를 만났지요. 그 다음에 그의 가족을 비밀리에 고려의 국경을 탈출하여 의주성으로 피신시켰어요. 그곳에서 이린과 그의 아내는 성주 조금강의 신하가 되었어요”.

대웅국의 국왕인 김영웅과 수비대장인 김경수가 모두 크게 고개를 끄떡인다. 그것을 보고서 김숙번이 말한다; “이린은 조금강 성주에게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보고하는 참모가 되었어요. 그래서 그의 동문인 서우진이 개경에서 황궁과 군부의 소식을 수집하여 2달에 한번씩 비밀리에 이린에게 전해주고 있어요. 그렇게 두사람은 절친이며 동지이지요”.

그 말을 듣자 김영웅이 관심을 기울인다. 그래서 조금 생각을 하다가 서우진에게 말한다; “사제, 자네가 그러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가장 생생하고 귀한 정보일 것이야. 그 정보는 내가 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있어서도 꼭 필요한 것이지. 그러니 이왕 수고를 하는 김에 내게도 그 정보를 똑같이 제공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

강계성의 채고수 사형과 똑같은 생각을 대웅국의 국왕인 김영웅이 하고 있다. 그래서 서우진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제가 수집한 정보를 넘겨드리는 것은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일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는 대웅국의 사람이 개경에 상주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니 제게 어떻게 접촉하면 되는지를 알려 주시면 제가 두 달에 한번씩 동일한 정보를 넘겨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김영웅이 크게 기뻐하면서 말한다; “좋습니다. 좋아요. 내가 나중에 그 방법을 알려드릴 터이니 그렇게 꼭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사제는 이곳에 자주 놀러 오세요. 함께 저 넓은 만주를 어떻게 경영하면 되는지를 논의하도록 합시다. 그곳이 모두 우리 조상인 고구려인들의 터전이었지요. 지금 금나라의 변방으로 남아 있는 것이 나는 억울합니다”;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새삼 깨닫는다; “김영웅 사형은 그 꿈과 이상이 조금강 성주나 채고수 성주와는 다르다. 그가 개경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 두만강 하류의 온성에 수도를 두고 있는 이유가 확실하구나. 여기서 보면 북만주가 보이고 연해주가 보인다. 그 땅들이 모두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다. 그러니 그는 그것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야. 그것은 야망이라기 보다는 자손이 된 도리로 보인다. 나의 꿈과 같은 것이야”;

참고로, 옛날 고구려의 영토가 다음과 같다;

 

그리고 발해의 영토가 다음과 같다;

그에 비하여 고토 회복을 위한 북진의 꿈을 접어버리고 정치군인들이 집권하고 있는 초라한 12세기 고려의 모습이 다음과 같다;

서우진이 사형 김영웅을 만남으로 인하여 그는 더 큰 꿈을 가지게 된다. 잃어버린 조상들의 땅 곧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를 수복하는 것이 그 자손이 된 자신이 해야 할 일임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반도의 꼭지점 온성에서 김영웅과 서우진이 같은 꿈을 꾸고 있다;

 

과연 그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