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비밀(손진길 소설)

王의 비밀9(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27. 08:07

王의 비밀9(작성자; 손진길)

 

서우진은 열흘 남짓에 말을 이용하여 애령이와 함께 고려의 국경선을 넘어 의주성을 다녀온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여행한 것이다. 개경에 도착하니 벌써 117912월이 시작되고 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겨울이다. 금년 농사가 그런대로 풍작이라 곡간에 마름인 천서방에 가져다 쌓아 놓은 양식이 충분하다. 그러므로 개경의 귀족인 서우진이 먹고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지난 9월에 정중부 부자를 척살하고 권좌에 오른 젊은 장군 경대승과 그의 지지세력들은 바쁘면서도 불안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 이유는 두가지 때문이다;

(1)   하나는, 개경을 탈출하여 경주로 내려가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이의민 때문이다. 그런데 경대승의 신임을 받아 고려의 군권을 맡고 있는 두경승이 이의민과 가까운 사이로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한가지 불안의 요인이다;

 

(2)  또 하나는, 경대승과 그의 심복인 김자격을 바라보는 허승김광립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서우진은 의주성주인 조금강에게 개경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하여 117912월과 그 다음해 초에 고려조정의 정세에 대하여 더 조사를 하고 있다. 그 결과 그가 추가로 파악하게 된 상세한 정보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지난 9월에 경대승과 그의 일당은 비밀리에 정중부 부자를 제거하기 위하여 두가지로 작전을 전개했다; 하나는, 경대승이 친구이자 심복인 김자격과 함께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황궁을 침입한 것이다. 궁궐 친위대를 치고 국왕의 신변부터 확보한다. 또 하나는, 정균의 무사로서 비밀리에 경대승의 거사에 호응을 한 허승김광립이 정균을 살해하고 황궁을 장악한 경대승의 지시에 따라 피신 중에 있는 정중부와 그의 사위인 송유인을 척살한 것이다.

둘째로, 정중부 부자와 그 사위를 처치한 경대승 일당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하여 명종이 거대한 축하연을 베푼다;

 

 그러나 경대승이 일갈을 하면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는 선왕인 의종을 살해한 자가 버젓이 개경에 살아 있는데 어찌 축하연을 베푸는가?’고 고함을 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신하들 뿐만 아니라 명종이 모골이 송연하다. 그래서 그는 경대승을 치하하면서도 그를 두려워하여 자구책을 모색한다. 그 방법은 이의민이 개경에서 탈출하도록 두경승을 움직여서 돕는 한편 허승김광립을 은밀하게 자기편으로 만든 것이다.

셋째로, 경대승은 당대 무예가 가장 뛰어난 인물이다. 게다가 두뇌도 명석하다. 따라서 주군인 정균을 배신하고 거사에 참여한 허승김광립에 대하여 은밀하게 감시의 끈을 놓지 아니하고 있다. 그런데 고려의 국왕이 그 두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있다. 그들을 이용하여 경대승 자신을 견제하고자 하는 술책이다. 그렇게 정치를 꿰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서 허승과 김광립은 자신들이 정중부 부자와 그 사위를 모두 해치운 공신들이라고 자랑하면서 경대승 위에 서려고 한다. 경대승은 대권이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 따라서 그 둘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서 암살해버리고 만다.

넷째로, 이제 경대승의 세력과 그에게 암살이 된 허승과 김광립의 수하들 사이에 긴장이 감돌고 있다. 그래서 경대승은 심복 김자격을 통하여 뛰어난 무사 100명을 모집하여 자신의 신변을 지키는 도당으로 삼는다. 그때부터 심복 김자격이 지휘하고 있는 도당들을 손발로 사용하여 경대승이 백의의 정승이며 장군으로서 고려의 정치를 요리한다. 그것을 이름하여 도방정치라고 부르고 있다.

다섯째로, 경대승의 정치개혁은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서우진은 그것이 경대승의 경륜이 부족한데서 오고 있는 결과로 보고 있다. 실례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1)  첫째, 그의 부친인 경진은 무신의 난 이후 정중부를 도와서 출세를 하고 고향인 청주에 큰 전답을 식읍으로 마련한다. 나중에는 청주의 민심을 다스리고 분쟁을 해결하는 사심관으로 지낸다. 그것을 젊은 장수 경대승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부친이 탐학을 일삼으며 재산을 늘리는 것을 싫어한 것이다. 그래서 대를 이어 자신이 사심관이 되자 부친의 재산을 모두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만다. 그때부터 고향인 청주에서는 큰 인기를 얻게 되는 경대승 장군이다.

(2)  둘째, 소수의 정예를 이끌고 실권자 정중부 부자를 해치우고 고려의 정권을 차지하자 경대승은 무신의 난 이전의 고려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러한 회고정책을 문신들과 백성들은 좋아한다. 그러나 무신의 난으로 왕좌를 얻게 된 명종과 권력의 맛을 보게 된 중방의 군부세력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 반대세력을 누르기 위하여 경대승이 선택하고 있는 것은 가장 청렴한 정치이다. 그는 모범을 보인다. 스스로 고려의 아무 직책도 맡지를 않는다. 그저 때로 황궁에 들어서 개혁안을 명종에게 제시할 뿐이다. 하지만 경대승을 두려워하고 있는 명종은 그대로 실행하고 만다.

(3)  셋째, 지나친 경대승의 청렴한 정치 때문에 녹봉이 없는 도방의 도당들이 스스로 살길을 찾고 있다. 100명의 친위무사들이 먹고 살 방도가 없자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기득권층의 재산을 가로채고 때로는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고 있다.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이 경대승에게는 없다. 그래서 현실의 벽에 부딪쳐서 그만 눈을 감고 만다. 그것이 경대승을 견제하고자 하는 고려의 국왕에게는 호기가 된다. 명종은 경대승의 친구이자 심복인 김자격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경대승을 제거하고자 한다. 그 결과 경대승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을 하다가 서서히 골병이 들고 마는 것이다.

서우진은 1180년에 고려의 내정에 대한 정보를 다각적으로 은밀하게 수집한 결과 그와 같은 현상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그러자 서우진은 그러한 맥락에서 차례차례로 2달에 한번씩 애령이를 의주성으로 보내어 그 소식을 이린에게 전해준다;

자신과 애령이의 안전을 위하여 이제는 서신보고를 하지 아니하고 애령이에게 보고사항을 암기하도록 하여 구두로 전해준다. 그러므로 많은 정보를 결코 한꺼번에 전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이다.

서우진이 의주성에 조금씩만 정보를 전해주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1180년이 되자 그가 자신의 진출방향을 두고서 새로운 탐색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은 의주성도 아니고 고려의 영토도 아니다. 서우진은 국경 너머에 있는 금나라의 발상지인 여진족의 땅을 정복하고자 원대한 구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는 서우진이 애령에게 묻는다; “애령아, 너는 15세가 될 때까지 개마고원에 있는 여진족의 야율 추장의 딸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너의 부모님이 금나라의 군대에게 패전을 했으며 너는 고아가 되어 고려 땅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었는지 내게 소상하게 설명을 해다오. 내가 필요해서 그렇다… “.

애령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자 괴로운 모양이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서우진의 앞날에 도움을 주고자 그 고통을 참으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지금으로부터 65년 전인 1115년에 여진족 완안주의 추장인 아골타가 금나라를 세웠어요. 그는 여진족이 낳은 대영웅이지요… “.

서우진이 귀를 기울이자 애령이 상세히 설명한다; “아골타는 금나라를 통치한지 10년만에 송나라의 공물과 요청을 받아 들여 대군을 이끌고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지요. 그러나 송의 황제가 조공의 약속을 어기고 도리어 금나라를 치려고 하자 아골타가 대노하여 송나라의 수도인 개봉을 점령하고 맙니다”.

애령이 숨을 좀 돌린 다음에 이어서 말한다; “1126년에 아골타가 대군을 이끌고 남송을 치지만 성공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1127년부터는 양자강을 사이에 두고서 북송을 직접 통치하게 되지요. 그렇게 아골타가 거대한 중원의 북쪽 영토를 다스리게 되자 만주에서는 여러 여진족 추장들이 그 그늘에서 어느 정도 독립성을 누리면서 잘 지내게 되지요”.

그 다음의 설명을 시작하는 애령의 눈이 갑자기 슬픔에 젖어 든다; “그런데 1170년대에 들어서자 금나라의 황실에세 보낸 완안웅이 새로 여진 완안족의 추장이 되면서 여진 야율족을 아우르고자 했어요. 그때까지 금나라는 만주의 여러 여진족의 추장들에게 재량권을 주었는데 그것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선친이 그것을 반대하다가 1174년에 그만 금나라의 군대를 동원한 완안웅에게 멸문지화를 당한 거예요… ”.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묻는다; “그렇다면, 애령아, 완안웅이 지금도 개마고원과 압록강 유역에서 완안족을 다스리고 있겠구나?”. 애령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자 서우진이 말한다; “애령아, 너는 나와 함께 그 옛날 너의 고향을 찾아보고 또한 완안웅이 다스리고 있는 지역을 좀 살펴보자꾸나. 그리고 가는 걸음에 그곳에서 호족으로 살고 있는 채고수 사형도 좀 만나보아야 하겠다… “.

11806월이 되자 날씨가 상당히 따뜻하다. 이제는 북방으로 떠나도 크게 춥지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서우진이 애령이와 함께 말을 타고서 개경을 떠나 개마고원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2달 정도의 일정을 잡고서 길을 떠나는 것이기에 사전에 천서방 내외에게 말하여 저택관리를 부탁한다.

서우진은 이번에 북방 압록강 하류에 있는 의주성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개경을 벗어나자 곧장 북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도중에 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래서 동북방향으로 계속 가서 국경이 가까운 화주 곧 영흥에 도착한다. 국경을 넘어서게 되면 함주로 불리고 있는 함흥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함주와 그 일대의 9성은 1107년에 고려 왕 예종의 명을 받은 윤관이 별무반 17만명을 이끌고 여진족을 정벌하여 건설한 것이다. 하지만 1115년에 여진족 완안주의 추장인 아골타가 금나라를 세우고 그 세력이 갑자기 막강해지자 고려의 조정에서는 화해책을 모색하면서 동북 9성을 되돌려 주고 말았다;

그러므로 서우진은 화주에서 주막에 머물면서 애령과 함께 어떻게 국경을 넘어갈 것인가를 상의한다. 그러자 애령이 말한다; “저는 6년전에 벌써 그 국경을 넘은 적이 있어요. 지금 고려는 여진과의 국경지대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아니하므로 월경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예요. 제 뒤만 잘 따라오세요”.

서우진이 그 말을 듣자 그날 저녁에 주막 주인에게 말 두 필을 부탁한다; “국경 가까운 지역에 그동안 사냥을 하지 아니하여 사냥감이 많습니다. 이곳 현지의 지인들과 만나 함께 사냥을 즐기다 오려고 해요. 그러니 주인장께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보름 정도 두 필의 말을 맡아서 잘 돌보아 주세요. 여기 충분한 비용을 두고 갑니다”.

꽤 두둑한 돈을 받았기에 주인장이 좋아한다. 다음날 새벽에 서우진이 애령과 함께 국경을 넘고자 어둑한 길을 나선다. 아직 주위가 어스름한데 산길을 탄다. 그런데 애령이의 능력이 탁월하다. 산의 지세를 살피고 능선길을 찾아내는 데는 선수이다. 벌써 6년전의 일인데도 자신이 온 길을 기억하고 다시 그 길을 찾아서 간다. 덕분에 서우진이 수월하게 함주에 도착한다.

함주에 도착하자 애령이 그 옛날 야율애령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그 옛날 추장인 선친 야율종이 그 지역까지 다스린 것이다. 그래서 서우진이 그 마을의 주막을 찾아서 들어간다. 그러자 애령이 유창한 여진의 말로 국밥을 주문한다. 주막 주인이 여진족 남녀인 줄 알고 아무 의심을 하지 않는다.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서 서우진이 애령을 따라 길을 나선다. 그러면서 애령에게 말한다; “애령아, 이곳에 오니 고향생각이 많이 나는 모양이구나. 지금의 너는 15세의 소녀가 아니라 21세의 완전한 성인이다. 그러므로 네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아니하는 이상 너의 정체를 짐작할 사람이 없다. 그러니 차제에 나와 함께 너의 고향을 한번 둘러보자꾸나”;

그 말을 듣자 애령이 말한다; “오라버니, 그렇게 해도 괜찮겠어요? 사형인 채고수의 본거지를 찾아보는 일이 바쁠 텐데… “. 그러자 서우진이 말한다; “먼저 선친과 조상이 묻힌 곳을 찾아보는 것이 자손이 된 도리이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너와 나의 꿈을 펼치는 각오를 단단하게 다지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나는 본다… “.

그 말을 들은 애령이 갑자기 서우진의 가슴을 파고 들면서 말한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먼저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가서 함께 절부터 드리도록 해요. 그것으로 저는 오라버니의 아낙이 되고 함께 이곳에 우리들의 왕국을 세우도록 일생 노력할께요. 감사해요… “.

젊은 남녀가 북쪽으로 다시 나아간다. 개마고원으로 올라가니 서늘한 바람이 분다. 이제 그들이 가는 길에 어떠한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일단은 그 옛날 그 지역을 호령하던 야율종 추장의 무덤을 찾아가고 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