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비밀(손진길 소설)

王의 비밀10(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27. 08:23

王의 비밀10(작성자; 손진길)  

 

2. 모계사회의 땅 여진

 

서우진이 애령과 함께 개마고원에 있는 영주성에 도착한 때가 1180610일 경이다. 크게 덥지도 춥지도 아니한 좋은 날씨이다. 영주성에 오자 애령이 서우진에게 말한다; “여기가 우리 야율족의 본향입니다. 우리 야율족은 완안족과 같이 여진족에 속하고 있지요. 그런데 오라버니는 어째서 우리 민족을 여진족이라고 부르고 있는지 아세요?... “;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말한다; “그 점에 대하여 나는 깊이 생각해보지를 못했다. 그 연유가 무엇인데?... “. 애령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옛적에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요, 그것이 정확한지는 저도 몰라요우리 민족의 조상들은 고구려의 귀족출신인 대조영과 함께 발해를 세운 만주의 말갈족이래요… “;

참고로, 당시의 말갈족은 대체로 대조영과 함께 발해를 건국하는데 앞장을 섰지만 그에 반대하여 서진을 한 부족들도 많이 있다. 그들은 중앙아시아를 지나 멀리 동유럽까지 진출했다. 그래서 그 이름이 역사적으로 마쟈르라고 남아 있다. 중동과 유럽사람들이 말갈이라고 하는 받침을 발음하기가 어려워서 그렇게 음편적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서우진도 알고 있는 역사이야기이다. 그 옛날 고구려나 그 뒤를 이은 발해나 모두 고려의 조상들이 만주족 또는 말갈족과 함께 세운 다민족국가인 것이다. 그런데 애령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건국초기에는 그것이 아니었는데 후반기에 들어와서는 대조영의 후손과 고구려의 유민 출신들이 지배 족속의 티를 내면서 만주의 원주민인 말갈인들을 업신여기고 피지배민족으로 분류하여 종처럼 부리기를 시작했대요... “.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일까?’, 서우진이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애령이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 결과 발해의 지배 족속과 원주민인 말갈족과의 오랜 전쟁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때문에 발해도 망했지만 말갈의 전사들도 수없이 죽고 말았대요. 그러자 남은 미망인들이 자녀들을 키우면서 오랜 세월 망국의 땅 만주를 홀로 지킨 것이지요... “;

서우진이 경청을 하자 애령이 이어서 말한다; “모계사회가 형성이 되자 어머니의 훈육을 받은 자녀들이 새로운 모습의 전사가 되어 자신들의 정체성과 전통을 새로 만들었어요. 그들은 말을 갈아타고 멀리 서방정복을 위하여 떠나간 조상들 말갈족과는 달리 이제는 어머니의 말을 잘 듣고 착실하게 고향을 지키며 그곳에서 번영을 이루고자 노력했어요. 그래서 그 이름을 말갈이 아니라 여진으로 바꾸었다고 해요”.

애령이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 옛날 유목생활을 하면서 약탈식 전쟁만 치던 말갈족보다는 이제 만주에서 정착생활을 하면서 착실하게 새로운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 여진족이 더 뿌리가 튼튼하고 강하다고들 말해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가 어릴 적에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예요. 아버지인 야율종 추장은 결코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으세요. 재미있죠? 호호호… “.

그 말끝에 애령이가 웃는다. 서우진도 따라서 웃는다. 그것은 지배민족과 피지배 원주민의 구별이 뚜렷한 나라에서 흔히 엿볼 수 있는 현상이다. 소수인 지배민족은 원주민 여자와 함께 살지만 자기 마음대로 훌쩍 아무런 책임의식도 없이 처자식을 남겨두고 전장으로 떠나버린다. 그러면 자녀를 키우고 집을 지키는 것은 온전히 남은 여인들의 몫이다.

참고로, 그러한 풍습을 고대 일본에서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을 방처제도에 입각한 모계사회라고 부른다. 그와 같은 것을 만주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진족의 모습에서도 볼 수가 있다고 하겠다. 그 점을 서우진은 애령이의 설명을 통하여 새삼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진족은 자신들의 글자를 만들어서 벌써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중국의 뜻글자인 한자를 사용하는 한편 한자와 한자를 연결하는 자신들의 소리를 올챙이 모양의 부호로 만들어서 만주의 글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나중에는 아예 한자까지 그 올챙이 부호를 발음기호인 소리글자로 사용하여 대체하기에 이르고 있다. 그러니 아직 자신의 글을 가지고 있지 못한 고려보다는 여진족의 성장과 번영이 더 빠르다고 하겠다.

그러한 맥락에서 금나라의 놀라운 발전의 역사를 이해할 수가 있다. 여진의 한 갈래인 완안족의 추장인 아골타1115년에 금나라를 세우고 11년만에 거란족의 요나라와 한족의 북송을 멸망시킨다;

 

그리고 그 다음해 1127년에는 양자강 이북의 중원 땅을 모두 차지하여 다스리는 대제국 금의 황제가 된 것이다.

그것은 중원의 주인이던 송나라가 비록 군사력을 기르지 아니하고 문약에 흘렸다고 치부하더라도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대목이다. 그 배경에는 뜻글자인 한자보다 소리글자인 만주어를 사용하고 있는 여진족이 문화의 습득과 전파에 있어서 더 빠르고 그만큼 군대의 의사소통과 지휘체계가 탁월하다는 사실이 깊은 내막으로 숨어 있는 것이다.

언어란 일반백성과 병사들이 쉽게 배우고 빠르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가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다른 나라보다 앞서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어려운 한문을 일부 귀족만이 평생 파고들면 학문에 대성하는 학자가 나타날 수는 있지만 일반백성들의 의사소통과 발전에 있어서는 별로 효과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문약해진 송나라보다는 소리글자로 급성장한 여진족의 금나라가 강력한 군대를 지니고 있으며 발전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하겠다. 개마고원의 영주성에서 서우진이 그러한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훗날 그는 세가지 정책을 펴게 된다; 첫째, 여진족의 언어를 보급한 것이다. 둘째, 남녀의 차별과 종족의 차별을 철폐한 것이다. 셋째, 여성들의 교육에 진력하여 집안에서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책임지고 국가의 동량으로 키우도록 장려한 것이다;

그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고 당장은 야율애령의 부모님이 묻혀 있는 묘소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애령이 영주성 근처에서 은밀하게 수소문을 하고 있다. 지금의 영주성은 야율족이 아니라 완안족이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아주 조심스럽게 하층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야율족을 찾아서 6년 전 그들의 추장 야율종의 무덤을 수소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대장간일을 하고 있는 50대 후반의 인물이 애령의 얼굴을 한참 살펴보더니 슬쩍 지나가는 말투로 정보를 준다; “아씨, 소인은 야율 추장의 죽마고우인 투란입니다. 아무 소리 마시고 조금 떨어져서 저를 따라오세요.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

 

여진족의 말로 대화를 하고 있기에 서우진이 정확하게 알아 듣지를 못한다. 그러자 애령이 조그만 음성으로 설명을 한다.

두사람이 투란을 따라 골목을 빠져 나온다. 그리고 마을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에서 산지를 탄다. 그러자 잔나무가 우거져 있는 지역에 무덤이 여러 개가 있다. 일종의 공동묘지이다;

 

그 가운데 두개의 무덤을 투란이 가리킨다. 동편에 있는 것이 야율 추장의 묘이고 그 옆의 것이 부인의 묘라고 설명한다.

투란의 말을 애령이 서우진에게 통역해준다. 그러자 서우진이 그의 품에서 두가지 물품을 꺼낸다; 하나는, 작은 두개의 호로병에 들어 있는 술이다. 또 하나는, 육포가 둘이다. 그것을 서우진이 정성스럽게 야율 추장과 그 부인의 묘 앞에 하나씩 놓는다. 그 다음에 애령에게 말한다; “애령아, 나도 함께 절을 하겠다. 너는 부모님께 재배를 올리고, 나는 장인과 장모에게 예를 갖추어 절을 올리겠다”.

애령이 갑자가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말한다; “아버지, 어머니, 살아 계셔서 저희 부부의 절을 받으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제 늦게 나마 딸 애령이와 사위 서우진이 함께 절을 올립니다”. 서우진이 애령이와 함께 재배한다. 그리고 호로병의 술을 산소 주위에 뿌린다.

그 다음에 서우진이 투란을 쳐다보자 그가 조용히 야율 추장과 그 부인의 묘소에 절을 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추장님, 얼마나 기쁘십니까? 따님이 무사히 살아서 이렇게 성인이 되어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왔어요. 제가 죽마고우의 도리를 한 것만 같아서 기쁩니다... “. 그런데 그 묘소에는 묘비도 상석도 없다. 그러니 투란이 가르쳐 주지 아니하면 도저히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서우진이 호로병 하나를 투란에게 건네 준다. 그가 서우진을 한번 보더니 꿀꺽꿀꺽 마신다. 그러면서 애령에게 묻는다; “아씨, 이 분은 누구세요?”. 애령이 대답한다; “저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고맙게도 이렇게 저의 부모님을 함께 찾아 뵙자고 말했어요. 그런데 아저씨는 어떻게 저의 부모님의 묘소를 알고 계세요? 여기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는데… “.

그 말을 듣자 투란이 대답한다; “아씨의 이름이 제 기억으로는 애령이지요. 야율종 추장과 나는 어린 시절 동무였지요. 추장의 아들인 종은 추장이 되었고 나는 아버지의 대장간 일을 맡았지요. 그런데 6년전에 금나라 군대를 끌고 온 완안 추장 웅에게 우리 부족이 멸망을 당하게 되자 제가 추장님 내외의 시신을 몰래 거두어 여기에 묻은 거지요”.

애령이 무슨 말인지 알아 듣고서 고개를 끄떡이다가 갑자기 일어서서 허리를 굽혀서 감사의 인사를 한다. 그러자 투란이 만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묘소에 상석을 세울 수가 없어요. 야율 추장 내외의 무덤이라고 알려지면 완안 추장이 파내고자 할테니까요그런 처지이니 제가 편하게 아씨의 절을 받을 수가 없답니다“.

그 말을 듣자 애령의 눈에 살기가 어린다. 그리고 분연히 말한다; “저는 반드시 부모님의 묘소에 상석과 비석을 세울거예요. 완안웅의 세력을 꺾고 그렇게 만들고 말거예요. 한번 두고 보세요… “.

투란이 그 말을 듣자 눈을 잠시 감는다. 그리고 말한다; “아씨, 그러한 결심은 자식으로서 당연하지만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완안웅은 금나라 황실의 친척입니다. 그러므로 그 세력을 분쇄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금나라가 내우외환에 시달리지 아니하는 한 만주에서 완안족을 치기는 실로 어려운 문제이지요… “.

그 옆에 서있는 서우진은 답답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잘 알아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결심한다; “내가 개마고원에서 몸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진족의 말과 글을 깨우쳐야만 하겠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이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의 내용을 쉽게 알아 들어야 한다”.

산소에서 다시 영주성으로 돌아오니 해가 지려고 한다. 그러자 투란이 권한다; “아씨, 저의 집이 여기서 멀지 않으니 하루 묵으시고 길을 떠나시지요? 부친의 옛날 친구이니 그냥 숙부라고 편하게 생각하시고 그렇게 하시지요?.. “. 애령이 서우진에게 말하고 승낙을 구한다. 서우진이 고개를 끄떡이자 그렇게 하기로 한다.

두사람은 그날 투란의 집에 묵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특히 투란에게는 애령이 또래의 아들과 며느리가 있다. 그는 아들에게 자신의 가업을 장차 물려줄 생각이라고 말한다. 여진족 사회에서 대장장이란 상당히 평판이 좋은 전문직종이라 아들도 흔쾌히 그 일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아들의 이름이 투투이고 며느리의 이름이 하오란이다.

그 집에서 밤 늦게까지 서우진은 애령이를 통역으로 사용하여 투란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일까? 투란이 전해주고 있는 야율족과 완안족의 현재의 사정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