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의 비밀6(작성자; 손진길)
서우진과 이린이 개인적으로는 사형인 조금강 성주의 신임을 받으며 참모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들은 조금강 성주로부터 작지만 집을 한 채 씩 하사 받아 의주성에 무사히 정착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의주 일대에서는 왕이나 다름이 없는 조금강 성주에게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그것이 가신이 된 자신들의 의무이다.
봉건적인 가치가 지배하고 있는 고려시대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은급사회’(恩給社會)이다. 그 의미는 왕이 된 자는 신하에게 먼저 은혜를 베풀어 먹고 살 수 있는 신분과 영지를 주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충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서우진과 이린은 의주성에서 이제는 조금강 성주의 가신과 같은 참모가 되어 있다. 조금강은 개인적으로는 사형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의주 일대를 다스리고 있는 성주이며 그것도 독자세력을 갖추고 있는 작은 왕과 같은 장군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들이 조금강 장군에게 맡은 바 직책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야 한다.
서우진과 이린의 직책이 개경의 사정을 파악하여 조금강 성주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과업을 적극 수행하여 조금강 성주가 알고 싶은 내용을 보고해주어야 한다. 그에 따라 1179년 9월 하순에 의주성에 무사히 안착한 서우진이 서서히 움직이고자 한다.
서우진은 개경에서 청년장군 경대승이 반란에 성공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이제는 명종을 등에 업고서 정치개혁에 착수하고 있다고 듣고 있다. 경대승의 정치개혁의 목표가 무엇일까? 그가 내부적인 개혁에 성공하게 되면 외부로 눈을 돌릴 것인데 그때에는 의주성을 치고 새로운 성주를 임명하려고 할 것인가? 그 점부터 파악해야만 한다;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서우진이 개경으로 다시 들어가야만 한다. 개경에서 쫓기고 있는 신세인 이린의 경우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서우진이 개경에서 정보를 수집하여 의주성의 이린에게 보내고 그것을 이린이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조금강 성주에게 보고하는 역할분담을 할 필요가 있다.
서우진이 그와 같은 구상을 한 후에 조금강 성주를 찾아 뵙고 말씀드린다; “성주님, 여기서는 개경에서 발생하고 있는 경대승의 정치개혁에 대하여 그 전모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이 듭니다. 따라서 소신이 개경으로 들어가서 정보수집업무를 하고자 합니다. 정보가 수집이 되는대로 인편으로 은밀하게 이린에게 알려주겠습니다. 그가 여러가지 정보를 분석한 후에 성주님께 정식보고를 할 것입니다. 윤허하여 주십시오”.
성주인 조금강이 가장 알고 싶은 내용이 그것이다. 서우진과 이린이 손발을 맞추어서 그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겠다고 하니 가려운 곳을 긁어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만면에 미소를 띄우면서 말한다; “좋다. 그렇다면 우진이 자네가 개경으로 들어가서 마치 면경을 보듯이 그렇게 경대승의 개혁의 방향과 그 실적에 대하여 파악하고 이린 편으로 보고를 해주게. 허락하네… “.
성주의 허락을 얻은 서우진이 이웃집에 살고 있는 이린 부부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그러자 이린과 문나옥이 고개를 끄떡인다. 대표로 이린이 말한다; “그 직무를 수행하자면 우진이 자네가 다시 개경에 들어가서 당분간 살아야 하겠네. 그래 수집한 정보는 어떻게 의주성으로 알려줄 요량인가? 복안이 있는가?”.
서우진이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나는 애령이와 함께 개경으로 들어가고자 하네. 그리고 2달에 한번씩 수집한 정보를 애령이를 통하여 이곳으로 전해주겠네. 일단은 안전을 위하여 그렇게 인편으로 소식을 전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빠른 파발이나 전신구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네”;
합리적인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린 부부가 고개를 끄떡인다. 그쯤 이야기를 한 후에 서우진이 집으로 돌아와서 서애령에게 말한다; “애령아, 너는 나와 함께 개경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경대승의 행적에 대하여 파악한 후에 이곳 조금강 성주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서애령이 섭섭해 하는 눈치이다. 문나옥과 정이 들어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서우진이 말한다; “의주성에서는 이린 부부가 남아 있어 우리가 수집하여 제공하는 정보를 분석하여 정식으로 성주에게 보고할거야. 그렇게 알고 애령이 너는 문나옥 언니에게 작별을 고하고 오너라. 내일 바로 먼 길을 나와 함께 떠나야 해… ”.
서우진은 서애령이 돌아오자 다음날 바로 간단하게 행장을 차린 후에 그녀와 함께 남쪽으로 길을 떠난다. 그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은자의 상당부분을 이린 부부에게 맡기고 떠나는 걸음이다. 그런데 그냥 편하게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의주성을 벗어나자 산길을 타고서 국경너머 고려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험로이다.
서우진이 믿고 있는 것은 본래 여진족 추장의 딸인 애령이의 탈북 실력이다. 그녀는 5년전에 벌써 여진 땅을 탈출하여 고려의 개경까지 흘러온 경력의 소유자이다. 이번에도 톡톡하게 제 몫을 한다. 먼저 사방의 지형지물을 재빨리 파악한다. 그리고 국경수비대가 주로 어디를 지키고 있는지 감각적으로 알아낸다. 척후로는 제격이다.
몸에 지니고 있는 짐이 없기에 빠르게 의주성을 벗어나서 고려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그 다음에는 국경을 벗어나 일박을 하면서 말을 두 필이나 산다. 웃돈을 주자 주막주인이 좋아라 하면서 말을 구해준 것이다. 서우진과 애령은 무예를 익힌 몸이라 기마술이 상당하다;
그래서 5일이 지나지 아니하여 벌써 개경에 도착한다.
개경 가까이 오자 서우진이 애령에게 주의사항을 말한다; “애령아, 나는 천서방에게 우리가 사부 김숙번을 모시고 설악산 유람을 다녀온 다음에 우리 두사람은 달구벌 내 조상들의 땅으로 가서 선산을 둘러보고 오는 것으로 둘러 대었다. 그러니 너도 그렇게 알고서 처신을 하도록 해라”. 눈치가 빠른 애령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네, 걱정마세요”.
서우진은 애령과 함께 개경 북촌에 있는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온 다음에 말 두 필을 자신의 마굿간에 넣는다. 그리고 애령에게 말을 잘 돌보라고 말한다. 그러자 애령이 말한다; “오라버니, 걱정하지 마세요. 말을 돌보고 다루는 데는 제가 일가견이 있어요. 본래 유목민 추장의 딸인데요… “.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주의를 준다; “애령아, 우리 두 사람만 있을 때는 너의 신분을 밝혀도 좋지만 이제부터 다른 사람이 있을 때에는 철저하게 내 일가 친척 여동생으로 처신해야 한다. 그리고 특히 숙부님과 숙모님 앞에서는 나의 시녀역할을 해야 하고... 알겠지?... “. 애령이 즉시 대답한다; “네, 조금도 염려하지 마세요, 오라버니… ”.
그 다음날 저택에 들린 철원댁이 깜짝 놀란다. 8월 하순에 유람을 떠난 지주 서우진이 10월 중순에 벌써 귀가를 하였기 때문이다. 급히 인사를 하는 철원댁에게 서우진이 말한다; “그동안 내 저택을 잘 관리해주어 고맙네. 잠깐 기다리게, 내가 사례를 하겠네… “;
방으로 들어가서 삼한통보와 삼한중보를 몇 개 가지고 나온 서우진이 기분 좋게 철원댁의 손에 쥐어 준다. 그녀가 황송해 한다. 큰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서 서우진이 말한다; “내일은 천서방 보고 내 집에 들러서 올해 추수가 어떻게 처리가 되었는지 보고해달라고 말해 주게. 내가 궁금해서 그래… “. 철원댁이 즉시 대답한다;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지요. 제가 내일 아침 일찍 천서방이 지주나리를 찾아 뵙도록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의 힘이란 대단하다. 서우진이 철원댁에게 생각보다 많은 돈을 주자 그녀가 적극 나선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결혼생활을 오래하게 되면 부인의 힘이 남편보다 더 커지는 모양이다. 고려시대는 신라시대처럼 자유분방하고 여성의 힘이 강하다. 그래서 은연중에 철원댁이 남편인 천서방에게 그렇게 하도록 자신이 만들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고서 서우진이 속으로 빙그레 웃는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아침 일찍 천서방에 남촌에서 북촌인 서우진의 집을 찾아온다. 아예 기록한 장부를 모두 들고서 온 것이다.
자세한 보고를 들은 서우진이 딱 한마디만 한다; “참으로 천서방이 수고를 했어요. 작년처럼 곡간에 들인 양곡가운데 자네의 몫을 공제한 다음에 모두 싸전의 오서방에게 넘기고 수령증을 받아 두게. 물론 그 전에 우리집에서 사용할 양도는 우리 곡간에 들여놓게. 정말 수고했어요… ”.
천서방이 돌아간 다음에 서우진이 그가 남기고 간 장부를 살펴본다. 철원의 전답이 비옥하여 곡수가 상당히 많이 나고 있다. 금년농사도 평년작이 넘는다. 소작농들이 행복해할 것이다;
지주인 서우진도 기분이 좋다. 그렇다면 이린의 정착을 돕기 위하여 자신이 싸전의 오서방에게서 빼어간 은자 백냥이 이번에 채어질 것 같다.
그 정도만 파악하고서 서우진은 장부를 자신의 문갑에 보관한다. 그것은 사본이다. 원본은 천서방이 간수하고 있다. 물론 그 원본에는 서우진의 수결이 반드시 들어가 있다. 그러니 천서방이 오늘 아침에 원본과 사본을 모두 가지고 와서 보고를 마친 후에 원본에 지주인 서우진의 수결을 받아서 간 것이다. 그리고 토지대장은 모두 서우진이 비밀금고에 보관하고 있다.
그렇게 급한 일을 마친 서우진이 이번에는 숙부인 서화평과 무예선생인 김숙번의 집을 차례로 방문한다. 먼저 두 달 만에 숙부 서화평과 숙모 왕숙에게 문안인사를 드린다. 집안에 아들이 없고 딸 둘만 있는 숙부와 숙모가 든든한 조카 서우진을 보고서 그렇게 좋아한다.
서우진이 사촌 누나인 서예단과 서예청의 소식을 묻는다. 그러자 숙부 서화평이 말한다; “둘 다 시집에서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사위 두사람이 이번에 모두 조정에 들어왔다. 경대승이 무신들의 회의체인 중방의 힘을 약화시키고 자신을 위해서는 가신들을 중심으로 도방을 설치하는 한편 조정은 옛날처럼 문신과 무신이 함께 균형을 취하도록 조치를 했거든… ”.
서화평이 숨을 돌린 다음에 구체적인 내용을 조카 서우진에게 말한다; “그러니 문신으로 사위들이 출사를 한 것이야. 나도 승진하여 이제는 재상 바로 아래의 벼슬을 하고 있지. 그렇게 세상이 달라지고 있어. 이대로 제도가 확실하게 정착이 되면 경대승 장군은 충신으로 길이 역사에 남을 거야… “.
서우진이 숙부 서화평으로부터 실로 중요한 정보를 듣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가 내심 좋아하고 있는데 그 기색을 조카의 표정에서 읽었는지 서화평이 말한다; “우진아, 너도 세상이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가니 좋은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너도 이번에 문신으로 벼슬자리로 나아오는 것이 어떠하냐? 내가 추천을 할까 하는데… “.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급히 손을 가로 저으며 숙부에게 말한다; “숙부님, 저는 아닙니다. 이대로 귀족으로 사는 것이 훨씬 좋아요. 보고 싶은 서책도 마음껏 읽을 수가 있고요, 나름대로 선진문물도 접하고, 또 많은 재인들도 친구로 사귈 수가 있으니 그것이 훨씬 좋지요.. “;
그러자 숙모가 나선다; “여보, 우진이가 좋아하는 대로 그렇게 살게 해주세요. 어려서부터 제손에서 자라나서 그런지 우진이는 본래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이랍니다. 그런 인물이 집안에 한사람 있는 것도 좋지요. 모두가 고려조정에 문신으로 출사할 필요는 없어요”. 왕족인 왕숙이 낮은 귀족이었던 서화평을 좋아하여 결혼할 정도로 젊은 시절 활달한 성격이었음을 은근히 말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 말을 들자 서화평이 말한다; “여보, 저도 그렇게 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우리집에는 아들이 없어요. 형님도 늦게 얻은 우진이 밖에 없고 벌써 운명을 달리하셨고요. 그러니 우진이가 출사하여 조정에서 큰 벼슬자리에 오르고 우리 가문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하지요. 저는 우진이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 그 가진 재능이 너무 아까워서 더욱 그러는 거지요… 사실 우진이만이 대를 이어 나를 능가할 수가 있어요“.
그 말을 듣자 왕족인 숙모 왕숙이 아주 신중하게 말한다; “아무리 청년장군 경대승이 국왕의 위엄을 높여주고 무신의 권력을 바로잡아 문신의 위치를 다시 높여주는 정치개혁을 시행하고 있지만 그 성과는 두고 보아야 해요. 저는 왕족출신이라 경대승의 정치개혁이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세상일이란 그렇게 쉽게 속단할 수가 없는 거예요… “.
지혜가 넘치는 말씀이다. 그래서 서화평이 ‘끙’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거둔다. 그러면서 끝까지 한마디를 한다; “우진아, 나는 네가 나의 아들과 같은 장조카라서 하는 말이다. 부디 우리 가문을 생각하여 장가도 가고 훗날 출사할 생각을 해주기 바란다. 그것이 나이가 들어가는 이 숙부의 소원이다… “.
그 말을 들은 서우진이 절을 하면서 말한다; “숙부님, 잘 알겠습니다. 반드시 숙부님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조카가 되겠습니다.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훗날 그 결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서화평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우진이 네가 나도 모르는 무슨 복안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구나. 하기야 지금은 난세이다. 네가 다른 꿈을 이룰 수도 있겠지… “.
서화평 역시 재상 다음 벼슬을 할 정도로 총명한 인물이다. 장조카 서우진의 말속에 굳은 의지가 들어 있음을 은근히 눈치챈 것이다. 어쩌면 서우진은 고려를 뛰어넘는 생각을 하고 또한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그를 고려의 조정이라고 하는 작은 새장에 가두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인지도 모른다. 불현듯 그런 생각마저 드는 서화평이라고 하겠다.
숙부와 숙모에게 문안인사를 마친 서우진이 이제는 무예선생인 김숙번의 집을 찾아간다. 그는 과연 사부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일까?
'왕의 비밀(손진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王의 비밀8(작성자; 손진길) (0) | 2021.10.27 |
---|---|
王의 비밀7(작성자; 손진길) (0) | 2021.10.27 |
王의 비밀5(작성자; 손진길) (0) | 2021.10.25 |
王의 비밀4(작성자; 손진길) (0) | 2021.10.25 |
王의 비밀3(작성자; 손진길) (0) | 2021.10.25 |